Silla's home > 6. 왕씨고려는 고려를 계승하였나? > (3) 왕건 | 6 |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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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 R
어머니는 김씨 문명왕후로, 소판 서현의 막내딸이며 유신의 누이이다. 언니가 서형산 꼭대기에 올라가 앉고는 오줌을 누어 온 나라 안에 가득 퍼진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 동생에게 꿈을 말하니, 동생은 웃으면서 “내가 언니의 이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비단치마를 주고서 꿈 값을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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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 고려사(高麗史) | R
뒤에 두 딸을 낳았는데 막내딸의 이름은 진의(辰義)로 얼굴이 예쁜데다 지혜와 재주가 많았다. 나이 겨우 15세 때 그의 언니가 오관산 꼭대기에 올라가 소변을 보니 오줌이 천하에 흘러넘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 진의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자 진의가, 비단치마로 꿈을 사겠다고 청하기에 허락했다. 진의가 언니에게 다시 꿈 이야기를 하도록 한 후 꿈을 움켜다가 품는 시늉을 세 번 하니 이윽고 몸에 무엇이 들어온 듯 움직거렸으며 마음이 매우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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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 고려사(高麗史) | R
선종은 몰래 궁중을 빠져 나와 멀리 달아나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온갖 풍상을 겪었다. 보육의 집에 묵게 되었는데 두 딸을 보고 좋아하며 옷이 터진 곳을 꿰매 달라고 부탁했다. 보육은 즉시 큰 딸에게 부탁을 들어주도록 시켰다. 그러나 겨우 문지방을 넘자마자 코피가 쏟아지는 바람에 동생 진의를 대신 들여보내 잠자리를 모시게 했다. 숙종이 한 달을 머무르다가 진의가 임신하였다는 것을 알고 작별하면서 활과 화살을 주고 아들을 낳거든 그것을 주라고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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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 고려사(高麗史) | R
충선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한림학사로 충선왕과 교류했던 어떤 사람이 충선왕에게 물었다. ‘언젠가 들어보니 왕의 선조께서는 당나라 숙종의 후손이라고 하던데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숙종은 어려서부터 대궐 문을 나와 본 적이 없고 안록산의 난 때 영무에서 즉위했으니 어느 겨를에 동쪽으로 유람하여 아들까지 두었겠습니까?’ 왕이 크게 난처해하자 곁에 있던 민지가, ‘그것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잘못 썼을 뿐입니다. 숙종이 아니고 선종이십니다.’라고 응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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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 동사강목(東史綱目) | R
고려 태조는 궁예와 처음부터 군신 사이가 아니요, 다 신라의 백성으로서 어지러운 때를 틈타 까마귀떼처럼 한때 서로 만났었다. 신라왕실을 도와 추대하고 북을 치며 북진하였더라면, 대의(大義)는 밝아지고 왕업도 성취되었을 것이다. 이런 계책은 세우지 않고, 한밤중에 거사하여 창황하게 왕위에 올랐던 초라한 거동은 후세에 구실이 되었으니 애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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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아서: 개성왕씨(開城王氏) | R
중국 황제 헌원의 17세손 조명이 유누와 함께 건너와 지금의 평양 일토산 아래에 정착하였다. 그후 조명의 후손 수극이 기자가 왕이 되었을 때 왕씨 성을 하사 받았다. 그후 수극의 57세손 왕염의 13세손 왕몽으로 이어져 왔는데 왕몽은 신라 건국초기에 시중을 지냈다. 왕몽이 일곱째 아들 왕림을 데리고 지리산에 들어가 10여년 동안 수도하면서 전, 신, 차씨 등으로 성을 바꾸었고 차무일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차무일의 셋째 아들 왕식시의 후손이 왕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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