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7. 왕씨고려는 고려를 계승하였나? > (3) 왕건
 
 1145 삼국사기 - 꿈
문무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법민으로, 태종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문명왕후로, 소판 서현의 막내딸이며 유신의 누이이다. 언니가 서형산 꼭대기에 올라가 앉고는 오줌을 누어 온 나라 안에 가득 퍼진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 동생에게 꿈을 말하니, 동생은 웃으면서 “내가 언니의 이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비단치마를 주고서 꿈 값을 치뤘다. 며칠 뒤 유신이 춘추공과 축국을 하다가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유신은 “우리 ...
http://qindex.info/i.php?f=1954#5564
 
 1451 고려사 - 꿈 1
뒤에 두 딸을 낳았는데 막내딸의 이름은 진의(辰義)로 얼굴이 예쁜데다 지혜와 재주가 많았다. 나이 겨우 15세 때 그의 언니가 오관산 꼭대기에 올라가 소변을 보니 오줌이 천하에 흘러넘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 진의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자 진의가, 비단치마로 꿈을 사겠다고 청하기에 허락했다. 진의가 언니에게 다시 꿈 이야기를 하도록 한 후 꿈을 움켜다가 품는 시늉을 세 번 하니 이윽고 몸에 무엇이 들어온 듯 움직거렸으며 마음이 매우 뿌듯했다.
http://qindex.info/i.php?f=1954#41731
 
 1451 고려사 - 꿈 2
선종은 몰래 궁중을 빠져 나와 멀리 달아나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온갖 풍상을 겪었다. 보육의 집에 묵게 되었는데 두 딸을 보고 좋아하며 옷이 터진 곳을 꿰매 달라고 부탁했다. 보육은 즉시 큰 딸에게 부탁을 들어주도록 시켰다. 그러나 겨우 문지방을 넘자마자 코피가 쏟아지는 바람에 동생 진의를 대신 들여보내 잠자리를 모시게 했다. 숙종이 한 달을 머무르다가 진의가 임신하였다는 것을 알고 작별하면서 활과 화살을 주고 아들을 낳거든 그것을 주라고 일렀다.
http://qindex.info/i.php?f=1954#1002
 
 1451 고려사 - 꿈 3
충선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한림학사로 충선왕과 교류했던 어떤 사람이 충선왕에게 물었다. ‘언젠가 들어보니 왕의 선조께서는 당나라 숙종의 후손이라고 하던데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숙종은 어려서부터 대궐 문을 나와 본 적이 없고 안록산의 난 때 영무에서 즉위했으니 어느 겨를에 동쪽으로 유람하여 아들까지 두었겠습니까?’ 왕이 크게 난처해하자 곁에 있던 민지가, ‘그것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잘못 썼을 뿐입니다. 숙종이 아니고 선종이십니다.’라고 응대했다.
http://qindex.info/i.php?f=1954#1006
 
 1451 고려사 - 꿈 4
꿈과 관련된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문무왕 이야기와 같아 지어낸 것이 분명하다. 당나라 황제의 후손이라는 부분은 그가 중국계 혈통일 가능성을 열어준다. 고려계승이라는 건국 명분에는 뿌리가 고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도움이 될텐데 굳이, 중국계 혈통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왕씨 왕조가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당나라 황제의 후손을 자처했을 수도 있다.
http://qindex.info/i.php?f=1954#5565
 
 1451 고려사 - 왕건 설화
http://qindex.info/i.php?f=1954#5562
 
 1778 동사강목
고려 태조는 궁예와 처음부터 군신 사이가 아니요, 다 신라의 백성으로서 어지러운 때를 틈타 까마귀떼처럼 한때 서로 만났었다. 신라왕실을 도와 추대하고 북을 치며 북진하였더라면, 대의는 밝아지고 왕업도 성취되었을 것이다. 이런 계책은 세우지 않고, 한밤중에 거사하여 창황하게 왕위에 올랐던 초라한 거동은 후세에 구실이 되었으니 애석한 일이다.
http://qindex.info/i.php?f=1954#25022
 
 뿌리를 찾아서 - 개성왕씨(開城王氏)
중국 황제 헌원의 17세손 조명이 유누와 함께 건너와 지금의 평양 일토산 아래에 정착하였다. 그후 조명의 후손 수극이 기자로부터 왕씨 성을 하사 받았다. 그후 수극의 57세손 왕염, 그의 13세손 왕몽으로 이어져 왔는데 왕몽은 신라 건국초기에 시중을 지냈다. 왕몽이 정쟁을 피해 일곱째 아들 왕림을 데리고 지리산에 들어가 10여년 동안 수도하면서 전, 신, 차 등으로 성을 바꾸었고 이름도 차무일로 바꾸었다. 차무일의 셋째 아들 왕식시의 후손이 왕건이다.
http://qindex.info/i.php?f=1954#24604
 
 ¦왕건
왕건의 뿌리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뿌리를 찾아서'에 실려 있는 개성왕씨의 연원을 보면 왕건의 조상은 중국 황제 헌원의 17세손인 조명으로 나온다. 기자조선과 신라의 조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반면 고려사에는 왕건이 당나라 숙종의 후손이라고 되어 있다. 어쨋든 왕건과 고려와의 사이에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건이 호족으로 있었던 송악이 200여년 전에 고려의 땅이었다는 것만이 왕건과 고려를 연결시켜 ...
http://qindex.info/i.php?f=1954#55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