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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지방은 고속도로까지 개설하는 정부가 호남선은 복선마저 제대로 않고 푸대접하고 있다. 경상도 정권을 타도하자! ○ 지금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려고 왔다. 우리가 이대로 있어서야 되겠느냐, 금남로로 전부 모여라! ○ 경북 번호판을 단 타이탄 트럭 1대가 불타고 있었으며 운전사로 보이는 사람이 구타당해 쓰러져 있었습니다. ○ 주한미대사관 - 지역주의와 전라도 정치 지도자 김대중의 체포에 대한 반발로 심각한 폭동이 일어났다.
 
1969-10-13 신민당
(이재형 정성태 김대중 윤길중 양일동 양회수씨 등은) "영남지방은 고속도로까지 개설하는 정부가 호남선은 복선마저 제대로 않고 푸대접하고 있다. 경상도 정권을 타도하자!" ● 처음에는 색깔론으로 공화당을 공격했으나 실패했고 이어서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경제개발이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하자 민주당으로서는 불균형 성장 외에 트집을 잡을만한 게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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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대통령 선거 1
1963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색깔론으로 박정희를 공격했고 결과는 박정희와 윤보선의 득표율이 각각 47%와 45%로 박빙의 승부였다. 1967년의 대선에서는 두 사람의 득표율이 각각 51%와 41%를 기록하며 격차가 벌어졌는데, 이는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경제개발이 성과를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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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대통령 선거 2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주당은 1971년 대선에서 불균형 성장을 트집잡고 지역감정을 선동했다. 그러나 결과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득표율이 각각 53%와 45%로 나타나 대세를 바꾸지 못했다. ● 경제개발이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상황이라 박정희 정권은 굳이 지역감정을 부추길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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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19 광주폭동
"날이 어두워지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0m 정도 되는 지점에서 차량에 불이 나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1개 지역대 병력을 제가 데리고 가보니 경북 번호판을 단 타이탄 트럭 1대가 불타고 있었으며 운전사로 보이는 사람이 구타당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운전사는 경찰에 인계하여 후송시키고 다시 로터리로 복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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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0 광주폭동
"21시경이 지나자 시위대가 앰프를 단 차량으로 도로 상을 돌아다니며 최초로 선무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여자가 애끓는 듯한 소리로 시민들을 자극하는 방송을 했습니다. 이북에서 대남방송하는 여자들의 억양과 같아 전율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내용은 「지금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려고 왔다. 우리가 이대로 있어서야 되겠느냐, 금남로로 전부 모여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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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1 광주폭동
흉기를 지닌 300여명의 폭도들이 광주 농성동에서 길을 막고 이동하던 20사단 차량을 공격하였는데, 고향을 물어보며 공격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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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1 주한미국대사관
지역주의(regionalism)와 전라도 정치 지도자 김대중의 체포(the detention of Kim Dae Jung, Cholla's leading politician)에 대한 반발로 심각한 폭동(serious rioting)이 일어났다. 그리고 투입된 군인들이 경쟁 관계에 있는 경상도에서 왔다는 비난(charges)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김대중은 김종필과 함께 체포되었으며 광주, 전주 그리고 대전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전라북도에 있는 7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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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7 김씨조선의 동영상
"살인 악당은 광주시 기습에 동원된 제놈의 X배라 불리는 경상도 출신들로 꾸려진 계엄군 공병대놈들 앞에서 지역적 감정을 고추하면서 이렇게 떠벌렸다.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젊은 놈들은 모조리 죽여 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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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03-19 대한뉴스
전두환 대통령은 광주에 내려가 농가에서 민박을 하며 지역민과 마음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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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김영삼 전라도 광주 유세
1987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 광주 유세에서는 김영삼도 연설을 하지 못했다. 김영삼은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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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노태우 전라도 광주 유세
민주화운동의 핵심은 대통령 직선제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후 1987년 광주에서 있었던 노태우 후보의 연설에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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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4-25 검찰 수사기록, 장OO
"민간인 2명이 저에게 뛰어와 하는 말이 금남로 옆에 있는 길에서 시위대들 중에 메가폰을 든 사람이 '저기에 경상도놈 차다.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을 죽이러 왔으니 경상도놈 죽여라' 하자 화염병이 날아와 차가 불타고 많이 두들겨 맞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 보니 비키니 옷장을 실은 트럭 2대가 불에 타 폭삭 주저앉은 상태였었습니다." 장OO 11여단 61대대 정보장교: 1995.4.25 진술조서, 5.18사건 검찰수사기록 31,64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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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6-28 검찰 수사기록, 이상휴
1995-06-28 검찰 수사기록   광주사태 충정작전 소감문   육군본부가 작성한 역사자료  
 
2000-03-01 김대중
“전에는 영·호남이 나쁘지 않았으나 5·16 쿠데타 이후에 완전히 갈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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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3-02 김종필
"63년 대선때 고 박정희 대통령이 '빨갱이' 시비로 국민이 무척 당황했으나 개표 결과 막판 15만표 차이로 당선이 됐다. 당시 이 표는 김대통령(김대중)의 고향인 신안·무안서 나왔는데도 박대통령이 영·호남을 갈라놓았다고 할 수 있느냐. 대한민국이 영·호남으로 갈린 것은 71년 김대통령(김대중)이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하면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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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3-03 박근혜
“지역감정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김대통령(김대중), 본인의 잘못을 알면서도 남에게 덮어씌우는 행동은 지도자로서의 기본 자격조차 의심케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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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중국의 1인당 소득
이 그림은 중국의 2004년 1인당 소득이다. 동부와 서부의 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다를 접한 지역이 산업화에 유리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불가피하다. 한국에서도 산업화 과정에서 유사한 불균형 성장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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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9 호남차별/지역감정
○ 박통 때 호남 차별을 했다는 것도 그래요. 정책적으로 차별 받은 적이 없어요. 남동지역을 공단으로 키운 것은 서울과 부산을 잇는 어찌 보면 필연적인 거였어요. 내가 경제적인 지표들을 뽑아 봤는데, 영호남인의 1인당 총생산에 아무 차이가 없어요. 오히려 제일 낮은 게 경북이에요. ○ DJ 이전에는 지역 감정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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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노태우 면담록
"광주사태의 진범은 유언비어(流言蜚語)였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악랄한 유언비어가 광주 시내를 뒤덮었다.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 '무지막지한 군인이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잘라냈다', '처녀의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등 수많은 유언비어가 사실인 양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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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6 호남주의/후견주의
●호남주의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남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정체성을 확보한 이들이라,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반(反)호남주의, 영패주의자라는 낙인을 찍곤 하죠. ●국가주의자들이 레드 콤플렉스 선동으로 반대자를 공격한다면, 호남주의자들은 있지도 않은 호남차별론 선동으로 반대자를 공격합니다. 공포 혹은 원한과 같은 매우 원초적인 부정적 감정을 부추겨 유권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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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6 이희성 인터뷰
'당시 공수부대는 소요 진압 임무가 있었소. 5월 18일 아침 휴교령이 내려져 있는데 학생들이 들어가겠다며 전남대 정문에서 군인들과 충돌한 게 발단이었소. 학생들은 가방에 넣어온 돌을 던졌고 군인들이 무방비로 맞은 거요. 그 뒤 시내에서 학생들이 집결하자 군인들이 뒤쫓아가며 진압봉으로 두들겨 팼소. 이를 본 시민들은 공수부대원들이 무자비하다고 흥분한 거요. 어떤 세력이 '경상도 공수부대가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러 왔다'며 악성 루머를 퍼뜨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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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8 MBN 정규해를 교정한다
"확실시되는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신군부가 김대중 및 다른 전라도 출신 인사들을 너무나도 극심하게 탄압했기 때문이다" ● 5월 21일의 미대사관 전문을 요약하면 '지역주의와 전라도 정치 지도자 김대중의 체포에 대한 반발로 심각한 폭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투입된 군인들이 경쟁 관계에 있는 경상도에서 왔다는 비난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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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 공수부대 투입
5월17일 밤11시30분 육본은 전북에 있는 공수 7여단에 출동명령을 내렸다. 31대대는 전주의 전북대로, 32대대는 대전의 충남대로, 33 및 35대대는 광주의 전남대로 진주하라는 명령이었다. 33 및 35대대는 18일 새벽 3시10분에 전남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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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398 계엄군의 출신지
"광주지역의 향토사단인 31사단에는 호남지역 출신들이 많았다. 또한 광주에 맨 처음 투입된 7공수여단도 전북 금마에 주동하고 있어서 부대원 중 40퍼센트가 호남 출신이었다. 순차적으로 광주에 증파된 공수부대들을 작전통제한 소준열 전교사령관과 정웅 31사단장도 호남이 고향이다. 소준열 장군은 전남 구례, 정웅 장군은 전남 순천 출신이다. 계엄사령부 작전참모부장으로서 광주 작전을 총괄한 김재명 장군도 바로 광주와 이웃한 전남 강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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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 전사
“가장 큰 요소로는 호남인들의 소외의식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소외의식이란 5·16 이후 박 대통령이 주도한 제3공화국 당시 주로 경제정책의 시행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나타난 영호남의 지역차별설, 호남 푸대접설 등 호남주민들이 느껴왔던 일종의 피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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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 전사
“광주유혈소요사태의 주요 발단 동기는 다년간 누적되었던 지역감정이고 5·17조치로 김대중이 연행되자 호남인들을 탄압하는 것으로 판단하였고 이러한 상황을 악용한 김대중 추종세력의 사태악화 유도 및 배후조정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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