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5.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 (3) 고려의 정체성
 
 0289 삼국지
동옥저는 나라가 작고 큰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핍박을 받다가 결국 구려(句麗)에 신속케 되었다. 구려는 그 중에서 대인을 두고 사자로 삼아 함께 통치하게 하였다. 또 대가로 하여금 조세를 통괄 수납케하여 맥(貊)·포목·생선·소금·해초류 등을 천리나 되는 거리에서 져나르게 하고 또 동옥저의 미인을 보내게 하여 종이나 첩으로 삼았으니 그들을 노복처럼 대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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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9 삼국지 - 고구려
句驪一名貊有別種依小水爲居因名曰小水貊 구려는 일명 맥이라 부른다. 별종이 있는데, 소수에 의지하여 사는 까닭에 이를 소수맥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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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14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선조 왕들이 다만 원근에 사는 구민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지키며 소제를 맡게 하였는데, 나는 이들 구민들이 점점 몰락하게 될 것이 염려된다. 만일 내가 죽은 뒤 나의 무덤을 편안히 수묘하는 일에는, 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해 온 한인(韓人)과 예인(穢人)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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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5 위(北魏)
 0435 위서(554)    0435 북사(659)    0435 삼국사기(1145)  
 
 0449 중원고려비(中原高麗碑)
정월 중 고려(高麗) 태왕 ... 동이(東夷) 매금(寐錦)이 늦게 돌아와 매금 토내의 제중인에게 절교사를 내렸다. ... 12월 23일 갑인에 동이 매금의 상하가 우벌성에 와서 교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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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2 위(北魏)
 0491 삼국사기(1145)    0492 위서(554)    0492 북사(659)    0492 삼국사기(1145)  

0519 위(北魏)
 0519 위서(554)    0519 북사(659)    0519 삼국사기(1145)    0519 삼국사기(1145)  

0532 위(北魏)
 0532 위서(554)    0532 북사(659)    0532 삼국사기(1145)  

0550 제(北齊)
 0550 북사(659)    0550 북제서(636)    0550 삼국사기(1145)  
 
 0556 일본서기(720)
소아대신도목숙녜 등을 왜국의 고시군에 보내어 한인(韓人)대신협둔창(여기에서 한인이란 백제를 이른다), 고려인(高麗人)소신협둔창을 두도록 하였다. 그리고 기국에 해부둔창을 두도록 하였다. 어떤 책에서는 '각지의 한인을 대신협둔창의 전부로 삼았다. 고려인을 소신협둔창의 전부로 삼았다. 한인, 고려인을 전부로 삼은 것을 가지고 둔창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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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0 제(北齊)
 0559 북사(659)    0560 삼국사기(1145)  

0577 주(北周)
 0577 수서(636)    0577 주서(636)    0577 북사(659)    0577 삼국사기(1145)  

0590 수(隋)
 0590 수서(636)    0590 삼국사기(1145)  

0598 요동 더러운 땅의 신하
 0598 수서(636)    0598 북사(659)    0598 삼국사기(1145)  

0624 당(唐)
 0624 구당서(945)    0624 삼국사기(1145)  
 
 0643 구당서(945)
왕위를 계승한 장(藏 보장왕)을 책봉하여 요동군왕(遼東郡王) 고려왕(高麗王)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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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43 신당서(1060)
황제의 편지를 주어 보내 고려(高麗)를 나무라고 공격하지 말도록 하였다. 사자가 채 이르기 전에 개소문이 벌써 신라의 두 성을 탈취하였다. 현장이 태종의 유지를 알리자 “지난 날 수나라의 침략을 받았을 적에 신라는 우리 땅 5백리를 빼앗아갔소. 다 돌려주지 않으면 싸움을 중지할 수 없소.” 라고 하였다. 현장이 “지나간 일을 논할 것이 있겠소? 요동(遼東)은 본시 중국의 군현이지만 천자께서는 그래도 취하지 않으시었소.”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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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44 신당서(1060)
태종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하고자 장안의 노인들을 불러 모아 위로하며, “요동(遼東)은 옛 중국 땅이며 도적 막리지가 그 군주를 죽였으므로 짐이 친히 경략하려 한다. 그러므로 어른들과 약속을 하겠는데 나를 따라 나서는 아들이나 손자들은 내가 잘 보살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라고 하고 곧 포·속을 후하게 내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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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0년경 상태사시중장(上太師侍中狀)
고려(髙麗)와 백제의 전성 시에는 강한 군사가 백만이었습니다. 남으로는 오·월을 침공하였고 북으로는 유의 연, 제, 노의 지역을 어지럽혀 중국의 커다란 해충이 되었습니다. 수나라 황제가 나라를 그르친 것도 요동정벌(征遼)에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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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1 삼국유사
신라 제27대에 여왕이 왕이 되니 도는 있으나 위엄이 없어 구한(九韓)이 침략하였다. 만약 용궁 남쪽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면 곧 이웃나라의 침입이 진압될 수 있다. 제1층은 일본 , 제2층은 중화 , 제3층은 오월 , 제4층은 탁라(托羅) , 제5층은 응유(鷹遊) , 제6층은 말갈 , 제7층은 거란 , 제8층은 여적, 제9층은 예맥(穢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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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다른 이름
 0289 삼국지    0445 후한서    0449 중원고려비    0526-0539 양직공도 백제국사    0539 or 599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    0554 위서    0636 수서    0636 양서    0636 주서    0659 남사    0720 일본서기    0945 구당서    1060 신당서   • 1084 자치통감(資治通鑑)    1124 선화봉사고려도경 (宣和奉使高麗圖經 宋 徐兢)    1145 삼국사기 - 최치원    1281 삼국유사  
 
 ¦고려의 정체성
한국통일 이전에는 신라와 고려가 서로를 동족으로 인식했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신라와 고려가 서로를 다른 종족으로 인식했다는 기록은 간혹 보인다. 광개토왕릉비(414)에는 광개토왕이 '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해 온 한인(韓人)과 예인(穢人)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있고, 중원고려비(449)에서는 신라를 동이(東夷)라 불렀으며, 삼국유사(1281)에는 신라가 황룡사 9층탑을 세운 목적을 소개해 놓았는데, 주변의 아홉 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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