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은 원래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이후 백제, 신라 그리고 임나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가 임나가 망하자 백제, 신라 그리고 고려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당이 물러간 676년의 상황은 첫번째와 두번째 의미의 삼한에 예의 일부가 포함된 정도였고 762년에 가서야 대방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이 영역은 첫번째와 두번째 의미의 삼한보다는 크지만 세번째 의미의 삼한에는 크게 부족하다.
따라서 삼한통일이라는 말도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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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2 三國史記(1145)
우리나라의 선왕 춘추(태종 무열왕)의 시호가 우연히 성조(당 태종)의 묘호와 중복되었다. 조칙으로 고치라고 하니, 내 어찌 감히 명령을 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생각하건대 선왕 춘추는 매우 훌륭한 덕을 지닌 분이시다. 더구나 살아생전에 김유신이라는 어진 신하를 얻어 한 마음으로 정사에 힘써 삼한을 통일하였으니(一統三韓) 그가 이룬 업적이 많지 않다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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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통일인가?
앞서 삼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첫 번째 의미는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을 통틀어 일컫는 의미였고 두 번째 의미는 신라, 백제 그리고 고려를 통틀어 일컫는 의미였다.
신라의 통일영역은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의 영역을 합친 것과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첫 번째 의미의 삼한을 적용하여 삼한통일이라 부르는 게 타당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676년 당시에는 이미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은 없어진 지 수 백 년이 지난 후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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