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676 ⏍ 新羅民族論 > (3) 新羅민족의 형성 > ① 삼국통일인가?

당이 물러간 676년의 상황을 보면 신라의 북쪽 경계는 고려가 있을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신라는 이후 조금씩 영토를 넓혀나가 762년에 이르러서야 대방을 자신의 영역으로 공고히 하였다. 고려에 속했던 맥, 예, 옥저 그리고 부여는 모두 발해의 영역이 되었다. 이런 상황은 삼국통일이라 부를 수 없다. 게다가 삼국통일은 남북국시대와도 모순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발해는 고려를 계승할 수 없고 그러면 신라와 발해는 남북국으로 묶일 수 없기 때문이다.
 
0611 三國史記(1145)
노인이 이에 “자네는 어리지만 삼국을 병합할 마음(并三國之心)을 가지고 있으니 또한 장하지 아니한가?”라고 하며 곧 비법을 가르쳐 주면서 “삼가 함부로 전하지 말게. 만약 의롭지 못한 데 쓴다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을 것이네.”라고 말하였다. 말을 끝마치고 작별하였는데 2리 정도 갔을 때 쫓아가 그를 바라보았으나 보이지 않고 오직 산 위에 빛이 있어 오색과 같이 찬란하였다.
5586#5607 SIBLINGS CHILDREN COMMENT 5607
 
0611 三國史記(1145)
▐ 삼국(三國)이라는 표현은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들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삼한이나 신라시대에 삼국이란 표현이 사용된 예를 아직 보지 못했다.
5586#5608 SIBLINGS CHILDREN COMMENT 5608
 
0676년 전후
0676년 전후
당이 물러간 676년의 상황을 보면, 신라의 북쪽 경계는 고려가 존재할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진흥왕때 차지했던 예는 오히려 잃었다. 이후 신라는 조금씩 영토를 넓혀나가 762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대방 지역을 자신의 영역으로 공고히 할 수 있었다.
5586#5588 SIBLINGS CHILDREN COMMENT 5588
 
0698년 이후
0698년 이후
668년 고려가 망할 때 왕과 귀족을 비롯한 낙랑고려의 핵심 세력은 모두 요서의 영주로 끌려갔다. 그리고 698년에 발해가 세워지자 고려에 속했던 맥, 예, 옥저 그리고 부여는 모두 발해의 영역이 되었다.
5586#5591 SIBLINGS CHILDREN COMMENT 5591
 
0924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昔之蕞爾三國 今也壯哉一家 옛날엔 조그마했던 세 나라가 이제는 장하게도 한 집이 되었다.
5586#16514 SIBLINGS CHILDREN 16514
 
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1960.10.29 김정일
신라는 당나라침략자들과 결탁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기는 하였으나 우리 나라에 하나의 통일적인 주권국가를 세우지는 못하였다. 신라는 대동강 이남 지역밖에 차지하지 못하였으며 대동강 이북의 옛 고구려땅에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국이 창건되여 200여 년 동안 존재하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차지하고 있던 령토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주권국가인 발해와 신라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신라에 의하여 삼국이 통일되였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있다.
5586#3686 SIBLINGS CHILDREN 3686
 
고등학교 교과서(2003)
신라의 삼국 통일은 외세의 이용과 대동강에서 원산만까지를 경계로 한 이남의 땅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의 세력을 무력으로 몰아 낸 사실에서 자주적 성격을 인정할 수 있다. 또, 고구려⋅백제 문화의 전통을 수용하고 경제력을 확충함으로써 민족 문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5586#817 SIBLINGS CHILDREN COMMENT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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