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씨의 특징은 본관이 영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영남 지역에서 출발한 신라가 한국을 통일했던 역사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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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7 「三國誤記」 新羅
始祖姓朴氏✘ 諱赫居世 前漢 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丙辰一曰正月十五日即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囯號徐那伐
시조의 이름은 혁거세이다. -57년 4월 병진(또는 정월 15일이라고도 하였다)에 즉위하여 거서간이라 일컬었다. 이때 나이는 13세였고 나라 이름을 서나벌이라 하였다.
┆신라왕의 성이 처음 나타난 것은 521년의 일이다.
1720#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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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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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7 朴赫居世
▐ 삼국사기는 辰人謂瓠爲朴 以初大卵如瓠 故以朴爲姓이라 하여 朴이 박의 음차라 하였으나, 삼국유사에 身生光彩 因名赫居世王 或作弗矩内王 言光明理世也라 하여 赫이 밝-의 훈차라 하였으므로, 朴도 밝-의 음차일 가능성이 있다. 밝-의 음차와 훈차를 붙인 朴□와 赫□가 별도로 존재하다 후대에 朴이 성이 되면서 赫은 이름으로 인식되었다는 이야기다.
居世는 居西干의 居西를 이름으로 오인해서 붙인 듯하다.
그렇다면 朴赫居世의 원래 명칭은 '밝은 임금' 정도였다.
1720#27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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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6 廣開土王陵碑(414)
396년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였다. 백잔주가 곤핍해져, 남녀 생구 1천 명과 세포 천 필을 바치면서 왕에게 항복하고, 이제부터 영구히 고려왕의 노객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태왕은 앞의 잘못을 은혜로서 용서하고 뒤에 순종해 온 그 정성을 기특히 여겼다. 이에 58성 700촌을 획득하고 백잔주의 아우와 대신 10인을 데리고 수도로 개선하였다.
1720#1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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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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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3 宋書(488)
高句驪王 高璉 晋安帝 義熙九年 遣長史高翼奉表獻赭白馬 以璉爲使持節·都督營州諸軍事·征東將軍·高句驪王·樂浪公
고구려왕 고연이 진나라 안제 의희 9년에 장사 고익을 보내어 표문을 올리고 자백마를 바쳤다. 안제는 고연을 사지절 도독영주제군사 정동장군 고구려왕 낙랑공으로 삼았다.
▐ 고려의 高씨 왕성이 고려에 의해 나타나는 최초의 기록이다.
1720#6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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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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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4 廣開土王陵碑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웠는데 北夫餘에서 태어났으며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었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는데 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다 夫餘의 엄리대수를 거쳐가게 되었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며 하백의 따님을 어머니로 한 추모왕이다”라고 하였다.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떼가 물위로 떠올랐다. 건너가서 비류곡 홀본 서쪽 산상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웠다.
1720#1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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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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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4 廣開土王陵碑
▐ 이 설화는 고려 왕조의 공식적인 이야기다.
고려의 高씨가 顓頊高陽의 후예라는 이야기는 이 설화와 모순되고 또 고려 왕조에 의해 언급된 적도 없으므로, 북연의 고운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백제 餘씨가 夫餘에서 따온 것처럼 고려 高씨도 高麗라는 나라 이름에서 따왔다고 보아야 한다.
1720#1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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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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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9 南齊書(537)
加羅국은 삼한의 한 종족이다. 건원 원년에 국왕 荷知가 사신을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 이에 조서를 내렸다. “널리 헤아려 비로소 올라오니, 멀리 있는 오랑캐가 두루 덕에 감화됨이라. 가라왕 하지는 먼 동쪽 바다 밖에서 폐백을 받들고 관문을 두드렸으니, 보국장군 본국왕의 벼슬을 제수함이 합당하다.”
1720#4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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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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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梁書(636)
其國小 不能自通使聘 普通二年 王姓募名秦 始使使隨百濟奉獻方物
신라는 나라가 작아서 독자적으로 사신을 파견할 수 없었다. 521년에 성은 모, 이름은 진인 왕이 처음으로 사신을 파견하였는데 백제를 따라와 방물을 바쳤다.
無文字 刻木爲信 語言待百濟而後通焉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의사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 신라는 백제(372), 고려(413) 그리고 가라(479)에 비해 늦게 중국에 조공을 시작했다.
1720#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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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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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2 三國史記(1145)
금관국(金官國)의 왕인 김구해가 왕비와 세 명의 아들 즉 큰 아들인 노종, 둘째 아들인 무덕, 막내 아들인 무력을 데리고 나라의 창고에 있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이 예로써 대접하고 상등의 벼슬을 주었으며, 본국을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
▐ 이때까지도 신라왕이 김씨 성을 사용한 흔적이 없다. 따라서 왕건이 망명해 온 발해 왕자 대광현에게 왕씨 성을 내려준 것처럼 신라왕이 남가라 왕에게 김씨 성을 내려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1720#1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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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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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 日本書紀(720)
신라가 임나관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통틀어 말하면 임나이고, 개별적으로 말하면 가라국, 안라국, 사이기국, 다라국, 졸마국, 고차국, 자타국, 산반하국, 걸찬국, 염례국 등 모두 열 나라이다.
1720#1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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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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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5 北齊書(636)
▐ 백제의 餘씨 왕성은 근초고왕이 고려의 평양성을 침공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이듬해의 기록에 처음 나타나고, 고려의 高씨 왕성은 광개토왕이 백제를 침공하여 항복을 받아내고 신라에 침입한 왜를 내쫓은 지 7년 후의 기록에 처음 나타나며, 신라의 金씨 왕성도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임나를 병합한 지 3년 후의 기록에 처음 나타났다. 패권을 장악했을 때 왕성이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1720#7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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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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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5 北齊書(636)
▐ 백제 餘씨는 夫餘에서 따왔고 고려 高씨는 高麗에서 따왔는데 신라 金씨는 新羅와 상관없는 이름이라 특이하다. 진짜 金日磾의 후손이라 그럴 수도 있고 국명 대신 도읍 金城에서 따왔을 가능성도 있다. 가라 金씨도 백제나 고려처럼 金官國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있으나, 신라에 병합된 이후 신라가 金씨 왕성을 도입할 때 같이 편입되었을 수도 있다.
1720#1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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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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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周書
髙麗者 其先出於夫餘 自言始祖曰 朱蒙 河伯女感日影所孕也 朱蒙長而有材 畧夫餘人惡 而逐之土 于紇斗骨城 自號曰髙句麗 仍以髙為氏
고려는 그 선조가 부여에서 갈라져 나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시조는 주몽인데 하백의 딸이 햇빛에 감응되어 잉태하였다’고 한다. 주몽이 장성하여 재주와 지략이 있자 부여 사람들이 미워하여 쫓아버렸다. 흘두골성에 살면서 스스로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이어 고씨로 성을 삼았다.
1720#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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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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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3.09.24 日本書紀(720)
▐ 삼한시대에는 왕족과 귀족들만 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당나라는 660년에 백제왕조를 무너뜨리고 도성에 있던 왕족과 귀족들을 당나라로 데려갔다. 지방에 있던 왕족과 귀족들은 주류성에 모여 왕조의 재건을 시도하였으나 663년에 패하여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것이 한국에 백제계 성씨가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1720#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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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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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1 星漢王·閼智·金日磾·少昊金天
▐ 신라 金씨는 북제서(636)의 565년 기록에 처음 나타난다.
太祖는 마운령비(568)와 황초령비(568)에 나타는데, 이즈음 太祖 星漢王에 대한 추존이 이루어진 듯하다. 星漢王의 아버지 閼智에 관한 설화는 그 이후 생겨났을 것이다.
문무왕릉비(681)에는 金日磾의 후손을 자처하는 이야기가 나타나고 김인문 묘지석(695)에는 少昊金天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모두 신라 김씨의 공식 기록이라 할 수 있는데, 閼智 설화와는 모순된다.
1720#15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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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赫居世
조선의 유민이 진한에 6촌을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말이 낳은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오자 성을 朴으로 하고 이름을 혁거세라 하여 왕으로 삼았다. 이어서 용이 우물가에서 여자아이를 낳자 왕비로 삼았다.
삼국유사는 중국 황실의 딸 신모가 진한에 와서 혁거세를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1720#1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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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인국통계조사 - 본관
경북 경주 482만,
경남 김해 449만,
경남 밀양 340만,
전북 전주 321만,
경남 진주 137만,
경북 안동 126만
▶본관이 영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경주 김씨, 경주 이씨 등이 있고 전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전주 이씨, 전주 김씨 등이 있다. 전주 김씨는 김알지의 후손인데 몽골침입 때 그 시조가 경주에서 전주로 이주하여 전주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1720#7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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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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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인국통계조사 - 성씨
김해 김씨 412만,
밀양 박씨 303만,
전주 이씨 261만,
경주 김씨 174만,
경주 이씨 142만
▶성씨가 영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해 김씨는 남가라 수로왕의 후손이고 밀양 박씨는 신라 박혁거세의 후손이다. 전주 이씨는 이성계의 조선 건국 후 크게 번창하였고 경주 김씨는 신라 김알지의 후손이다. 경주 이씨는 신라의 건국에 참여한 양산촌장의 후손.
1720#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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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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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인국통계조사 - 성씨 분포
왼쪽으로부터 김해 김씨, 밀양 박씨, 전주 이씨, 경주 김씨 그리고 경주 이씨.
❶ 김해 김씨는 남가라 김수로왕의 후손인데 왜 서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가?
❸ 전주 이씨는 전주에서 기원하지만 이조의 건국 이후 한양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그런데 왜 영남 지방에만 드물게 분포할까?
❺ 경주 이씨는 경주에서 기원하니 이러한 분포가 자연스럽다.
○ 서남 지역의 김해 김씨와 경기와 영남 이외의 전주 이씨는 자연스러운 분포가 아니다.
1720#1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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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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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김성회
김씨의 시조에 대해서는 네 가지 주장이 있다.
❶ 소호금천씨의 후예 - 김유신비문(673), 김인문비문(695), 대당고김씨부인묘비(864), 삼국사기(1245)
❷ 김일제의 후예 - 문무왕비문(681), 대당고김씨부인묘비(864)
❸ 알지와 수로의 후예 - 삼국사기(1145), 삼국유사(1281)
❹ 신라가 고대국가로 왕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씨족을 표시하는 한자식 성으로 김씨 성을 쓰게 되었다.
❶과 ❸은 비과학적이고 ❷는 근거가 부족하다.
1720#1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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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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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왕조는 초원에서 오지 않았다.
낙동강 유역에서 성장한 가라와 신라는 고고학적 양상이 백제나 고려과는 다르고 초원과 닮은 점이 있다. 금동관, 적석목곽분 그리고 순장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래서 이들 두 나라를 초원에서 흘러온 세력이 세운 것으로 상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기록에는 중국에서 대동강 유역을 거쳐 낙동강 유역으로 유민이 흘러왔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초원에서 흘러왔다는 이야기는 없다. 따라서 고고학적 양상은 문화의 전파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합당하다.
1720#1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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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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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씨의 역사
원래 고대에는 왕족과 몇몇 귀족가문만 성을 가지고 있었다. 백제의 왕족은 여, 부여 등의 성을 사용하였고 귀족들은 8족을 비롯하여 흑치, 사마 등 20여 가지 성을 사용하였다. 고려의 왕족은 고씨 성을 사용하였고 귀족들은 연, 을지 등 20여종의 성을 사용한 것이 역사기록에서 확인된다. 신라는 왕족이 박/석/김 3성을 사용하였고 귀족들은 이, 최, 정, 손, 배, 설 등 10여 가지 성을 사용하였다. 이들 중 중국식 한자성은 후대에 들어왔으나 선대까지 ...
1720#7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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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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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씨의 의미
성씨의 역사를 살펴볼 때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씨는 생물학적인 부계혈통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의 통계청 자료가 보여주는 우리나라 성씨의 경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첫째, 남의 성씨를 빌려 쓴 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 성씨를 썼던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 다른 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
1720#7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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