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676 ⏍ 新羅民族論 > (2) 多種族 상태 > 姓氏 > 金城·月城

①金城東南②月城(在城 1000)┆③新月城北有④滿月城(1800)┆東有⑤明活城(1900)┆南有⑥南山城(2800)
 
-0037 三國史記(1145)
築京城 號曰金城 수도에 성을 쌓고 금성이라고 불렀다.
2009#14901 SIBLINGS CHILDREN 14901
 
-0032.01 三國史記(1145)
營宮室於金城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2009#15643 SIBLINGS CHILDREN 15643
 
0003.09 三國史記(1145)
二龍見於金城井中 暴雷雨 震城南門 용 두 마리가 금성의 우물 안에서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천둥이 치면서 비가 쏟아졌다. 성의 남쪽 문에 벼락이 쳤다.
2009#28718 SIBLINGS CHILDREN 28718
 
0056.04 三國史記(1145)
龍見金城井 有頃 暴雨自西北來 용이 금성의 우물에 나타났다. 얼마 있지 않아 갑작스럽게 비가 서북쪽으로부터 와서 쏟아졌다.
2009#28721 SIBLINGS CHILDREN 28721
 
0057 三國史記(1145)
望楊山下瓠公宅 以爲吉地 設詭計 以取而居之 其地後爲月城 양산 아래 호공의 집을 바라보고는 길지라고 여겨 속임수를 써서 취하여 거기에 살았는데, 그 땅이 뒤에 월성이 되었다.
2009#28736 SIBLINGS CHILDREN 28736
 
0065 三國史記(1145)
왕이 밤에 金城의 서쪽 始林의 나무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瓠公을 보내 살피게 하니 금빛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보고하니 왕이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다가 열어보았다. 작은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었는데, 모습이 뛰어나고 훌륭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이 아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좋은 후계를 보낸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고 거두어 길렀다.
2009#28722 SIBLINGS CHILDREN 28722
 
0096.07 三國史記(1145)
暴風自南 拔金城南大樹 갑작스럽게 심한 바람이 남쪽으로부터 불어와 금성의 남쪽에 있는 큰 나무를 뽑아버렸다.
2009#28723 SIBLINGS CHILDREN 28723
 
0120.02 三國史記(1145)
大星墜月城西 聲如雷 큰 별이 월성의 서쪽에 떨어졌는데, 소리가 천둥소리와 같았다.
2009#28737 SIBLINGS CHILDREN 28737
 
0123.05 三國史記(1145)
金城東民屋陷爲他 芙蕖生 금성의 동쪽 민가가 함몰하여 못이 되었는데, 거기서 연꽃이 생겨났다.
2009#28724 SIBLINGS CHILDREN 28724
 
0138.02 三國史記(1145)
置政事堂於金城 금성에 정사당을 설치하였다.
2009#28725 SIBLINGS CHILDREN 28725
 
0160.04 三國史記(1145)
暴雨 閼川水溢 漂流人家 金城北門自毀 폭우가 내려 알천의 물이 넘쳐 민가가 떠내려갔다. 금성 북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2009#28726 SIBLINGS CHILDREN 28726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0196.04 三國史記(1145)
震宫南大樹 又震金城東門 궁궐 남쪽의 큰 나무에 벼락이 쳤고, 또 금성 동문에도 벼락이 쳤다.
2009#28729 SIBLINGS CHILDREN 28729
 
0205.08 三國史記(1145)
狐鳴金城及始祖廟庭 금성과 시조묘의 뜰에서 여우가 울었다.
2009#28730 SIBLINGS CHILDREN 28730
 
0232.04 三國史記(1145)
倭人猝至圍金城 王親出戰 賊潰走 遣輕騎追擊之 殺獲一千餘級 왜인이 갑자기 쳐들어와 금성을 포위하였다. 왕이 몸소 나가 싸우니 적이 패하여 도망갔다. 경기병을 보내 도망가는 왜군을 추격하여 1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2009#28731 SIBLINGS CHILDREN 28731
 
0250± 월성 주거지
2009#28739 SIBLINGS CHILDREN 28739
 
0253.04 三國史記(1145)
龍見宫東池 金城南卧栁自起 용이 궁궐의 동쪽 연못에 나타났다. 금성 남쪽에 쓰러져있던 버드나무가 저절로 섰다.
2009#28733 SIBLINGS CHILDREN 28733
 
0262.07 三國史記(1145)
金城西門災 延燒人家三百餘區 금성 서문에 불이 났는데, 불길이 번져 민가 3백여 채가 불탔다.
2009#28734 SIBLINGS CHILDREN 28734
 
0290.05 三國史記(1145)
大水 月城頽毀 홍수가 나 월성이 무너졌다.
2009#28738 SIBLINGS CHILDREN 28738
 
0297.01 三國史記(1145)
伊西古國來攻金城 이서고국이 금성을 공격해 왔다.
2009#28735 SIBLINGS CHILDREN 28735
 
0304.07 ❰❰⁵ 0004.07 솔까역사 新羅
樂浪³兵이 와서 금성을 여러 겹으로 에워쌌다. 좌우 신하들이 대답하기를 “적들이 우리에게 상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망령되게 병사를 동원하여 왔으니 하늘이 반드시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적이 얼마 있지 않아 물러나 돌아갔다.
2009#28719 SIBLINGS CHILDREN 28719
 
0314 ❰❰⁵ 0014 솔까역사 新羅
왜인이 병선 1백여 척을 보내 바닷가의 민가를 노략질하였다. 6부의 날랜 병사를 발동하여 막게 하였다. 樂浪³이 내부가 비었을 것이라고 하고 금성을 공격해 오기를 매우 급하게 하였다. 밤에 유성이 적의 진영에 떨어지니 그 무리들이 두려워하여 물러나 閼川의 주위에 주둔하며 돌무지 20개를 만들어 놓고서 떠나갔다.
2009#28720 SIBLINGS CHILDREN 28720
 
0350~0450 월성
2009#2936 SIBLINGS CHILDREN 2936
 
0401.02 ❰❰⁵ 0101 「솔까역사」 三國史記(1145)
築城名月城 성을 쌓고 월성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 유물 조사와 약 40점의 시료를 대상으로 한 가속질량분석기 분석을 통해 4세기 중엽에 공사를 시작해 5세기 초반 완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2009#15521 SIBLINGS CHILDREN 15521
 
0401.07 ❰❰⁵ 0101 「솔까역사」 三國史記(1145)
王移居月城 왕이 월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2009#26854 SIBLINGS CHILDREN 26854
 
0488.01 三國史記(1145)
王移居月城 왕이 월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2009#28748 SIBLINGS CHILDREN 28748
 
0553.02 三國史記(1145)
王命所司築新宮於月城東 黃龍見其地 王疑之 改爲佛寺 賜號曰皇龍 담당 관청에 명하여 월성의 동쪽에 새 궁궐을 짓게 하였는데,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 왕이 이것을 괴이하게 여기고는 고쳐서 불사를 짓고 황룡이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다.
2009#28749 SIBLINGS CHILDREN 28749
 
0647 三國史記(1145)
毗曇等屯於明活城 王師營於月城 攻守十日 不解 비담 등은 명활성에 주둔하고, 왕의 군사는 월성에다 진영을 구축하여 10일 동안 공격과 방어를 계속하였으나 승패를 가리지 못하였다.
2009#28750 SIBLINGS CHILDREN 28750
 
1145 三國史記
初赫居世二十一年 築宫城 號金城┆婆娑王二十二年 於金城東南築城 號月城 或號在城 周一千二十三歩┆新月城北有滿月城 周一千八百三十八歩┆又新月城東有明活城 周一千九百六歩┆又新月城南有南山城 周二千八百四歩┆始祖已來 處金城 至後世 多處兩月城
2009#28732 SIBLINGS CHILDREN 28732
 
1145 三國史記 月城(23)
2009#26856 SIBLINGS CHILDREN 26856
 
1145 三國史記 金城(32)
2009#26855 SIBLINGS CHILDREN 26855
 
明活城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과 천군동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산성에 비정(比定)된다. 명활성은 본서 신라본기에 6차례, 제사지와 지리지에 각각 1차례, 김유신전에 1차례 등장하며, 『삼국유사』 등에도 나타나 있다. 신라본기에는 명활성이 실성이사금 4년(405)과 눌지마립간 15년(431)에 왜병(倭兵)의 침입과 관련하여 처음 등장하며, 자비마립간 16년(473)에는 성을 수리[葺]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동왕 18년 명활성으로 이거하여 소지마립간 10년(48 ...
2009#28943 SIBLINGS CHILDREN 28943
 
月城
신라 대부분 시기의 궁성(宮城)으로 현재의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본서 신라본기에 의하면 월성은 원래 호공(瓠公)의 집으로 탈해(脫解)가 길지(吉地)라고 여겨 빼앗아 거주한 곳이다. 파사이사금 22년(101) 성을 쌓아 월성이라 했으며 왕이 옮겨가 살았다. 자비마립간 18년(475)에는 왕이 명활성으로 이거했으며, 소지마립간 9년(487) 월성을 수리[葺]하고 이듬해 다시 월성으로 돌아왔다. 그 뒤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왕은 기본적으로 월성에 기거 ...
2009#28901 SIBLINGS CHILDREN 28901
 
滿月城
(신)월성의 북쪽에 가축(加築)된 성. 월성 북쪽에 위치한 독립된 성으로 보는 견해와 월성 북쪽에 가축된 성으로 보는 견해로 나뉘는데, 최근에는 후자가 지지를 받고 있다. 박방룡은 삼국시대 후반부터 중대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왕궁이 월성만으로 좁았기 때문에 안압지 동쪽에서부터 천주사지와 첨성대를 포함한 나물왕릉 동쪽 부근까지 궁성지를 넓혔으며 이때 그 주위를 토장성벽(土墻城壁)으로 둘렀고 이것이 만월(滿月)과 같은 모양이어서 만월성이라고 불렀을 것이라는 ...
2009#28902 SIBLINGS CHILDREN 28902
 
金城
경주 지역에 있었던 신라 왕성으로, 정확한 위치는 미상. 금성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초기 기사와 『구당서(舊唐書)』 및 『신당서(新唐書)』의 신라전 등 중국 역사서에 나타나 있다. 먼저 중국 사서에는 신라가 금성에 도읍한다거나(『翰苑』 蕃夷部 新羅 注 所引 『括地志』), 왕이 거처하는 곳을 금성이라 하고 둘레가 7~8리, 위병(衛兵)이 3,000인이라 하여(『구당서』 및 『신당서』의 신라전), 금성을 신라의 도성 내지 왕이 거처하는 구체적인 성 ...
2009#28751 SIBLINGS CHILDREN 28751
 
이강근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보면 혁거세 21년(기원전 37)에 금성(金城)을 쌓고 경성으로 삼았으며, 제5대 파사니사금 22년(101)에 월성(月城)을 쌓고 왕이 이곳으로 옮겨 거처하였다. 또 기원전 32년에는 금성 안에 궁실을 지었는데 이때 지은 궁실은 143년, 196년, 314년에 수리되었다. 314년에는 궁실이라 하지 않고 처음으로 ‘궁궐’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금성은 둘레에 동서남북 4문을 둔 궁성으로 성안에는 그 시기 ...
2009#26857 SIBLINGS CHILDREN 26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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