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新羅民族論 > 0676 新羅 > (3) 다종족 > 姓氏 > 0681 星漢王·閼智·金日磾·少昊金天

▐ 신라 金씨는 북제서(636)의 565년 기록에 처음 나타난다. 太祖는 마운령비(568)와 황초령비(568)에 나타는데, 이즈음 太祖 星漢王에 대한 추존이 이루어진 듯하다. 星漢王의 아버지 閼智에 관한 설화는 그 이후 생겨났을 것이다. 문무왕릉비(681)에는 金日磾의 후손을 자처하는 이야기가 나타나고 김인문 묘지석(695)에는 少昊金天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모두 신라 김씨의 공식 기록이라 할 수 있는데, 閼智 설화와는 모순된다.
 
-0134 ~ -0086 金日磾
15568
 
-0134 ~ -0086 秺县
秺县,亦作㢉县,西汉置秺县金日磾封侯国。其址在今山东菏泽市成武县伯乐集镇。
15612
 
-0045 ~ 0023 王莽
김일제의 증손인 김당의 어머니는 남인데 왕망의 어머니 공현군과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동생(왕망의 이모)이다.
15580#15525
 
0060 三國遺事(1281)
호공이 밤에 월성 서리를 가는데 始林의 가운데 크고 밝은 빛이 있으며 자색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 뻗쳐 내려온 것을 보았다. 구름 속에 황금 상자가 있는데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빛은 상자로부터 나오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탈해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친히 숲에 나가서 그 상자를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누워있던 아이가 바로 일어났다. 이것은 혁거세의 고사와 같으므로 그 아이 이름을 閼智라 하였다. 알지는 우리 말로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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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0 三國遺事(1281)
금상자에서 나왔으므로 金씨를 성으로 삼았다. 閼智는 열한을 낳았고 熱漢은 아도를 낳고 阿都는 수류를, 首留는 욱부를 낳고 郁部는 俱道(仇刀라고도 한다)를 낳고 구도는 未鄒를 낳았는데, 미추가 왕위에 즉위하니 신라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 閼智→熱漢→阿都→首留→郁部→俱道(仇刀)→未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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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5 三國史記(1145)
밤에 왕이 金城 서쪽의 始林 나무들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 살펴보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고하니 왕은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게 했다. 작은 남자아이가 그 안에 있었는데 자태가 뛰어나게 훌륭했다.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이름을 閼智라 했다.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金氏라 했다. 시림의 이름을 雞林으로 고치고 국호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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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5 三國史記(1145)
▐ 閼智→勢漢→阿道→首留→郁甫→仇道→末仇→奈勿→巴胡→習寶→智證→立宗→眞興→眞智→龍樹→武烈→文武
15522
 
0082 漢書 金日磾傳
當母南即莽母功顯君同產弟也 김당의 어머니 남은 곧 왕망의 어머니 공현군과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동생이다. ▐ 김당은 김일제의 증손이다. 그가 서한을 멸망시킨 왕망의 이종사촌이니, 서한 시기에 金日磾(-134~-86)의 후손이 7대까지 내려올 수 없다.
15574
 
0262 三國史記(1145)
味鄒이사금(味照라고도 하였다)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선조 알지가 계림에서 태어나 탈해왕이 거두어 궁중에서 길러 나중에 대보로 삼았다. 閼智는 세한을 낳았고, 勢漢은 아도를 낳았고, 阿道는 수류를 낳았고, 首留는 욱보를 낳았고, 郁甫는 구도를 낳았는데, 仇道가 곧 味鄒의 아버지이다. 첨해가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미추를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갖게 된 시초이다.
15564
 
0262 三國史記(1145)
▐ 閼智→勢漢→阿道→首留→郁甫→仇道→味鄒 알지부터 미추까지 7대인데, 7대는 3천궁녀나 100만대군처럼 한 집안의 유래가 오래된 것을 표현하는 상투적인 어구이기도 하다.
15410
 
0540 三國史記(1145)
眞興王이 왕위에 올랐다. ▐ 閼智→勢漢→阿道→首留→郁甫→仇道→末仇→奈勿→巴胡→習寶→智證→立宗→眞興→眞智→龍樹→武烈→文武
15523
 
0551 三國史記(1145)
연호를 開國으로 바꾸었다.
15446
 
0565 北齊書(636)
詔以新羅國王金真興為使持節東夷校尉樂浪郡公新羅王 조서를 내려 신라국왕 김진흥을 사지절 동위교위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삼았다.
15521
 
한국의 어원
ᐥ한국은 중국인의 후손 한씨가 세운 나라라는 뜻이다.ᐥ
 
0568 마운령 진흥왕순수비
太昌 원년 세차 무자 ▨▨ 21일 ▨▨ ▨興太王이 ▨▨를 순수하여 돌에 새겨 기록하였다. 무릇 순풍이 일어나지 않으면 세상의 도리가 참되지 않고, 그윽한 덕화가 펴지지 않으면 사악한 것이 서로 경쟁하게 된다. 그러므로 帝王이 建号함에 있어서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나 朕은 왕위에 오르는 운수가 자신에 이르러, 위로는 太祖의 기틀을 이어받아 왕위를 계승하여, 몸을 조심하며 스스로 삼가나 하늘의 도리를 어길까 두렵다.
7373
 
0568 황초령 진흥왕순수비
8월 21일 계미에 眞興太王이 영토를 ▨▨하고 돌에 새겨 기록하였다. 세상의 도리가 참되지 않고, 그윽한 덕화가 펴지지 않으면 사악한 것이 서로 경쟁하게 된다. 그러므로 帝王이 建号함에 있어서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나 朕은 … 太祖의 기틀을 이어받아 왕위를 계승하여, 몸을 조심하며 스스로 삼가나 ▨▨▨까 두렵다.
15633
 
0568 황초령 진흥왕순수비
▐ 建号는 551년에 開國 연호를 만든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朕이라는 호칭과 함께 제국을 자처한 것이다. 金씨 왕성도 이즈음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왕족의 혈통을 신성시하는 작업도 동시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太祖도 이때 추존된 듯하다.
15520
 
0661 三國史記(1145)
왕이 돌아가셨다. 시호를 武烈이라 하고 영경사의 북쪽에 장사를 지냈으며 太宗이라는 묘호를 올렸다.
15420
 
0681 文武王陵碑
君靈源自敻繼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 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傳七葉以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 제천지윤이 7대를 전하여 … ▐ 신라 金씨가 金日磾의 후손을 자처한 최초의 기록이다.
2260 COMMENT
 
0681 文武王陵碑
焉⎵⎵十五代祖星漢王降質圓穹誕靈仙岳肇臨 … 以對玉欄始蔭祥林如觀石紐坐金輿而 15대조 성한왕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 그 영혼이 선악에서 나와, ▨▨을 개창하여 옥란을 대하였다. 비로소 조상의 복이 상서로운 수풀처럼 많아 석뉴를 보고 금수레에 앉아 … 하는 것 같았다. ▐ 문무왕에 이르기까지 계통은 閼智→勢漢→阿道→首留→郁甫→仇道→末仇→奈勿→巴胡→習寶→智證→立宗→眞興→眞智→龍樹→武烈→文武이니 문무왕의 15대조는 勢漢이다.
4407
 
0695 金仁問墓碑
×五之君少皥▨墟分星于而超碧海金天命× ×▨太祖漢王啓千齡之⎵⎵聖臨百谷之× ▨오지군이라 소호는 ▨허하여 별빛을 나누고 시퍼런 바다를 뛰어 넘었으며 금천은 … 태조 한왕은 천년의 ▨을 열고, ▨성은 백곡의 ▨▨에 임하셨다.
15594
 
0695 金仁問墓碑
▐ 少昊,昊又作皞、皓、顥,又稱青陽氏、金天氏、窮桑氏、雲陽氏,或稱朱宣。신라와 가라 金씨가 少昊金天의 후예를 자처한 것은 북연의 고운이 顓頊高陽의 후예를 자처한 것처럼 성씨가 만들어지고 난 후에 가미된 이야기다. ▐ 황초령비(568)와 마운령비(568)에 나오는 太祖와 문무왕릉비(681)에 나오는 星漢王은 이 비문에 나오는 太祖漢王과 동일인인 듯하다.
15412
 
0699 흑치상지묘지명(黑齒常之墓誌銘)
恭聞日磾爲漢之鞞 삼가 듣건대 김일제는 한나라의 칼집이 되었고 ▐ 당나라에 투항한 백제 장수라는 처지가 한나라에 포로가 된 흉노 왕자 金日磾의 처지와 비슷하였기 때문에 金日磾가 언급되고 있다. 金日磾는 흑치상지와 같이 중국에 봉사하는 외국 출신들에게 모범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15581
 
0706 黑齒俊墓誌銘
方冀七葉貽慶 以享西漢之榮 바야흐로 7대에 걸쳐 경사스러움을 전하여 서한의 김일제와 같은 영광을 향유하고자 하였으나 秺侯入仕 西戎孤□ 東夷之子 求如不及 김일제가 벼슬을 얻었으니 서융의 외로운... 동이의 자손으로서 구하기를 마치 미치지 못하는 듯이 끝없이 하였으니
7383
 
0706 黑齒俊墓誌銘
▐ 흑치준은 흑치상지의 아들이다. 金日磾 이야기에 나오는 七葉은 '7대'가 아니라 '대대로'라는 뜻이다. 백만대군이나 삼천궁녀같은 상투적 표현이다. 문무왕릉비(681), 흑치상지묘지명(699)이 그리고 흑치준묘지명(706)에서 보는 것처럼 秺侯와 그 후손이 七葉에 걸쳐 西漢에 참여한 것은 흔히 회자되던 이야기였다. 문무왕릉비의 다른 점은 秺侯를 자신들의 조상이라 주장했다는 점이다.
15233
 
0836 興德王陵碑片
太祖星漢
15595
 
0864 大唐故金氏夫人墓銘
太上天子有國泰宗陽號少昊氏金天卽吾宗受氏世祖厥後派疏枝分有昌有徽蔓衍四天下亦已多已 태상천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열어 드러내셨으니 이름하여 소호씨금천이라 하니, 이분이 곧 우리 집안이 성씨를 받게 된 세조시다. 그 후에 유파가 갈라지고 갈래가 나뉘어 번창하고 빛나서 온천하에 만연하니 이미 그 수효가 많고도 많도다.
7382
 
0864 大唐故金氏夫人墓銘
遠祖諱日磾自龍庭歸命西漢仕武帝愼名節陟拜侍中常侍封秺亭侯自秺亭已降七葉軒紱燉煌繇是望係京兆郡史籍敍載莫之與京必世後仁徵驗斯在
15583
 
0864 大唐故金氏夫人墓銘
먼 조상 이름은 일제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에 투항하시어 무제 아래서 벼슬하셨다.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기니 그를 발탁해 시중과 상시에 임명하고 투정후에 봉하시니, 이후 7대에 걸쳐 벼슬함에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경조군에 정착하게 되니 이런 일은 사책에 기록되었다.
4405 COMMENT
 
0864 大唐故金氏夫人墓銘
▐ 封秺亭侯自秺亭已降七葉은 문무왕릉비(681)에 나오는 (秺)侯祭天之胤傳七葉과 내용이 일치하므로 신라 金씨 왕조가 金日磾의 후손을 자처한 것은 더욱 확실해졌다.
4406
 
0864 大唐故金氏夫人墓銘
及漢不見德 亂離瘼矣 握粟去國 避時屆遠 故吾宗違異於遼東 한나라가 덕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난리가 나서 괴로움을 겪게 되자 곡식을 싸들고 나라를 떠나 난을 피해 멀리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우리 집안은 멀리 떨어진 요동에 숨어 살게 되었다. ▐ 이 부분은 다른 기록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로 金日磾와 신라 金씨를 연결시켜 주는 핵심 이야기다. 시대적 배경은 왕망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요동은 요하 동쪽이라는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신라까지 포함할 수 있다.
15591
 
0864 동북아 난민의 큰 흐름
▐ 고대 동북아 난민의 가장 큰 흐름은 중국, 특히 연나라에서 조선으로 난민이 흘러가고 또 조선에서 진한으로 난민이 흘러가는 경향이다. 조선이 낙랑이 된 이후에도, 그리고 진한이 신라가 된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 이어졌다.
15635
 
0937 광조사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
大師法諱利巖 俗姓金氏 其先?林人也 考其國史 實星漢之苗 대사의 법명은 이엄이고, 속성은 김씨이니, 그 선조는 계림인이다. 그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니 실로 성한의 묘예이다.
15596
 
0939 비로암진공대사보법탑비
□運 俗姓金氏 鷄林人也 其先降自聖韓 興於那勿 □운은 속성이 김씨이니, 계림인이다. 그 선조는 성한으로부터 내려와 나물에서 크게 일어났다.
15597
 
1145 三國史記
又聞 新羅人自以小昊金天氏之後 故姓金氏 (見新羅國子愽士薛因宣撰金庾信碑及朴居勿撰婔克一書三郎寺碑文) 듣건대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 하여 김씨로 성을 삼았다고 한다. (이는 신라 국자박사 설인선이 지은 김유신의 비문과 박거물이 지었고 요극일이 쓴 삼랑사비문에 보인다.)
2254 COMMENT
 
1145 三國史記
庾信碑亦云 軒轅之裔 少昊之胤 則南加耶始祖首露 與新羅同姓也 유신비에 또한 “헌원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다.”라고 하였으니, 곧 남가야의 시조 수로는 신라와 더불어 같은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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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김부식
신라 古事에는 "하늘이 금궤를 내려 보냈기에 姓을 金氏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괴이하여 믿을 수 없으나 내가 역사를 편찬함에 있어서 이 말이 전해 내려온 지 오래되니, 이를 없앨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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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 池北偶談
文登叢大司空蘭 本漢□宅侯金日□之後 相傳日□四十五代孫永 遷縣之叢家峴家焉 遂以為姓 至今科名甚盛 江西多淦氏 舊傳亦日□後 有金賦者 為制置使 宋高宗為加點水 遂有淦姓 詳載予 皇華紀聞 ▐ 산동성의 叢씨와 강서성의 淦씨는 모두 김일제의 후손이다.
15577
 
1701 文登市
산동 반도는 요동과 함께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는 주요 경로다.
15578
 
2010 신라김씨
2010년 신라김씨총연합 대종원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신라계 김씨 본관은 총 356개이며, 다른 성씨를 쓰고 있는 성관은 9개(감천문씨, 강릉왕씨, 곡산연씨, 광주이씨, 수성최씨, 안동권씨, 영양남씨, 철원궁씨, 태안사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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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建
왕건이 918년에 건국한 이후 여러 설화들이 만들어졌는데, 1146~1170년에 편찬된 編年通錄은 그것을 모아놓은 것이다. 김일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신라 김씨의 공식 기록과 알지 설화가 모순되는 것처럼 왕씨고려의 공식 기록인 太祖實錄과 왕건 설화도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
4401
 
김알지의 후손
가평김씨, 감천김씨, 강릉김씨, 강서김씨, 광산김씨, 강화김씨, 개성김씨, 결성김씨, 경주김씨, 계림김씨, 고령김씨, 고양김씨, 공주김씨, 광양김씨, 광주김씨, 괴산김씨, 교하김씨, 구례김씨, 금산김씨, 김녕김씨, 김제김씨, 김천김씨, 김화김씨, 나주김씨, 낙안김씨, 대구김씨, 도강김씨, 문화김씨, 밀양김씨, 배천김씨, 부안김씨, 삼척김씨, 상산김씨, 서흥김씨, 선산김씨, 설성김씨, 수안김씨, 수원김씨, 순천김씨, 신천김씨, 안로김씨, 안동김씨, 안산김 ...
7344 COMMENT
 
신라김씨흉노유래설
신라김씨란 신라의 왕을 배출했던 김(金)씨 가문을 말하는데, 경주김씨와 경주김씨로부터 갈라져 나온 많은 김씨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는 김일성의 본관인 전주김씨와 김구의 본관인 안동김씨도 포함된다. 또 김씨는 아니지만 김알지의 후손인 감천문씨, 광산이씨 그리고 수성최씨도 신라김씨에 포함된다. 신라김씨의 유래에 대해서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번째는 금궤에서 시조가 나왔기 때문에 김씨로 성을 삼았다는 이야기고, 두번째는 소호금천의 후예를 자 ...
6891 COMMENT
 
신라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주장
신라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주장
1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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