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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 良女 → 寡婦┆왕고때 召史는 집에서 딸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신분이 높은 여성은 시집간 후에 성씨에 氏가 붙여져 불리는 바람에 召史로 불리는 여성은 대부분 신분이 낮은 여성들이었다. 이조에 들어와 신분이 낮은 여성도 성씨를 가진 사람이 생겨나자 그 성씨에 氏처럼 召史를 붙였다. 그런데 여성이 사회적 관계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과부인 경우가 많아 召史로 불린 여성들 대부분은 과부였다. 그래서 일조시대에는 召史가 과부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1237~1392 巴只
▐ 왕씨고려 말기에 민가에서는 아들을 巴只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씨조선에서는 그런 巴只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26157#26204 SIBLINGS CHILDREN 26204
 
1292 巴只·召史
┆故母高敞郡夫人吳氏┆故妻楊州郡夫人陳氏┆故母中原郡夫人梁氏┆一男信忠┆一女召史┆二女召史┆二男巴只改名信英┆三男巴只改名信和┆五男巴只改名信綏 ❶ 왕씨고려때 巴只와 召史는 집에서 아들과 딸을 부르는 말이었다. 이름처럼 쓰였는데, 아들이 자라면 한자로 된 새 이름을 만들어 주고 딸이 시집을 가면 사람들이 성씨에 氏를 붙여 불렀다.
26157#26260 SIBLINGS CHILDREN 26260
 
1301~1682 召史
26157#26256 SIBLINGS CHILDREN 26256
 
1336 巴只·召史
┆母召史故盈德郡┆妻召史年三十五壬寅┆母召史年七十同村┆一男巴只年九改名迪┆二男巴只年八改名贊┆三男巴只年七改名用 ▐ 여기에 나오는 부인들은 성씨에 氏를 붙여 부를 정도의 신분이 되지 못했던 듯하다. 또 남자처럼 한자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릴 때부터 집에서 불리던 召史로 표기된 듯하다.
26157#26258 SIBLINGS CHILDREN 26258
 
1411 太宗實錄
전조의 제도를 승습하여 各司의 奴婢 童男을 巴只라고 칭하여 안에서 소제하고 여자를 水賜伊라고 칭하여 번갈아 출입하여 궁중의 말들을 외부에 들리게 하니, 내가 심히 미편하게 생각한다. 東殿의 파지는 일찍이 소녀로써 대신시켰으니 大殿의 파지도 다만 환자로 대신시키고 무수리도 또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데, 이것이 어떠하겠는가?
26157#26177 SIBLINGS CHILDREN 26177
 
1411~1639 朝鮮王朝實錄 巴只
▐ 태종이 왕씨고려의 습속이라고 했으나 대궐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巴只는 왕씨고려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또 태종이 없애라고 했으나 대궐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巴只는 조선왕조실록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 巴只가 생겨나면서 민가에서 아들을 부를 때 쓰던 巴只라는 이름은 사라지게 된 것이 아닐까?
26157#26209 SIBLINGS CHILDREN 26209
 
1415~1909 朝鮮王朝實錄 召史
▐ 召史는 단독으로 이름으로 쓰이기도 하고 관형사가 붙어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다. ┆妻召史┆女召史┆妹召史┆母召史┆妾召史┆良女召史┆婢召史 ┆女小斤召史┆女子小斤召史┆母小斤召史┆妹小斤召史┆婢小斤召史┆良女小斤召史
26157#26172 SIBLINGS CHILDREN 26172
 
1456 世祖實錄
▐ 98명의 난신에 연좌된 174명의 부녀가 등재되어 있다. 성씨에 氏를 붙여 부인을 표기하는 방식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연좌로 인해 신분이 떨어진 것을 반영한 듯하다. 이 기록에 나오는 부녀의 이름은 같은 이름이 많아 召史의 경우 전체의 10% 정도나 된다. 원래 召史는 집에서 딸을 부르던 말이었다. 이때에 이르러 자매간에는 중복되지 않도록 이름이 다양하게 변했으나 여전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6157#26191 SIBLINGS CHILDREN OPEN
 
1480 成宗實錄
▐ 117명의 이름이 나온다. 召史는 2명이고 小斤召史는 1명이다.
26157#26195 SIBLINGS CHILDREN OPEN
 
1531~1557 孫光曙
▐ 奴子莫達妻召史의 召史는 남편이 奴라는 사실로 보나 妻+召史라는 표기의 구조로 보나 이름이 분명하다. 百姓朴軍才妻良女召史, 李承宗妻召史, 故孫寅妻驛女召史, 孫斤守妻乻非 그리고 故金待生妻召史(良女召史)의 召史는 남편의 신분이 奴보다 조금 높으나 역시 관계를 나타내는 보통명사 妻나 신분을 나타내는 보통명사 良女에 붙어 있어 이름일 듯하다.
26157#26243 SIBLINGS CHILDREN OPEN
 
1531~1557 孫光曙
吏曹書吏朴世榮妻金召史, 學生安世張妾金召史 그리고 故忠義衛孫光曙妾鄭召史의 召史는 앞에 성씨가 붙어 있어 이름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朴世榮은 처가 먼저 죽었고 安世張은 살아 있어서 두 사람의 처를 과부라 부를 일은 없었다.
26157#26255 SIBLINGS CHILDREN 26255
 
1548 召史
▐ 吏曹書吏 朴世榮이 처 金召史가 죽자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처가 물려받은 밭을 파는 계약서다. 이 기록은 여성의 성씨에 召史가 붙는 사례로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 중에서 가장 앞선다. 이후의 기록에서 여성의 성씨에 氏나 召史가 아닌 이름이 붙는 사례가 없기 때문에 여성의 성씨에 붙는 召史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6157#26226 SIBLINGS CHILDREN 26226
 
1548 召史 ⪢⪢
❷ 원래 召史는 신분에 상관없이 여성의 이름으로 흔하게 사용되었다. 그런데 높은 신분의 여성은 성씨에 氏를 붙여 부르고 성씨가 없는 낮은 신분의 여성은 이름으로 부르다 보니, 召史란 이름으로 표기되는 여성은 모두 신분이 낮은 여성이었다.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召史를 신분이 낮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인식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성씨가 있는 여성들에게는 높은 신분의 여성에게 붙이는 氏를 붙이지 못하고 召史를 붙인 것이다.
26157#26205 SIBLINGS CHILDREN 26205
 
1615 東國新續三綱行實圖
▐ 召史를 모두 조이로 표기하고 있다.
26157#26169 SIBLINGS CHILDREN 26169
 
1627 仁祖實錄
松禾保人 姜玄白 妻召史 ▐ 조선왕조실록에서 召史란 인명이 나타나는 빈도가 많이 줄었고 妻·女·妹·母·妾·良女에 붙어 나타나는 경우는 이 기록이 마지막이다.
26157#26207 SIBLINGS CHILDREN 26207
 
1674 顯宗實錄(1677)
烈女 幼學李光進妻李氏┆孝女 良女王召史┆孝女 良女太召史┆節婦 學士姜太賢妻權氏 ▐ 조선왕조실록에서 妻·女·妹·母·妾·良女에 붙어 나타나던 召史가 이때부터는 성씨에 붙어 나타나고 있다.
26157#26210 SIBLINGS CHILDREN 26210
 
1678~1860 氏·召史·姓
양반가를 중심으로 한 상류층 기혼 여성은 성 뒤에 氏라는 호칭을, 평민층은 召史, 향리와 중인을 위시한 중간층은 姓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1678년 각각 22%와 65.4%였던 召史로 불린 여성과 이름을 쓰는 여성은 1860년 각각 4.7%와 1%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16~7세기 하나의 계층으로 자리 잡은 중인들이 스스로를 평민층과 구분 짓기 위해 18세기 중엽부터 쓰기 시작한 姓도 19세기 중반을 넘기면서 사용비율이 크게 낮아졌다.
26157#26166 SIBLINGS CHILDREN 26166
 
1758 東營狀啓謄錄
하동부의 가두어 놓고 심문하는 죄인 權召史에 관해서 입니다. 그녀가 말하기를 '저와 金召史는 복제에 따라 상복을 입어야 하는 가까운 친척 사이인데 미세한 일로 인해 서로 다투다가...
26157#26185 SIBLINGS CHILDREN 26185
 
1759~1783 李召史→李姓→李氏→李姓
경상도 단성현(오늘날 경남 산청군) 도산면에 살았던 평민 남성 김광오의 부인은 1759년 李召史로 불리다가 3년 뒤 남편의 직역이 중간층인 業儒(유학을 닦는 서자)로 상승하면서 李姓으로 바뀐다. 1780년 남편이 상류층인 幼學(벼슬 없는 유생)이 되자 李氏로 불리다가 1783년 남편이 중간층 校生(평민 출신으로 향교에 다니던 생도)으로 신분이 낮아지자 다시 李姓으로 내려갔다.
26157#26179 SIBLINGS CHILDREN 26179
 
1818 牧民心書
幼學 李基元┆李基亨┆良人 朴泰周┆寡婦 金召史┆寡婦 朴召史┆幼學 金廷郁┆金廷馥┆良人 崔時東┆禁保 韓致三┆寡婦 韓召史┆退吏 李壽聃┆閑良 李福聃┆老妓 蓮臺月┆寡婦 金召史┆良人 崔後男┆崔得才 ▐ 寡婦 4명을 모두 성씨에 召史를 붙여 부르고 있다.
26157#26186 SIBLINGS CHILDREN 26186
 
1844 忠淸監營啓錄
청주진에서 잡아다 가둔 사학 죄인 진천의 李是鎡, 鄭召史, 李召史 등을 기해년에 그 당시 도신이었던 조가 사실을 철저히 조사하여 치계한 뒤에 진천현에다 다시 엄하게 가둔 바 있습니다. ▐ 李是鎡과 鄭召史는 부부다. 따라서 여기에 쓰인 召史는 분명히 과부란 뜻이 아니다.
26157#26180 SIBLINGS CHILDREN 26180
 
1864 慶尙監營啓錄
절린(살인 범인의 이웃에 사는 사람) 良女 李召史 57세, 良女 梁召史 40세, 良人 全江祿 39세. ▐ 여전히 良女를 성씨에 召史를 붙여 부르고 있다.
26157#26183 SIBLINGS CHILDREN 26183
 
1909 純宗實錄
謀殺本夫罪人片召史 본 남편을 살해하려고 모의한 죄인 片召史 ▐ 이때까지도 召史는 과부의 뜻이 아니다.
26157#26175 SIBLINGS CHILDREN 26175
 
1915+
1915+
26157#26228 SIBLINGS CHILDREN 26228
 
1915+ 중추원 조사자료
上南面 禮林洞申月山은 아들이 일찍 죽고 과부는 있었지만 역시 뒤에 죽었다. 이에 다시 從姪인 鉉振을 次養하고 재산을 관리케 했다. 이번에 鉉振의 명의로 토지 소유를 신고하고, 戶主로 호적에 올렸다고 한다. 단, 옛 관습에 여자는 이름이 없었고, 양반가에서는 召史로 호적에 올리는 것을 꺼려해서 次養子의 명의로 올렸다고 한다. ▐ 山月은 기생의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나 李山月처럼 일반인으로 보이는 이름도 있다.
26157#26196 SIBLINGS CHILDREN 26196
 
1915+ 중추원 조사자료
絶家 후에 가족이 있어도 一家를 창립할 수 없다. 단 과부가 있으면, 과부가 金家이면 金召史라고 부르고, 그 家産을 승계하여 그 家를 유지하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 경우 여자가 있으면 물론 金召史의 家에 입적한다고 한다. 여자는 호주로 될 수 없지만, 絶代일 경우에 한하여 호주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유산은 과부가 승계하고, 과부가 사망하면 亡夫의 근친이 승계하여 死者의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26157#26197 SIBLINGS CHILDREN 26197
 
1915+ 중추원 조사자료
이씨의 처가 김씨 성이었다면 그 남편이 죽은 후에는 남편의 성을 써서 李召史라고 부르고, 남편을 들여온 경우에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26157#26208 SIBLINGS CHILDREN 26208
 
1915+ 召史
❸ 남편이 있는 부인은 사회적 관계의 주체가 되지 못해 사회적으로 언급될 일이 적었다. 그러나 寡婦는 불가피하게 사회적 관계의 주체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사회적으로 언급될 일이 많았다. 그 결과, 召史로 불린 여성들 대부분은 寡婦였다. 조선총독부가 한국을 통치하기 위해 기록을 살펴보다 이것을 보고 召史를 寡婦로 오인하게 되었고 그 잘못된 인식이 식민지 사회로 퍼져나간 듯하다. '조이'라 읽히던 이두식 발음이 한자음 '소사'로 바뀐 것도 이때일 것이다.
26157#26167 SIBLINGS CHILDREN 26167
 
1920 동아일보
▐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의 이름에 女史란 말을 붙이는 것은 1868년 이후 일본에서 생겨난 표현인데, 일조시대에는 한국에서도 쓰이기 시작하였다.
26157#26230 SIBLINGS CHILDREN 26230
 
1920※ 女史 じょし
『女史』という言葉はもともとは中国で女性の書記を表した。日本では、明治時代に、学者や文筆活動をする女性が出てきて使われ始めた。
26157#26212 SIBLINGS CHILDREN 26212
 
1924 조선일보
▐ 이 당시 '소사'는 과부의 뜻으로 쓰였다.
26157#26182 SIBLINGS CHILDREN 26182
 
1924 조선일보
▐ 김홍준이 죽자 그의 부인 정정옥을 '정소사'라 부르고 있다.
26157#26178 SIBLINGS CHILDREN 26178
 
1925 조선일보
▐ 김씨 여인은 천씨 남편이 죽자 천소라 칭하다 민적을 정리할 때 천유복으로 개명하고 나중에 천유복을 양자로 들였다.
26157#26168 SIBLINGS CHILDREN 26168
 
기타
2023.04.17 Twitter朝鮮王朝實錄 小斤 1398~1718朝鮮王朝實錄 者斤 1442~1764朝鮮王朝實錄 阿只 1418~1921者斤·小斤보통명사와 고유명사이름조선여성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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