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018) → 漢山下(295) → 漢城¹(371) → 熊津(475) → 泗沘(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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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三國史記(1145) 朱蒙
北扶餘의 朱蒙이 난을 피하여 卒本扶餘로 와 扶餘왕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沸流와 溫祚 두 아들을 낳았는데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자 두 사람은 남쪽으로 가서 미추성과 위례성에 각각 나라를 세웠다. 나중에 합쳐서 百濟라고 불렀다.
┆沸流不聽 分其民 歸弥鄒忽以居之 비류는 듣지 않고 그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홀로 돌아가 살았다.
1905#32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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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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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三國史記(1145) 優台
北扶餘왕 觧扶婁의 서자인 優台는 卒夲 사람 召西奴에게 장가들어 沸流와 温祚 두 아들을 낳았다. 우태가 죽고 나서 소서노는 扶餘에서 도망온 朱蒙에게 시집을 가서 高句麗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낳은 孺留가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는
遂與弟率黨類 渡浿帶二水 至彌鄒忽以居之
동생과 함께 무리를 거느리고 패수와 대수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
1905#3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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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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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沸流와 温祚의 이동 경로 1
① 遂與弟率黨類 渡浿帶二水 至彌鄒忽以居之 동생과 함께 무리를 거느리고 패수와 대수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
② 沸流不聽 分其民 歸弥鄒忽以居之 비류는 듣지 않고 그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홀로 돌아가 살았다.
이 두 기록으로 보아 沸流와 温祚는 일단 弥鄒城에 정착했던 듯하다.
당시 浿水와 帶水는 각각 樂浪郡과 南部都尉의 영역이었으므로 바다로 이곳에 이른 듯하다.
국호에 濟가 들어 있어 이를 암시한다.
1905#3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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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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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솔까역사」 百濟
遂至漢山 登負兒嶽 望可居之地 沸流欲居於海濵 十臣諌曰 惟此河南之地 北帶漢水 東據髙岳 南望沃澤 西阻大海 其天險地利 難得之勢 作都於斯 不亦冝乎
沸流不聽 分其民 歸弥鄒忽以居之
➔ 沸流欲居於海濵 分其民 歸弥鄒(忽→)城以居之
비류는 바닷가에 살고자 하여 그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성으로 돌아가 살았다.
┆温祚都(河南✘)慰禮城 以十臣爲輔翼 國號十濟
온조는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10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였다.
1905#3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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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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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至漢山 登負兒嶽
至漢山 登負兒嶽은 温祚가 慰禮城에 도읍한 후 순행하다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漢山은 남한산이고 負兒嶽은 북한산 인수봉이므로 至漢山 登負兒嶽은 남한산에 이르러 북한산 인수봉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되어 모순된다.
漢山을 漢山州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모순이 해소되나 그것은 고려에서 나와 한국으로 올 때의 이야기에서나 필요했던 구절로, 慰禮城에서 나와 순행하는 이야기에서라면 필요없는 구절이다.
1905#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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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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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三國志(289) 馬韓
爰襄國┆牟水國┆桑外國┆小石索國┆大石索國┆優休牟涿國┆臣濆沽國┆伯濟國┆速盧不斯國┆日華國┆古誕者國┆古離國┆怒藍國┆月支國┆咨離牟盧國┆素謂乾國┆古爰國┆莫盧國┆卑離國┆占離卑國┆臣釁國┆支侵國┆狗盧國┆卑彌國┆監奚卑離國┆古蒲國┆致利鞠國┆冉路國┆兒林國┆駟盧國┆內卑離國┆感奚國┆萬盧國┆辟卑離國┆臼斯烏旦國┆一離國┆不彌國┆支半國┆狗素國┆捷盧國┆牟盧卑離國┆臣蘇塗國┆占臘國┆臨素半國┆臣雲新國┆如來卑離國┆楚山塗卑離國┆一難國┆狗奚國┆不雲國┆不斯濆邪國┆爰池國┆乾馬國┆楚離國
1905#30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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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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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솔까역사 三國志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마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하였다. 신지와 한인들이 모두 격분하여 대방군의 崎離營을 공격하였다. 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이들을 정벌하였는데 궁준은 전사했으나 2군은 마침내 韓을 멸하였다.
▐ 여기에 나오는 마한 8국은 진번군이 폐지될 때 낙랑군으로 합쳐지지 않고 남은 8현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제는 이 자리에 세워졌었다.
1905#4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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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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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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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5.05 東有樂浪 北有靺鞨 侵軼疆境
고대에는 영흥만에서 추가령 구조곡을 따라 내려와 철원 평야에 이르고, 다시 중량천을 따라 내려가 漢水에 이른 뒤, 다시 탄천을 따라 올라가 남양만을 지나 車峴을 넘어 久麻那利에 이르는 남북길이 있었다.
철원평야에 있었을 듯한 北有靺鞨이 이 경로를 따라 자주 침공해 오자 이 경로의 漢水 이남으로 도읍을 옮긴 것으로 보아, 백제 慰禮城은 이 경로의 漢水 이북에 있었을 듯하다.
漢城이 고려에 함락되자 백제는 다시 이 경로를 따라 久麻那利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1905#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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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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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5.05 漢水之南
서울 송파는 북쪽으로는 한강을 띠처럼 두르고 동쪽으로는 남한산을 의지하였으며 남쪽으로는 탄천변의 벌판을 바라본다. 다만 서쪽으로 황해가 조금 떨어져 있으나 그 사이에 적대 세력이 있을만한 공간은 없다.
이곳은 중량천을 따라 내려오는 침략을 피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河南之地에 대한 묘사는 백제가 한수 이북 위례성에서 漢水之南으로 도읍을 옮길 때 했을 것으로 어울린다.
1905#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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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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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百濟와 倭의 半島 남부 정벌
왜의 황전별과 녹아별이 탁순에 이르러 사백과 개로를 백제에 보내 원병을 요청하였다. 백제의 목라근자와 사사노궤가 오자 함께 신라를 치고 7국을 평정하였다. 荒田別·木羅斤資는 古奚津에서 忱彌多禮를 복속시킨 뒤 북상하며 半古와 布彌支를 복속시켰고 백제왕 부자는 比利와 辟中을 복속시키며 남하하였는데, 두 군대는 意流村에서 만나 회동하고 荒田別은 왜군을 이끌고 돌아갔다.
1905#3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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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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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1 古典記
歷三百八十九年 至十三世近肖古王 取髙句麗南平壤 都漢城 歷一百五年
389년을 지나 13세 근초고왕에 이르러 고구려의 남평양을 빼앗고 한성에 도읍하였다.
▐ -18년으로부터 389년이 지난 후는 371(-18+389)년이다.
이때 고국원왕이 전사한 것으로 보아 여기에 나오는 南平壤은 광진구에 있었던 平壤³이 아니라 대동강변에 있었던 平壤²으로 보아야 한다.
1905#3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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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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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1.10 「솔까역사」 百濟
移都(漢山→)漢城
도읍을 한성으로 옮겼다.
▐ 古典記에는 取髙句麗南平壤都漢城(고구려의 남평양을 빼앗고 도읍을 한성으로 옮겼다)라고 되어 있고 삼국사기에는 이전에 就漢山下立柵移慰禮城民戸(한산 아래로 나아가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호들을 옮겼다)라고 하여 이미 漢山下로 도읍을 옮겼기 때문에, 이때 도읍을 옮긴 곳으로는 古典記에 나오는 대로 漢山보다 漢城이 더 어울린다.
1905#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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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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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1.10 ◾
근초고왕은 369년에 왜와 함께 반도 남부를 경략하고 영산강 유역까지 차지하고, 371년에는 고려를 침공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으며, 372년에는 동진에 사신을 보내어 왕성으로 餘씨를 칭하고 작위를 받았는데, 이러한 위세에 걸맞게 도읍도 漢城으로 옮긴 듯하다.
풍납토성은 규모가 매우 커서 이 성을 쌓을 주체로는 근초고왕대의 백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漢城으로는 풍납토성이 어울린다.
1905#3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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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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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6 廣開土王陵碑(414)
396년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였다. ... 阿旦城(阿且城이라고도 표기되어졌는데 서울의 광나루 북쪽 기슭에 있는 峨嵯山城으로 비정된다.) ... 백잔이 의에 복종치 않고 감히 나와 싸우니 왕이 크게 노하여 아리수를 건너 정병을 보내어 그 수도에 육박하였다. 곧 그 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잔주가 곤핍해져, 남녀생구 1천 명과 세포 천 필을 바치면서 왕에게 항복하고 ...
1905#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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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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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5 三國史記(1145)
고구려 왕 거련(장수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수도 漢城¹을 포위했다. 왕이 싸울 수가 없어 성문을 닫고 있었다. 상황이 어렵게 되자 왕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기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가 서쪽으로 도주하려 하였으나 ... 고구려 장수 걸루 등이 개로왕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왕의 낯을 향하여 세 번 침을 뱉고서 죄목을 따진 다음 阿且城 밑으로 묶어 보내 죽이게 하였다.
1905#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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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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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1 日本書紀(720)
是歲 百濟聖明王 親率衆及二國兵二國謂新羅·任那也 往伐高麗 獲漢城之地 又進軍討平壤³ 凡六郡之地 遂復故地
백제 성명왕이 몸소 군사 및 신라와 임나 두 나라의 병사를 거느리고 고려를 정벌하여 한성의 땅을 차지하였다. 또 진군하여 평양³을 토벌하였는데, 무릇 옛 땅 6군을 회복하였다.
▐ 여기에 나오는 平壤을 대동강 유역의 平壤²으로 보기에는 정황상 무리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 서울 광진구에 있었던 平壤³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1905#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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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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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1.05.09 三國史記(1145)
고구려의 장군 뇌음신이 말갈의 장군 생해와 함께 군사를 합하여 술천성을 공격해 왔다. 이기지 못하자 北漢山城으로 옮겨가서 공격하는데, 포차를 벌여놓고 돌을 날리자, 그것에 맞는 성가퀴나 건물은 그대로 부서졌다. 그러나 식량이 다 떨어지고 힘이 지쳐서 지극한 정성으로 하늘에 빌었더니 갑자기 큰 별이 적의 진영에 떨어지고 또 천둥과 비가 내리며 벼락이 쳤으므로 적이 두려워서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1905#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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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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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7 九州五小京 漢州
於故髙句麗南界 置三州 從西第一曰漢州 次東曰朔州 又次東曰溟州
이전의 고구려 남쪽 영토 내에도 3주를 설치하였다. 서쪽 제일 첫 번째가 한주, 그 다음 동쪽을 삭주, 그 다음 동쪽을 명주라고 말한다.
▐ 이 지역은 고려가 망하기 100여년 전부터 신라의 영토였었다. 또 고려가 점유하기 전에는 백제의 영토였었고 그 전에는 마한의 영토였었다. 한성만 놓고 보자면 백제가 도읍한 기간이 500여년에 달하는데 비해, 고려가 점유한 기간은 80여년에 불과하다.
1905#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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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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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5.01 三國史記(1145)
春正月 憲昌子梵文與髙逹山賊夀神等百餘人 同謀叛 欲立都於平壤³ 攻北漢山州 都督聦明率兵 捕殺之 平壤³今楊州也 太祖製□義寺齋文 有高麗舊壤平壤³名山之句
헌창의 아들 범문이 고달산 산적 수신 등 1백여 명과 반역을 모의하고 평양³에 수도를 세우고자 북한산주를 공격하니, 도독 총명이 병사들을 이끌고 그를 잡아 죽였다. 평양³은 지금의 양주이다. 왕건이 지은 장의사 제문에, “고려의 옛 땅이요 평양³의 명산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1905#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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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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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 高麗史
남경유수관 양주는 본래 고구려의 北漢山郡(南平壤城이라고도 한다)으로 백제의 근초고왕이 차지하였다. 근초고왕 25년에 南漢山에서 도읍을 옮겼다. 개로왕 20년에 이르러 고구려 자비왕이 쳐들어와서 漢城을 포위하자 개로왕이 나와 도망하다가 고구려 군사에게 살해되었다. 그 해 아들 문주왕이 熊津으로 도읍을 옮겼다. 뒤에 신라 진흥왕 15년에 北漢山城으로 와서 국경을 정하였다. 진흥왕 17년에 北漢山州를 창설하고 軍主를 두었다. 경덕왕 14년에 漢陽郡으로 고쳤다
1905#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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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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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水·漢城·漢山 고찰
백제는 '북쪽으로는 漢水를 띠처럼 두르고 있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을 의지하였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벌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에 막힌' 곳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후 고려는 백제의 漢城을 함락시킨 뒤 漢山 남쪽에 漢山郡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얼마못가 이곳은 신라가 차지하는데 경덕왕은 이곳을 漢州로 바꾸었다.
그전에 고려는 漢水 이북을 차지하고 北漢山郡을 설치하였는데 신라는 이를 北漢山州로 바꾸었다.
이러한 명칭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 ...
1905#4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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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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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전망
가운데에 있는 높은 건물 왼쪽에 삼전도비가 있다. 인조가 여기에서 내려가 청태종에게 세 번 절을 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三拜九叩頭禮)를 행한 곳이다. 오른쪽 가운데에 있는 산이 아차산이다. 장수왕의 장수가 그 아래서 개로왕 얼굴에 세 번 침을 뱉고(向王面三唾) 죽였다. 아차산 아래로 한강이 흐르는데, 건너면 바로 풍납토성이다. 아신왕이 광개토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跪王) 항복한 곳이다.
1905#3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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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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