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397 百濟記 > 東韓

308년에 백제가 馬韓을 병합하면서 韓은 좁은 의미로 백제를 뜻하게 되었다. 백제의 동쪽 경계는 백제와 대립하던 춘천의 東有樂浪이 337년에 고려에 병합된 사실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왜는 397년에 백제로부터 東韓 등 대부분의 땅을 빼앗는데, 당시 백제의 도읍은 한성에 있었으므로 東韓은 한성의 동쪽에 있었을 것이다. 왜는 405년에 빼앗은 땅 중에서 가장 먼저 東韓을 돌려주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東韓은 한성에 가까이 있었던 듯하다. ↆ
 
東韓
왜는 512년에 다시 대전, 논산, 부여 그리고 청주를 돌려주었다. 따라서 東韓은 이들 지역의 북쪽에 있었다.
7271#13592 SIBLINGS CHILDREN 13592
 
0236~0369
0236~0369
7271#13577 SIBLINGS CHILDREN 13577
 
0281~0337 樂浪
백제와 갈등 관계였던 東有樂浪은 춘천에 있었던 樂浪郡의 부용국이었던 듯하다.
7271#13585 SIBLINGS CHILDREN 13585
 
0295 ❰❰ -0006 三國誤記 百濟
遣使馬韓 告遷都 마한에 사신을 보내 도읍을 옮긴다는 것을 알렸다. 遂畫定疆埸 北至浿河 南限熊川 西窮大海 東極走壤 마침내 국토의 영역을 확정하였으니 북으로는 패하에 이르고, 남으로는 웅천이 경계이며, 서로는 큰 바다에 닿고, 동으로는 주양에 이르렀다. ▐ 走壤은 오늘날의 춘천이다.
7271#13586 SIBLINGS CHILDREN 13586
 
0308 ❰❰ 0008 三國誤記 百濟
왕이 군사를 내어 겉으로는 사냥한다고 하면서 몰래 馬韓을 습격하여 드디어 그 國邑을 병합하였다. 오직 圓山과 錦峴 두 성만은 굳게 수비하고 항복하지 않았다.
7271#13591 SIBLINGS CHILDREN 13591
 
0337 ❰❰ 0037 三國誤記 新羅
髙句麗王無恤 襲樂浪²滅之 其國人五千來投 分居六部 고구려왕 무휼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나라 사람 5천명이 투항해 오니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 여기에 나오는 樂浪은 춘천에 있었던 東有樂浪으로 추정된다.
7271#13587 SIBLINGS CHILDREN 13587
 
0369~0475
0369~0475
7271#17798 SIBLINGS CHILDREN 17798
 
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0397.03 日本書紀(720)
百濟人來朝(百濟記云 阿花王立無禮於貴國 故奪我枕彌多禮 及峴南·支侵·谷那·東韓之地 是以 遣王子直支于天朝 以脩先王之好也) 백제인이 내조하였다. 백제기에는, “아화왕이 왕위에 있으면서 귀국에 예의를 갖추지 않았으므로 우리의 침미다례 및 현남·지침·곡나·동한의 땅을 빼앗았다. 이에 왕자 직지를 천조에 보내어 선왕의 우호를 닦게 하였다”고 되어 있다.
7271#13573 SIBLINGS CHILDREN 13573
 
0405 日本書紀(720)
百濟阿花王薨 天皇召直支王謂之曰 汝返於國以嗣位 仍且賜東韓之地而遣之(東韓者 甘羅城·高難城·爾林城是也) 백제의 아화왕이 죽었다. 천황은 직지왕을 불러, “그대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동한의 땅을 주어 보냈다. 동한은 감라성·고난성·이림성이다. ▐ 峴南·支侵·谷那·東韓 중에서 가장 먼저 東韓을 백제에게 되돌려준 것으로 보아 東韓은 한성에서 가까운 곳이었던 듯하다.
7271#13574 SIBLINGS CHILDREN 13574
 
0449? 中原高麗碑
高麗大王이란 표현은 스스로를 고려라 불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新羅土內幢主란 표현은 건립 시기에 고려 군대가 신라 영토 내에 주둔하고 있던 실정을 알려주며, 신라를 東夷라고 부른 표현은 당시 고려의 천하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7271#13584 SIBLINGS CHILDREN 13584
 
0487 日本書紀(720)
기생반숙니가 임나를 점거하고 고려와 교통하였으며, 서쪽에서 장차 삼한의 왕노릇하려고 관부를 정비하고 스스로 신성이라고 칭하였다. 임나의 좌로·나기타갑배 등이 계책을 써서 백제의 적막이해를 이림에서 죽이고(爾林은 고려의 땅이다) 帶山城을 쌓아 동쪽 길을 막고 지켰으며, 군량을 운반하는 나루를 끊어 군대를 굶주려 고생하도록 하였다.
7271#13576 SIBLINGS CHILDREN 13576
 
0512 日本書紀(720)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따로 표를 올려 임나국의 上哆唎·下哆唎·娑陀·牟婁의 4현을 청했다. 표에 따라 임나의 4현을 주었다. ▐ 上哆唎·下哆唎·娑陀·牟婁는 각각 대전·논산·부여·청주로 비정되므로 東韓은 그 북쪽이다.
7271#13579 SIBLINGS CHILDREN 13579
 
0550 日本書紀(720)
백제에 있는 일본의 사자가 바야흐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백제본기에는 4월 1일 경진에 日本 阿比多가 돌아갔다고 한다.) 백제왕 성명이 사자에게 “임나의 일은 칙을 받들어 굳게 지키겠다. 延那斯와 麻都의 일은 문책할 것인지 아닌지는 오로지 칙에 따를 것이다.”라고 말하고 고구려 노 6구를 바치고 별도로 사자에게 노 1구를 주었다. (모두 爾林을 공격하여 사로잡은 노예이다.)
7271#13575 SIBLINGS CHILDREN 13575
 
0553 三國誤記 新羅
取百濟東北鄙置(新興→)新州以阿湌武力爲軍主 백제의 동북쪽 변두리를 차지하고 신주를 설치하여 아찬 무력을 군주로 삼았다.
7271#13581 SIBLINGS CHILDREN 13581
 
0568 三國史記(1145)
北漢山州를 폐지하고 南川州를 설치하였다. ▐ 東韓에 어울린다.
7271#13589 SIBLINGS CHILDREN 13589
 
① 東韓
① 東韓
양평에서 충주에 이르는 남한강 주변과 산지에 의해 금강 유역에서 분리된 진천 분지가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여 東韓으로 인식된 듯하다.
7271#16230 SIBLINGS CHILDREN 16230
 
② 述川
述川·省知買 → 泝川 → 川寧┆骨乃斤 → 黃驍 → 黃驪┆楊椇·去斯斬 → 濵陽 → 楊根
7271#13590 SIBLINGS CHILDREN 13590
 
③ 南川
南川(南買) → 黃武 → 利川
7271#13588 SIBLINGS CHILDREN 13588
 
④ 國原
國原城(未乙省 託長城 薍長城) → 中原京 → 忠州
7271#13582 SIBLINGS CHILDREN 13582
 
⑤ 仍忽
仍忽 → 隂城 ▐ 음성의 물은 인근의 충주로 흘러들어가므로 남한강 문화권이다.
7271#16228 SIBLINGS CHILDREN 16228
 
⑥ 今勿内
今勿内(今勿奴 萬弩) → 黒壤(黄壤) → 鎭州 ▐ 진천 분지의 물은 청주로 흘러가지만 험한 산지에 의해 두 지역은 분리되어 별개의 문화권을 형성했을 듯하다. 그 결과 진천은 이천과 함께 東韓으로 인식되고 청주는 대전 및 공주와 함께 峴南으로 인식되었을 수 있다.
7271#16227 SIBLINGS CHILDREN 16227
 
娘子谷┆蛙山┆狗壤
신라는 초기에 금호강을 따라 내려가 낙동강에 이르른 뒤, 낙동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서쪽으로 소백산맥을 넘어 청주까지 팽창하던 백제와 만났다.
7271#13580 SIBLINGS CHILDREN 13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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