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골타가 말갈 부족들을 통합한 후 세웠다. 1125년에 遼를 멸망시키고 1127년에는 趙宋마저 남쪽으로 밀어내고 북중국을 차지하였다. 1234년 몽골의 침략을 받아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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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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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金史(1344)
上曰
遼以賓鐵爲號取其堅也
賓鐵雖堅終亦變壞惟金不變不壞
金之色白完顏部色尚白
于是國號大金改元收國
아골타가 말하기를 "요나라는 쇠로 이름을 지어 견고함을 취했다. 쇠는 견고하나 결국 녹슬고 망가지는데 오직 금만 변하지도 않고 망가지지도 않는다. 금빛은 밝고 완안부의 빛 또한 밝다." 이로부터 나라 이름을 대금이라 하고 연호를 수국으로 고쳤다.
2726#37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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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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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08 고려사절요(1452)
요(遼)에서 여진을 치려고 사신을 보내와서 청병하였다. 재추ㆍ시신ㆍ도병마판관과 여러 위의 대장군 이상을 불러 의논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파병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는데, 오직 위위소경 척준경과 예부낭중 김부일, 호부원외랑 한충, 우사간 김부식ㆍ우정언 민수가 국가에서 정해ㆍ무자의 전란 이후로 군사와 백성들이 겨우 어깨를 쉬게 되었는데, 지금 타국을 위하여 군사를 출동한다면 이것은 자진하여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니, 장래의 이해가 어찌 될지 두렵습니다."
2726#3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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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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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11 高麗史(1451)
요(遼)에서 이주관내 관찰사 야율의와 대리소경 손양모를 보내 군대 동원을 독촉했는데 그 조서는 다음과 같다. “이제 각 부대가 모두 집결해 적지를 향해 진군하고 있는 바, 그대 나라의 부대는 진작 군세를 점검했으니 즉시 먼저 출발하여 적을 협격하는 일에 늦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에 사신을 시켜 고려군의 출정을 살펴보게 했으니 충성을 다해 짐의 명령에 따라 공적을 떨치라.”
2726#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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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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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1234
曷懒路治所在今朝鲜咸镜北道吉州。辖境相当今长白山以东,吉林图们江流域以南,朝鲜咸镜南道咸兴以北地。
갈라로의 치소는 지금의 조선 함경북도 길주에 있었다. 관할 구역은 장백산 동쪽인데, 북으로는 길림 도문강 유역을 포함하고 남으로는 조선 함경남도 함흥에 이르렀다.
2726#19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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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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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03 高麗史(1451)
금의 임금 아골타가 서한을 보내 “형인 대여진금국 황제는 아우인 고려국왕에게 문서를 보내오. 우리는 할아버지 때부터 한쪽 지방에 끼어 있으면서 거란을 대국이라고 하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하면서 조심스럽게 섬겨왔소. 나는 부득이하게 그에 항거하였는데 하늘의 도움을 얻어 그들을 섬멸하게 되었소. 생각하건대 왕은 우리와의 화친을 허락하고 형제의 관계를 맺어 대대로 무궁한 우호관계를 이루기 바라오.”라고 하였다.
2726#3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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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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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07 高麗史(1451)
요(遼)에서 악원부사 소준례 편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보냈다. “올린 표문을 살펴보고 모든 것을 잘 알았다. 이렇듯 강개한 마음을 더하였으니 반드시 적을 소탕하기에 노력해야 할 것이며, 공동의 원수를 앞에 둔 처지에 이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일 것이다. 실제로 성과가 나타나는가 살피면서 다음 표문을 기다렸다가 다시 회답을 보낼 터이니 그대로 준수해 주기를 바란다.”
2726#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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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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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03 高麗史(1451)
모든 관리들을 소집해 금(金)을 상국으로 대우하는 일의 가부를 의논하게 하자 모두 불가하다고 했으나 이자겸과 척준경만이 찬성하고 나섰다. "지금 금(金)은 급격히 세력을 떨쳐 요(遼)와 송(趙宋)을 멸망시켰으며,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군세 또한 막강해 나날이 강대국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와는 국경이 맞물려 있으니 형편상 상국으로 대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726#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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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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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04 高麗史(1451)
정응문과 이후를 금(金)에 보내 본국을 신하라고 칭하면서 다음과 같은 표문을 올렸다. “저는 하찮은 작은 지방을 다스리는 덕이 부족한 사람이긴 합니다만 황제폐하의 비상한 위업을 듣고, 이미 오랫동안 존경을 바쳐 왔으니, 넉넉지 못한 예물이나마 충성의 뜻으로 바치고자 합니다. 변변치 못한 공물을 바치는 것이 부끄럽긴 하오나, 크신 은덕으로 받아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2726#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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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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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07 高麗史(1451)
송(趙宋)에서 합문지후인 후장과 귀중부 등 60여 명을 보내왔다. "천하의 군사를 동원해 추악한 오랑캐들의 죄를 묻고자 하니 고려국왕은 군대를 지휘해 우리 군대와 협력해 적에게 천벌을 내리도록 하라." 후장이 송(趙宋)으로 돌아가는 편에 왕이 다음과 같은 표문을 전달하게 했다. "저희나라는 본래 강성한 나라가 아닐 뿐더러, ... 상국의 군사가 적을 제압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적으나마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2726#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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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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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 異域誌
女真在鴨綠之陽長白山之下古肅慎氏之國也始因新羅人完顏氏者奔於國遂家焉地多產金故女真阿古答稱帝國號大金
여진 - 압록강의 양(陽), 장백산의 아래에 있다. 옛 숙신씨의 나라다. 처음에 신라인 완안씨가 나라에서 도망쳐 나와 마침내 집안을 이루었다. 금이 많이 난다. 옛날 여진 아고답(아골타)이 황제를 칭하고 나라 이름을 대금(大金)이라 했다.
2726#40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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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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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 滿洲源流考
新羅王金姓相傳数十世則金之自新羅來無疑建國之名亦應取此金史地理志乃云以國有金水源為名史家附㑹之詞未足憑耳 신라 왕성 김(金)이 수십 대를 이어 왔으므로 금(金)이 신라에서 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나라의 이름 역시 당연히 여기서 나온 것이다. 금사지리지에는 금수원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 이는 역사가들이 왜곡한 것이니 들을 필요가 없다.
2726#25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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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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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金 국호의 어원
금 국호의 어원에 대해서 금사는 두 가지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하나는 요나라의 국호가 쇠를 따라 지어졌기 때문에 쇠보다 우수한 금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금나라의 뿌리가 금수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 강 이름을 따라 국호를 정했다는 것이다.
한편, 만주원류고에서는 금나라의 시조가 김씨 신라인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 성을 따라 국호를 금나라로 하였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각각의 이야기에는 나름의 정치적 의도가 ...
2726#9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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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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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 大金国志(席世臣)
혹자는, 그 첫 추장(본래 신라인인데 완안씨라 부른다. 완안은 한자음으로 왕과 같다. 여진의 여자를 처로 삼아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 장남이) 곧 호래(胡來)다. 그로부터 3대를 지나 양할(楊割) 태사에 이르렀고 마침내 아골타에 이르렀다. 그 나라에 금이 나고 금수의 발원지가 있으니 대금이라 칭했다.
- 1234 금지(金志 南宋 宇文懋昭)
2726#4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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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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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文百科在线 - 佟姓
據考證原遼國的加古氏到金國時期仍爲夾(加)古氏元朝亦爲夾古氏而到了明朝則諧音爲夾溫氏清朝時期又演變爲覺羅氏 고증에 근거하면, 원래 요나라 시기의 가고(加古)씨는 금나라 시기에 협고(夾古)씨와 병행해서 쓰이더니 원나라 시기에는 마침내 협고(夾古)씨가 되었다. 명나라가 끝나갈 무렵에는 음이 변하여 협온(夾溫)씨가 되었고 청나라 시기에는 각라(覺羅)씨로 변하였다.
2726#37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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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말갈에 대한 요(遼)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아골타가 말갈 부족들을 통합하고 요(遼)를 격파한 후 1115년에 금(金)을 세웠다.
이후 금(金)은 1125년에 요(遼)를 멸망시키고 1127년에는 송(趙宋)마저 남쪽으로 밀어내고 북중국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왕조가 오래가지는 못하고 1234년 몽골의 침략을 받아 망하고 말았다.
금사에는 금(金)의 유래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다.
금사(金史 1345 元 脫脫)
금(金)의 선조는 말갈에서 나왔다. 말갈은 본래 ...
2726#8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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