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History Cheat Sheet > 遼黑史 > 1115 ~ 1234 金
 
0886? 金祖宗
遼黒 지역의 夫餘人이 半島로 와서 百濟 왕조를 세웠듯이 半島의 新羅人도 遼黑으로 가서 金 왕조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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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高麗史(1451)
東女眞酋長盈歌遣使來朝 盈歌卽金之穆宗也 동여진의 추장 영가가 사자를 보내 내조하였는데, 영가는 곧 금의 목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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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07 高麗史(1451)
동여진 태사 영가가 사자를 입조시켜 왔다. 영가가 소해리를 격파한 후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오자 우리도 사람을 보내 축하하였다. 이에 영가가 자기 사촌 동생인 사갈을 보내 답례하니, 왕이 매우 후하게 대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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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01 高麗史(1451)
東女眞酋長烏雅束 與別部夫乃老有隙 遣公兄之助 發兵攻之 騎兵來屯定州關外 동여진의 추장 오아속이 별부의 부내로와 사이가 벌어지자 공형지조를 시켜 군대를 동원해 공격하게 했는데, 기병이 정주 관문 밖까지 와서 진을 쳤다. ▐ 이 여진의 내분이 여진 정벌의 계기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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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02 高麗史(1451)
추밀원사 윤관을 동북면행영병마도통으로 임명해, 중광전에서 부월을 준 후 출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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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02 고려사절요(1452)
오직 추밀원별가 척준경이 병기ㆍ개마를 임간에게 요청하여 적진으로 들어가 그 장수 한 사람을 베고, 사로잡혔던 두 사람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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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12 고려사절요(1452)
그 가운데 용감하고 약삭 빠른 자 50, 60명이 의심을 품고 관문에 이르러 들어오려 하지 않으므로 병마판관 김부필, 녹사 척준경을 시켜 길을 나누어 복병하게 하고, 최홍정을 시켜 매우 날랜 기병으로 이에 호응하게 하여 거의 다 사로잡고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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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고려사절요(1452)
적이 윤관 등을 몇 겹으로 포위하였는데 연총은 화살에 맞아 형세가 매우 위급하니 척준경이 용사 10여 명을 거느리고 이를 구하려 하자, ... 곧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적진을 뚫고 들어가 10여 명을 격살하니 최홍정ㆍ이관진 등이 산골짜기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와서 구하였다. 이때에 적이 포위를 풀고 달아나므로 추격하여 36급을 베었고 윤관 등은 날이 저물어서 돌아와 영주성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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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03 高麗史(1451)
윤관이 또 의주·통태·평융의 세 성을 쌓고 남계의 백성들을 새로 수축한 9성으로 이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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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2 高麗史(1451)
이여림을 요나라에 보내 동계에 9성을 신축한 것을 알리게 하자, 요나라에서 반서대 한 벌을 내려 주었다. ▐ 여진 정벌은 여진을 제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요나라의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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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5 高麗史(1451)
여진이 길주를 포위하자 오연총이 군사를 이끌고 구원에 나섰으나 대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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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6 高麗史(1451)
昔我太師盈歌嘗言 我祖宗出自大邦 至于子孫 義合歸附 今太師烏雅束亦以大邦爲父母之國 在甲申年閒 弓漢村人不順太師指諭者 擧兵懲之 國朝以我爲犯境 出兵征之 復許修好 故我信之 朝貢不絶 不謂去年 大擧而入 殺我耄倪 置九城 使流亡靡所止歸 故太師使我來請舊地 若還許九城 使安生業 則我等告天爲誓 至于世世子孫 恪修世貢 亦不敢以瓦礫 投於境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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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6 高麗史(1451)
왕이 선정전 남문에서 요불과 사현 등 여섯 명을 접견하고 입조한 연유를 묻자 요불 등이 다음과 같이 애걸했다. “현재 태사를 맡고 있는 오아속도 역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고 있습니다. 만약 9성을 되돌려주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안정된 생업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신다면, 하늘에 맹세코 자손대대로 조공을 정성껏 바칠 것이며, 감히 기와 조각 하나라도 귀국의 영토에 던지지 않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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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7 金史(1345)
高麗請和 盡歸前後亡命及所侵故地 退九城之戍 遂與之和 고려가 화친을 청하여, 전후로 망명한 자들과 침략한 옛 땅을 모두 돌려주고 9성의 병사를 퇴각시키니, 마침내 화친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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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7 高麗史(1451)
왕이 선정전의 남문에서 요불 등을 접견하고 9성의 반환을 허락하자 요불이 감읍하며 감사의 절을 올렸다. 왕이 예물을 하사하고 돌려보내면서, 내시 김향을 시켜 국경까지 호송해 주게 했다. 이어 원수들에게 조서를 내려 9성을 반환하려는 뜻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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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金史(1344)
上曰 遼以賓鐵爲號取其堅也 賓鐵雖堅終亦變壞惟金不變不壞 金之色白完顏部色尚白 于是國號大金改元收國 아골타가 말하기를 "요나라는 쇠로 이름을 지어 견고함을 취했다. 쇠는 견고하나 결국 녹슬고 망가지는데 오직 금만 변하지도 않고 망가지지도 않는다. 금빛은 밝고 완안부의 빛 또한 밝다." 이로부터 나라 이름을 대금이라 하고 연호를 수국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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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01 高麗史(1451)
是月 生女眞完顔阿骨打稱皇帝 更名旻 國號金 생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스스로 황제를 칭하면서 이름을 민이라 고치고 국호를 금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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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04 高麗史(1451)
이수 등이 요(遼)에서 귀국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遼) 황제의 회답을 가지고 왔다. “이제 경이 사신을 보내 답장을 올렸으니, 짐의 명령을 좇는 경의 충절을 잘 알게 되었다. 그러나 봄철을 맞은 지금 군사를 동원하면 농사를 해칠 우려가 있으니 우선 훈련에 힘쓰면서 작전 시행은 따로 기다리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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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08 고려사절요(1452)
요(遼)에서 여진을 치려고 사신을 보내와서 청병하였다. 재추ㆍ시신ㆍ도병마판관과 여러 위의 대장군 이상을 불러 의논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파병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는데, 오직 위위소경 척준경과 예부낭중 김부일, 호부원외랑 한충, 우사간 김부식ㆍ우정언 민수가 국가에서 정해ㆍ무자의 전란 이후로 군사와 백성들이 겨우 어깨를 쉬게 되었는데, 지금 타국을 위하여 군사를 출동한다면 이것은 자진하여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니, 장래의 이해가 어찌 될지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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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11 高麗史(1451)
요(遼)에서 이주관내 관찰사 야율의와 대리소경 손양모를 보내 군대 동원을 독촉했는데 그 조서는 다음과 같다. “이제 각 부대가 모두 집결해 적지를 향해 진군하고 있는 바, 그대 나라의 부대는 진작 군세를 점검했으니 즉시 먼저 출발하여 적을 협격하는 일에 늦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에 사신을 시켜 고려군의 출정을 살펴보게 했으니 충성을 다해 짐의 명령에 따라 공적을 떨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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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04 高麗史(1451)
중서문하성에서, “요(遼)가 여진의 침략을 당하여 매우 위급한 형편이니, 요(遼)로부터 받은 역법을 써서는 안 됩니다. 이제부터 공사의 모든 문서에서 천경이라는 연호를 삭제하고 간지만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라고 건의하자 왕이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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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03 高麗史(1451)
金主阿骨打遣阿只等五人 寄書曰 兄大女眞金國皇帝 致書于弟高麗國王 自我祖考 介在一方 謂契丹爲大國 高麗爲父母之邦 小心事之 契丹無道 陵轢我疆域 奴隷我人民 屢加無名之師 我不得已拒之 蒙天之祐 獲殄滅之 惟王許我和親 結爲兄弟 以成世世無窮之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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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03 高麗史(1451)
금의 임금 아골타가 서한을 보내 “형인 대여진금국 황제는 아우인 고려국왕에게 문서를 보내오. 우리는 할아버지 때부터 한쪽 지방에 끼어 있으면서 거란을 대국이라고 하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하면서 조심스럽게 섬겨왔소. 나는 부득이하게 그에 항거하였는데 하늘의 도움을 얻어 그들을 섬멸하게 되었소. 생각하건대 왕은 우리와의 화친을 허락하고 형제의 관계를 맺어 대대로 무궁한 우호관계를 이루기 바라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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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07 高麗史(1451)
요(遼)에서 악원부사 소준례 편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보냈다. “올린 표문을 살펴보고 모든 것을 잘 알았다. 이렇듯 강개한 마음을 더하였으니 반드시 적을 소탕하기에 노력해야 할 것이며, 공동의 원수를 앞에 둔 처지에 이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일 것이다. 실제로 성과가 나타나는가 살피면서 다음 표문을 기다렸다가 다시 회답을 보낼 터이니 그대로 준수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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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遼 패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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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03 高麗史(1451)
모든 관리들을 소집해 금(金)을 상국으로 대우하는 일의 가부를 의논하게 하자 모두 불가하다고 했으나 이자겸과 척준경만이 찬성하고 나섰다. "지금 금(金)은 급격히 세력을 떨쳐 요(遼)와 송(趙宋)을 멸망시켰으며,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군세 또한 막강해 나날이 강대국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와는 국경이 맞물려 있으니 형편상 상국으로 대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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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04 高麗史(1451)
遣鄭應文李侯如金 稱臣上表曰 大人垂統 震耀四方 異國入朝 梯航萬里 况接境之伊邇 諒馳誠之特勤 伏惟 天縱英明 日新德業 渙號一發 群黎無不悅隨 威聲所加 隣敵莫能枝梧 實帝王之高致 宜天地之冥扶 伏念 臣塉土小邦 眇躬涼德 聞非常之功烈 久已極於傾虔 惟不腆之苞苴 可以伸於忠信 雖愧蘋蘩之薦 切期山藪之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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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04 高麗史(1451)
정응문과 이후를 금(金)에 보내 본국을 신하라고 칭하면서 다음과 같은 표문을 올렸다. “저는 하찮은 작은 지방을 다스리는 덕이 부족한 사람이긴 합니다만 황제폐하의 비상한 위업을 듣고, 이미 오랫동안 존경을 바쳐 왔으니, 넉넉지 못한 예물이나마 충성의 뜻으로 바치고자 합니다. 변변치 못한 공물을 바치는 것이 부끄럽긴 하오나, 크신 은덕으로 받아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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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05 고려사절요(1452)
준경이 갑옷을 입고 급히 궁궐로 들어가니, 왕은 천복전 문에 나와 준경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준경이 왕을 모시고 나오는데 자겸의 무리가 활로 준경을 쏘았다. 준경이 칼을 빼어 들고 한번 호통하니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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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07 高麗史(1451)
송(趙宋)에서 합문지후인 후장과 귀중부 등 60여 명을 보내왔다. "천하의 군사를 동원해 추악한 오랑캐들의 죄를 묻고자 하니 고려국왕은 군대를 지휘해 우리 군대와 협력해 적에게 천벌을 내리도록 하라." 후장이 송(趙宋)으로 돌아가는 편에 왕이 다음과 같은 표문을 전달하게 했다. "저희나라는 본래 강성한 나라가 아닐 뿐더러, ... 상국의 군사가 적을 제압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적으나마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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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11 정강의 변
1126년 금나라는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을 함락시키고 황제 흠종과 전 황제 휘종을 비롯한 왕족과 관료 수천 명을 만주로 끌고 가 모욕을 주었다. 이때가 정강 원년이었기 때문에 정강의 변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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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05 高麗史(1451)
김부식 등이 趙宋의 明州까지 갔으나 마침 金의 군대가 汴京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바람에 길이 막혀 들어가지 못하고 계묘일에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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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어원
ᐥ고구려는 한나라가 설치한 현도군 고구려현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ᐥ
 
1129-03 고려사절요(1452)
서경에 행차하여 새 궁궐에 들어 앉았다. 이때 어떤 사람은 표를 올려 '황제'라 일컫고, 원년의 칭호를 정하라고 왕에게 권하고, 어떤 사람은 제(齊)와 동맹하여 금(金)을 협공하여 멸하기를 청하였다. 식자는 그것을 비난하였으며 묘청의 무리는 유창한 말로 지껄여댔으나 왕이 마침내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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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金 패망
14551
 
1344 金史(元 脫脫)
上京路即海古之地金之舊土也國言金曰按出虎按出虎水源於此故名金源建國之號蓋取諸此 상경로(黑龍江省哈爾濱市阿城區白城遺址)는 해고의 땅인데 금(金)의 옛 땅이다. 나랏말에 금을 안출호라 하는데, 안출호수(阿什河)가 여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금원이라고 이름지은 것이다. 나라 이름도 여기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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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4 金史(元 脫脫)
⑨函普(함보) ⑧烏魯(오로) ⑦跋海(발해) ⑥綏可(수가) ⑤石魯(석로) ④烏古迺(오고내) ③劾里缽(핵리발) ③頗剌淑(파자숙) ③盈歌(영가) ②烏雅束(오아속) ○阿骨打(아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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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 異域誌
女真在鴨綠之陽長白山之下古肅慎氏之國也始因新羅人完顏氏者奔於國遂家焉地多產金故女真阿古答稱帝國號大金 여진 - 압록강의 양(陽), 장백산의 아래에 있다. 옛 숙신씨의 나라다. 처음에 신라인 완안씨가 나라에서 도망쳐 나와 마침내 집안을 이루었다. 금이 많이 난다. 옛날 여진 아고답(아골타)이 황제를 칭하고 나라 이름을 대금(大金)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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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 東溟海槎錄(金世濂)
지금 나라 안의 김(金) 성이 거의 신라의 후예이고, 김부(경순왕)가 비록 항복하여 고려왕이 합병하였으나, 그 외손 완안 아골타는 곧 권행(權幸)의 후예인데, 중국을 분할하여 다스리고 백 년 동안 대를 이었으니, 어찌 신명의 후예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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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 清太祖武皇帝實錄
「我乃天女佛古倫所生,姓愛新華言金也覺羅姓也,名布庫里英雄,天降我定汝等之亂。」 나는 천녀 불고륜에서 났는데 성(姓)은 애신(중국말로 gold)각라고 이름은 포고리영웅으로 하늘이 나를 내려보내 너희들의 난을 평정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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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 滿洲源流考
新羅王金姓相傳数十世則金之自新羅來無疑建國之名亦應取此金史地理志乃云以國有金水源為名史家附㑹之詞未足憑耳 신라 왕성 김(金)이 수십 대를 이어 왔으므로 금(金)이 신라에서 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나라의 이름 역시 당연히 여기서 나온 것이다. 금사지리지에는 금수원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 이는 역사가들이 왜곡한 것이니 들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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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 滿洲源流考
完顔(金始祖自新羅來居完顔部因以為氏) 금(金)시조는 신라에서 왔고 완안부에 살았기 때문에 부족명인 완안을 성씨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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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 滿洲源流考
因錫之姓曰愛新覺羅 名之曰布庫哩雍順 성(姓)을 애신각라라 하고 이름을 포고리옹순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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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金 국호의 어원
금 국호의 어원에 대해서 금사는 두 가지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하나는 요나라의 국호가 쇠를 따라 지어졌기 때문에 쇠보다 우수한 금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금나라의 뿌리가 금수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 강 이름을 따라 국호를 정했다는 것이다. 한편, 만주원류고에서는 금나라의 시조가 김씨 신라인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 성을 따라 국호를 금나라로 하였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각각의 이야기에는 나름의 정치적 의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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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1856 오주연문장전산고(이규경)
청제의 성을 애신각라라고 한 데 대하여는 여진(女眞)의 방언(方言)에, 금(金)을 애신, 종실(宗室)을 각라라 하는데, 청제가 자칭 금의 후예라 하여, 애신각라로 성을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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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 大金国志(席世臣)
혹자는, 그 첫 추장(본래 신라인인데 완안씨라 부른다. 완안은 한자음으로 왕과 같다. 여진의 여자를 처로 삼아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 장남이) 곧 호래(胡來)다. 그로부터 3대를 지나 양할(楊割) 태사에 이르렀고 마침내 아골타에 이르렀다. 그 나라에 금이 나고 금수의 발원지가 있으니 대금이라 칭했다. - 1234 금지(金志 南宋 宇文懋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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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고조선이 중국사면 청나라는 한국사
말지의 김선영 기자가 2004년 08월 30일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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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 신라의 후예였다!
중원에서 최초로 한족을 밀어낸 금태조 아골타, 그의 시조는 놀랍게도 신라인 함보였다. 이것은 전설이나 야사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와 금 건국 시 송나라에서 씌어진 <송막기문>에 명확히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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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만주족
현재 청(淸) 황실의 후손들은 愛新覺羅(아이신지오로)라는 성을 쓰지 않고 金(진)이라는 성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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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文百科在线 - 佟姓
據考證原遼國的加古氏到金國時期仍爲夾(加)古氏元朝亦爲夾古氏而到了明朝則諧音爲夾溫氏清朝時期又演變爲覺羅氏 고증에 근거하면, 원래 요나라 시기의 가고(加古)씨는 금나라 시기에 협고(夾古)씨와 병행해서 쓰이더니 원나라 시기에는 마침내 협고(夾古)씨가 되었다. 명나라가 끝나갈 무렵에는 음이 변하여 협온(夾溫)씨가 되었고 청나라 시기에는 각라(覺羅)씨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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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颜函普
“新罗人”考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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续编两朝纲目备要 佚名 编
完颜之始祖浦(函普)者,新罗人,自新罗奔女真,女真诸酋推为首领,七传至而始大,所谓阿骨打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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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史(1345) 卷1
金之先,出靺鞨氏。靺鞨本號勿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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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고려, 발해, 요, 금 그리고 청은 요흑사
부여, 고려, 발해, 요, 금 그리고 청은 요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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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말갈에 대한 요(遼)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아골타가 말갈 부족들을 통합하고 요(遼)를 격파한 후 1115년에 금(金)을 세웠다. 이후 금(金)은 1125년에 요(遼)를 멸망시키고 1127년에는 송(趙宋)마저 남쪽으로 밀어내고 북중국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왕조가 오래가지는 못하고 1234년 몽골의 침략을 받아 망하고 말았다. 금사에는 금(金)의 유래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다. 금사(金史 1345 元 脫脫) 금(金)의 선조는 말갈에서 나왔다. 말갈은 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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