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284~0551 濊史(靺鞨²)

백제의 북쪽에 있었다는 靺鞨은 백제의 동쪽에 있었다는 樂浪과 서로 엮여 있으므로, 樂浪의 기록을 300년 뒤로 물리면 靺鞨의 기록도 그렇게 해야 한다. 靺鞨은 백제와 얽혀 -17년부터 258년까지 275년 동안 26회 나오다 258년부터 387년까지 130년 동안은 나타나지 않는다. 공백기 이전의 기록을 300년 뒤로 물리면 284년부터 558년까지의 사건이 되어 기록의 공백을 메워준다. 이 靺鞨은 철원에 있었던 이름모를 소국으로 추정된다.
 
-0082 @북유말갈(北有靺鞨) @동유낙랑(東有樂浪)
-0082 @북유말갈(北有靺鞨) @동유낙랑(東有樂浪)
철원은 교통의 요지고 넓은 평야가 있어 한나라가 현을 설치할 때 이곳을 빠뜨리지 않았을 듯하다. 진번군과 임둔군을 폐지할 때, 이곳은 춘천과 함께 한나라의 군현에서 빠졌을 것이다.
16818#16875 SIBLINGS CHILDREN 16875
 
-0037 三國史記(1145) 高句麗
그 땅(도읍을 삼았던 졸본천 또는 흘승골성)이 靺鞨 부락에 잇닿아 있기에 침입과 도적질의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그들을 물리치니, 靺鞨이 두려워 굴복하고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 이 당시에는 靺鞨이라는 용어가 없었으므로 원래 '이질적인 어떤 종족과 이웃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는데 훗날 '말갈과 이웃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변경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6818#2557 SIBLINGS CHILDREN 2557
 
0236~0337
0236~0337
16818#16908 SIBLINGS CHILDREN 16908
 
0258 三國史記(1145) 百濟
말갈 추장 羅渴이 좋은 말 10필을 바쳤다.
16818#30062 SIBLINGS CHILDREN 30062
 
0281 ❰❰⁵ -0020 솔까역사 新羅
호공을 마한에 보내니 馬韓王이 말했다. “辰卞二韓 爲我屬囯 比年不輸職□ 事大之禮 其若是乎 진한과 변한은 우리의 속국인데 근년에 공물을 보내지 않으니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어찌 이와 같은가?” 호공이 대답했다. “自辰韓遺民 以至卞韓·樂浪·倭人 無不畏懷 진한 유민으로부터 변한, 낙랑 그리고 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두려워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왕이 분노하여 그를 죽이려 하자 좌우가 간하여 그치고 돌아가게 해주었다.
16818#16806 SIBLINGS CHILDREN 16806
 
0281~0337 ❰❰⁵ -0020~0037
0281~0337 ❰❰⁵ -0020~0037
16818#16807 SIBLINGS CHILDREN 16807
 
0281~0337 ❰❰⁵ -0020~0037 樂浪
백제의 동쪽에 있었다는 樂浪은 -20년부터 37년까지 57년 동안 13회 등장한다. 이후 266년 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304년 2월과 10월에 잠깐 등장하고는 사라진다. -20년부터 37년까지의 기록을 300년 뒤로 물리면, 281년에서 337년 사이의 기록이 되어 304년의 두 기록과 잘 어울린다. 이 樂浪은 춘천에 있었던 樂浪郡의 부용국이었던 듯하다. 337년에 고구려의 침공을 받아 망한 樂浪이 바로 이 樂浪일 것이다.
16818#16808 SIBLINGS CHILDREN 16808
 
0284   ~ 0558 ❰❰⁵ -0017 ~ 0258
0284 ~ 0558 ❰❰⁵ -0017 ~ 0258
靺鞨은 백제와 얽혀 -17년부터 258년까지 275년 동안 26회 나오다 258년부터 387년까지 130년 동안은 나타나지 않는다. 공백기 이전의 기록을 300년 뒤로 물리면 284년부터 558년까지의 사건이 되어 기록의 공백을 메워준다.
16818#16784 SIBLINGS CHILDREN 16784
 
0284  ~ 0558 ❰❰⁵ -0017 ~ 0258
0284 ~ 0558 ❰❰⁵ -0017 ~ 0258
16818#29891 SIBLINGS CHILDREN 29891
 
0284 ~ 0558 ❰❰⁵ -0017 ~ 0258 靺鞨(百濟)
▐ 백제의 북쪽에 있었다는 靺鞨은 철원에 있었던 이름모를 소국으로 추정된다. 이 靺鞨은 백제의 동쪽에 있었다는 樂浪과 서로 엮여 있으므로, 樂浪의 기록을 300년 뒤로 물리면 靺鞨의 기록도 그렇게 해야 한다. 백제의 靺鞨 기록은 258년에서 387년까지 130년 동안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전 -17년부터 258년까지 275년 26회 기록을 300년 뒤로 물리면 284년부터 558년까지의 사건이 된다.
16818#14847 SIBLINGS CHILDREN 14847
 
0284 ❰❰⁵ -0017 솔까역사 百濟
王謂羣臣曰 靺鞨²連我北境 其人勇而多詐 冝繕兵積穀 爲拒守之計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말갈은 우리의 북쪽 경계와 잇대고 있는데 용감하고 속임수가 많으니 마땅히 병장기를 수선하고 양곡을 쌓아두어 막아 지킬 계획을 세워야 한다.”라고 하였다.
16818#16820 SIBLINGS CHILDREN 16820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0285 ❰❰⁵ -0016 솔까역사 百濟
靺鞨²侵北境 王帥勁兵 急擊大敗之 말갈이 북쪽 경계를 침범하였다. 왕은 굳센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급히 쳐서 크게 이겼다.
16818#16821 SIBLINGS CHILDREN 16821
 
0286 ❰❰⁵ -0015 솔까역사 百濟
遣使樂浪²修好 낙랑에 사신을 보내 우호를 닦았다.
16818#16829 SIBLINGS CHILDREN 16829
 
0286 三國史記(1145) 百濟
고구려가 대방을 치자 대방이 우리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앞서 왕이 대방왕의 딸 보과에게 장가들어 부인으로 삼았으므로 말하기를, “대방과 우리는 장인과 사위의 나라이니 그 요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군사를 내어 구하니 고구려가 원망하였다. 왕은 그들이 쳐들어와 노략질할까 염려하여 阿且城과 蛇城을 수리하며 대비하였다. ▐ 부여와 대방이 혼인관계를 맺었는데 그 부여를 백제로 착각한 것이다.
16818#16859 SIBLINGS CHILDREN 16859
 
0290.02 ❰❰⁵ -0011 솔까역사 百濟
靺鞨²賊三千 來圍慰禮城 王閉城門不出 經旬賊糧盡而歸 말갈의 적병 3,000명이 와서 위례성을 포위하자 왕이 성문을 닫고 나가 싸우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자 적은 양식이 떨어져 돌아갔다.
16818#16822 SIBLINGS CHILDREN 16822
 
0290.02 @위례성 @慰禮城
16818#30203 SIBLINGS CHILDREN 30203
 
0290.02 한수
0290.02 한수
16818#8483 SIBLINGS CHILDREN 8483
 
0290.07 ❰❰⁵ -0011 솔까역사 百濟
馬首城을 쌓고 甁山柵을 세웠다. 樂浪²太守의 사신이 다음과 같이 아뢰어 말하였다. “지난번에는 서로 예를 갖추어 방문하고 우호를 맺어 뜻이 한 집안과 같았는데, 지금 우리의 강역을 핍박하여 성을 쌓고 목책을 세우고 있으니, 혹시 야금야금 먹어 들어올 계책이 있어서인가?” 이로 말미암아 樂浪²과의 우호를 잃게 되었다.
16818#16830 SIBLINGS CHILDREN 16830
 
0290.07 @마수성 @馬首城
16818#16878 SIBLINGS CHILDREN 16878
 
0291
0291
16818#16930 SIBLINGS CHILDREN 16930
 
0291 ~ 0337 韓의 再編
三韓²=百濟+新羅+任那=韓國² ┆중국의 통일 왕조인 晉이 망하고 중국이 분열되자 반도도 재편되었다. 馬韓, 辰韓 그리고 弁韓은 百濟, 新羅 그리고 任那로 바뀌었다.
16818#16871 SIBLINGS CHILDREN 16871
 
0292 ❰❰⁵ -0009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북쪽 경계를 노략질하였다(靺鞨寇北境). 왕이 군사 200명을 보내 昆彌川 가에서 막아 싸우게 하였다. 우리 군사가 거듭 패배하여 靑木山에 의지해서 스스로를 지켰다. 왕이 친히 정예 기병 100명을 이끌고 烽峴으로 나가서 구원하니 적들이 보고서 곧 물러갔다.
16818#16823 SIBLINGS CHILDREN 16823
 
0293.04 ❰❰⁵ -0008 솔까역사 百濟
樂浪이 말갈을 시켜 甁山柵을 습격하여 무너뜨리고 1백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16818#29743 SIBLINGS CHILDREN 29743
 
0293.07 ❰❰⁵ -0008 솔까역사 百濟
設秃山狗川兩柵 以塞樂浪之路 독산책과 구천책의 두 목책을 세워 樂浪²으로 통하는 길을 막았다.
16818#16932 SIBLINGS CHILDREN 16932
 
0295 철원(鐵圓)
16818#16 SIBLINGS CHILDREN 16
 
0295.05 ❰❰⁵ -0006 솔까역사 百濟
“國家東有樂浪 北有靺鞨 侵軼疆境 少有寧曰 우리나라의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어 번갈아 우리 강역을 침공하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
16818#29732 SIBLINGS CHILDREN 29732
 
0295.05 ◾東有樂浪
이 낙랑은 樂浪郡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한나라는 44년에 염사 사람인 소마시 등이 樂浪¹에 와서 공물을 바치자 한나라의 염사읍군으로 삼아 樂浪郡에 소속시키고 철마다 조알하도록 한 적이 있다. 그 염사읍군이 백제의 동쪽에 있어 백제로부터 樂浪으로 지칭되었을 수 있다.
16818#16933 SIBLINGS CHILDREN 16933
 
0295.05 @철원 @궁예고려의 도성
0295.05 @철원 @궁예고려의 도성
백제가 北有靺鞨이라 부르던 세력은 백제본기에서 靺鞨連我北境, 靺鞨侵北境 그리고 靺鞨寇北境으로 나타나는데, 백제의 북쪽에 접하여 있으며 변경을 자주 침공하였다. 철원은 대동강에서 영흥만이나 춘천으로 가려면 거쳐가야하는 지역이고 영흥만과 한강 하류를 잇는 추가령구조곡의 가운데에 있기도 하다. 농경에 적합한 평지도 넓어 北有靺鞨이 있었음직하다.
16818#19829 SIBLINGS CHILDREN 19829
 
0295.05 ◾樂浪²┆靺鞨²
0295.05 ◾樂浪²┆靺鞨²
한나라는 -108년에 臨屯郡을 설치했다가 -82년에 폐지하고 15현 중 7현만 樂浪郡에 소속시킨 바 있다. 樂浪²과 靺鞨²은 이때 빠진 8현의 일부일 수 있다. 樂浪²은 그 중심으로서 靺鞨²을 사주하여 백제를 침공하게 하고 강릉 즈음에 있었던 소국을 사주하여 신라를 침공하게 하였던 듯하다.
16818#17878 SIBLINGS CHILDREN 17878
 
0298 三國史記(1145) 百濟
한나라가 貊人과 함께 쳐들어왔다. 왕이 나가서 막다가 적의 군사에게 해를 입어 돌아가셨다.
16818#16861 SIBLINGS CHILDREN 16861
 
0299 ❰❰⁵ -0002 솔까역사 百濟
樂浪²이 쳐들어와서 慰禮城을 불태웠다.
16818#16950 SIBLINGS CHILDREN 16950
 
0300.10 ❰❰⁵ -0001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갑작스레 습격해왔다.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七重河에서 맞서 싸워서 추장 素牟를 사로잡아 馬韓에 보내고 나머지 적들은 모두 구덩이에 묻어버렸다.
16818#5984 SIBLINGS CHILDREN 5984
 
0300.10 @칠중성(七重城)
16818#30078 SIBLINGS CHILDREN 30078
 
0300.11 ❰❰⁵ -0001 솔까역사 百濟
王欲襲樂浪²牛頭山城 至臼谷 遇大雪乃還 왕이 낙랑의 우두산성을 습격하려고 구곡에 이르렀으나 큰 눈을 만나 곧 돌아왔다.
16818#16963 SIBLINGS CHILDREN 16963
 
0300.11 ◾牛頭
牛頭는 춘천이므로 樂浪²의 위치가 특정된다.
16818#16965 SIBLINGS CHILDREN 16965
 
0304.02 三國史記 百濟
몰래 군사를 보내 樂浪²의 서쪽 현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 백제로부터 서쪽 현을 빼앗겼다면 백제의 동쪽에 있었다는 東有樂浪에 어울린다. 300년에 백제가 침공하러 갔다가 눈이 많이 와서 돌아온 樂浪도 백제의 동쪽인 춘천에 있었다.
16818#16966 SIBLINGS CHILDREN 16966
 
0304.07 ❰❰⁵ 0004.07 솔까역사 新羅
樂浪³兵이 와서 금성을 여러 겹으로 에워쌌다. 좌우 신하들이 대답하기를 “적들이 우리에게 상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망령되게 병사를 동원하여 왔으니 하늘이 반드시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적이 얼마 있지 않아 물러나 돌아갔다.
16818#16967 SIBLINGS CHILDREN 16967
 
0304.09 ❰❰⁵ 0004 솔까역사 百濟
왕이 기병 1,000명을 거느리고 斧縣 동쪽에서 사냥하다가 말갈의 적병을 만나 한 번 싸워 격파하고 생구를 사로잡아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6818#16827 SIBLINGS CHILDREN 16827
 
0304.10 三國史記 百濟
왕이 樂浪²大守가 보낸 자객에게 해를 입어 돌아가셨다. ▐ 8개월 전에 있었던 백제의 영토 침탈에 대한 보복이다.
16818#16980 SIBLINGS CHILDREN 16980
 
0314 ❰❰⁵ 0014 솔까역사 新羅
왜인이 병선 1백여 척을 보내 바닷가의 민가를 노략질하였다. 6부의 날랜 병사를 발동하여 막게 하였다. 樂浪³이 내부가 비었을 것이라고 하고 금성을 공격해 오기를 매우 급하게 하였다. 밤에 유성이 적의 진영에 떨어지니 그 무리들이 두려워하여 물러나 閼川의 주위에 주둔하며 돌무지 20개를 만들어 놓고서 떠나갔다.
16818#21049 SIBLINGS CHILDREN 21049
 
0314.09 三國史記(1145) 高句麗
남쪽으로 대방군을 침략하였다.
16818#30208 SIBLINGS CHILDREN 30208
 
0322.09 ❰❰⁵ 0022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述川城을 쳐들어왔다.
16818#2814 SIBLINGS CHILDREN 2814
 
0322.09 @술천(述川)
16818#30202 SIBLINGS CHILDREN 30202
 
0322.11 ❰❰⁵ 0022 솔까역사 百濟
또 斧峴城을 습격하여 1백여 명을 죽이고 약탈하니 왕이 날랜 기병 200명에게 명하여 이를 막아 치게 하였다.
16818#16831 SIBLINGS CHILDREN 16831
 
0330 ❰❰⁵ 0030 솔까역사 百濟
동부의 흘우가 말갈과 馬首山 서쪽에서 싸워 이겼는데 죽이고 사로잡은 자가 매우 많았다.
16818#16833 SIBLINGS CHILDREN 16833
 
0330 @마수성(馬首城)
16818#30071 SIBLINGS CHILDREN 30071
 
0331 ❰❰⁵ 0031 솔까역사 百濟
高木城의 곤우가 말갈과 싸워 크게 이기고 2백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16818#16834 SIBLINGS CHILDREN 16834
 
0332 ❰❰⁵ 0032 솔까역사 高句麗
왕자 好童이 沃沮에 갔다가 樂浪王 崔理를 만났는데 崔理가 北國 神王의 아들이라며 好童을 데려가 딸을 시집보냈다. 후에 好童이 돌아가 최씨 딸에게 사람을 보내 무기고의 북을 찢고 나팔을 뽀개게 한 뒤 왕에게 樂浪²을 치게 하였다. 고구려의 군사가 성 밑에 이른 뒤에야 북과 나팔이 망가진 것을 알게 된 崔理는 딸을 죽이고 항복하였다. 혹은 '樂浪²을 멸망시키려고 혼인을 청하여 그 딸을 며느리로 맞은 뒤 돌려보내 무기를 파괴하게 했다'고도 한다.
16818#22575 SIBLINGS CHILDREN 22575
 
0334.09 ❰❰⁵ 0034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馬首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불을 질러 백성들의 집을 태웠다.
16818#16835 SIBLINGS CHILDREN 16835
 
0334.10 ❰❰⁵ 0034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또 甁山柵을 습격하였다.
16818#16836 SIBLINGS CHILDREN 16836
 
0336 ❰❰⁵ 0036 솔까역사 新羅
樂浪³이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타산성을 공격해서 함락시켰다.
16818#22603 SIBLINGS CHILDREN 22603
 
0337
0337
16818#22610 SIBLINGS CHILDREN 22610
 
0337 ❰❰⁵ 0037 솔까역사 新羅
髙句麗王無恤 襲樂浪²滅之 其國人五千來投 分居六部 고구려왕 무휼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나라 사람 5천명이 투항해 오니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 東有樂浪이다.
16818#30209 SIBLINGS CHILDREN 30209
 
0337 @동유낙랑(東有樂浪) @춘천
16818#30210 SIBLINGS CHILDREN 30210
 
0340 ❰❰⁵ 0040 솔까역사 新羅
華麗縣과 不耐縣 두 현의 사람들이 함께 모의하여 기병을 이끌고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는데, 貊國渠帥가 曲河의 서쪽에서 군사로써 막아 물리쳤다. 왕이 기뻐하여 맥국과 우호를 맺었다.
16818#22605 SIBLINGS CHILDREN 22605
 
0340 ◾華麗
華麗 → 長嶺鎭·唐文·博平郡 → 和州 → 雙城 → 和寧 → 永興
16818#22606 SIBLINGS CHILDREN 22606
 
0340 ◾不耐
淺城(比列忽) → 朔定 → 登州 → 安邊
16818#22607 SIBLINGS CHILDREN 22607
 
0342 ❰❰⁵ 0042 솔까역사 新羅
貊帥가 사냥하여 얻은 새와 짐승을 바쳤다.
16818#22609 SIBLINGS CHILDREN 22609
 
0343
0343
16818#16870 SIBLINGS CHILDREN 16870
 
0343 ~ 0427 高麗의 南下
313년과 314년에 각각 樂浪과 帶方을 병합한 고려는 342년에 모용 선비의 침공을 받아 도읍인 丸都城이 파괴되자 이듬 해에 平壤 동쪽의 黄城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즈음 백제도 예성강 유역까지 차지한 듯하다. 369년부터 고려는 백제의 예성강 유역을 침공하기 시작했는데, 371년에는 패해서 다시 도읍을 國內城으로 옮기기도 했지만, 399년 즈음에는 백제의 탈환 의지를 꺾고 임진강 유역까지 완전히 차지하였고, 427년에는 도읍도 平壤으로 다시 옮겼다.
16818#16869 SIBLINGS CHILDREN 16869
 
0355 ❰❰⁵ 0055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北鄙를 침범하였다.
16818#16841 SIBLINGS CHILDREN 16841
 
0356 ❰❰⁵ 0056 솔까역사 百濟
왕이 동부에 명하여 牛谷城을 쌓아 말갈에 대비하게 하였다.
16818#16842 SIBLINGS CHILDREN 16842
 
0369
0369
16818#22611 SIBLINGS CHILDREN 22611
 
0369 ~ 0562 倭의 介入
369년에 왜는 백제와 함께 신라를 치고 比自㶱, 南加羅, 㖨國, 安羅, 多羅, 卓淳 그리고 加羅를 복속시킨 뒤 서쪽으로 돌아 忱彌多禮를 치자 比利, 辟中, 布彌支 그리고 半古가 항복해 왔다. 왜는 점령 지역을 백제와 나눠 가졌다가 392년에는 백제왕을 교체하면서 대부분 빼앗았다. 이후 백제에게 영토를 조금씩 돌려주고 신라에게는 조금씩 잠식당하다가 562년에 加羅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모두 잃었다.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은 任那의 유산이다.
16818#16890 SIBLINGS CHILDREN 16890
 
0369.09 三國史記(1145) 百濟
고구려 왕 사유가 보병과 기병 20,000명을 이끌고 雉壤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왕이 태자를 보내니 군사를 이끌고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서 급히 쳐부수고 5천여 명을 잡았는데 사로잡은 포로는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6818#19819 SIBLINGS CHILDREN 19819
 
0371 三國史記(1145) 百濟
고구려가 군사를 일으켜 왔다. 왕이 듣고 군사를 浿河 가에 매복시켜 그들이 이르기를 기다렸다가 급히 치니 고구려 군사가 패배하였다.
16818#19839 SIBLINGS CHILDREN 19839
 
0371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이 태자와 정예 군사 30,000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쳤다. 平壤城을 공격하니 고구려 왕 사유가 힘껏 싸우며 막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16818#20392 SIBLINGS CHILDREN 20392
 
0375 三國史記(1145) 百濟
고구려가 북쪽 변경으로 쳐들어와 水谷城을 함락시켰다. 왕이 장수를 보내 막도록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왕이 다시 크게 군사를 일으켜 보복하려 하였다가 흉년이 들어 하지 못하였다.
16818#29713 SIBLINGS CHILDREN 29713
 
0376 三國史記(1145) 百濟
고구려가 북쪽 경계로 쳐들어왔다.
16818#30079 SIBLINGS CHILDREN 30079
 
0377.10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이 군사 30,000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平壤城을 쳤다.
16818#30086 SIBLINGS CHILDREN 30086
 
0377.11 三國史記(1145) 百濟
고구려가 쳐들어왔다.
16818#30088 SIBLINGS CHILDREN 30088
 
0386 三國史記(1145) 百濟
고구려가 쳐들어왔다.
16818#30182 SIBLINGS CHILDREN 30182
 
0387 三國史記 百濟
말갈과 關彌嶺에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16818#16862 SIBLINGS CHILDREN 16862
 
0389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이 군사를 보내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침입하고 약탈하였다.
16818#30183 SIBLINGS CHILDREN 30183
 
0390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이 달솔 진가모에게 고구려를 치라고 명령하니 都坤城을 빼앗고 200명을 사로잡았다.
16818#30184 SIBLINGS CHILDREN 30184
 
0390.02 ❰❰³ 0210 솔까역사 百濟
赤峴城과 沙道城 두 성을 쌓고 동부의 민호들을 옮겼다.
16818#22613 SIBLINGS CHILDREN 22613
 
0390.10 ❰❰³ 0210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沙道城을 공격해왔으나 이기지 못하자 성문을 불태우고 달아났다.
16818#22614 SIBLINGS CHILDREN 22614
 
0391.04 三國史記 百濟
말갈이 북쪽 변경의 赤峴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16818#22612 SIBLINGS CHILDREN OPEN
 
0392.07 三國史記(1145) 百濟
고구려왕 담덕이 40,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북쪽 변경을 공격하여 石峴城 등 10여 성을 함락시켰다. 왕은 담덕이 군사를 잘 부린다는 말을 듣고 나가서 막지 못하니, 漢水 북쪽의 여러 부락을 많이 빼앗겼다.
16818#30185 SIBLINGS CHILDREN 30185
 
0392.10 三國史記(1145) 百濟
고구려가 關彌城을 쳐서 빼앗았다.
16818#30186 SIBLINGS CHILDREN 30186
 
0393.08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이 진무에게 말하기를, “關彌城은 우리나라 북쪽 변경의 요충지이다. 지금 고구려의 소유가 되었으니, 이는 과인이 분하고 애석하게 여기는 것이다. 경은 마땅히 마음을 써서 치욕을 갚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군사 10,000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칠 것을 도모하였다. 진무는 몸소 군사보다 앞장서서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石峴城 등 다섯 성을 되찾으려고 먼저 관미성을 포위했는데, 고구려 사람들이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켰다.
16818#30187 SIBLINGS CHILDREN 30187
 
0394.07 三國史記(1145) 百濟
고구려와 水谷城 아래에서 싸워 패하였다.
16818#30189 SIBLINGS CHILDREN 30189
 
0394.09 ❰❰³ 0214 「솔까역사」 百濟
북부의 진과에게 명하여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말갈의 石門城을 습격하여 빼앗도록 하였다.
16818#16853 SIBLINGS CHILDREN 16853
 
0395 三國史記 新羅
말갈이 北邊을 침범하였다. 군사를 내어 그들을 悉直의 들판에서 크게 쳐부쉈다. ❶ 신라를 여러 차례 침공해 오던 동유낙랑이 337년에 고려에 망하자 신라는 동유낙랑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동해안의 예 지역을 잠식하여 삼척에까지 이르렀던 듯하다. 그러나 395년부터 고려의 사주를 받는 북유말갈로부터 침략을 받게 된다.
16818#16864 SIBLINGS CHILDREN 16864
 
0395 悉直(史直)郡
悉直(史直) → 三陟
16818#22574 SIBLINGS CHILDREN 22574
 
0395.08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이 좌장 진무 등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치게 하였다. 고구려왕 담덕이 몸소 군사 7,000명을 이끌고 浿水 가에 진을 치고 막아 싸웠는데,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해 죽은 자가 8,000명이었다.
16818#30190 SIBLINGS CHILDREN 30190
 
0395.11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이 浿水 전투를 보복하기 위하여, 직접 군사 7,000명을 이끌고 漢水를 건너 靑木嶺 아래에 진을 쳤다. 마침 큰 눈을 만나 군사들이 많이 얼어 죽자 군대를 돌려 漢山城에 이르러 군사들을 위로하였다.
16818#30191 SIBLINGS CHILDREN 30191
 
0396 ❰❰³ 0216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와서 赤峴城을 에워쌌다. 성주가 굳게 막으니 적이 물러나 돌아갔다. 왕이 굳센 기병 800명을 이끌고 뒤쫓아가 沙道城 아래에서 싸워 쳐부수었는데, 죽이거나 사로잡은 자가 매우 많았다.
16818#22615 SIBLINGS CHILDREN 22615
 
0396 廣開土王陵碑
396년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였다. 백잔주가 곤핍해져, 남녀 생구 1천 명과 세포 천 필을 바치면서 왕에게 항복하고, 이제부터 영구히 고려왕의 노객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태왕은 앞의 잘못을 은혜로서 용서하고 뒤에 순종해 온 그 정성을 기특히 여겼다. 이에 58성 700촌을 획득하고 백잔주의 아우와 대신 10인을 데리고 수도로 개선하였다.
16818#22619 SIBLINGS CHILDREN 22619
 
0397 ❰❰³ 0217 솔까역사 百濟
沙道城 옆에 두 개의 목책을 설치하였는데 동서로 서로 떨어진 거리가 10리였다. 赤峴城의 군졸을 나누어 지키게 하였다.
16818#22617 SIBLINGS CHILDREN 22617
 
0398.08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이 고구려를 치기 위하여 군사를 내어 漢山 북쪽의 목책에 이르렀다. 그날 밤에 큰 별이 군영 내에 떨어졌는데 큰 소리가 났다. 왕이 매우 꺼려하여 곧 그만 두었다.
16818#30192 SIBLINGS CHILDREN 30192
 
0399.08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이 고구려를 공격하려고 군사와 말을 크게 징발하였다. 백성들이 전역에 시달려 많은 사람들이 신라로 도망치니 호구가 줄어들었다.
16818#30193 SIBLINGS CHILDREN 30193
 
0400 ❰❰³ 0220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北邊을 노략질하므로 군사를 보내 막았다.
16818#16856 SIBLINGS CHILDREN 16856
 
0400 廣開土王陵碑
十年 敎遣步騎五萬往救新羅從男居城至新羅城倭滿其中 官軍方至倭賊退□□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城卽歸服 왕이 보병과 기병 도합 5만 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남거성을 거쳐 신라성에 이르니, 그곳에 왜군이 가득하였다. 관군이 막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16818#22622 SIBLINGS CHILDREN 22622
 
0408 ❰❰⁵ 0108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牛谷에 들어와서 백성들을 약탈하고 돌아갔다.
16818#16843 SIBLINGS CHILDREN 16843
 
0409 ❰❰³ 0229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牛谷 경계에 들어와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였다. 왕이 정예 군사 300명을 보내 막았는데, 적의 복병이 양쪽에서 쳐서 우리 군사가 크게 졌다.
16818#16857 SIBLINGS CHILDREN 16857
 
0420 ❰❰² 0540 솔까역사 百濟
왕이 장군 연회에게 명하여 고구려의 牛山城을 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 牛山城은 牛岑城인 듯하다.
16818#22576 SIBLINGS CHILDREN 22576
 
0425 ~ 0503 ❰❰⁵ 0125 ~ 0203
0425 ~ 0503 ❰❰⁵ 0125 ~ 0203
16818#16804 SIBLINGS CHILDREN 16804
 
0425 ~ 0503 ❰❰⁵ 0125 ~ 0203 靺鞨(新羅)
▐ 靺鞨은 신라와 얽혀 125년부터 203년까지 79년 동안 8회 나오다 204년부터 395년까지 192년 동안은 나타나지 않는다. 공백기 이전의 기록을 300년 뒤로 물리면 425년부터 503년까지의 사건이 된다. 북유말갈이 철원에 있었고 동유낙랑은 춘천에 있었다면, 신라는 동유낙랑이 망한 337년 이후에 말갈의 침공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에 부합한다.
16818#16805 SIBLINGS CHILDREN 16805
 
0425 ~ 0503 ❰❰⁵ 0125 ~ 0203 靺鞨(新羅)
❷ 신라는 395년에 삼척을 차지하고 있었고 468년에 고려에 빼앗기는데 그 사이의 73년간은 관련 기록이 없다. 신라와 말갈의 관계를 기술한 125년부터 142년까지의 기록 7개를 300년 뒤로 물리면, 425년부터 442년까지의 기록이 되어 신라가 삼척을 계속 차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16818#22626 SIBLINGS CHILDREN 22626
 
0425.01 ❰❰⁵ 0125 솔까역사 新羅
말갈이 北境에 대거 침입하여 관리와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하였다.
16818#16844 SIBLINGS CHILDREN 16844
 
0425.07 ❰❰⁵ 0125 솔까역사 新羅
또 大嶺柵을 습격하고 泥河를 넘어왔다. 왕이 글을 백제에 보내 구원을 청하니 백제가 다섯 장군을 보내 도와주었다. 적이 그 소식을 듣고서 물러갔다.
16818#16845 SIBLINGS CHILDREN 16845
 
0428 ❰❰² 0548 솔까역사 百濟
고구려왕 평성(양원왕)이 濊와 공모하여 한수 이북의 獨山城을 공격해 왔다. 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왕이 장군 주진을 시켜 갑병 3천 명을 거느리고 떠나게 하였다. 주진은 밤낮으로 행군하여 독산성 아래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고구려 군사들과 일전을 벌여 크게 이겼다.
16818#22577 SIBLINGS CHILDREN 22577
 
0435 ~ 0469 ❰❰¹ 0495 ~ 0529 漢城 함락 전후
① 백제와 고려는 369년부터 399년까지 31년 동안 15차례나 전쟁을 했으나 400년부터 468년까지 69년 동안은 전쟁 기록이 전혀 없다. ② 472년에 백제는 30여년간 고려와 전쟁을 이어오고 있으니 구원해 달라고 북위에 사신을 보냈다. ③ 백제는 475년에 고려에게 한성을 함락당하고 웅진으로 쫓겨가는데 기록은 한성 이북과 예성강에서 고려와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되어 있다. 정황에 맞지 않는 이 기록들을 60년 앞당기면 모순이 모두 해소된다.
16818#1248 SIBLINGS CHILDREN OPEN
 
0435.08 ❰❰¹ 0495 솔까역사 百濟
고구려가 와서 雉壤城을 포위하자 왕이 사신을 신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왕이 장군 덕지에게 명령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구원하게 하니 고구려 군사가 물러나 돌아갔다.
16818#22579 SIBLINGS CHILDREN 22579
 
0437 ❰❰⁵ 0137 솔까역사 新羅
말갈이 塞를 침입하여 長嶺의 다섯 목책을 불태웠다.
16818#16846 SIBLINGS CHILDREN 16846
 
0439.09 ❰❰⁵ 0139 솔까역사 新羅
長嶺을 습격하여 백성들을 붙잡아가고 노략질하였다.
16818#16847 SIBLINGS CHILDREN 16847
 
0439.10 ❰❰⁵ 0139 솔까역사 新羅
다시 쳐들어왔는데, 눈이 많이 오는 바람에 물러갔다.
16818#16848 SIBLINGS CHILDREN 16848
 
0440 ❰❰⁵ 0140 솔까역사 新羅
長嶺에 목책을 세워 말갈을 방비하였다.
16818#30695 SIBLINGS CHILDREN 30695
 
0441.11 ❰❰¹ 0501 솔까역사 百濟
달솔 우영을 보내 군사 5,000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水谷城을 습격하게 하였다.
16818#22580 SIBLINGS CHILDREN 22580
 
0442 ❰❰⁵ 0142 솔까역사 新羅
여러 신하를 불러 말갈을 정벌할 것을 의논하였다. 이찬 웅선이 불가하다는 말을 올리니, 그만두었다.
16818#16850 SIBLINGS CHILDREN 16850
 
0443 ❰❰¹ 0503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馬首柵을 소각하고 髙木城으로 진공하여 오자 왕이 군사 5천 명을 보내 이들을 물리쳤다. ▐ 髙木城은 馬首柵 인근에 있었을 것이다.
16818#22598 SIBLINGS CHILDREN 22598
 
0446.07 ❰❰¹ 0506 솔까역사 百濟
말갈이 침입하여 高木城을 격파하고 6백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갔다.
16818#22599 SIBLINGS CHILDREN 22599
 
0447.05 ❰❰¹ 0507 솔까역사 百濟
髙木城 남쪽에 두 개의 목책을 세우고 또 長嶺城을 쌓아 말갈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 馬首柵-髙木城-長嶺城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北有靺鞨이 백제를 침공하는 주요 경로로 漢北에 있었을 것이다.
16818#22600 SIBLINGS CHILDREN 22600
 
0449 中原高麗碑
▐ 중원고려비의 내용은 東夷寐錦이 高麗大王에게 世世토록 兄如弟의 관계를 원하자 고려가 衣服과 敎를 내린다는 이야기다. 東夷寐錦上下至于伐城으로 보아 신라왕이 고려의 성까지 찾아간 듯하고 新羅土內幢主나 新羅土內衆人는 고려가 신라 영토 안까지 영향력을 미친 정황을 암시한다.
16818#22623 SIBLINGS CHILDREN 22623
 
0463.08 ❰❰¹ 0523 솔까역사 百濟
고구려 군사가 浿水에 이르자 왕이 좌장 지충에게 명하여 보병과 기병 10,000명을 거느리고 나아가 싸워 물리치게 하였다.
16818#22601 SIBLINGS CHILDREN 22601
 
0464.02 日本書紀(720)
新羅王은 高麗軍이 모두 新羅 땅에 들어왔음을 알았다. 이에 사람을 시켜 任那王에게 “高麗王이 우리나라를 정벌합니다. 지금의 시기는 깃대에 묶어놓은 술과 같고 나라의 위태로움은 계란을 쌓아놓은 것보다 더하여 나라 운명의 길고 짧음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日本府 行軍元帥에게 구원을 청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任那王이 膳臣 반구, 吉備臣 소리, 難波吉士 적목자에게 권하여 新羅를 구해주도록 했다.
16818#22624 SIBLINGS CHILDREN 22624
 
0465.03 日本書紀(720)
기소궁숙니 등이 곧 신라에 들어가 이웃 군을 같이 공격하였다. 新羅王 夜聞官軍四面鼓聲 知盡得喙地 與數百騎亂走 신라왕은 밤에 관군이 사방에서 북을 울리는 소리를 듣고 喙의 모든 땅을 얻었음을 알고 수백 기와 함께 어지러이 도망갔다. 그러므로 크게 패배시키고 소궁숙니는 쫓아가 진 속에서 적장을 베었다. 喙地悉定 遣衆不下 喙의 땅이 모두 평정되었으나 남은 무리들이 항복하지 않았다.
16818#22625 SIBLINGS CHILDREN 22625
 
0468.02 三國史記 高句麗
왕이 말갈 병력 1만으로 신라의 悉直州城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16818#17017 SIBLINGS CHILDREN 17017
 
0468.02 三國史記 新羅
고구려가 말갈과 더불어 北邊의 悉直城을 습격하였다.
16818#16865 SIBLINGS CHILDREN 16865
 
0469 三國史記(1145) 百濟
장수를 보내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쳤다.
16818#30195 SIBLINGS CHILDREN 30195
 
0469.10 ❰❰¹ 0529 솔까역사 百濟
고구려 왕 흥안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북쪽 변경 穴城을 쳐들어와서 빼앗았다. 좌평 연모에게 명령하여 보병과 기병 30,000명을 거느리고 五谷 벌판에서 막아 싸우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고, 죽은 자가 2천여 명이었다.
16818#22602 SIBLINGS CHILDREN 22602
 
0475
0475
16818#16955 SIBLINGS CHILDREN 16955
 
0475 ~ 0561 百濟의 南下
高麗의 침공을 받아 百濟는 한강 유역을 잃고 금강 유역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倭의 도움을 받아 任那의 섬진강 유역과 영신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이후 新羅와 함께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하류와 상류를 나눠가졌으나 高麗와 新羅가 손을 잡자 포기하였다.
16818#16891 SIBLINGS CHILDREN 16891
 
0475 三國史記(1145) 百濟
고구려왕 거련이 군사 30,000명을 이끌고 와서 왕도인 漢城을 포위하였다. 왕이 성문을 닫고 나가 싸우지 못하니 고구려 사람들이 군사를 네 길로 나누어 협공하고, 또한 바람을 타고 불을 놓아 성문을 불태웠다. 사람들의 마음이 매우 두려워하여 나가서 항복하려는 자들도 있었다. 왕은 궁색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수십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아나니 고구려 사람이 추격하여 왕을 해쳤다.
16818#30204 SIBLINGS CHILDREN 30204
 
0475~0561 百濟의 남하
0475~0561 百濟의 남하
16818#16971 SIBLINGS CHILDREN 16971
 
0480 三國史記 新羅
말갈이 北邊을 침략하였다.
16818#16866 SIBLINGS CHILDREN 16866
 
0481 三國史記 新羅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北邊에 쳐들어와 狐鳴城 등 7성을 빼앗고, 또한 彌秩夫로 진군하였다. 우리 군사는 백제·가야의 구원병과 함께 길을 나누어 막으니 적이 패하여 물러갔다. 泥河 서쪽까지 추격해 물리치고 1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
16818#16867 SIBLINGS CHILDREN 16867
 
0481 ❸
395년부터 468년까지 신라가 삼척을 점유하고 있었다면 삼척에서 청하까지의 지역에 고려가 통치기구를 설치한 것은 468년에서 481년 사이 밖에 안된다. 그것도 이 기록의 「髙句麗與靺鞨入北邊 取狐鳴等七城」을 468년의 일로 해석해야 가능하다. 여기서 7성은 悉直郡, 羽谷縣, 于珍也郡, 波旦縣, 于尸郡, 也尸忽郡 그리고 阿兮縣인 듯하다. 삼국사기는 신라의 후속 국가인 왕고의 고려계승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라에 있는 고려의 흔적을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16818#22627 SIBLINGS CHILDREN OPEN
 
0482 三國史記 百濟
말갈이 漢山城을 습격하여 함락시키고 3백여 호를 포로로 잡아 돌아갔다.
16818#16868 SIBLINGS CHILDREN 16868
 
0503 ❰❰⁵ 0203 三國誤記 新羅
말갈이 境을 침범해 왔다.
16818#16851 SIBLINGS CHILDREN 16851
 
0507.10 三國史記 百濟
고구려 장수 고로가 말갈과 함께 漢城을 치기 위하여 橫岳 아래에 와서 진을 치니 왕이 군사를 출동시켜 그들을 물리쳤다.
16818#16872 SIBLINGS CHILDREN 16872
 
0507.10 @횡악 @橫岳 @삼각산
16818#16944 SIBLINGS CHILDREN 16944
 
0514 ❰❰⁵ 0214.10 「三國誤記」 百濟
말갈이 날쌘 기병으로 쳐들어와서 述川에 이르렀다.
16818#16854 SIBLINGS CHILDREN 16854
 
0520 ❰❰⁵ 0220 三國誤記 百濟
말갈이 北邊을 노략질하므로 군사를 보내 막았다.
16818#16956 SIBLINGS CHILDREN 16956
 
0524 ❰❰⁵ 0214.09 三國誤記 百濟
북부의 진과에게 명하여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말갈의 石門城을 습격하여 빼앗도록 하였다.
16818#16894 SIBLINGS CHILDREN 16894
 
0529 ❰❰⁵ 0229 「三國誤記」 百濟
말갈이 牛谷 경계에 들어와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였다. 왕이 정예 군사 300명을 보내 막았는데, 적의 복병이 양쪽에서 쳐서 우리 군사가 크게 졌다.
16818#16964 SIBLINGS CHILDREN 16964
 
0551
0551
16818#22618 SIBLINGS CHILDREN 22618
 
0551 ~ 0659 新羅의 覇權
三韓³=百濟+新羅+髙麗┆任那의 낙동강 서쪽은 新羅가 차지하였다.
16818#16934 SIBLINGS CHILDREN 16934
 
0551 - 三國史記(1145) 朔州
朔州는 가탐의 고금군국지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동남쪽이자 예의 서쪽 옛 맥의 땅이며(句麗之東南 濊之西 古貊地) 대개 지금 신라의 북쪽인 朔州다. 선덕왕 6년에 牛首州로 삼고 군주를 두었다. 한편 문무왕 13년에 首若州를 설치했다고 이른다. 경덕왕이 朔州로 고쳐 삼았다. 지금은 春州이다.
16818#16898 SIBLINGS CHILDREN 16898
 
0551 - 三國史記(1145) 朔州
▐ 40년에 화려와 불내의 신라 침공을 중간에서 막았던 貊國에 대응시킬 수 있다. 맥국은 東有樂浪이 멸망하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나며 위치도 백제의 동쪽에 있었다는 東有樂浪과 비슷하기 때문에 東有樂浪의 후신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東有樂浪은 지금의 춘천에 있었던 것이 된다.
16818#19797 SIBLINGS CHILDREN 19797
 
0551 百濟와 新羅의 고려침공
▐ 백제 성왕이 직접 백제와 임나의 병사를 거느리고 고려를 침공하여 한성을 되찾고 더 진군하여 평양까지 차지하였는데, 이로써 옛 땅 6군을 회복하였다. 신라 진흥왕도 거칠부로 하여금 고려를 침공하게 하여 죽령에서 고현에 이르는 10군을 빼앗게 하였다. 이때 철원은 신라의 영토가 되었던 듯하다. 이를 반영하듯 이후의 기록에는 北有靺鞨²이 나타나지 않는다.
16818#19816 SIBLINGS CHILDREN 19816
 
0551 @북유말갈(北有靺鞨) @동유낙랑(東有樂浪)
0551 @북유말갈(北有靺鞨) @동유낙랑(東有樂浪)
551년의 사건 이후 北有靺鞨²은 삼국사기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후 나오는 말갈은 勿吉靺鞨¹이다.
16818#30201 SIBLINGS CHILDREN 30201
 
0554 魏書
勿吉國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으니, 옛 肅愼國의 지역이다.
16818#16901 SIBLINGS CHILDREN 16901
 
0565 北齊書(636)
是歲 高麗契丹靺鞨¹並遣使朝貢 고려, 거란 그리고 말갈이 함께 사신을 보내 조공해왔다. ▐ 北有靺鞨²이 신라에 흡수되고 얼마 되지 않아 중국의 기록에 靺鞨¹이라는 표기가 나타나 勿吉을 대체하였다. 靺鞨¹은 勿吉과 발음이 비슷해서 勿吉이 변해서 생긴 말로 추정된다.
16818#193 SIBLINGS CHILDREN 193
 
0598 隋書(636)
元率靺鞨¹之衆萬餘騎寇遼西 營州總管韋沖擊走之
16818#16954 SIBLINGS CHILDREN 16954
 
0598 三國史記(1145) 高句麗 靺鞨
왕이 말갈의 무리 만여 명을 거느리고 요서를 침략하니 영주 총관 위충이 이를 격퇴하였다. ▐ 이 당시 北有靺鞨²이 있던 지역은 신라가 차지하고 있었고 요서 지역을 침공하는 데 동원할 병력으로는 北有靺鞨²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여기에 나오는 말갈은 勿吉靺鞨¹로 볼 수 밖에 없다. 중국의 기록에 北有靺鞨²이 나온 사례는 보지 못했다.
16818#16958 SIBLINGS CHILDREN 16958
 
0612 隋書(636)
兼契丹之黨 虔劉海戍 習靺鞨¹之服 侵軼遼西
16818#16957 SIBLINGS CHILDREN 16957
 
0612 三國史記(1145) 高句麗 靺鞨
황제가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고구려 작은 무리들이 사리에 어둡고 공손하지 못하여 발해와 갈석 사이에 모여 요동예맥의 경계를 거듭 잠식하였다. 거란의 무리를 합쳐서 바다를 지키는 군사들을 죽이고 말갈의 일을 익혀 요서를 침범하였다.”고 하였다.
16818#16959 SIBLINGS CHILDREN 16959
 
0615+ 海東安弘記
海東安弘記云 九韓者一日夲·二中華·三吳越·四乇羅·五鷹逰·六靺鞨·七丹國·八女真·九穢貊 해동안홍기에 이르기를 9한이란 것은 1 일본, 2 중화, 3 오월, 4 탁라, 5 응유, 6 말갈, 7 단국, 8 여진, 9 예맥이라고 하였다.
16818#19373 SIBLINGS CHILDREN 19373
 
0615+ 海東安弘記
▐ 勿吉이 靺鞨이라 불리기 전부터 우연히 신라인들이 靺鞨이라 부르는 존재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신라인들이 북쪽 변경을 자주 침략해 오던 세력을 靺鞨이라 불렀던 것은, 중국인들이 동북 지역의 勿吉을 靺鞨라 부르던 것을 흉내낸 것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獫狁은 원래 중국인들이 북방 유목민을 가리키던 말인데 백제는 중국에 보낸 문서에서 자신을 자주 침공해오던 고려를 가리켜 獫狁이라 했다. 신라의 靺鞨도 같은 경우라 볼 수 있다.
16818#19795 SIBLINGS CHILDREN 19795
 
0645 新唐書(1060)
帝曰 虜墮吾策中矣 命左衛大將軍阿史那社尒以突厥千騎嘗之 虜常以靺鞨¹銳兵居前 社尒兵接而北 태종은 좌위대장군 아사나사이에게 명하여 돌궐의 기병 1천을 이끌고 가서 유인하게 하였다. 고구려가 늘 말갈의 예병을 앞세우므로 사이의 군사가 싸우다가 패하여 달아났다.
16818#16953 SIBLINGS CHILDREN 16953
 
0645 舊唐書(945)
高麗北部傉薩高延壽·南部耨薩高惠貞率高麗·靺鞨¹之衆十五萬來援安市城 고려의 북부녹살 고연수와 남부욕살 고혜정이 고려·말갈의 무리 15만명을 이끌고 와서 안시성을 구원하였다.
16818#16951 SIBLINGS CHILDREN 16951
 
0645 舊唐書(945)
太宗簡傉薩以下酋長三千五百人 授以戎秩 遷之內地 收靺鞨¹三千三百 盡坑之 餘衆放還平壤 태종은 녹살 이하 추장 3천 5백명을 가려내어 군직을 주어서 내지로 옮겼다. 말갈 사람 3천 3백명은 모두 구덩이에 파묻고 나머지 무리들은 평양으로 돌려 보냈다.
16818#16952 SIBLINGS CHILDREN 16952
 
0655 舊唐書(945)
六年 百濟與高麗靺鞨¹率兵侵其北界 攻陷三十餘城 春秋遣使上表求救
16818#16811 SIBLINGS CHILDREN 16811
 
0655 舊唐書(945)
六年 新羅王金春秋又表稱百濟與高麗靺鞨¹侵其北界 已沒三十餘城
16818#14996 SIBLINGS CHILDREN 14996
 
0655 三國史記(1145) 新羅 靺鞨
고구려가 백제 및 말갈과 더불어 군사를 연합하여 우리의 북쪽 변경을 침략하여 33성을 탈취하였다. 왕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 北有靺鞨²은 551년에 신라가 차지하였고 고려가 勿吉靺鞨¹을 전쟁에 동원한 것은 598년의 기록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에, 이 기록의 말갈도 勿吉靺鞨¹로 볼 수 밖에 없다.
16818#16874 SIBLINGS CHILDREN 16874
 
0658 三國史記(1145) 新羅 靺鞨
王以何瑟羅地連靺鞨² 人不能安 罷京爲州 置都督以鎭之 又以悉直爲北鎭 왕이 하슬라의 땅이 말갈에 맞닿아 있으므로 사람들이 편안치 못하다고 여겨, 경을 폐지하여 주로 삼고 도독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또 실직을 북진으로 삼았다. ▐ 北有靺鞨²은 395년에 신라의 北邊에 쳐들어와 悉直의 들판에서 교전한 바 있고 468년에도 고려와 함께 쳐들어와 北邊의 悉直城을 공격한 바 있다. 따라서 이 기록에 나오는 말갈도 北有靺鞨²이다.
16818#17015 SIBLINGS CHILDREN 17015
 
1060 新唐書
黑水靺鞨¹은 肅慎 땅에 있는데 挹婁라고도 하며 탁발魏 때는 勿吉이라고도 불리었다.
16818#16902 SIBLINGS CHILDREN 16902
 
1145 三國史記 靺鞨(90)
16818#5987 SIBLINGS CHILDREN 5987
 
1156 松漠紀聞
女真即古肅慎國也 東漢謂之挹婁 元魏謂之勿吉 隋唐謂之靺鞨 여진은 옛 숙신국이다. 동한은 읍루라 했고 탁발위는 물길, 수당은 말갈이라 했다. ▐ 肅慎 ➔ 挹婁(東漢) ➔ 勿吉(元魏) ➔ 靺鞨(隋唐) ➔ 女真(趙宋)
16818#16900 SIBLINGS CHILDREN 16900
 
1856~1861 東輿圖 철원
16818#17809 SIBLINGS CHILDREN 17809
 
1856~1861 東輿圖 춘천
16818#17815 SIBLINGS CHILDREN 17815
 
東有樂浪(貊國)
삼국사기(1145)에는 백제의 동쪽에 낙랑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낙랑은 樂浪郡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낙랑은 336년, 314년 그리고 304년에 신라를 침공했고 299년에 백제를 침공했으며 295년에 백제에 의해 東有樂浪이라 불리웠고 293년에 말갈로 하여금 백제를 침공하게 했다. 이것이 두번째 의미의 樂浪이다. 東有樂浪이 맥고려에 의해 멸망당한 후 비슷한 위치에서 貊國이 나타나기 때문에 동일한 나라로 추정한다.
16818#16889 SIBLINGS CHILDREN 16889
 
樂浪郡
樂浪郡은 -108년에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설치한 군이다. 313년까지 400여년간 대동강 유역에 존속하였다. 이것이 첫번째 의미의 樂浪이다.
16818#29711 SIBLINGS CHILDREN 29711
 
철원
철원
16818#17816 SIBLINGS CHILDREN 17816
 
철원
철원
16818#17817 SIBLINGS CHILDREN 17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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