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의 북서쪽에 흉노가 있었고 그 동쪽에 동호가 있었는데, 동호는 다시 오환과 선비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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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0+ 史記(-91)
그 후에 연나라의 명장 진개가 오랑캐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연나라로 돌아온 후, 군대를 이끌고 동호를 습격해 패주시켰다. 이때 동호는 1천여 리나 물러갔다. 형가와 함께 진시왕을 암살하려던 진무양은 진개의 손자다. 연나라 역시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지역에 장성을 쌓고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등에 군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방어했다.
7426#7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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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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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 史記(-91) 몽염열전
진이 천하를 합병하자 곧 몽염에게 30만 무리를 이끌고 북으로 융적을 내쫓고, 하남을 수습하여 장성을 쌓게 했다. 지형에 따라 험준한 곳을 통제할 수 있게 쌓았는데 임조에서 시작하여 요동에 이르기까지 만여 리에 걸쳐 있었다. 그리하여 황하를 건너 양산을 거점으로 하여 구불구불 북으로 나아갔다. 10년 넘게 군대는 외지를 전전하다 상군에 주둔하기에 이르렀고, 이 무렵 몽염의 위세는 흉노를 떨게 했다.
7426#7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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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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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 史記(-91) 흉노열전
秦이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시황제가 몽염에게 십만의 군사를 주어 북으로 胡를 치게 해 하남 땅을 모조리 손에 넣었다. 황하를 이용해 요새를 만들고 황하를 따라 44개의 현에 성을 쌓고 죄수를 이주시켜 충당하게 했다. 그리고 직도를 통하게 해 구원에서 운양에 이르렀는데 험준한 산의 능선을 국경으로 삼고 골짜기를 이용해 참호로 삼고 수선할 수 있는 것을 손보아 임조에서 요동까지 만 여리에 이르렀다. 게다가 황하를 건너 양산과 북가 사이에 근거지를 두었다.
7426#7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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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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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 맥고려왕 피살
왕망 초에 句驪의 병력를 뽑아 흉노를 정벌하려 하였으나 모두 도망하여 변경을 나가 도적이 되었다. 遼西大尹 전담이 그들을 추격하다 죽자 왕망이 장수 엄우를 시켜 치게 하였다. 엄우가 구려후 騶를 들어오게 유인하여 목을 베고 그 머리를 장안에 보냈다. 왕망이 고구려왕을 하구려후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때부터 貊人이 변경을 침범하는 일이 더욱 심해졌다.
7426#2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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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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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5+ 後漢書(445) 烏桓
광무제 초에 오환과 흉노는 연합하여 변경을 노략질하였으니, 대군 동쪽은 더욱 그 피해를 입었다. 새와 가까웠기 때문에 아침에 천막을 출발하여 저녁이면 성곽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5군의 민서들은 고통을 당하였고, 군현이 손상되고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은 유망하기에 이르렀다. 상곡의 새외에 위치한 백산이 가장 강성하고 부유하였다.
❷ 오환과 흉노가 연합하여 침략한 5군은 대, 上谷, 漁陽, 右北平 그리고 요서를 말한다.
7426#23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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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0 後漢書(445) 匈奴
6년에 이르러 비로소 귀덕후 유립에게 흉노에 사행하도록 하였는데, 흉노 역시 사신을 파견하여 바쳤다. 한은 다시 중랑장 한통에게 답례하도록 하였는데, 금과 비단을 뇌물로 보내어 이전의 좋은 관계로 서로 통하게 되었다. 그런데 선우가 교만하고 거만하여 자신을 묵특에 비기면서 사자에 대한 언사가 도리에 어긋나고 오만하였으나, 광무제는 처음과 같이 그를 대하였다. 일찍이 사명이 항상 통하고 있어도 흉노는 노방과 함께 자주 북변을 침입하였다.
7426#7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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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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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5 三國志(289) 烏丸
왕망의 말기에 이르러, 흉노와 함께 노략질을 하였다. 광무제는 천하를 평정하자, 복파장군 마원에게 3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오원관에서 변경지대로 나가서 그들을 정벌하게 하였으나, 승리하지도 못하고 군마 1천여 필만 죽였다. 오환이 마침내 강성해져서 흉노를 약탈하고 공격하니, 흉노가 1천 리나 떨어진 곳으로 옮겨가 막남 지역은 사람 없이 텅 비게 되었다.
7426#13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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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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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5 後漢書(445) 烏桓
건무 21년에 복파장군 마원에게 3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오원관을 나가서 오환을 불시에 습격하도록 하였다. 오환은 미리 이 사실을 알고 모두 무리를 이끌고 도망갔는데, 이를 추격하여 백여 급을 벤 후 회군하였다. 오환은 군대를 되돌려서 마원 군대의 후진을 공격하니, 마원은 드디어 밤낮으로 도망쳐 돌아왔는데, 새내로 들어갈 즈음에 죽은 말이 천여 필이었다.
7426#13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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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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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5¦
이 해에는 (1) 선비와 흉노가 요동을 침공하였다가 遼東太守 祭肜에게 패하여 대부분 죽거나 사로잡혔고 (2) 한나라 군대가 오원관을 나가 오환을 공격했다가 크게 패하여 돌아갔으며 (3) 선비가 上谷과 중산을 침략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하였다.
7426#13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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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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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 後漢書(445) 匈奴
二十五年春 遣弟左賢王莫將兵萬餘人擊北單于弟薁鞬左賢王 生獲之 又破北單于帳下 并得其衆合萬餘人 馬七千匹 牛羊萬頭 北單于震怖 却地千里
봄에 호한야선우는 아우인 좌현왕 막을 파견하니 병사 만여 명을 거느리고 북선우의 아우인 욱건좌현왕을 공격하게 하여 그를 생포하였고 또 북선우가 직접 관장하고 있는 군대를 격파하였다. 총 그 무리 합계 만여 명, 말 7천 필 그리고 소와 양을 만 두를 획득하였다. 북선우는 놀라고 두려워서 천 리나 퇴각하였다.
7426#13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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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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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 後漢書(445) 匈奴
北部 薁鞬骨都侯 與右骨都侯 率衆三萬餘人來歸南單于 南單于復遣使詣闕 奉藩稱臣 獻國珍寶 求使者監護 遣侍子 修舊約
북부의 욱건골도후와 우골도후가 부중 3만여 명을 거느리고 남선우에게 귀부하였다. 남선우는 다시 사신을 궁궐로 보내어 울타리로써 받들고 신하를 자칭하며 나라의 진귀한 보물을 바치면서 사자가 감호한다면 시자를 파견한다는 이전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였다.
7426#13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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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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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 後漢書(445) 鮮卑
二十五年 乃使招呼鮮卑 示以財利 其大都護偏何(鮮卑名也) 遣使奉獻 願得歸化 肜慰納賞賜 稍復親附 其異種滿離 高句驪之屬 遂駱驛款塞 上貂裘好馬 帝輒倍其賞賜
이에 선비를 불러 재물을 보여주니 그 대도호 편하가 사신을 보내어 봉헌하고 귀부하기를 원하였다. ●遼東太守 祭肜이 위로하며 상금을 내리니 점차 다시 복속하였다.
그 다른 종족 만리와 고구려 무리가 마침내 국경으로 나와 담비 갖옷과 좋은 말을 바치니 황제가 항상 그 배로 상을 내렸다.
7426#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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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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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 後漢書(445) 鮮卑
其後都護偏何等詣祭肜求自效功 因令擊北匈奴左伊育訾部 斬首二千餘級 其後偏何連歲出兵擊北虜 還輒持首級詣遼東受賞賜
그후 도호 편하 등이 ●遼東太守 祭肜을 방문하여 스스로 공을 드러낼 수 있기를 구하였고 명령을 받아 북흉노 좌이육자 부를 공격하여 머리 2천여 급을 베었다. 그 후 편하는 해마다 출병하여 북흉노를 공격하였고 돌아와서 빈번히 수급을 가지고 요동을 방문하여 상으로 하사하는 재물을 받았다.
7426#7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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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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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
25년에 오환과 흉노가 함께 변경을 침략하였는데 대군, 上谷, 漁陽, 右北平 그리고 요서가 심한 피해를 입었다.
49년 봄에 □□이 右北平, 漁陽, 上谷 그리고 太原을 침입하여 노략질하는 것을 요동태수 제융이 타이르자 모두 항복하였다.
49년에 오환의 대인이 무리를 거느리고 궁궐을 방문하자 요동속국, 요서, 右北平, 漁陽, 광양, 上谷, 대군, 안문, 太原, 삭방 등에 안치하여 흉노와 선비를 막게 하였다.
□□에 들어갈 말은?
7426#1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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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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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맥이 아니라 오환이다
오환이 右北平, 漁陽, 上谷 그리고 太原을 침략하자 遼東太守 祭肜이 회유하여 귀순하게 하고 요동속국, 요서, 右北平, 漁陽, 광양, 上谷, 대군, 안문, 太原 그리고 삭방의 경계 지역에 배치하여 흉노와 선비를 막는 일을 맡겼다.
7426#13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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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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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0 이전 三國志(289)
한나라 말기에 요서 오환의 대인 구력거는 무리 5천여 락을 거느렸고, 상곡 오환의 대인인 난루는 무리 9천여 락을 통솔하였으며, 각자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였다. 요동속국의 오환 대인 소복연은 무리 1천여 락을 거느리고 스스로를 초왕이라 칭하였다. 우북평 오환의 대인인 오연은 무리 8백여 락을 거느렸는데 스스로를 한로왕이라 칭하였다. 이들은 모두 계교와 방책이 있었으며 용감하고 건실하였다.
7426#7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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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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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수서에 나오는 新羅의 유래
수서(636)에는 신라의 왕이 본래 백제 사람이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삼국지(289)에는 백제의 전신인 마한이 신라의 전신인 진한의 왕을 세웠다는 이야기와 조선의 준왕이 위만에 쫓겨 바다로 도망가 마한을 차지하고 한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수서의 이야기는 삼국지의 두 이야기가 섞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7426#13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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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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