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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2
김유신은 왕경인이다. 12세조 수로는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후한(後漢) 건무 18년 임인에 구봉에 올라 가락(駕洛)의 9촌을 보고는 마침내 그곳에 가서 나라를 열고 이름을 가야(加耶)라고 하였다가 뒤에 금관국(金官國)으로 고쳤다. 그 자손들이 서로 이어져 9세손 구해에 이르렀는데, 혹 구차휴라고도 하며 유신에게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남가야(南加耶)의 시조 수로는 신라와 더불어 같은 성이다.
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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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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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2
백성 2, 3백 명이 모였는데 사람의 소리 같기는 하지만 그 모습은 숨기고 말하였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아홉 간(干) 등이 말하였다. “우리들이 있습니다.” 또 말하였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구지입니다.” 또 말하였다. “황천이 이곳에 가서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여 내려왔으니, 산봉우리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먹으리’라 하며 뛰고 춤을 추어라.”
75#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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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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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ᑅ
금관국(金官國)의 왕인 김구해가 왕비와 세 명의 아들 즉 큰아들인 노종, 둘째 아들인 무덕, 막내 아들인 무력을 데리고 나라의 창고에 있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이 예로써 대접하고 상등의 벼슬을 주었으며, 본국을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 아들인 무력은 벼슬이 각간에 이르렀다.
75#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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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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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5ᑅ 1
아버지 서현(舒玄)은 벼슬이 소판(蘇判) 대량주도독(大梁州都督) 안무대량주제군사(安撫大梁州諸軍事)에 이르렀다. 유신비(庾信碑)를 살펴보니 “아버지는 소판 김소연(金逍衍)이다.”라고 하였는데, 서현이 혹 고친 이름인지 혹 소연이 자(字)인지는 알지 못한다. 의심이 되므로 둘 다 남겨 둔다.
7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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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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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5ᑅ 2
일찍이 서현이 길에서 입종 갈문왕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萬明)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눈짓으로 그녀를 유인하여 중매를 기다리지도 않고 정을 통하였다. 서현이 만노군 태수가 되어 장차 함께 떠나려 하자, 숙흘종이 비로소 딸이 서현과 야합한 것을 알고서 이를 미워하여 별제에 가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느닷없이 벼락이 옥문을 쳤고 지키던 자가 놀라 우왕좌왕하자 만명은 뚫린 구멍을 따라 빠져나와 마침내 서현과 함께 만노군에 다다랐다.
7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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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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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5ᑅ 3
서현은 경진일 밤에 형혹성과 진성 두 별이 자기에게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만명 또한 신축일 밤 꿈에 동자가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태기가 있어 20개월만에 유신을 낳았다. 이때가 진평왕 건복 12년으로 수나라 문제 개황 15년 을묘였다.
7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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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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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5ᑅ 4
이름을 정하고자 함에 부인에게 이야기하였다.
“내가 경진일 밤 길몽을 꾸어 이 아이를 얻었으니 마땅히 이로써 이름을 지어야 하오. 그렇지만 예기에 따르면 날짜로써 이름을 짓지는 않는다고 하니 곧 庚자는 庾자와 서로 비슷하며 辰과 信은 소리가 서로 가깝고 하물며 옛 현인 중에도 유신이라는 이름이 있으니 어찌 그렇게 이름 짓지 않겠소?”
마침내 유신이라 이름 지었다. 본래 유신의 태는 높은 산에 묻었으므로 지금까지도 이 산을 태령산이라고 한다.
7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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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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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1
나이 17세에 고구려·백제·말갈이 국경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쳐들어온 적을 평정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홀로 중악(中嶽) 석굴로 들어가 몸을 깨끗이 하고는 하늘에 고하여 맹세하였다.
“적국이 도가 없어 승냥이와 호랑이처럼 우리 영역을 침략하여 어지럽힘으로써 편안한 해가 없었습니다. 저는 한낱 미미한 신하로 재주와 힘은 헤아릴 수 없이 적지만 재앙과 난리를 없애고자 마음먹었으니 오직 하늘은 굽어 살피시어 저를 도와주소서.”
75#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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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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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2
머문 지 4일째 되던 날 홀연히 한 노인이 거친 베옷을 입고 나타나, “저는 신라인입니다. 나라의 원수를 보니 마음이 아프고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여기에 와서 만나는 것이 있기를 바랄 따름이었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어르신께서는 제 정성을 불쌍히 여기시어 방술(方術)을 가르쳐 주십시오. 공이 눈물을 흘리며 간청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니 6~7번에 이르렀다.
7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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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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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3
노인이 이에 “자네는 어리지만 삼국을 병합할 마음(并三國之心)을 가지고 있으니 또한 장하지 아니한가?”라고 하며 곧 비법을 가르쳐 주면서 “삼가 함부로 전하지 말게. 만약 의롭지 못한 데 쓴다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을 것이네.”라고 말하였다. 말을 끝마치고 작별하였는데 2리 정도 갔을 때 쫓아가 그를 바라보았으나 보이지 않고 오직 산 위에 빛이 있어 오색과 같이 찬란하였다.
75#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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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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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
이웃한 적이 점차 다가오자 공은 마음에 품은 장하고 큰 뜻을 더욱 분발하여 홀로 보검을 가지고 열박산의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향을 피우고 하늘에 고하여 빌기를 중악에 있을 때 맹세한 것과 같이 하였고, 거듭 “천관(天官)께서 빛을 드리워 보검에 영험함을 내려주소서.”라며 기도하였다. 3일째 되던 날 밤에 허성과 각성 두 별의 빛이 환하게 내려와 드리우더니 검이 동요하는 것 같았다.
75#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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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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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가을 8월 왕이 이찬 임말리, 파진찬 용춘·백룡, 소판 대인·서현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케 하였다. 고구려인들이 군사를 출동시켜 역공하니 우리 쪽이 불리해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고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움츠러들어 다시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75#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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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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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유신은 그때 중당당주였는데 아버지 앞에 나아가 투구를 벗고 고하였다.
“우리 군사들이 패하였습니다. 제가 평생 충효를 스스로 기약하였으니 전쟁에 임해서는 용맹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개 듣건대, ‘옷깃을 바루면 갓옷이 바르게 되고 벼리를 당기면 그물이 펴진다.’고 하니 제가 그 벼리와 옷깃이 되겠습니다.”
곧 말에 올라 검을 뽑아들고 참호를 뛰어넘어 적진을 드나들면서 장군을 베어 그 머리를 끌고 왔다.
75#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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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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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5
정월에 돌아와서 왕을 뵙기도 전에 백제의 대군이 몰려와 우리의 매리포성을 공격한다는 변경을 지키는 관리의 급한 보고가 올라왔다. 왕은 다시 유신을 발탁하여 상주장군으로 삼아 그들을 막도록 명령하였다. 유신은 명을 듣고는 곧 말에 올라 처자식을 보지도 못하고 백제군을 역공하여 쫓아냈으며, 2천 명을 참수하였다.
75#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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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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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5
3월에 돌아와 왕궁에서 복명하고 미처 집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또 백제 병사가 국경에 와서 주둔하며 장차 군사를 크게 일으켜 우리를 치려한다는 급한 보고가 올라왔다. 왕은 다시 유신에게
“바라건대 공은 수고를 꺼리지 말고 빨리 가서 그들이 이르기 전에 방비를 마치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75#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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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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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5
유신은 다시 집에 들르지도 못하고 군사를 훈련시키고 병기를 손질하여 서쪽을 향해 떠났다. 이때 그 집안 사람들이 모두 문 밖에 나와 오기를 기다렸는데 유신은 문을 지나쳐 돌아보지 않고 지나갔다. 50보 쯤 가서 말을 멈추고는 사람을 시켜 집에서 마실 물을 가져오게 하여 그것을 마시고는
“우리 집의 물은 여전히 예전 맛 그대로구나.”라고 말하였다.
75#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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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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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7
겨울 10월 백제 군사가 와서 무산성·감물성·동잠성 등 3성을 에워싸자 왕이 유신을 보내 보병과 기병 1만을 거느리고 그들을 막게 하였다. 고전하다가 기운이 빠지니 유신이 비령자에게 “오늘의 상황이 급박하구나. 자네가 아니면 누가 능히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분발시키겠는가?”라고 말하였다. 비령자가 절을 하며 “감히 명령을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고는 마침내 적진을 향해 나아갔다.
75#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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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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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춘추는 고구려에 청병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마침내 당나라에 들어가 군사를 요청하였다. 태종황제가
“너희 나라 유신의 명성을 들었는데 그 사람됨이 어떠하냐?”라고 말하였다.
“유신은 비록 조금 재주와 지혜가 있지만 만약 천자의 위엄을 빌리지 않는다면 어찌 이웃한 근심거리를 쉽게 없애겠습니까?”라고 대답하니, 황제가
“진실로 군자의 나라로구나.”라고 말하며 이에 허락하고는 장군 소정방에게 군사 20만으로 백제를 정벌하러 가라는 조서를 내렸다.
75#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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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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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이때 유신은 압량주 군주로 있었는데 마치 군사 일에는 뜻이 없는 듯 술을 마시고 풍류를 즐기며 몇 달을 보냈다. 주의 사람들이 유신을 어리석은 장수로 여겨 그를 비방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편안하게 지낸 날이 오래인지라 힘이 남아 한 번 싸워볼 만한데도 장군께서는 게으르니 어이할꼬.”라고 말하였다.
75#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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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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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유신이 이를 듣고 백성들을 쓸 수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대왕에게
“지금 민심을 살펴보니 일을 벌릴 만하옵니다. 청컨대 백제를 쳐 대량주에서의 치욕을 갚고자 하나이다.”라고 고하였다.
왕은
“작은 것이 큰 것을 범하려다가 위태로워지면 장차 어찌하겠는가?”라고 말하니 유신은 대답하였다.
75#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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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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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군사가 이기고 지는 것은 크고 작은 데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따름이옵니다. 그러므로 주(紂) 임금에게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마음이 떠나고 덕이 떠났으므로, 주(周)나라의 10명의 어진 신하들이 마음을 합치고 덕을 합친 것만 같지 못하였사옵니다. 지금 저희들은 뜻이 같아서 더불어 죽고 사는 것을 함께 할 수 있으니 저 백제라는 것은 족히 두려워할 것이 없나이다.”
왕이 이에 허락하였다.
75#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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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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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드디어 주의 군사들을 선발하여 단련시켜 적에게 나아가게 하여 대량성 밖에 이르렀는데, 백제가 오히려 막고 있었다. 이기지 못하여 도망치는 체하면서 옥문곡까지 이르니 백제가 그들을 가볍게 여겨 많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왔다. 복병이 그 앞뒤에서 일어나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물리쳤는데, 백제 장군 8명을 사로잡고 죽이거나 사로잡은 이가 1천 명에 달하였다.
75#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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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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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이에 사자를 시켜 백제 장군에게 이야기하였다.
“우리 군주 품석과 그 처 김씨의 뼈가 너희 나라 옥중에 묻혀 있고 지금 너희 비장 8명이 나에게 잡혀 엉금엉금 기면서 살려달라고 청하는 것을 보니 나는 여우나 표범도 죽을 때는 머리를 제 살던 곳으로 향한다는 뜻이 생각나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있다. 이제 너희가 죽은 두 사람의 뼈를 보내 살아 있는 여덟 사람과 바꾸는 것이 어떠한가?”
75#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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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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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백제 중상 좌평이 왕에게
“신라인의 해골을 가지고 있어도 이로울 것이 없으니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나이다. 만약 신라인들이 신의를 저버려 우리 여덟 사람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잘못은 저들에게 있고 올바름은 우리에게 있으니 무슨 근심거리가 있겠사옵니까?”라고 말하였다. 이에 품석 부부의 뼈를 파내 관에 넣어 보냈다.
75#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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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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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드디어 승기를 타고 백제의 영역으로 들어가 악성 등 12성을 공격하여 빼앗고 2만 명을 참수하였으며 9천 명을 사로잡았다. 공을 논하여 이찬으로 승진시키고 상주행군대총관으로 삼았다. 또 적의 영역으로 들어가 진례성 등 9성을 무찔러 9천여 명을 참수하고 포로로 6백 명을 획득하였다.
75#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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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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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유신은 대답하였다.
“저는 나라의 위엄과 신령함에 의지하여 두 차례 백제와 크게 싸워 20성을 빼앗고 3만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으며, 또한 품석공과 그 부인의 뼈를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하늘이 주신 다행이 이른 것이지 제가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75#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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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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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가을 8월 백제장군 은상이 석토성 등 7성을 공격해 오니 왕이 유신과 죽지·진춘·천존 등의 장군에게 명하여 나가 그들을 막게 하였다. 3군을 나누어 다섯 방면으로 하여 그들을 쳤지만 서로의 승부가 열흘이 지나도록 나지 않아 엎어진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였고 흐르는 피가 절굿공이를 띄울 정도에 이르렀다.
7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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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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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이에 도살성 아래에 주둔하며 말을 쉬게 하고 군사들을 잘 먹여 다시 공격을 꾀하였다. 이때 물새가 동쪽에서 날아와 유신의 군막을 지나가니 장수와 병졸들이 이를 보고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겼다. 유신은
“이는 족히 괴이한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오늘 반드시 백제인이 염탐하러 올 것이니, 너희들은 거짓으로 알지 못하는 체하고 감히 누구인지 물어보지 말라.”고 말하였다.
75#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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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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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
은상 등은 군사의 증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의심을 품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유신 등은 일시에 분발하여 공격해 크게 승리를 거두고 장군인 달솔 정중과 군사 1백 명을 사로잡았으며, 좌평 은상과 달솔 자견 등 10명과 병졸 8천 9백 8십 명을 죽이고 말 1만 필과 갑옷 1천 8백 벌을 획득하였다. 그 밖의 각종 기구들도 이와 비슷하였다.
75#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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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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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5
이때 백제의 임금과 신하들은 사치가 심하고 방탕하여 나랏일을 돌보지 않으니 백성들은 원망하고 신은 노하여 재앙과 괴변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 유신이 왕에게
“백제는 무도하여 그 죄가 걸(桀)과 주(紂)보다 더하옵니다. 이에 진실로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인을 징벌하실 때이옵니다.”라고 고하였다.
75#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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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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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0
여름 6월에 무열왕과 태자 법민이 장차 백제를 정벌하고자 크게 군사를 일으켜 남천에 이르러 진영을 설치하였다. 그때 당나라에 들어가 군사를 요청하였던 파진찬 김인문이 당나라 대장군 소정방·유백영과 함께 군사 13만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덕물도에 이르렀는데, 우선 수행하던 부하 문천을 보내와 고하였다.
75#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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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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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0
무열왕은 태자와 장군 유신·진주·천존 등에게 명하여 큰 배 1백 척에 군사들을 싣고 그들과 만나게 하였다. 태자가 장군 소정방을 만나니 정방이 태자에게
“나는 바닷길로 가고 태자는 육지길로 가서 7월 10일 백제의 왕도인 사비의 성에서 만납시다.”라고 말하였다.
75#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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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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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유신의 12대 조상은 남가라를 세운 수로왕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남가라의 건국 설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원래 이곳에는 왕이 없었고 아홉 명의 추장이 백성들을 이끌고 있었다. 서기 42년 3월에 북쪽 구지(龜旨)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사람들이 말하였다. “우리들이 있습니다.” 또 소리가 들렸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또 사람들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구지입니다.” 그러자 또 소리가 들렸다. “황천(皇天)이 ...
75#5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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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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