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年代記 > 0475~0561 年代記 > 0541~0544 임나 재건 논의

541년 4월에 임나를 재건하라는 천황의 조서가 백제로 오자 임나의 여러 나라들이 백제에 모여 방안을 논의하였다. 7월에는 백제 성왕이 신라와 화해하려는 임나의 움직임을 듣고 이를 꾸짖었다. 544년 3월에 성왕은 임나에 파견된 몇몇 사람의 소환을 요구하는 표문을 올렸다. 11월에 천황의 조서가 오자 성왕은 다시 임나의 여러 나라를 불러 임나 재건의 방안을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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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0552 日本書紀(720) 日本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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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04  임나를 재건하라는 천황의 조서를 받다.
0541.04 임나를 재건하라는 천황의 조서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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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04 日本書紀(720) 1
安羅의 次旱岐 이탄해, 대불손, 구취유리 등과 加羅의 上首位 고전해, 卒麻旱岐, 散半奚旱岐의 자식, 多羅의 下旱岐 이타, 斯二岐旱岐의 자식, 子他旱岐와 任那日本府의 吉備臣(이름이 빠졌다)이 백제에 가서 함께 조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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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04 日本書紀(720) 2
任那旱岐등은 "然任那境接新羅 恐致卓淳等禍(等謂㖨己呑·加羅言 卓淳等國 有敗亡之禍) 임나의 경계는 신라와 접해 있어서 卓淳 등과 같은 화를 입을까 두렵습니다. (등이라 함은 㖨己呑, 加羅를 말한다. 卓淳 등의 나라와 같은 패망의 화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 여기서 加羅는 전후의 기록을 볼 때 南加羅다. 卓淳, 㖨己呑 그리고 南加羅는 비슷한 시기에 신라에 망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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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04 日本書紀(720) 3
聖明王은 "㖨己呑은 가라와 신라의 경계에 있어(㖨己呑居加羅與新羅境際) 해마다 공격을 받아 패배하였는데 임나도 구원할 수가 없었고 이로 말미암아 망하게 되었다. 南加羅는 땅이 협소하여 불의의 습격에 방비할 수 없었고 의지할 바도 알지 못하여 이로 인하여 망하였다. 卓淳은 위아래 사람들이 다른 마음을 지녔는데, 군주가 혼자 항복하려고 신라에 내응하여 이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살펴보니 3국의 패망은 진실로 까닭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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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07  임나가 新羅와 가까워지는 것을 견제하다.
0541.07 임나가 新羅와 가까워지는 것을 견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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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07 日本書紀(720) 1
백제는 安羅日本府가 신라와 더불어 계책을 공모한다는 말을 듣고 비리막고, 선문, 목리미순, 미마사 등을 安羅에 보내 신라에 간 任那執事를 소환하여 임나를 세우는 것을 도모하도록 하였다. 따로 安羅日本府 河內直이 신라와 공모한 것을 심하게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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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07 日本書紀(720) 1
▐ 安羅日本府는 이 기록에만 두 번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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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07 日本書紀(720) 2
그리고 任那에게 “옛날 나의 선조인 速古王과 貴首王은 당시 旱岐 등과 처음으로 화친을 맺어 형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대들을 子弟로 삼고 그대들은 나를 父兄으로 삼아 함께 천황을 섬기며 힘을 합쳐 강적을 막아내어 나라를 평안하게 지켜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 선대의 화친의 우호를 존중하여 삼가 천황의 조칙에 따라 신라가 빼앗은 南加羅, 㖨己呑 등을 빼앗아 本貫에 되돌려 任那로 옮기고 영원토록 父兄으로 삼아 항상 日本을 섬기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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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07 日本書紀(720) 3
다시 任那日本府에 “日本卿 등은 오랫동안 任那之國에 머물면서 신라와 경계를 가까이 접하여 신라의 실상을 잘 알 것이다. 朝庭을 섬기는 척하며 任那와 거짓으로 화친했다. 이렇게 任那日本府를 격려한 것은 任那를 공략하기 전에 거짓으로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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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百濟가 표문을 올리다.
0544.03 百濟가 표문을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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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日本書紀(720) 성왕의 표문
백제가 아탁득문, 기마, 가비 등을 보내 표문을 올렸다.┆彌麻沙, 己連 등이 臣의 蕃에 와서 거기 있는 日本府와 함께 任那를 세우라는 조서를 바치고 또 津守連 등이 와서 任那를 세우는 일을 묻는 칙서를 바쳤습니다. 이에 사신(烏胡跛臣, 的臣)을 보내 日本府와 任那를 불렀으나 새해 핑계를 대고 오지 않고 다시 부르자 제사 핑계를 대며 오지 않았으며 또 다시 부르자 지위가 낮은 사람을 보내와 제대로 논의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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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日本書紀(720) 성왕의 표문
的臣, 吉備臣, 河內直 등은 모두 移那斯와 麻都가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이들이 日本府의 정사를 마음대로 하고 또한 任那를 통제하여 사신을 보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己麻奴跪(津守連)를 머무르게 하고 별도로 빨리 나는 새같은 사람을 보내 천황에 주상합니다. 이 두 사람을 其本處로 보내 주십시오. 신은 彌麻沙와 己連 등에게 己麻奴跪를 딸려 보내 표를 아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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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천황의 조서
0544.03 천황의 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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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日本書紀(720) 흠명천황의 조서
조에서 말하였다.┆的臣 등(등이라 함은 吉備弟君臣, 河內直 등을 말한다)이 신라에 왕래한 것은 짐의 본의가 아니다. 이전에 印支彌와 阿鹵旱岐가 있을 때 신라에 핍박당하여 백성들은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 백제는 멀리 있어 위급함을 구원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的臣 등이 신라와 왕래하면서 경작하고 있다는 것을 짐이 일찍이 들은 바 있다. 만약 任那를 세우면 移那斯와 麻都는 말할 것도 없이 저절로 물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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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百濟의 표문 계속
0544.03 百濟의 표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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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日本書紀(720) 성왕의 표문 1
신라가 봄에 㖨淳을 침공해서 久禮山의 우리 수비병을 쫓아내고 점거했습니다. 安羅에 가까운 곳은 安羅가 경작을 하고 久禮山에 가까운 곳은 신라가 경작을 하고 있습니다. 각각 자신들이 있는 곳을 경작하며 서로 침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移那斯와 麻都가 남의 경계를 넘어 경작을 하고 6월에 도망가 버렸습니다. 印支彌 다음의 許勢臣의 때(백제본기에는 印支彌를 머무르게 한 후에 온 旣洒臣의 때라고 한다)에는 신라가 다시 남의 경계를 침략한 일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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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日本書紀(720) 성왕의 표문 1
▐ 㖨國 신공황후조에서 1회, 흠명천황조에서 3회 언급되었다.┆㖨己呑 흠명천황조에서 4회 언급되었다.┆㖨淳 흠명천황조에서 1회 언급되었다.┆喙地 웅략천황조에서 2회 언급되었다.┆喙己呑 계체천황조에서 2회 언급되었다.┆卓淳 신공황후조에서 7회, 흠명천황조에서 9회 언급되었다. ▐ 㖨淳은 㖨國 또는 卓淳의 오기일 것이다. 卓淳을 달구벌로 설정하면 안라와 접한 이 㖨淳은 㖨國의 오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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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日本書紀(720) 성왕의 표문 1
0544.03 日本書紀(720) 성왕의 표문 1
▐ 녹기탄과 구례산의 위치가 비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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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日本書紀(720) 성왕의 표문 2
安羅도 신라가 핍박하여 경작을 못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신이 일찍이 신라는 해마다 많은 병사와 무기를 모아서 安羅와 荷山을 습격하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혹은 加羅를 습격한다고 들었습니다. 군사를 보내 任那를 지키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날쌘 군사를 보내어 때맞춰 구원하고 있습니다. 的臣 등이 安羅에 있으면 任那는 세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땅히 속히 물러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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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日本書紀(720) 성왕의 표문 3
佐魯麻都가 본래 한국 여인의 소생이지만 지위가 대련입니다. 日本執事들과 교제하여 번영하고 귀한 반열에 올랐습니다. 지금은 신라의 나마의 예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도 다른 나라의 옷을 입고 매일같이 신라의 영지에 이르러 공사 구분 없이 전혀 꺼리는 바 없이 왕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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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日本書紀(720) 성왕의 표문 3
무릇 㖨國의 멸망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㖨國의 函跛旱岐가 加羅國에 두 마음을 품어 신라에 내응하고 加羅는 밖에서 싸움으로써 이로 말미암아 망한 것입니다. 만일 函跛旱岐로 하여금 내응하지 못하게 하였다면 㖨國이 비록 작다 하더라도 반드시 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卓淳의 경우에도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만일 卓淳國의 왕이 신라에 내응하여 적들을 불러들이지 않았다면 어찌 멸망에 이르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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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11  천황의 조서를 받고 다시 논의하다.
0544.11 천황의 조서를 받고 다시 논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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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11 日本書紀(720)
백제가 사신을 보내 日本府臣과 任那執事를 불러 “천황에게 보낸 득문과 기마, 가비 등이 일본에서 돌아왔다.”고 말하였다. 日本 吉備臣, 安羅 下旱岐 대불손, 구취유리, 加羅 上首位 고전해, 卒麻君, 斯二岐君, 散半奚君의 아들, 多羅 二首位 흘건지, 子他旱岐, 久嵯旱岐가 백제에 이르렀다. 백제왕 聖明이 “나는 미마사, 기련, 용기다 등을 日本에 보냈다. 진수련이 칙을 받들어 任那를 세웠는가에 대해서 물었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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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11 日本書紀(720)
聖明王이 “지금 日本府의 印岐彌(任那에 있던 日本臣의 이름이다)는 이미 신라를 쳤고 이번에는 우리를 치려고 한다. 듣건대 신라와 安羅 양국의 국경지역에 큰 강이 있는데 요해의 땅이라고 한다. 나는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6성을 쌓으려 한다. 삼가 天皇에게 3천 명의 병사를 요청하여 성마다 5백 명씩 두고, 이곳을 우리 병사와 함께 신라가 경작하는 것을 막으면 久禮山의 5성은 자연히 무기를 버리고 항복할 것이다. 卓淳之國도 일으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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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11 日本書紀(720)
南韓에 군령과 성주를 두는 것이 어찌 天皇의 뜻을 거스르고 조공하는 길을 막는 것이 되겠는가. 北敵은 강하고 우리나라는 미약하다. 만일 南韓에 군령과 성주를 두어 수리하고 방어하지 않으면 이 강적을 막을 수가 없다. 또한 신라도 누를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을 두어 신라를 공격하여 任那를 보존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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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11 日本書紀(720)
吉備臣, 河內直, 移那斯 그리고 麻都가 계속 任那國에 머문다면 天皇이 任那를 세우라는 조를 내리더라도 불가능할 것이다. 바라건대 이 네 명을 이주시켜 각각 本邑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吉備臣, 旱岐 등이 “지금 돌아가서 日本大臣(任那日本府의 大臣을 말한다)과 安羅王과 加羅王에게 삼가 보고하고 함께 사신을 보내어 같이 天皇에게 주상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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