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5.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 (1) 고려의 기원 > 천도
 
 貊
http://qindex.info/i.php?f=1883#6357
 
 高麗와 百濟의 도읍
http://qindex.info/i.php?f=1883#1631
 
 BC 0037 삼국사기(1145)
卒本川에 이르렀다.(위서에서는 '紇升骨城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과 물이 험하고 단단한 것을 보고 드디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어 단지 沸流水 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高句麗라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高로 氏를 삼았다.
http://qindex.info/i.php?f=1883#1828
 
 0003-10 삼국사기(1145)
왕이 國內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http://qindex.info/i.php?f=1883#1829
 
 0209-10 삼국사기(1145)
왕이 丸都로 도읍을 옮겼다.
http://qindex.info/i.php?f=1883#1830
 
 0238 - 0245
漢 왕조를 이은 위(曹魏)는 238년에 요동을 장악하고 있던 공손씨를 토벌하고 낙랑과 대방에 대한 통치도 회복하였다. 이어 위는 부여의 지원을 받으며 244년과 245년에 걸쳐 고려를 침공하고 도주하는 동천왕을 쫓아 옥저까지 파괴하였다. 낙랑과 대방도 고려에 복속했던 濊를 침공하여 다시 복종을 받아냈다.
http://qindex.info/i.php?f=1883#5964
 
 0247-02 삼국사기(1145)
동천왕이 丸都城으로 전란을 겪고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平壤城을 쌓고 백성과 종묘와 사직을 옮겼다. 평양은 본래 仙人 王儉의 땅이다. 다른 기록에는 '왕이 王險에 가서 도읍하였다'고 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883#41283
 
 0247-02 삼국사기(1145)
삼국사기 편찬자가 여기에 나오는 평양을 대동강변에 있는 평양으로 간주하고 왕검 설화를 붙여 놓았다. 당시 대동강 유역에는 낙랑군이 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평양은 대동강변에 있는 평양이 아니다. 이 기록에 나오는 평양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당시 고려가 처해있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면 환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http://qindex.info/i.php?f=1883#5965
 
 0289 삼국지
都於丸都之下 환도의 아래에 도읍 하였다. -- 247년에 고려가 도읍을 평양성으로 옮긴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환도 아래에 평양성이 있었을 수도 있다.
http://qindex.info/i.php?f=1883#1853
 
 0296-08 삼국사기(1145)
모용외가 침략해왔다. 故國原에 이르러 서천왕의 무덤을 보고 사람을 시켜 파게 하였다. 파는 사람 중에 갑자기 죽는 자가 있고 또 무덤 안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므로 귀신이 있는가 두려워하여 곧 물러갔다. -- 모용외는 5호16국시대 선비족 모용부의 수장으로 훗날 연(前燕)을 세운 모용황의 아버지다. 당시 고려의 도읍은 평양성이었다. 고국원은 요동에서 평양성으로 가는 도중에 있었을 것이다.
http://qindex.info/i.php?f=1883#1899
 
 0302-09 삼국사기(1145)
미천왕은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현도군을 침략하여 8천 명을 붙잡아 平壤으로 옮겼다.
http://qindex.info/i.php?f=1883#4316
 
 0334-08 삼국사기(1145)
平壤城을 증축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883#1827
 
 0342 삼국사기(1145)
가을 8월에 丸都城으로 옮겨 살았다.
http://qindex.info/i.php?f=1883#1831
 
 0342 수서(636)
위궁의 현손의 아들은 소열제(昭列帝, 고국원왕)라고 하는데, 모용씨에게 격파되었다. 마침내 丸都에 들어가 그의 궁실을 불태우고 크게 약탈한 뒤 돌아왔다. 소열제는 뒤에 백제에게 피살되었다.
http://qindex.info/i.php?f=1883#1862
 
 0342 위서(0554)
모용원진이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하였다. 남쪽 길로 침입하여 목저에서 전투를 벌여 쇠(釗, 고국원왕)의 군대를 대파시키고 승승장구하여 드디어 丸都까지 침입하니 쇠는 혼자서 도망쳤다. 원진이 쇠의 아버지(미천왕) 묘를 파헤쳐서 시체를 싣고 아울러 그의 어머니와 부인 그리고 진귀한 보화와 남녀 5만여명을 약탈하고 그의 궁실을 불살라 丸都城을 파괴한 뒤 귀환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883#1858
 
 0342 위서(0554)
이 기록은 미천왕의 무덤이 환도성 인근에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왕릉은 보통 도읍 인근에 있고 미천왕은 평양성 도읍 시기인 331년에 죽었으므로 결과적으로 평양성도 환도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환도성 인근이라 추정만 할 수 있을 뿐 더 이상 자세히 평양성의 위치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천도의 취지를 생각해 볼 때 환도성 기준으로 요동 반대편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참고로, 평양성 도읍 시기의 왕들은 무덤이 있는 곳의 ...
http://qindex.info/i.php?f=1883#5966
 
 0342-11 삼국사기(1145)
모용황이 병력 4만을 거느리고 남도로 왔다. 모용한과 모용패는 장사 왕우 등 병력 1만 5천을 거느리고 북도로 왔다. 고려왕은 혼자 말을 타고 달아나 단웅곡으로 들어갔다. 연나라 장군 모여니가 고려왕의 어머니 주씨와 왕비를 추격하여 사로잡아 돌아갔다. 미천왕의 무덤을 파서 그 시신을 수레에 싣고 창고 안에 있던 많은 보물을 약탈하였다. 또 남녀 5만여 명을 사로잡고 궁궐을 불태운 뒤 환도성을 헐어버리고 돌아갔다.
http://qindex.info/i.php?f=1883#1825
 
 0343 양서(636)
모용외의 아들 황(晃)이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였다. 쇠(釗)는 더불어 싸우다 크게 패하여 단신으로 말을 타고 달아났다. 황은 승리한 기세로 계속 추격하여 丸都에 이르러 궁실을 불지르고 남자 5만여구를 노략질하여 돌아왔다.
http://qindex.info/i.php?f=1883#1857
 
 0343-02 삼국사기(1145)
고국원왕이 그의 동생을 연(燕)에 보내 신하를 칭하며 조회하고 진기한 물건 천여 점을 바쳤다. 연왕 모용황이 이에 그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보내고 그 어머니는 아직 남겨두어 인질로 삼았다.
http://qindex.info/i.php?f=1883#1854
 
 0343-07 삼국사기(1145)
평양 동쪽의 黃城으로 옮겨 살았다.(성은 지금의 서경 동쪽 木覓山 중에 있다.) -- 고려는 313년과 314년에 각각 낙랑과 대방을 병합했으므로 여기에 나오는 평양은 대동강변에 있는 평양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http://qindex.info/i.php?f=1883#1819
 
 0369-09 삼국사기(1145)
고구려 고국원왕이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근초고왕이 태자를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를 급히 쳐서 깨뜨리고 5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 이전에는 고려와 백제가 싸웠다는 기록이 없다. 고려와 백제의 대립은 고려가 도읍을 대동강변으로 옮겼기 때문이 아닐까?
http://qindex.info/i.php?f=1883#4312
 
 0369-09 삼국사기(1145)
이 전쟁은 기록 상 고려와 백제가 최초로 충돌한 사건이다. 313년과 314년에 각각 낙랑과 대방이 고려에 병합되면서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게 되었지만 충돌은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에 두 나라가 충돌한 것은 고려의 도읍이 백제에 가까이 옮겨간 결과가 아닐까? 요동으로부터 거듭되는 침공을 받아 환도성이 파괴되는 경험을 한 고려가 도읍을 남쪽으로 옮겼고 그 도읍의 남쪽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백제를 침공하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http://qindex.info/i.php?f=1883#5967
 
 0371-10 삼국사기(1145)
백제 근초고왕이 병력 3만을 거느리고 平壤城을 공격해 왔다. 고국원왕이 군대를 내어 막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이 달 23일에 서거하였다. 고국의 들(故國之原)에 장사지냈다.
http://qindex.info/i.php?f=1883#1824
 
 0371-10 삼국사기(1145)
만약 평양성이 환도성 인근에 있었다면 한강 유역에 있는 백제가 공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전후를 통틀어 백제는 청천강 이북을 공격한 사례가 없다.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평양성은 대동강변에 있었다고 보아야 하고, 왕이 피살된 것으로 보아 도읍이었으며, 따라서 343년에 도읍을 옮겼다는 그 평양이라고 보아야 한다. 고국원은 서천왕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환도성 인근에 있었다. 따라서 이때 도읍을 다시 환도성 인근으로 옮겼다고 보아야 한다.
http://qindex.info/i.php?f=1883#5968
 
 0399 광개토왕릉비(414)
백제가 맹서를 어기고 倭와 화통하였다. 왕이 평양으로 행차하여 내려갔다. 그때 신라왕이 사신을 보내 아뢰기를, '왜인이 그 국경에 가득 차 성지를 부수고 노객으로 하여금 倭의 민으로 삼으려 하니 이에 왕께 귀의하여 구원을 요청합니다'라고 하였다. -- 여기에 나오는 평양은 대동강변의 평양이다. 당시 고려의 도읍은 광개토왕릉비가 있는 국내였을 것이다.
http://qindex.info/i.php?f=1883#1826
 
 0427 삼국사기(1145)
도읍을 平壤으로 옮겼다.
http://qindex.info/i.php?f=1883#1821
 
 0552 삼국사기(1145)
長安城을 쌓았다. -- 고려는 551년에 백제와 신라의 침공을 받아 한강 유역을 상실했다. 이것이 계기가 된 듯하다.
http://qindex.info/i.php?f=1883#1822
 
 0586 삼국사기(1145)
도읍을 長安城으로 옮겼다.
http://qindex.info/i.php?f=1883#41285
 
 0612 수서(636)
滄海道軍舟艫千里 高帆電逝 巨艦雲飛 橫斷浿江 逕造平壤 창해 방면 군대는 선박이 천 리에 달했는데, 높직한 돛은 번개같이 나아가고, 커다란 군함은 구름처럼 날아 패강을 횡단하여 좁은 길을 지나 평양에 이르렀다.
http://qindex.info/i.php?f=1883#1820
 
 0612 수서(636)
(1) 이때의 도읍은 장안성인데 수나라가 평양을 공격한 것으로 보아 장안성은 평양에 있었다. (2) 고려의 도읍이 환도라는 삼국지(289)의 기록을 옮겨적던 사서들이 수나라와 고려의 전쟁을 계기로 고려의 도읍이 평양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3) 사기(BC 91)에서 대동강은 열수였고 패수는 청천강이었는데, 이 기록에 나오는 패강은 대동강을 말한다. 이후 패수로 기록되었다.
http://qindex.info/i.php?f=1883#5969
 
 0636 수서
고려는 동서가 2천리, 남북이 1천여리이다. 국도는 平壤城으로 長安城이라고도 하는데, 동서가 6리이며 산을 따라 굴곡이 지고 남쪽은 浿水에 닿아 있다. 또 國內城과 漢城이 있는데, 모두 도회지로서 그 나라에서는 삼경이라 일컫는다.
http://qindex.info/i.php?f=1883#41279
 
 0636 양서
其王都於丸都之下 그 나라의 왕도는 환도 아래에 있다. -- 636년은 고려가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다. 이 기록은 옛 기록을 옮겨 적은 것이다.
http://qindex.info/i.php?f=1883#1850
 
 0636 주서
국도는 평양성으로, 그 성은 동서가 6리이며 남쪽으로는 패수에 닿아 있다. 성안에는 오직 군량과 무기를 비축하여 두었다가 적군이 침입하는 날에는 곧 성안으로 들어가서 굳게 지킨다. 왕은 따로 그 곁에 궁실을 마련하였으나 평상시에는 거기에 살지 않는다. 그 밖에 국내성과 한성(漢城)이 있으니, 별도의 도읍지이다.
http://qindex.info/i.php?f=1883#1851
 
 0659 남사
其王都於丸都山 그 나라의 왕도는 환도산에 있다. -- 659년은 고려가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다. 이 기록은 옛 기록을 옮겨 적은 것이다. 
http://qindex.info/i.php?f=1883#1859
 
 0659 북사
왕은 궁실을 잘 지어 치장한다. 도읍은 평양성으로 장안성이라고도 하는데, 동서의 거리가 6리로 산을 따라 굴곡을 이루며, 남쪽으로는 패수에 닿아 있다. 성 안에는 군량과 무기만을 저장하여 구적이 쳐들어 오는 날에 대비하였다가, 곧 성 안으로 들어가서 굳게 지킨다. 왕은 그 곁에 궁실을 별도로 지어놓지만 평상시에는 거처하지 않았다. 그 외에 또 국내성 및 한성이 있는데, 역시 별도이다. 그 나라에서는 삼경이라 부른다.
http://qindex.info/i.php?f=1883#1852
 
 0945 구당서
고려는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 그 나라는 平壤城에 도읍하였으니, 곧 漢 낙랑군의 옛 땅이다. 장안에서 동쪽으로 5천 1백리 밖에 있다.
http://qindex.info/i.php?f=1883#41287
 
 1060 신당서
고려의 임금이 살고 있는 곳은 平壤城으로 長安城이라고도 부르는데, 漢代의 낙랑군으로 長安에서 5천리 밖에 있다. 산의 굴곡을 따라 외성을 쌓았으며, 남쪽은 浿水와 연해 있다.
http://qindex.info/i.php?f=1883#41288
 
 1145 삼국사기
國內로 도읍하여 425년이 지나 427년에 平壤으로 도읍을 옮겼다. 156년이 지나 586년에 長安城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 平壤城은 지금의 西京과 같으며, 그리고 浿水는 곧 大同江이 이것이다.
http://qindex.info/i.php?f=1883#41286
 
 1145 삼국사기
옛 사람들의 기록에 시조 주몽왕으로부터 보장왕에 이르기까지의 역년은 틀림이 없고 상세한 것이 이와 같다. 그러나 혹은 이르기를 “고국원왕 13년에 평양 東黃城으로 이거하였는데, 성은 지금 西京의 동쪽 木覓山 가운데 있다”라 하니, 옳고 틀림을 알 수 없다.
http://qindex.info/i.php?f=1883#1823
 
 1145 삼국사기
당서(唐書)에서 이르기를 “平壤城은 또 長安이라고 불렀다.”라 하였고, 그리고 古記에서 이르기를 “平壤으로부터 長安으로 옮겼다”라 하였으니, 곧 두 성이 동일한 것인지 아닌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가까웠는지에 대해서는 곧 알 수가 없다.
http://qindex.info/i.php?f=1883#5970
 
 1145 삼국사기
漢陽郡은 본래 고구려 北漢山郡(한편 平壤이라 이른다)이었는데 진흥왕이 주로 삼고 군주를 두었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은 楊州 옛 터이다. -- 平壤이란 지명이 대동강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http://qindex.info/i.php?f=1883#4308
 
 1145 삼국사기의 세 가지 의문
고려의 도읍에 대한 삼국사기의 의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국내로 도읍하여 425년이 지나 427년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중간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기록이 두 번 나온다. 247년의 평양성은 환도 인근에 있었고 343년의 평양은 대동강변에 있었다. (2) "고국원왕 13년에 평양 동황성으로 이거하였다고 하는데 옳고 틀림을 알 수 없다." 옳은 기록인데, 고국원왕이 죽을 때 국내로 다시 도읍을 옮겼다는 기록이 빠져서 앞뒤가 맞지 ...
http://qindex.info/i.php?f=1883#1818
 
 1451 고려사
서경유수관 평양부는 본래 3조선의 옛 도읍이다. 당요(唐堯) 무진년에 신인이 단목 아래로 내려오니 국인이 그를 임금으로 옹립하고, 평양을 도읍으로 삼아 단군이라 부르니 이것이 전조선이 되었다. 周나라 무왕이 商나라를 정벌하고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니, 이것이 후조선이 되었다.
http://qindex.info/i.php?f=1883#41523
 
 1451 고려사
41대 후손 준에 이르러 燕나라 사람 위만이 무리 1,000여명을 모아 망명해 와서 준의 땅을 빼앗아 王險城(險은 儉으로도 쓰고, 곧 평양이다.)을 도읍으로 하니, 이것이 위만조선이 되었다. 그의 손자 우거가 황제의 명령을 받들지 않자, 漢나라 무제가 원봉 2년에 장수를 보내어 토벌하고 사군을 정하면서 왕험을 낙랑군으로 하였다. 고구려 장수왕 15년에 국내성에서 옮겨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다.
http://qindex.info/i.php?f=1883#41990
 
 漢城 건너편에 있던 平壤
http://qindex.info/i.php?f=1883#5972
 
 紇升骨城
흘승골성
http://qindex.info/i.php?f=1883#2444
 
 국내 위성지도
http://qindex.info/i.php?f=1883#6109

대방 지역에 있던 漢城
 고려와 백제의 천도    BC 0045 정백동 낙랑호구부 25현    0636 주서    0762-05 삼국사기(1145)    1145 삼국사기    1451 고려사    한서보주(漢書補注)  
 
 대성산성
http://qindex.info/i.php?f=1883#4313
 
 청암리성
http://qindex.info/i.php?f=1883#4314
 
 평양성
장안성으로 추정된다.
http://qindex.info/i.php?f=1883#1861
 
 ¦고려의 천도 요약
BC 037 졸본천(卒本川) - 003 국내(國內) - 209 환도(丸都) - 247 평양성(平壤城) - 342 환도성(丸都城) - 343 평양 동쪽 황성(黃城) - 371 국내(國內) - 427 평양(平壤) - 586 장안성(長安城)
http://qindex.info/i.php?f=1883#59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