布彌支·半古 ❱ 下韓(南韓) ❱ 武珍州 ❱ 武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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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0- 甕棺墓
일본에서 옹관묘는 승문 시대부터 보이는데 승문 말기에는 동북, 근기, 구주 등 일본 각지에서 옹관묘의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크기가 작아 유아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인이 묻히는 대형 옹관은 미생 시대에 들어와 복강 지역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미생 시대 후기에는 점차 쇠퇴하더니 말기에는 거의 사라졌다.
2926#7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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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布彌支·半古
함께 탁순국에 모여 신라를 격파하고, 비자발·남가라·녹국·안라·다라·탁순·가라의 7국을 평정하였다. 또 군대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 고해진에 이르러 남쪽의 오랑캐 침미다례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 이에 백제왕 초고와 왕자 귀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만났다. 이 때 비리(比利)·벽중(辟中)·포미지(布彌支)·반고(半古)의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2926#7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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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임나4읍과 축자국
일본서기에는 신무천황이 동정에 나서 가장 먼저 축자국을 들렸는데, 이때 축자국으로부터 전혀 저항을 받지 않고 오히려 향응만 받은 뒤 안예국으로 갔다고 되어 있다.
축자국은 복강 지역에 있었다. 이 지역은 반도로부터 벼농사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이고 평야가 넓어 고대 국가로 성장하기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영산 지역처럼 외부 세력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복종했다.
2926#1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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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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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 이덕일의 영산 왜
가운데 그림은 영산강 유역에 왜가 있었다는 이덕일의 가설이다. 이는 광개토왕릉비의 기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영산 복강 동조 현상과도 연결될 수 있다. 왜가 한반도에 진출할 때, 선사 시대부터 구주와 친연성이 있던 영산강 유역을 주둔지로 선택했다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곳이 선사 시대부터 광개토왕의 시기까지 왜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2926#1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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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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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다사진 분쟁
백제는 529년에 가라로부터 다사진(多沙津)을 빼앗는다. 이 다사진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다사군(韓多沙郡)에 대응시킬 수 있다. 지금의 하동인데 섬진강 하구다. 백제가 왜로부터 이곳을 인정받을 때 조공 나루터 핑계를 대었다. 만약 백제가 영산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그런 핑계가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영산 지역은 529년 이후에 백제에 통합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2926#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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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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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2◾下韓(南韓)
웅진으로 쫓겨온 백제는 512년에 왜로부터 오늘날의 부여, 대전, 논산 그리고 청주에 해당되는 4현을 얻는다. 훗날의 웅천주다. 이어서 516년에는 가라로부터 오늘날의 남원에 해당되는 기문을 뺐는데, 22담로는 이때 만들어진 듯하다. 훗날의 웅천주와 완산주를 합친 것이다. 백제는 또 522년에 가라로부터 오늘날의 하동에 해당되는 나루도 빼앗는다. 이때 조공 나루를 핑계댄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도 훗날 무진주가 되는 영산강 유역은 차지하지 못했다.
2926#2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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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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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11 日本書紀(720)
南韓에 郡令과 城主를 두는 것이 어찌 천황의 뜻을 거스르고 조공하는 길을 막는 것인가? 오직 바라는 것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강적을 물리치는 것이다. 저 흉악한 무리는 누구와도 손잡으려 한다. 북적은 강하고 우리 나라는 미약하다. 南韓에 郡令과 城主를 두어 수리하고 방어하지 않으면 이 강적을 막을 수 없다. 또 신라도 누를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을 두어 신라를 공격하고 임나를 보존하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멸망하여 아마 조공을 하지 못할 것이다.
2926#6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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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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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11 ◾下韓·南韓
南韓은 그 명칭으로 보아 고려에 가까울 거 같지 않다. 그런데도 성왕이 고려를 핑계대는 것으로 보아, 신라를 핑계대는 것도 신라에 가까워서가 아닐 것이다.
南韓은 역사 기록의 공지로 남아 있는 영산강 유역에 어울린다.
백제가 529년에 조공 나루를 핑계로 왜에 다사진을 요구한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도 이곳은 백제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리고 훗날 궁예고려가 견훤백제의 이곳을 차지하여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보아, 성왕의 고려 핑계는 일리도 있었다.
2926#6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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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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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주서
백제는 그 선대가 대체로 마한의 속국이며 부여의 별종인 듯하다. 구태란 사람이 처음으로 대방에 나라를 세우니, 그 땅의 경계는 동쪽으로 신라에 닿고 북쪽으로 고구려와 접하며 서쪽과 남쪽으로는 모두 큰 바다로 경계지어져 있다. 동서의 길이는 450리이고 남북은 900여리다. 도읍은 固麻城이다.
지방에는 다시 5방이 있으니, 중방은 古沙城·동방은 得安城·남방은 久知下城·서방은 刀先城·북방은 熊津城이다.
2926#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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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
중국 양나라의 기록에는 백제가 지방을 22담로로 나누어 통치했다고 되어있는데 백제가 망할 때는 지방에 37군이 있었다. 반도통일 이후 신라의 지방행정구역을 보면 옛 백제 지역을 웅주, 전주 그리고 무주로 나누고 각각 13, 10 그리고 14개의 군을 두었다고 되어 있어 백제가 망할 때의 37군과 같다. 여기서 백제 22담로는 웅주와 전주의 23군에 대응하고 무주 14개 군은 22담로가 있을 당시 백제의 영토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나온다.
2926#3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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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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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복강 동조현상
한국의 영산 지역과 일본의 복강 지역이 동일한 고고학적 양상을 띠는 현상을 말한다.
고인돌, 독널무덤, 전방후원분 등에서 이 현상은 뚜렷하다.
고인돌은 한국에서 남방계와 북방계로 나뉘는데, 남방계 고인돌은 한강 이남 전체에 분포하지만 영산 지역에 특히 높은 밀집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복강 지역에서만 고인돌이 출토되는데 한국의 남방계와 구조가 같다.
독널은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널리 사용되어 왔다. 크기로 볼 때 주로 유아나 성인의 유골을 안 ...
2926#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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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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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지역 전방후원분의 의미
(1) 한국에 없던 왜식 무덤이 출현하였다.
(2) 한 무덤에 여럿을 묻는 전통이 있는 지역에 한 무덤에 한 사람만 묻는 무덤이 출현하였다.
(3) 무기류가 많이 껴묻어지지 않는 지역에 무기류가 많이 껴묻어지는 무덤이 출현하였다.
(4) 독널의 전통이 있는 지역에 돌방이 출현하였고 주변의 독널도 돌방으로 바뀌었다.
(2)와 (3)은 여기에 묻힌 사람이 강력한 지배자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4)는 그 방증이다. (1)은 그 지배자가 왜에서 왔다는 사실을 ...
2926#7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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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지역은 왜 역사 기록에 없나?
영산 지역의 고대는 역사 기록에 거의 언급이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명쾌한 설명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혹시 영산 지역의 고고학적 양상을 분석해 보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영산 지역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하나의 무덤에 여럿을 묻었고 때로는 하나의 널방에 여럿을 묻기도 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일반화되지 않은 것으로 강력한 통치자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라나 신라에서도 하나의 무덤에 여러 사람을 묻기도 했는데, 이는 순장이다 ...
2926#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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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지역의 역사적 상상
원래 영산강 유역에는 일본 구주와 동일한 혈통의 주민들이 발달된 벼농사 문화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계 사회였고 하나의 봉분에 여러 독널을 쓰는 장례 풍습이 있었다.
그러다 450년경부터 왜인이 이 지역의 곳곳에 배치되어 이곳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529년 이후에는 영산강 유역의 통치가 백제로 넘어갔다.
백제는 이 지역의 토착 세력에게 위세품을 내려주었고 이 지역 수장의 무덤도 백제의 굴식 돌방 무덤으로 바뀌었다.
660년 이후에는 신라가 이 ...
2926#1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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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와 일본 토종개
한국의 풍속화에는 바둑이와 검둥이 그리고 복슬이가 많이 나온다. 머리는 길쭉하고 귀는 아래로 축 늘어졌으며 목부터 꼬리까지 긴 털이 나 있다.
반면 일본의 토종개는 대부분 털이 짧고 옅은 단색이며 귀가 쫑긋하고 꼬리가 치켜 선 특징이 있다.
이는 한국의 삽사리나 동경이 그리고 불개와도 많이 다른데, 유일하게 한국에서는 진돗개가 그런 일본 토종개를 많이 닮았다.
2926#27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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