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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로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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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0 일본서기
이때 고황산이 신성한 이불로 황손 천진언을 덮어서 내려 보냈다. 황손은 천반좌를 떠나 또 하늘의 팔중 구름을 헤치고 그 위세로 길을 헤치고 나가 일향의 습(襲)의 고천수봉에 강림하였다. 그리고 황손이 나아가는 모습은 신비한 이상(二上)산의 천부교(天浮橋)로부터 내려와 떠있는 섬의 둔치가 있는 평지에 서서, 불모의 땅인 공국(空國)의 구릉으로부터 좋은 나라를 찾아나서 오전 장옥의 입협 해변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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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0 고천수봉(高千穗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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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0 일본서기
그 땅에 한 사람이 있었다. 스스로를 사승국이라 하였다. 황손이 “나라가 있는가 없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여기에 나라가 있습니다. 바라건대 마음대로 하십시오.”라고 대답하였다. 황손이 나아가 머물렀다. -- 사승국승장협(事勝國勝長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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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 수로
김유신은 왕경인이다. 12세조 수로는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후한 건무 18년 임인 구봉에 올라 가락의 9촌을 보고는 마침내 그곳에 가서 나라를 열고 이름을 가야라고 하였다가 뒤에 금관국으로 고쳤다. 그 자손들이 서로 이어져 9세손 구해에 이르렀는데, 혹 구차휴라고도 하며 유신에게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신라인들은 스스로 소호금천씨의 후예이므로 성을 김(金)으로 한다고 하였고 유신비에 또한 “헌원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다.”라고 하였으니, 곧 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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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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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1 삼국유사 - 수로
가락국기는 문종(1019-1083) 대강 연간(1075-1085)에 금관(김해) 지주사의 문인이 지은 것으로 이제 그것을 줄여서 싣는다. 개벽 이후로 이곳에는 아직 나라의 이름이 없었고 또한 군신의 칭호도 없었다. 이때에 아도간·여도간·피도간·오도간·유수간·유천간·신천간·오천간·신귀간 등 아홉 간(干)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는 추장으로 백성들을 통솔했으니 모두 100호, 7만 5,000명이었다. 대부분은 산과 들에 스스로 모여서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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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1 구지봉 위성지도
고대 문화는 대체로 반도에서 열도로 흘러갔다. 따라서 구지봉 설화가 건너가 고천수봉 설화가 되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한편, 삼국유사(1281)가 일본서기(720)보다 훨씬 후대에 만들어졌고, 남가라가 한때(391~527) 왜의 영향권에 속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거꾸로 고천수봉 설화가 건너와 구지봉 설화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왜의 석탈해는 처음에 남가라에 왔으나 수로에게 쫓겨나자 신라로 가 왕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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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1 삼국유사 -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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