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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2? 삼국사기(1145)
髙靈郡夲大加耶國自始祖伊珍阿豉王(一云内珍朱智)至道設智王凢十六世五百二十年
眞興大王侵滅之以其地爲大加耶郡
景徳王攺名今因之
고령군은 본래 대가야국이 시조 이진아시왕(내진주지라고도 한다)에서 도설지왕까지 모두 16대 520년 이어졌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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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2? 석이정전(釋利貞傳)
伽倻山神正見母主 乃爲天神夷毗訶之所感 生大伽倻王惱窒朱日金官國王惱窒靑裔二人
가야산신 정견모주는 곧 천신인 이비가지에게 감응되어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과 금관국의 왕 뇌질청예 두 사람을 낳았다.
--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뇌질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 된다.
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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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삼국지(晉·陳壽)
已柢國·不斯國·弁辰彌離彌凍國·弁辰接塗國·勤耆國·難彌離彌凍國·弁辰古資彌凍國·弁辰古淳是國·冉奚國·弁辰半路(반로)國·弁[辰]樂奴國·軍彌國(弁軍彌國)·弁辰彌烏邪馬國·如湛國·弁辰甘路國·戶路國·州鮮國(馬延國)·弁辰狗邪(구야)國·弁辰走漕馬國·弁辰安邪國(馬延國)·弁辰瀆盧國·斯盧國·優由國이 있어서, 弁韓과 辰韓의 합계가 24國이나 된다.
4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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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삼국지(三國志 晉·陳壽)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 依山島爲國邑 舊百餘國 漢時有朝見者 今使譯所通三十國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 七千餘里 始度一海 千餘里至對馬國
(대방)군을 떠나 왜에 가려면 해안을 따라 한국(마한)을 지나 남쪽으로 간 뒤 다시 동쪽으로 7천여 리를 가면 북쪽 해안에 구야 한국이 있다. 여기서 바다를 건너 천여 리를 가면 대마국에 이른다.
※여기에 나오는 7천여리는 구야 한국에서 대마도까지 거리의 7배로 보면 될 듯하다.
7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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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283) 일본서기(720)
궁월군이 백제로부터 와서 귀화하였다. 그리고 아뢰기를, “신은 우리나라 120현의 인부를 이끌고 귀화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라인이 방해하여 모두 가라(加羅)국에 머물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갈성 습진언을 파견하여 궁월의 인부를 가라에서 데리고 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 습진언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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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08(<-285) 일본서기(720)
평군목토숙니·적호전숙니를 가라(加羅)에 보냈다. 그리고 날랜 군사를 주면서 조를 내려, “습진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틀림없이 신라가 막고 있기 때문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빨리 가서 신라를 공격하여 그 길을 열라”고 하였다. 이에 목토숙니 등이 날랜 군사를 거느리고 진격하여 신라의 국경에 다다르자, 신라왕은 두려워하며 그 죄를 자복하였다. 그래서 궁월의 인부를 거느리고 습진언과 함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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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8 송서(488 南朝梁 沈約 等)
흥이 죽자 아우 무가 왕이 되었다. 스스로 사지절 도독 왜/백제/신라/임나/가라(加羅)/진한/모한 칠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 칭했다. 478년에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렸다. ... 조서를 내려 무에게 사지절 도독 왜/신라/임나/가라(加羅)/진한/모한 육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왕의 벼슬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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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9 남제서(537 南朝梁 蕭子顯 等)
가라(加羅)국은 삼한의 한 종족이다. 건원 원년 국왕 하지가 사신을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 이에 조서를 내렸다. “널리 헤아려 비로소 올라오니, 멀리 있는 이(夷)가 두루 덕에 감화됨이라. 가라왕 하지는 먼 동쪽 바다 밖에서 폐백을 받들고 관문을 두드렸으니, 보국장군 본국왕의 벼슬을 제수함이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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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2-05 일본서기(720)
백제, 가라(加羅) 그리고 안라가 중부 덕솔 목례금돈, 하내부 아사비다 등을 보내어 “고려가 신라와 화친하고 세력을 합쳐 신의 나라와 임나를 멸하려고 도모합니다. 그러므로 삼가 구원병을 청해 먼저 불시에 공격하고자 합니다. 군사의 많고 적음은 천황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39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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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4-07 삼국사기(1145)
백제 성왕이 가량(加良)과 함께 와서 관산성을 공격하였다. 군주인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 등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신주의 군주인 김무력이 주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하였는데, 비장인 삼년산군의 고간 도도가 급히 쳐서 백제왕을 죽였다.
3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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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 ᑅ 삼국사기(1145)
干所製十二曲 一曰下加羅都 二曰上加羅都 三曰寳伎 四曰逹已 五曰思勿 六曰勿慧 七曰下竒物 八曰師子伎 九曰居烈 十曰沙八兮 十一曰爾赦 十二曰上竒物
우륵이 지은 12곡은 첫째 하가라도, 둘째 상가라도, 셋째 보기, 넷째 달이, 다섯째 사물, 여섯째 물혜, 일곱째 하기물, 여덟째 사자기, 아홉째 거열, 열째 사팔혜, 열한째 이사, 열두째 상기물이다.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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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 ᑅ 삼국사기(1145)
양직공도에 상기문(上己文)이란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하기문도 있었을 것이고 이 둘은 각각 삼국사기의 상기물과 하기물에 대응된다. 그러나 일본서기, 괄지지, 속일본기 등에 기문이라 되어 있으므로 기문으로 명칭을 통일한다.
또 삼국사기의 상가라와 하가라는 각각 일본서기의 가라와 남가라에 대응되는데 상가라와 하가라는 잘 쓰이지 않았고 삼국사기에도 남가야(南加耶)란 명칭이 나오므로 가라와 남가라로 명칭을 통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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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01 일본서기(720)
신라가 임나관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통틀어 말하면 임나이고 개별적으로 말하면 가라(加羅)국, 안라국, 사이기국, 다라국, 졸마국, 고차국, 자타국, 산반하국, 걸찬국, 염례국 등 모두 열 나라이다.
39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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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09 삼국사기(1145)
가야(加耶)가 반란을 일으키자 왕이 이사부에게 명하여 토벌케 하였는데, 사다함이 부장이 되었다. 사다함은 5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앞서 달려가 전단문에 들어가서 흰 깃발을 세우자 성안의 사람들이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사부가 군사를 이끌고 다다르자 일시에 모두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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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 삼국사기(1145)
진흥왕이 이찬 이사부에게 명령하여 가라국(加羅國, 加羅는 加耶로도 썼다)을 습격하게 하였다. 이때 사다함은 나이가 15~16세였는데 종군하기를 청하였다. 왕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았으나 그가 힘써 청하고 뜻이 확고하여 마침내 명령하여 귀당 비장으로 삼았다. 그의 낭도 중에서 따르는 자 또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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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 삼국사기(1145)
大加耶와 南加耶는 가라와 남가라를 구별하는 삼국사기 나름의 표기인가?
가라가 멸망한 것은 562년이고 왕조가 520년간 지속되었다고 하니 건국은 42년에 한 것이다. 마침 남가라의 건국도 42년이라고 하니 적어도 삼국사기 내에서는 가라와 남가라가 동시에 건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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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4 수서(636)
왕위가 김진평에 이른 개황 14년에 견사하여 방물을 바쳤다. 고조는 진평을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삼았다. 그의 선대는 백제에 부용하였는데 뒤에 백제의 고려 정벌로 말미암아 고려인이 군역을 견디지 못하고 무리를 지어와 신라에 귀화하니 마침내 강성하여져 백제를 습격하고 가라(迦羅)국을 부용국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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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산동
내부구조는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여러 형태가 나타나는데, 돌널무덤의 경우 청동기시대 돌널무덤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 봉분 안에 여러 무덤이 나타나는 것은 딸려묻기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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