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 이야기
 
0396 광개토왕·장수왕·청태종
남한산성 아래 한강 이남은 한국의 왕이 외세의 침공에 여러 번 무릎을 꿇은 곳이다. 아신왕은 광개토왕 앞에 무릎을 꿇고 여러 성과 백성을 바쳤으며, 개로왕은 장수왕의 장수에게 잡혀 아차산 아래로 끌려가 처형당했고, 인조는 청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1961#8496 COMMENT
 
0410 천리인(千里人)
기록에는 고려가 광개토왕때 모용선비의 남연에 사신을 보내 천리인 열 명과 천리마 한 필을 바쳤다고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천리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1961#6978 COMMENT
 
0943 훈요10조
차현 이남과 공주의 금강 바깥쪽은 산의 모양과 땅의 기세가 모두 거스르게 뻗어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도 그러하다. 그 아래 주군의 사람들이 조정에 참여하고 왕후나 외척과 혼인하여 나라의 정사를 잡게 되면, 국가의 변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통합당한 원한을 품고 왕실을 침범하며 난을 일으킬 수도 있다.
1961#8658 COMMENT
 
1393 화령(和寧)
화령은 왕고의 공민왕이 원나라의 쌍성총관부를 되찾아 화령부로 개칭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지금의 영흥만 일대로 이성계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화령은 우리나라의 국호가 될 뻔했다.
1961#2327 COMMENT
 
1406 고려공사삼일
속담에 말하기를 ‘고려공사(高麗公事) 불과삼일(不過三日)이라’ 하니 이런 것도 또한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이다.
1961#2331 COMMENT
 
1419 대마도 정벌
이조 세종때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1만 7천여 명의 병력과 두 달여 치의 식량을 200여 척의 배에 실어 보냈다. 대마도에 도착하자 주민들은 모두 산으로 도망갔고 정벌군은 배에 머물며 일부를 내려보내 치게 했으나 패하여 돌아왔다. 대마도주가 항복하는 편지에 "7월 사이에는 항상 풍파의 변이 있으니, 오래 머무름이 옳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정벌군은 항복을 받아들이고 보름만에 돌아왔다.
1961#2410 COMMENT
 
1424 세종대왕의 처녀진헌
서울 세종로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함께 세종대왕의 동상이 서 있다. 세종대왕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모셔지고 있는 왕이다. 그런 세종대왕의 행적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매우 난감한 부분들이 있다. 특히 세종 8년 12월의 기록을 보면 거의 사흘에 한번 꼴로 처녀를 간택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서 말하는 처녀는 명나라 황제에게 바쳐질 진헌녀를 말한다. 마치 왕의 주된 업무가 진헌할 처녀를 뽑는 일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1961#4909 COMMENT
 
1429 고려장
이조 초기에 늙은 노인을 외따로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례가 지방에 있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조는 이 풍조를 개탄하면서 왕씨고려의 구습인 것처럼 말했다. 그와 별개로 이조시대 사람들은 옛 무덤을 고려장이라 불렀다. 이조시대에 있어서 '고려'는 옛날이란 뜻이다.
1961#2620 COMMENT
 
1530 황창랑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라의 7세 소년 황창랑이 백제에 들어가 거리에서 칼춤을 추며 백제왕의 관심을 끌어 접근한 뒤, 백제왕을 죽이고 자신도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고 삼국사기에는 낙랑태수가 자객을 보내 백제왕을 죽이는 이야기와 신라의 소년 관창이 홀로 적진에 돌진하여 장렬히 전사한다는 이야기만 나온다. 황창랑 이야기는 삼국사기의 이 두 이야기가 섞여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1961#2413 COMMENT
 
1597 원숭이 부대
임진왜란때 명나라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원숭이 부대를 투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961#1239 COMMENT
 
1637 병자호란과 천연두
병자호란때 청태종은 이조에서 유행하던 천연두에 감염될까 두려워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 돌아갔다.
1961#8872 COMMENT
 
1896 김구 치하포 사건
치하포 사건은 1896년 치하포에서 일본인 토전양량(土田讓亮 つちだじょうりょう)이 살해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의 주요한 논쟁이 있다. (1) 김구에 의해 살해된 일본인이 일본군 육군중위인지 민간 상인인지? (2) 김구가 그를 일본군 첩자로 인식하고 살해했는지 아니면 일본 민간인이라는 것을 알면서 살해했는지?
1961#2419 COMMENT
 
1909 안중근과 이씨왕조
황태자가 직접 전보로 아뢰기를, “이토오 태사가 오늘 오전 9시에 하얼빈 역에 도착하여 우리나라 사람의 흉악한 손에 의하여 피살되었으니 듣기에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하였다. 조령을 내리기를, “생각건대, 그와 같은 고약한 도당이 세계 형세에 어두워서 이따금 일본의 두터운 우의를 무시하려고 하다가 마침내는 전에 없던 변괴를 빚어냈으니 이는 바로 짐의 국가와 사직을 해치는 자이다." 하였다.
1961#2730 COMMENT
 
1925 재가승 여진족설
1788-1856 오주연문장전산고   1871 임하필기   1925 동아일보   1934 동아일보   1935 재가승만고 1   1935 재가승만고 2   1935 재가승만고 3   1935 재가승만고 4   1936 동아일보 1   1936 동아일보 2   1937 동아일보  
 
1926 경상도 보리문디
경상도 지방에서는 지금도 친한 사이의 사람들 사이에 '문디'라는 호칭이 거리낌없이 사용되고 있다. 또 그런 말을 들어도 별로 불쾌해하지 않는다. 이 문디(나병 환자)에 대한 기록을 사서와 일조시대의 신문에서 찾아 보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제주도의 나병에 대한 기록이 이른 시기에 나온다. 1451 조선왕조실록 기건은 이사(吏事 관리들의 사무)에 조금 익숙하고, 여러 사서를 즐겨 보았다. 일찍이 제주 목사로 있을 적에는 전복을 먹지 않았으며, 또 제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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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 이봉창의 불편한 진실
이봉창 의사는 민족해방을 위해 1932년 일본수괴(日本首魁 ひろひと)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 사형당한 사람이다. 그의 습격은 일본으로부터 불쾌한 통치를 받던 우리 민족에게 매우 통쾌한 일이나 이봉창이란 인물 자체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다.
1961#2632 COMMENT
 
1991 미군철수 자주화
냉전의 해체 이후 미군철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조건이 되었다.
1961#1042 COMMENT
 
1998 김대중협정
1998년에 체결된 신한일어업협정(일명 김대중협정)은 독도를 한일공동수역에 넣어 놓아 영유권을 훼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협정의 전체 틀을 유지하면서 독도 주변만 수정하여 독도를 한국의 배타적 수역 안으로 편입하는 방안이 절실하다.
1961#6379 COMMENT
 
2009 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에는 을사조약을 체결한 고종,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한 순조 그리고 일본군 항공사령관을 지낸 영친왕이 빠져있고 만주군 중위였던 박정희가 들어가 있다.
1961#1775 COMMENT
 
국사책을 찢어라!
관제역사가 숨기는 사실   1997 7차교육과정  
 
나라 사이의 이야기
4세기 한반도 - 반도적 속성의 전형적인 사례   5세기 중국-요동-한국-왜(倭)의 외교와 전쟁   고려의 냉정한 실리외교   남해사(南海史)   백제 개로왕의 실패는 토목공사 때문인가?   왜(倭)의 수괴(首魁)는 신라때문에 홧병이 났나?   충렬왕은 왜 몽골 황제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였나?   햇볕정책때문에 망한 마한(馬韓)  
 
비꼬는 이야기
BC 19세기에 잠수함과 비행기를 개발한 단군조선?   smoking gun과 미스터리의 유래   국사책을 찢어라!   근초고왕은 신공황후의 딸랑이?   김씨조선왕조사(金氏朝鮮王朝史)   김씨조선의 용비어천헌법   단군은 아이누인이 아니었을까?   동이족이나 대쥬신보다 오투비족(O2b族)이 어떨까?   발췌검증이란?  
 
솔까한국사
삼한시대   신라시대   일조시대   남북시대   주변의 역사  
 
숨겨진 이야기
광개토왕은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   국사편찬위원회도 임나경영설 인정하나?   김정일은 흉노족이다?   놀랍고 재미있는 역사기록 모음   뇌물을 좋아했던 고종과 민비   매천야록에 기록된 1894년의 일본군 모습   보수는 한국독립을 원했고 진보는 한일합방을 원했다?   임나경영설의 증거가 점점 드러나고 있다  
 
엽기적인 이야기
고려의 엽기적인 사건들   백백교(白白敎)의 무시무시한 실체  
 
우리 시대의 한국 고대사
우리시대의 한국고대사 1   우리시대의 한국고대사 2   우리시대의 한국고대사 2  
 
자료
1592-06-15 고대일록(孤臺日錄)   新羅詭談雜錄(신라궤담잡록)   고대왕국의 혼인관계   고려초기   따지기   보수(保守)와 진보(進步)   비참한 최후의 왕들   설화   속국(屬國)   신라와 왜(倭)   엽기적인 고려   유사역사학과 식민사관   충렬왕의 가무   치사한 왜(倭)  
 
잘못된 이야기
괴담(怪談)의 역사   기마인물형 토기에는 청동솥이 실려있다?   얼굴이 길면 장두형이고 얼굴이 짧으면 단두형이다?   얼굴이 길면 장두형이고 얼굴이 짧으면 단두형이다?   풍수지리설의 비밀   한민족은 북방계인가?  
 
진지한 이야기
경부운하, 청명상하도로 꿈꿔본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경순왕의 뒤를 따를까?   김정일 사관(史觀)   일본과 관련된 여러 가지 설문   일본어 한글표기론  
 
추천 논문, 강좌, 글, ...
동북아역사재단   이영훈  
 
황당고기
荒唐古記(황당고기)는 신라말 도인 墾獺艀(간달부)가 저술한 한민족 비밀역사책이다. 황당고기가 씌어질 당시는 신라에서 왕씨고려로 왕조가 교체되는 시기였는데 신라를 멸하고 새 왕조를 세운 왕씨고려는 자신들의 정통성에 해가 될까 10만년 한민족사를 말살하기로 하고 신라에 전해 내려오던 역사책들을 모두 불살라 없애버렸다.
1961#1256 COMMENT
 
흑룡강
동천왕은 돌아오지 않았다.
1961#1222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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