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8 漢郡縣┆-0057 六村┆-0037 高麗都┆0245 東夷┆0289 韓┆0369 七國┆0369 四邑┆0512 四縣┆0521 百濟 旁小國┆0529 四村┆0551 高句麗┆0562 任那 十國┆0562 加羅 十二曲┆0619 平州┆0660 百濟┆0664 熊津都督府┆0757 新羅┆1108 東北九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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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樂浪郡
┆漢書 25┆ 朝鮮 䛁邯 浿水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 (東暆 不而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 ┆後漢書 18┆ 朝鮮 (䛁邯) (淇水) 貪資 (占蟬) 遂城 (増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樂都) ➔ ┆晉書 6+7┆ 朝鮮 屯有 渾彌 遂城 鏤方 駟望 + 帶方 列口 南新 長岑 提奚 含資 海冥
8439#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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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7 高麗都
-037 紇升骨城 ➔ 003 國內 ➔ 209 丸都 ➔ 247 平壤城 ➔ 342 丸都城 ➔ 343 平壤東黄城 ➔ 371 國內 ➔ 427 平壤 ➔ 586 長安城
11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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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漢水·漢城·漢山
漢江의 남쪽 가에 있는 풍납토성은 漢나라 진번군의 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漢水, 漢城 그리고 漢山의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한 듯하다. 한수는 한강으로 명칭이 변했고 한산은 남한산으로 변했으며 북한산으로 불리던 산은 지금 아차산으로 명칭이 바뀌어 있다.
8439#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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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東夷
弱水↑⸢扶餘⸥↓高句麗 □ 鮮卑 ← 扶餘 → 挹婁 □ 扶餘↑⸢高句麗⸥↓朝鮮·濊 □ 高句麗 → 沃沮 □ 扶餘·挹婁↑⸢沃沮⸥↓濊 □ 高句麗 ← 沃沮 □ 夫餘↗挹婁 □ 未知↑⸢挹婁⸥↓沃沮 □ 高句麗·沃沮↑⸢濊⸥↓辰韓 □ 濊 → 大海 □ 朝鮮 → 濊
8439#8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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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馬韓
爰襄┆牟水┆桑外┆小石索┆大石索┆優休牟涿┆臣濆沽┆伯濟┆速盧不斯┆日華┆古誕者┆古離┆怒藍┆月支┆咨離牟盧┆素謂乾┆古爰┆莫盧┆卑離┆占離卑┆臣釁┆支侵┆狗盧
┆卑彌┆監奚卑離┆古蒲┆致利鞠┆冉路┆兒林┆駟盧┆內卑離┆感奚┆萬盧┆辟卑離┆臼斯烏旦┆一離┆不彌┆支半┆狗素┆捷盧┆牟盧卑離┆臣蘇塗┆占臘┆臨素半┆臣雲新┆如來卑離┆楚山塗卑離┆一難┆狗奚┆不雲┆不斯濆邪┆爰池┆乾馬┆楚離
2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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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弁辰
已柢┆不斯┆彌離彌凍┆接塗┆勤耆┆難彌離彌凍┆古資彌凍┆古淳是┆冉奚┆半路┆弁樂奴┆軍彌(弁軍彌)┆彌烏邪馬┆如湛┆甘路┆戶路┆州鮮┆馬延┆狗邪┆走漕馬┆安邪┆瀆盧┆斯盧┆優中
27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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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古奚津┆忱彌多禮
❶ 道武→陽武→道康┆古奚津→冬音→躭津┆道康+躭津→康津
❷ 忱彌多禮·枕彌多禮➔□牟羅·躭牟羅➔枕羅·躭羅·耽羅
양직공도(526~539)에는 枕羅가 등장하는데 일본서기(720)의 369년과 397년의 기록에 나오는 忱彌多禮 및 枕彌多禮와 연결될 수 있다.
수서(636)는 제주도를 □牟羅라 했는데, 북사(659)는 耽牟羅로 표기하였고, 삼국사기(1145)는 476년과 498년의 기록에 각각 躭羅와 耽羅로 표기하였다. 508년에 와서는 일본서기도 耽羅라 했다.
8439#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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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8 遼西┆右北平┆北平
▐ 漢 遼西┆且慮 海陽 新安平 柳城 令支 肥如 賓從 交黎 陽樂 狐蘇 徒河 文成 臨渝 絫 ➔ 後漢 遼西┆陽樂 海陽 令支 肥如 臨渝 ➔ 晉 遼西┆陽樂 肥如 海陽 ➔ 魏 遼西┆肥如 陽樂 海陽
▐ 漢 右北平┆平剛 無終 石成 廷陵 俊靡 薋 徐無 字 土垠 白狼 夕陽 昌城 驪成 廣成 聚陽 平明 ➔ 後漢 右北平┆土垠 徐無 俊靡 無終 ➔ 晉 北平┆徐無 土垠 俊靡 無終 ➔ 魏 北平┆朝鮮 新昌³
▐ 齊 北平┆新昌³ 肥如 ➔ 隋 北平┆新昌³ ➔ 隋 北平┆盧龍
8439#15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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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9 平州
619 平州 ┆ 臨渝 肥如 ┆ 臨渝 盧龍 ┆ 臨渝 盧龍 撫寧 ┆ 624 盧龍 撫寧 ┆ 641 盧龍 臨渝 ┆ 697 盧龍 石城 ┆ 740 盧龍 石城 馬城 ┆ 742 北平郡 ┆ 758 平州
8439#2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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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島의 古代 地名
漢書(82)에 한나라가 -108년에 설치한 낙랑군의 25현이 나오고, 三國志(289)에 그 낙랑군의 남쪽에 있던 삼한 78국이 나오며, 廣開土王陵碑(414)에 백제로부터 396년에 빼앗은 58성이 나오고, 日本書紀(720)에 왜가 369년에 점령한 임나의 7국과 4읍 등이 나오며, 三國史記(1145)에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의 군현이 모두 나온다.
車峴과 竹嶺 그리고 炭峴에 의해 세 지역으로 나뉘어진다.
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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牟羅
牟羅의 주변에는 성이 둘러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재까지 임나의 마을 주변에 토성 등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목책을 둘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8439#29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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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竹以北 - 襄·壤·原 (벌)
襄·壤·原은 벌을 훈차한 것으로 보이는데, 낙랑군 25현이나 삼한 78국 그리고 백제 58성에는 그것이 들어간 지명이 거의 없다. 고려에서 國襄, 故國川原, 東襄, 柴原, 中壤, 西壤, 好壤, 故國原 그리고 故國壤처럼 왕의 무덤이 있는 압록강 유역의 벌 이름으로 붙이기 시작해서 영토의 확장을 따라 차현과 죽령에 이르는 지역까지 확장하였다.
이 襄·壤·原은 차현과 죽령 이남의 지명에 붙은 卑離·夫里·伐·弗·火에 대응된다.
8439#2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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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竹以北 - 忽 (성)
고려가 지명을 짓는 방법은 □襄, □壤 그리고 □原에서 보는 것처럼 훈차한 한자 □에 襄, 壤 또는 原를 붙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忽은 기존의 지명에 忽을 붙이는 방식으로 □는 음차인 경우가 많다.
彌鄒忽은 백제의 彌鄒城을 고려가 차지해서 개칭한 것이고 奈兮忽은 백제에 奈兮란 지명이 먼저 있고난 후 고려가 차지해서 忽을 붙인 듯하다.
따라서 □忽에서 忽은 고려가 붙인 게 분명하지만 □는 고려어가 아닐 수 있다.
8439#27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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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竹以北 - 忽(성)
삼국사기(1145)에 나오는 □忽은 압록강 이북에서부터 차현과 죽령에 이르기까지 넓게 나타난다. □城으로 호환되는 경우가 많아 忽은 城을 뜻하는 말을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 차현과 죽령 이남의 지명에 벌을 뜻하는 卑離·夫里·伐·弗·火이 들어가는 것과 대조적이다. □忽은 漢書(82)의 낙랑군 25현이나 三國志(289)의 삼한 78국 그리고 廣開土王陵碑(414)의 백제 58성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고려가 이 지역을 차지한 뒤 붙인 듯하다.
8439#8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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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竹以北 - 買 (물)
□買는 대부분 차현과 죽령 이북에 있는데, □川으로 바뀐 곳이 가장 많고 □水와 □井으로 바뀐 것도 몇 개 된다. 川, 水 그리고 井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개념은 물이다. 따라서 買는 물을 뜻하는 말을 음차한 듯하다.
□買는 차현과 죽령 이남의 □兮에 대응된다.
8439#27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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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竹以北 0475~0551
고려가 대동강 유역을 차지한 것은 313년이고 한강 하류 지역을 차지한 것은 475년이다. 영동 지역은 그 이전부터 차지했었다. 그러나 551년에 백제와 신라에 의해 한강 유역을 빼앗겼으니 고려가 車竹以北을 통치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한성만 놓고 보면 76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지역의 □忽이란 지명은 고려가 기존의 지명에 忽만 붙인 것으로 □는 고려어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27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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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竹以南 - 盧·邪·羅·奈·那·耶·良·洛
마한에는 盧가 6개 있었고 변진에는 盧가 2개, 邪가 2개 있었다. 반도의 재편 이후 마한의 萬盧와 변진의 斯盧는 각각 邁羅와 斯羅로 바뀌었고, 변진의 狗邪와 安邪는 백제에서 加羅와 安羅로 바뀌고 신라에서 加耶·加良과 阿耶·阿尸良으로 바뀌었다. 羅·奈·那는 백제식이고 耶·良·洛는 신라식이다.
고려와 왜 그리고 중국은 백제를 통해 이들 나라를 알게 되었으므로 백제식 표기를 썼다.
8439#24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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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竹以南 - 卑離·夫里·伐·弗·火 (벌)
삼국지(289)에 나오는 마한에는 卑離가 붙은 나라가 8개인데 변진이나 왜 그리고 고려에는 없다. 삼국사기(1145)에는 夫里가 붙은 지명이 여럿 나오는데 거의 車峴以南이고 왜나 고려에는 없으며 신라에도 거의 없다. 따라서 비리와 부리는 시대의 차이에 따른 표기의 차이인 듯하다. 竹嶺以南에서는 지명에 伐·弗·火이 들어간 경우가 많은데, 벌은 들이라는 뜻으로 비리·부리와 발음이 비슷하다. 따라서 비리·부리와 벌·불은 벌을 뜻하는 같은 말에서 나온 듯하다.
8439#1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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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竹以南 - 彌支·彌知·蜜地·馬知·馬渚 (마루)
차현 이남에 布彌支┆只馬馬知·枳慕蜜地→支牟┆松彌知→茂松┆古馬彌知→馬邑이 있었고 죽령 이남에 知乃彌知→化昌┆武冬彌知→單密┆豆良彌知→西畿┆施彌知가 있었다.
차현과 죽령 이북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彌支가 붙은 지명은 대부분 높은 곳이다.
마루는 만데이 또는 말레이라고도 하는데, 평지 사람들이 산이나 고개의 아래 또는 언덕 위에 있는 고지대 마을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彌支·彌知·蜜地·馬知·馬渚는 모두 마루를 음차한 것일 수 있다.
8439#8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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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竹以南 - 伊 (골)
豆伊→杜城→伊城, 富尸伊→伊城→富利 등의 예를 통해 □伊에서 □와 伊는 각기 독립적인 명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는 지명마다 다르므로 고유명사일 것이고 伊는 여러 지명에 공통되므로 보통명사일 것이다.
□伊란 곳의 지형을 보면 깊은 산골이나 평지에 접한 산골이 많다. 따라서 보통명사 伊의 뜻으로 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豆伊→杜城→伊城, 富尸伊→伊城 그리고 古尸伊→岬城→長城처럼 □城으로 바뀐 사례가 많으므로 城의 뜻일 가능성도 있다.
8439#2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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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竹以南 - 兮 (내)
草八兮(沙八兮)┆熱兮(泥兮)┆阿尸兮(阿乙兮)에서 나타나는 이칭을 통해 □兮에서 □는 고유명사이고 兮는 보통 명사라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草八兮→八谿→草谿┆熱兮→日谿┆芼兮→杞溪┆所非兮→森溪┆阿尸兮→安溪┆芼兮→召溪에서 나타나는 명칭 변경을 통해 兮는 谿(溪)를 뜻하는 한국어를 음차한 것이고 谿(溪)는 그것의 훈차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21개의 □兮 중 6곳이 □谿(溪)로 바뀌었다.
8439#26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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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竹以南 - 尸 (ㄴ)
尸가 들어간 지명은 □¹尸+□²의 형태인데 □¹尸는 고유명사이고 □²는 良, 兮, 伊, 忽, 山, 城 등 보통명사다.
沙尸良→新良, 阿尸兮→安賢 그리고 阿尸良→安邪·安羅·阿那의 예에서는 尸가 ㄴ으로 바뀌었고 大尸山→大山와 阿尸良→阿耶에서는 尸가 떨어져나갔다.
道尸(길), 慕理尸(그릴) 등의 향찰에 보이는 현상이 지명에서는 확신되지 않고 있다.
8439#27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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