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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3 任那¹國 = 南加羅
任那國이 소나갈질지를 보내어 조공하였다. 任那는 축자국에서 2천여 리 북쪽에 있는데 (축자국과는) 바다로 막혀있고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
❶ 임나에 대한 일본서기의 최초 기록이다. 여기서의 임나는 축자 및 계림과의 상대적 위치로 보아 南加羅를 뜻한다. 이것이 임나의 첫 번째 의미다. 신라가 국호를 계림으로 바꾼 것은 65년의 일이니 이 설명은 그 이후에 씌어졌다.
2665#3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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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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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0 內官家屯倉
고려와 백제의 두 나라 국왕이 신라가 圖籍을 거두어 일본국에 항복하였다는 것을 듣고 몰래 그 군세를 살피도록 하였다.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군영 밖에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서약하여 “지금 이후로는 길이 서쪽 번국이 되어 조공을 그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故因以 定內官家屯倉 그리하여 내관가둔창으로 정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삼한이다. 황후가 신라로부터 돌아왔다.
2665#24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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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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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3~0502 倭5王
왜는 438년에 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요구했으나 송은 451년에 백제를 빼고 가라를 넣어 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에 대한 것만 인정한다. 왜는 다시 478년에 송이 인정한 것에 백제를 넣어 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요구했으나 송은 역시 백제를 뺀 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에 대한 것만 인정한다. 제는 이것을 그대로 이어 479년에 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에 대한 것을 인정한다.
2665#2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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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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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8~0478 倭國王
讚이 죽자 아우 珍이 왕이 되어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스스로 사지절 도독 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 6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 불렀다.
興이 죽자 아우인 武가 즉위하여 사지절 도독 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 7국제군사 안동대장군 倭國王을 자칭하였다.
▐ 478년까지도 중국에 조공하며 스스로를 倭國이라 불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사건에 나오는 日本, 天皇 그리고 中國은 모두 후대에 고쳐써진 것이다.
2665#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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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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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3 任那國司
天皇이 전협을 任那國司로 보낸 뒤 그의 아내 치원과 동침하였다. 이에 전협은 신라로 망명할 생각을 하였다. 신라는 이때 中國을 섬기지 않고 있었는데 天皇은 전협의 아들 제군에게 신라를 정벌하라 명했다. 제군은 무리를 이끌고 백제에 도착하여 신라에 들어가다 되돌아가 섬에 머물렀다. 任那國司 전협신은 백제에 사람을 보내 제군에게 "너는 백제를 차지하고 앉아 日本에 통하지 않도록 하라. 나는 任那를 차지하고서 역시 日本에 통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2665#24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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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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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4 任那王┆日本府
신라왕은 고려군이 모두 신라 땅에 들어왔음을 알았다. 이에 사람을 시켜 任那王에게
“고려왕이 우리나라를 정벌합니다. 지금의 시기는 깃대에 묶어놓은 술과 같고 나라의 위태로움은 계란을 쌓아놓은 것보다 더하여 나라 운명의 길고 짧음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日本府 行軍元帥에게 구원을 청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任那王이 선신 반구, 길비신 소리, 난파길사 적목자에게 권하여 신라를 구해주도록 했다.
2665#24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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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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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4 日本府
▐ 일본서기에서 日本府가 등장하는 가장 앞선 사건이다.
日本府는 이 사건에서 1회 언급되었고 541년 이후의 사건에서 34회 언급되었다. 왜가 반도에 진출하여 간섭한 것은 369년부터 562년까지 200여년에 달하나 日本府가 집중적으로 언급된 것은 마지막 20여년에 불과했다.
266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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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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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5 官家
고려의 왕이 군사를 크게 일으켜 백제를 쳐서 없앴다. 이 때 조금 남은 무리들이 있어 창하에 모여 있었는데 군량이 다하자 매우 근심하여 울었다. 이에 고려의 장수들이 왕에게 “다시 덩굴처럼 살아날까 두려우니, 쫓아가 없애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왕은 “안된다. 과인이 듣기에 백제국은 日本國의 官家가 되었는데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고 한다. 또 그 왕이 들어가 天皇을 섬긴 것은 사방의 이웃들이 다 아는 바이다”라 하였으므로 드디어 그만두었다.
2665#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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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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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7 任那²國
천황이 백제가 고려에게 패배했음을 듣고 구마나리를 문주왕에게 주어 그 나라를 구원해 일으키게 하였다. 문주왕은 개로왕의 동생이다. 일본구기에서는 “구마나리를 말다왕에게 주었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잘못일 것이다. 구마나리는 任那國 하치호리현의 별읍이다.
❷ 任那는 원래 남가라만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의미가 확장되어 백제와 신라를 제외한 한국의 나머지 지역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쓰였다.
2665#6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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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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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任那²國┆哆唎國守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따로 표를 올려 任那國의 上哆唎·下多唎·娑陀·牟婁의 4현을 청했다. 哆唎國守 수적신압산이 “이 4현은 백제와 인접해 있고 일본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백제와는 아침 저녁으로 통하기 쉽고 어느 나라의 닭과 개인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니 지금 백제에게 주어 합쳐서 같은 나라로 만들면 굳게 지키는 계책이 이보다 나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2665#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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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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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官家
무릇 주길대신이 처음으로 바다 저쪽 금은이 가득한 고려, 백제, 신라, 임나 등을 태중에 있던 예전천황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대후 식장족희존과 대신 무내숙녜가 每國初置官家 爲海表之蕃屛 나라마다 처음으로 관가를 설치하고 바다 저쪽의 번병으로 삼았으니, 그 유래가 오래 되었습니다.
2665#30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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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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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 0529 加羅王┆官家
加羅王이 칙사에게 “이 진은 官家를 둔 이래 신이 조공하는 나루였는데, 어찌 갑자기 이웃 나라에 줄 수 있습니까. 원래 분봉받은 영토와 다릅니다.”라고 하였다. 칙사인 부근 등은 이에 그 자리에서 주기가 어렵다고 여기고 큰 섬으로 돌아가서, 따로 녹사를 보내어 마침내 부여에 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가라는 신라와 우호를 맺고 일본을 원망하였다. 加羅王은 신라의 왕녀와 혼인하여 드디어 자식을 낳았다.
2665#3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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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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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任那³王┆干岐┆內官家
任那王 己能末多干岐가 와서 조회하였다. (己能末多者 蓋阿利斯等也)
"自胎中天皇 置內官家 不棄本土 因封其地 良有以也 바다 건너 여러 나라는 태중천황이 내관가를 둔 이래, 원래의 국왕에게 그 통치를 위임하였는데 그것은 참으로 합당한 일이었습니다."
❸ 여기에 任那王으로 나오는 阿利斯等은 다사진 분쟁 때 신라 왕녀와 결혼했던 가라왕 阿利斯等이다. 任那는 남가라가 신라에 병합된 후 가라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했는데, 이것이 任那의 세번째 의미다.
2665#2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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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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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內官家(8)
▐ 官家와 달리 內官家는 반도에만 있었다.
┆300 故因以 定內官家屯倉┆臣自今以後 於日本國所居神御子 爲內官家 無絶朝貢┆529 夫海表諸蕃 自胎中天皇置內官家 不棄本土 因封其地 良有以也┆583 我先考天皇之世 新羅滅內官家之國┆任那爲新羅所滅 故云新羅滅我內官家也┆623 任那是元我內官家┆任那小國 天皇附庸 何新羅輙有之 隨常 定內官家 願無煩矣┆645 始我遠皇祖之世 以百濟國爲內官家
2665#8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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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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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干岐(6)
-028 于斯岐阿利叱智干岐┆320 微叱己知波珍干岐┆325 微叱旱岐┆529 任那王己能末多干岐┆529 伊叱夫禮智干岐
▐ 微叱己知波珍干岐와 微叱旱岐는 동일인이다. 따라서 干岐와 旱岐는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己能末多干岐는 가라왕인데, 가라왕은 대부분 旱岐라고 불렸으므로, 이를 거듭 확인할 수 있다. 고대 일본 발음도 干과 旱은 かん으로 같다.
2665#3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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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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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0530 近江毛野臣
529년에 왜는 근강모야신을 안라에 보내 신라에 망한 남가라와 녹기탄을 다시 세워 임나에 합치게 하려 했다. 그러나 530년에 임나의 사신이 왜에 와서 모야신의 폭정을 폭로하자 왜는 모야신을 불러들였다.
▐ 임나에서 있었던 모야신의 활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日本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 日本府란 명칭은 사용되지 않았던 듯하다. 그렇다면 464년 사건에 나오는 日本府는 후대에 가필된 것이다.
2665#2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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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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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 ~ 0544 ◾任那² 재건 시도
任那²의 㖨己呑, 南加羅 그리고 卓淳이 신라에 넘어가자, 왜는 529년에 모야신을 任那²에 파견하여 통치기구를 설치하고 회복을 도모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잠잠하다 흠명천황이 즉위 이듬해인 541년부터 다시 시도하는데, 이번에는 백제를 통해 이루어졌다.
日本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任那² 여러 나라의 우두머리를 旱岐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그러나 545년 이후 지지부진하다 554년 이후에는 日本府와 旱岐가 기록에서 모두 사라졌다.
2665#3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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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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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 ~ 0554 旱岐(27/30)
❶ 旱岐는 처음에 干岐처럼 이름에 붙여 썼었다.
┆325 微叱旱岐┆366 卓淳王 末錦旱岐┆382 加羅國王 己本旱岐
❷ 그러나 541년부터는 임나에 속한 나라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그래서 卓淳王은 卓淳旱岐가 되었다.
┆安羅次旱岐┆卒麻旱岐┆散半奚旱岐┆多羅下旱岐┆斯二岐旱岐┆子他旱岐(2)┆任那旱岐(8)┆卓淳旱岐┆阿鹵旱岐┆㖨國之函跛旱岐(2)┆安羅下旱岐┆久嵯旱岐┆旱岐(6)
❸ 554년을 끝으로 旱岐는 일본서기에서 사라졌다.
2665#30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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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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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03 以日本府爲本
무릇 任那를 불러도 오지 않은 것은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아현이나사, 좌로마도의 간계에 의한 것입니다.
夫任那者 以安羅爲兄 唯從其意 安羅人者 以日本府爲天 唯從其意
무릇 임나는 안라를 형으로 여기고 오로지 그 뜻을 따릅니다. 안라인은 일본부를 하늘처럼 여기고 오직 그 뜻을 따릅니다.
(百濟本記云 以安羅爲父 以日本府爲本也 백제본기에는 안라를 아비로, 일본부를 근본으로 여긴다고 한다.)
2665#2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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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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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8.04 可畏天皇
백제는 중부 간솔 약엽례 등을 보내 “덕솔 선문 등이 칙을 받들어 신의 나라에 이르러 ‘구원병은 때에 맞춰 파견할 것이다.’라는 말을 전하였습니다. 삼가 은조를 받으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馬津城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가 ‘安羅國과 日本府가 불러들여 정벌하기를 권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可畏天皇께서(西蕃皆稱日本天皇 爲可畏天皇 서번들은 일본 천황을 모두 황공하신 천황이라 칭한다) 먼저 조사하여 주십시오.”라고 상주하였다.
2665#2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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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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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3.08 日本書紀(720)
한편 的臣이 삼가 천칙을 받고 와서 신의 나라를 위무하고 있습니다. 주야로 태만하지 아니하고 정사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해외의 여러 蕃들은 모두 그의 선정을 칭송하여 영원히 해표 여러 나라에 선정을 베풀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죽었다 하니 깊이 추도하는 바입니다. 이제 임나의 일을 누가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천황의 자애로운 마음으로 속히 그를 대신할 사람을 보내 임나를 다스리시길 엎드려 바랍니다.
2665#15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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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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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4 旱岐┆彌移居
百濟王臣明 及在安羅諸倭臣等 任那諸國旱岐等奏 以斯羅無道 不畏天皇 與狛同心 欲殘滅海北彌移居┆백제왕 신 명과 安羅의 여러 倭臣들 그리고 任那 여러 나라의 旱岐들이 아룁니다. 사라가 무도하여 천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박과 마음을 같이하여 바다 북쪽의 彌移居를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 安羅諸倭臣은 이전의 日本府臣에 해당된다.
이 기록 이후에는 旱岐가 나타나지 않는다.
2665#3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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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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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4 百濟官家
여창과 여러 장수들이 샛길로 도망하여 돌아왔다. 이 때 신라 장수들이 백제가 지쳤음을 모두 알고 드디어 멸망시켜 남겨두지 않으려 했다. 한 장수가 “안된다. 日本 天皇이 任那의 일 때문에 여러 번 우리나라를 책망하였다. 하물며 다시 百濟官家를 멸망시키기를 꾀한다면 반드시 후환을 부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므로 그만두었다.
2665#24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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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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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 任那官家
新羅打滅任那官家 總言任那 別言 加羅國 安羅國 斯二岐國 多羅國 卒麻國 古嵯國 子他國 散半下國 乞湌國 稔禮國 合十國
신라가 임나관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합쳐서 임나라고 하고 낱낱으로는 가라국, 안라국, 사이기국, 다라국, 졸마국, 고차국, 자타국, 산반하국, 걸찬국 그리고 염례국으로 열 나라다.
▐ 任那²의 구성은 계속 변하였고 마지막에는 10국이 있었다.
2665#2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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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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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日出處天子
왜왕 多利思比孤가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사신이 아뢰길 "듣자오니 바다 서쪽 보살천자께서 불법을 다시 일으키신다 하니 사신을 보내 조배드립니다. 아울러 중 수십 명이 여기 와 불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였다. 그 국서에는 '해 뜨는 곳 천자가 해 지는 곳 천자에게 글을 보내오. 별일 없으신가?' 어쩌고 저쩌고 하였다. 황제가 글을 보고 언짢아 홍려경에게 "오랑캐가 보낸 글이 무례하구나. 다시는 이런 말이 들리지 않게 하라." 하였다.
2665#40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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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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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日出處天子
▐ 日本이란 명칭은 中國에 대해 대등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격을 지니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삼한의 여러 나라에 대해서는 우월한 존재라는 느낌을 가지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530년 이후 임나 통치에 위기가 왔을 때 통치 기구의 명칭을 日本府로 바꾸었다면, 그 이유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훗날 당나라가 반도를 점령하고 열도에까지 위협을 가했을 때 국호를 日本으로 바꾼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2665#1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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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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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內官家
任那是元我內官家 今新羅人伐而有之 請戒戎旅征伐新羅 以取任那附百濟 寧非益有于新羅乎
임나는 원래부터 우리나라의 내관가입니다. 지금 신라인이 쳐서 소유하였습니다. 청컨대 군세를 정비하여 신라를 토벌하고 임나를 되찾아 백제에게 귀속시켜야 합니다. 어찌 신라가 영유하게 할 것입니까?
2665#24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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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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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5 內官家
始我遠皇祖之世 以百濟國 爲內官家 譬如三絞之綱 中間以任那國 屬賜百濟 後遣三輪栗隈君東人 觀察任那國堺 是故 百濟王隨勅 悉示其堺
우리 먼 선조 시대에 처음으로 백제국을 내관가로 삼은 것은 비유하자면 세 가닥의 끈을 하나로 합하여 꼰 것과 같았다. 그러다가 중간에 임나국을 백제에게 속하도록 하였다. 그 후에 삼륜율외군동인을 보내 임나국의 경계를 살피게 하였다. 그래서 백제왕은 칙명에 따라 그 경계를 모두 보여 주었다.
2665#24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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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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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0 日本
▐ 穢, 貉 그리고 倭는 모두 중국인들이 붙여준 명칭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貊人은 나라 이름을 高句麗라 하였고 倭人도 나라 이름을 日本으로 바꾸었다. 韓은 낙랑 한씨의 성씨를 따라 붙여진 명칭이므로 부정적인 의미가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나라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2665#16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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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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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8 禰軍 墓誌銘 日本
지난 顯慶 5년 관군이 본번을 평정하던 날 조짐을 보고 변화를 알아 검을 잡고 귀의할 곳을 알았으니, 由余가 戎에서 나온 것과 유사했고 金磾가 漢으로 들어온 것과 같았다. 성상께서 기뻐 찬탄하며 영화로운 반열로 발탁하니 우무위·산천부·절충도위를 제수했다. 이때 日本의 남은 무리가 扶桑에 의거하여 징벌을 피해 달아났다.
2665#2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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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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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日本
▐ 안홍은 수나라에 유학을 갔다가 576년 또는 605년에 돌아왔고 선덕여왕은 647년에 죽었으니 동도성립기는 분명 670년 보다 훨씬 이전에 편찬되었다. 그 동도성립기에 일본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니, 일본이라는 말는 670년 이전부터 신라에서 사용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동도성립기에는 倭라고 되어 있었지만 1281년에 삼국유사를 편찬하면서 당대에 사용되던 말인 日本으로 바꾸어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
삼국유사에는 9한의 하나인 여진을 ...
266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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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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