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5.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 (1) 고려의 기원 > 0414 고려 건국 설화
 
 0285 진서(648)
태강 6년에 이르러 모용외의 습격을 받아 패하여 부여왕 의려는 자살하고, 그의 자제들은 옥저로 달아나 목숨을 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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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1-0499 모두루묘지명(牟頭婁墓誌銘)
하박(河泊)의 손자이며 일월(日月)의 아들인 추모(鄒牟) 성왕(聖王)이 북부여에서 나셨으니, 이 나라 이 고을이 가장 성스러움을 천하사방이 알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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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14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시조 추모왕(鄒牟王)이 나라를 세웠는데 북부여(北夫餘)에서 태어났으며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따님이었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는데 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다 부여의 엄리대수(奄利大水)를 거쳐가게 되었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며 하백의 따님을 어머니로 한 추모왕이다”라고 하였다.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떼가 물위로 떠올랐다. 건너가서 비류곡 홀본(忽本) 서쪽 산상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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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 위서
주몽(朱蒙)의 어머니 하백의 딸은 부여왕에 의해 갇혀 있다 햇볕에 감응하여 알을 낳았다. 왕이 알을 개와 돼지에게 주었으나 먹지 않았고 길에 버리니 소와 말이 피해 다녔으며 들에 버리니 새들이 감쌌다. 나중에 돌려주었는데 사내아이가 나왔다. 자라며 활을 잘 쏘니 신하들이 죽이려 하였다. 도망가다 강을 만나 '나는 태양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고 하니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건넜다. 마침내 흘슬골성(紇升骨城)에 정착하고 고구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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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36 주서
고려는 그 선조가 부여에서 갈라져 나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시조는 주몽인데 하백의 딸이 햇빛에 감응되어 잉태하였다’고 한다. 주몽이 장성하여 재주와 지략이 있자 부여 사람들이 미워하여 쫓아버렸다. 흘두골성(紇斗骨城)에 살면서 스스로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이어 고씨로 성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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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36 수서
부여왕이 하백의 딸을 방안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볕에 감응하여 알을 낳았다.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오자 이름을 주몽이라 하였다. 자라서 사냥을 잘 하자 신하들이 죽일 것을 왕에게 권했다. 어머니가 이를 알려주니 주몽은 동남쪽으로 달아나다 강을 만나 '나는 하백의 외손이요 태양의 아들이다'고 하니 물고기와 자라가 떠 올라 건너갔다. 스스로 나라를 세워 고구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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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59 북사
부여왕이 하백의 딸을 방안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볕에 감응하여 알을 낳았다.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오자 이름을 주몽이라 하였다. 자라서 활을 잘 쏘자 신하들이 죽일 것을 왕에게 권했다. 어머니가 이를 알려주니 주몽은 동남쪽으로 달아나다 강을 만나 '나는 하백의 외손이요 태양의 아들이다'고 하니 물고기가 자라가 떠 올라 건너갔다. 흘슬골성(紇升骨城)에 나라를 세워 고구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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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02 천남산묘지명(泉男産墓誌銘)
옛날에 동명(東明)이 기(氣)를 느끼고 사천(㴲川)을 넘어 나라를 열었고, 주몽(朱蒙)은 해를 품고 패수(浿水)에 임해 수도를 열어... -- 동명과 주몽을 별개의 인물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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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97 속일본기
황태후의 성은 화(和)씨이고 이름은 신립이다. 황태후의 선조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 태자에서 나왔다. 금상(환무천황)과 한량친왕, 능등내친왕을 낳았다. 그 백제의 먼 조상인 도모왕(都慕王)이라는 사람은 하백(河伯)의 딸이 태양의 정기에 감응해서 태어난 사람인데 황태후는 곧 그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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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97 속일본기
"저희들은 본계가 백제국 귀수왕에서 나왔습니다. 귀수왕은 백제가 처음 일어난 때로부터 제16대 왕입니다. 대저 백제의 태조 도모대왕(都慕大王)은 태양신이 몸에 내려온 분으로, 부여에 머물러 나라를 열었습니다. 천제가 녹을 주어 모든 한(韓)을 통솔하고 왕을 칭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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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1 고려사(1451)
평양의 목멱, 교연, 도지암, 동명왕(東明王) 등의 신에게 훈호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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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5 고려사(1451)
숙종이 사자를 보내 동명성제(東明聖帝)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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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BC 19년 가을 9월에 왕이 돌아가시니 그 때 나이가 40세였다. 용산(龍山)에 장사지내고 동명성왕이라 불렀다. -- 평양에 있는 동명왕릉도 용산에 있다.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동명왕릉이 용산에 있어 용산에 장사지냈다고 기술한 것인지, 기록에 용산에 장사지냈다고 되어 있어 동명왕릉을 만들 때 지명을 용산으로 바꿨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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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은 성이 고씨(高氏)이고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한다. 햇빛이 비치어 따라와 비쳤다. 이로 인하여 아이를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다.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추격해오는 병사들이 닥칠까봐 물에게 알려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하였다. 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주몽이 건널 수 있었다. 졸본천(卒本川)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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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1 고려사
동명왕묘가 있다. 부의 동남쪽 중화현 경계의 용산(龍山)에 있으며, 민간에서는 진주묘라고 부른다. 또 인리방에 사우가 있는데, 고려 때에 어압을 내려 제사를 지내게 했으며 초하루와 보름에 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고을 사람들은 지금까지 일이 있으면 자주 소원을 빈다. 세상에 전하기를 동명성제의 사당이라 한다. 을밀대가 있다. 대는 금수산 정상에 있으며, 대의 아래층의 절벽 가까이에 영명사가 있는데, 곧 동명왕의 구제궁(九梯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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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1 동명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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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1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후한서와 위략을 살펴보니 똑같이 '북부여 시조의 이름은 동명이다'라고 했고 이상한 기운이나 돼지우리,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이룬 이야기 등이 들어 있다. 위서와 북사는 이 이야기를 구려 시조 주몽의 일이라 했고 햇빛이 비치고 개와 돼지,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든 일 등이 들어 있다. 김부식도 북사 주몽본기를 따라서 주몽의 이름을 동명이라 했다. 그 뒤 우리나라의 역사를 찬술하는 자는 으례 구려 시조 주몽의 호를 동명왕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것이 잘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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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8 동명왕릉인가 장수왕릉인가?
평양천도 이후에도 안장왕, 평원왕, 영류왕은 졸본에 가서 시조 사당에 제사를 올렸으므로 평양 용산에 있는 무덤은 동명왕의 무덤이 아니거나 허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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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건국 설화
고려의 건국 설화에 의하면 고려 왕조는 부여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 고려의 건국 설화는 부여의 건국 설화와 이야기 구조가 같다. 부여의 건국설화는 북쪽 나라에서 이탈한 동명이 강을 건너 부여를 세웠다는 것이고 고려의 건국 설화는 부여에서 이탈한 추모가 강을 건너 고려를 세웠다는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려의 건국 설화에는 시조가 하백(河伯)의 외손이라고 되어 있는데 부여의 건국 설화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부여의 건국 설화는 논형(27-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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