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新羅民族論 > 1281 壇君 > -0195+ 王之都王險 > 韓準과 衛滿
 
-1046- 史記(-91)
號曰后稷 別姓姬氏 ▶후직은 주나라 왕실의 조상인데 姬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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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6 衛 康叔
위(衛) 강숙(康叔)은 이름이 봉(封)이고, 주나라 무왕과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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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3- 죽서기년(竹書紀年)
(周武王) 十六年 箕子來朝 (주무왕 -1046~-1043) 16년에 기자가 와서 조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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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3- 史記(-91)
於是武王乃封箕子於朝鮮而不臣也 其後箕子朝周 過故殷虛 感宮室毀壞 生禾黍 箕子傷之 欲哭則不可 欲泣為其近婦人 乃作麥秀之詩以歌詠之 其詩曰 麥秀漸漸兮 禾黍油油 彼狡僮兮 不與我好兮 所謂狡童者 紂也 殷民聞之 皆為流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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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3- 史記(-91)
이에 무왕(-1046~-1043)이 곧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신하는 아니었다. 그 후 기자는 주나라에 배알하고 옛 은나라의 유적을 지나게 되었는데 궁궐이 무너지고 그곳에 벼와 기장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슬퍼하여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그런 일은 부인들이나 하는 거라 시만 한 수 지어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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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3- 史記(-91)
召公奭與周同姓 姓姬氏 周武王之滅紂 封召公於北燕 소공 석은 주와 같은 성인 姬씨다. 주 무왕이 주왕을 멸망시키고 소공을 북연에 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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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죽서기년(竹書紀年)
(周成王) 十二年 王帥 燕師城韓 王錫❶韓侯命 (주성왕 -1042~-1021) 12년 왕이 燕으로 하여금 韓을 위해 성을 쌓게 하고 韓侯에게 명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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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 -0782 詩經/韓奕
韓侯取妻 汾王之甥 蹶父之子 韓侯迎止 于蹶之里 百兩彭彭 八鸞鏘鏘 不顯其光 諸娣從之 祁祁如雲 韓侯顧之 爛其盈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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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 -0782 시경/한혁
한나라 제후께서 장가드신 분, 여왕의 생질 되시는 궐부의 따님, 한나라 제후가 아내 맞으시려고 궐씨의 마을에 가셨도다. 수많은 수레들 덩컹거리고 말방울 소리 딸랑거리며 그 빛 더없이 밝으시었다. 여러 누이동생들도 따라오는데 구름처럼 아름답고 많기도 해라 한나라 제후 그들을 돌아보니 찬란하게 문안에 가득 차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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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 -0782 詩經/韓奕
蹶父孔武 靡國不到 為韓姞相攸 莫如韓樂 孔樂韓土 川澤訏訏 魴鱮甫甫 麀鹿噳噳 有熊有羆 有貓有虎 慶既令居 韓姞燕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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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 -0782 시경/한혁
궐부는 아주 용감하셔서 가보지 않은 나라 없어 한길의 시집 갈만한 혼처 알아보셨고 한나라보다 좋은 곳 없다고 했다. 즐거운 한나라 땅이여 냇물과 못물이 넘쳐흐르고 방어와 연어가 큼직큼직하며 암사슴 수사슴이 모여 우글거리고 곰도 말곰도 있으며 삵괭이도 범도 있다. 좋게 보시고 출가시켜 한나라의 길씨 편안히 즐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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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 -0782 詩經/韓奕
溥彼韓城 燕師所完 以先祖受命 因時百蠻 王錫韓侯 其追其貊 奄受北國 因以其伯 實墉實壑 實畝實籍 獻其貔皮 赤豹黃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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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 -0782 시경/한혁
커다란 저 한나라 성은 연나라 백성들이 완성시킨 것이다. 선조들이 받드신 명을 받들어 오랑캐 나라들까지 다스리신다. 천자께서는 한나라 제후에게 추(追)와 맥(貊)까지도 내려주셨다. 북쪽 나라들을 모두 다 맡아 그곳 어른이 되셨도다. 성을 쌓고 해자를 파며 밭을 다스리시고 부세를 정하셨다. 천자께 백호 가죽과 붉은 표범 누런 말곰 가죽 바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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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4 죽서기년(竹書紀年)
(周宣王) 四年 王命蹶父如韓 ❶韓侯來朝 (주선왕) 4년에 왕이 궐부와 韓에 명하자 韓侯가 입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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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70 ~ -0403 春秋時代
-0770 ~ -0403 春秋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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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9 환숙(桓叔)
소후 원년에 문후의 동생 성사를 곡옥(曲沃)에 봉했다. 곡옥의 성읍이 익성(翼城)보다 커졌다. 익성은 진(晉)나라 국군의 도읍이다. 성사는 곡옥에 봉해져 환숙(桓叔)으로 불렸다. 7년(-739)에 진(晉)나라의 대신 반보가 그 국군 소후를 시해하고, 곡옥 환숙을 맞아들였다. 환숙이 진(晉)나라로 들어가려 했으나, 진(晉)나라 사람들이 군대를 일으켜 환숙을 공격했다. 환숙은 패하여 곡옥으로 다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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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1 무공(武公)
곡옥 무공이 진후 민을 정벌하여 멸망시키고, 그 보물을 모조리 주나라 희왕(釐王)에게 뇌물로 바쳤다. 희왕은 곡옥 무공을 진나라의 국군으로 삼아 제후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곡옥 무공은 즉위 37년째 진(晉)나라 무공(武公)으로 호칭을 바꾸었다. 진나라 무공이 비로소 진에 도읍을 정했다. 무공 칭은 이전 진나라 목후(穆侯)의 증손이며, 곡옥 환숙의 손자이다. 환숙 때 처음으로 곡옥에 봉해졌다. 무공은 장백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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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6- 史記(-91)
韓之先與周同姓 姓姬氏 其後苗裔事晉 得封於韓原 曰韓武子 武子後三世 有韓厥 從封姓為❷韓氏 韓의 선조는 周와 같은 성인 姬氏다. 그 후예들은 晉을 섬겨 韓原을 봉지로 얻어 韓 武子(~-409)라 했다. 한 무자 이후 3세손에 韓厥(~-566)이 있었는데 봉지의 이름을 성으로 삼아 韓氏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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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9- 韓原
韓城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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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 한(韓), 위(魏), 조(趙)를 제후로 인정
威烈王二十三年,九鼎震。命韓、魏、趙為諸侯。 위열왕 23년에 한(韓), 위(魏), 조(趙)를 제후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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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 ~ -0221 戰國時代
-0403 ~ -0221 戰國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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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6 晉 멸망
정공 2년에 위나라 무후, 한나라 애후(哀侯), 조나라 경후(敬侯)가 진(晉)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그 땅을 셋으로 나누었다. 정공은 평민으로 떨어졌고, 진나라의 제사는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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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史記(-91)
(제나라) 宣王元年 秦用商鞅 선왕 원년에 진나라가 상앙을 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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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3- 위략(265±)
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爲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爲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其大夫禮諫之 乃止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연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라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도 역시 스스로 왕호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공격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 하였는데, 그의 대부 예(禮)가 말리므로 중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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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3 衛 懐君
四十二年卒 子懐君立 懐君三十一年 朝魏 魏囚殺懐君 魏更立嗣君弟 是為元君 元君十四年 秦抜魏東地 秦初置東郡 更徙衛野王県 而并濮陽為東郡 사군은 42년 만에 죽고 아들 회군이 즉위했다. 회군 31년에 魏에 조회하러 가자 魏가 회군을 가두었다가 죽였다. 魏가 사군의 동생을 다시 세우니 이가 원군이다. 원군 14년에 진나라가 魏의 동쪽 땅을 차지하고 동군을 처음으로 설치했다. 衛의 국군을 다시 야왕현으로 옮기게 하고 복양을 동군에 합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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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0 韓 멸망
秦虜王安 尽入其地 為潁州郡 韓遂亡 진나라가 안왕을 포로로 잡고 그 땅을 전부 편입시켜 영천군으로 삼았다. 한이 마침내 멸망했다. (-226년에 옛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되면서 한안왕도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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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2 燕 멸망
秦抜遼東 虜燕王喜 卒滅燕 진나라가 요동을 빼앗고 연왕 희를 사로잡아 마침내 연나라를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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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9 衛 멸망
二十五年 元君卒 子君角立 君角九年 秦并天下 立為始皇帝 二十一年 二世廃君角為庶人 衛絶祀 25년에 원군이 죽고 아들 각이 즉위했다. 위군 각 9년에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시황제가 즉위했다. 21년에 진나라 2세가 위군 각을 평민으로 내치니 이로써 衛의 제사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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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9 ~ -0206 한광(韓廣)
상곡의 졸 한광은 진나라 말기에 연 땅에서 연왕을 자칭했다. 장도가 연왕으로 오자 요동왕으로 옮겼다가 무종에서 장도에게 죽었다.
2841#15840 SHARED
 
-0209 三國志(289)
진승(陳勝) 등이 일어나 온 천하가 秦에 반기를 드니, 燕·齊·趙의 백성 수만인이 조선으로 피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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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5? 史記(-91)
燕王盧綰反入匈奴滿亡命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연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 인을 모아 몽치 머리에 오랑캐의 복장으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秦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燕과 齊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
18258 SHARED
 
-0195? 위략(265?)
及漢以盧綰為燕王 朝鮮與燕界於浿水 及綰反 入匈奴 燕人衞滿亡命 為胡服 東度浿水 詣準降 한나라 때에 이르러 노관으로 연왕을 삼으니, 조선과 연은 패수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간 뒤 연나라 사람 위만도 망명하여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에게 항복하였다.
8350 SHARED
 
-0108 史記(-91)
좌장군이 이미 양군을 합하여 맹렬히 조선을 치니, 조선의 相 로인과 相 韓陰과 니계상 參 ·장군 왕겹이 서로 모의하기를, “처음 누선에게 항복하려 했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 있고 좌장군 단독으로 장졸을 합하여 전투가 더욱 맹렬하여 맞아서 싸우기 두려운데도 왕은 항복하려 하지 않는다.” 하고 陰·唊·로인이 모두 도망하여 漢에 항복하였다. 로인은 도중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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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3- 잠부론(潛夫論)
昔周宣王亦有❶韓侯 其國也近燕 故詩雲 普彼韓城 燕師所完 옛날 주나라 선왕(-828~-782) 때에도 한후가 있었다. 연나라에 가까이 있어서 시경에서 '커다란 저 한나라 성은 연나라 백성들이 완성시킨 것이다'라고 하였다. ▐ 죽서기년에는 -1030년에 周成王이 燕으로 하여금 韓을 위해 성을 쌓게 하고 韓侯에게 명을 내렸다고 되어 있다. 周宣王 때인 -824년에는 왕이 궐부와 韓에 명하자 韓侯가 입조하였다고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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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3- 잠부론(潛夫論)
凡桓叔之後 有❷韓氏 言氏 嬰氏 禍餘氏 公族氏 張氏 此皆韓後姬姓也 환숙(-802~-731)의 후손에는 한씨, 언씨, 영씨, 화여씨, 공족씨, 장씨가 있는데 모두 한(韓)의 후손으로 성은 희(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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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3- 잠부론(潛夫論)
其後韓西亦姓❸韓爲衛滿所伐遷居海中 그후 한서도 역시 韓씨 성을 사용하였는데, 위만의 침공을 받아 바다 가운데로 옮겨갔다. ▐ 사기(-91)와 한서(82)에는 滿이라고만 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衞滿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18208 SHARED
 
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0163- 잠부론(潛夫論)
衛鞅(390~338) 康叔之孫也
8352 SHARED
 
0200 전한기(前漢紀)
朝鮮本秦時屬遼東 漢興以爲其遠難守 故遼水為塞 盧綰之反也 燕人衛滿亡命 聚黨千餘人 在遼居秦故地 稍稍侵屬其東小蠻夷 而王之 조선은 원래 진나라 때 요동에 속했는데 한나라 때는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고 요수를 요새로 삼았다. 노관이 반란을 일으키자 연나라 사람 위만이 천여명의 무리를 모아 망명했는데 요에 있으면서 진나라의 옛 땅에 거주했다. 점점 그 동쪽의 작은 오랑캐들을 복속시켜 왕이 되었다. ▐ 滿의 성은 나타나나 準에 대한 언급은 없다.
2841#6383 SHARED
 
0815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録)
筆氏 燕相國衛滿公之後也 善作筆預於士流因玆賜筆姓 필씨는 연나라 재상 위만의 후손이다. 붓을 잘 만들어 필씨 성을 하사받았다.
11302 SHARED
 
1617+ 準의 후손
箕子의 후손 準이 衛滿에게 축출되어 마한을 건국하면서 자손들이 韓 성을 가지게 되었고 기자의 자손 중 友平의 후손은 鮮于씨, 友諒의 자손은 韓씨, 友誠의 자손은 奇씨가 되었다.
8408 SHARED
 

8348 SHARED
 
遷居 海中
海中 漢書(82)遷居 後漢書(445)
 
韓 (西周)
この際、取り残された都市国家の住民は「韓」を氏として四散したため、河北省一帯には古来「韓」を氏とする者が多く、秦末の燕王「韓広」、衛氏朝鮮の相「韓陰」などがいる。他、楽浪郡や帯方郡にも韓氏は山東系の王氏に次いで多かった。朝鮮の三韓という名も、楽浪郡や真番郡の韓氏から起こったとの説が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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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西周)
이때 떠난 도시 국가의 주민은 韓을 씨로 사산했기 때문에 하북성 일대에는 옛날 韓을 씨로 하는 자가 많아 진나라말의 연왕 韓廣, 위만조선의 상 韓陰 등이 있다. 그 외 낙랑군과 대방군에도 韓씨는 산동계의 왕씨에 이어 많았다. 조선의 삼한이라는 이름도 낙랑군이나 진번군의 韓씨에서 일어났다는 설이 있다.
8351 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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