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시조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신라는 혁거세를 시조로 모셨고 왕씨고려는 추모와 기자를 시조로 모셨으며 이씨조선은 추모와 기자에 단군을 더했다. 왕고가 추모와 기자를 시조로 모신 건 고려계승이라는 왕조의 명분을 뒷받침하고 중원에 기대어 왕조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조가 단군을 더한 것은 새로이 생겨나 퍼져나간 단군설화를 반영한 것이다.
단군설화는 왕고때 여러 가지 역사 기록과 설화가 섞여 만들어진 이야기다.
›(5) historiography - 시조
나라의 시조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신라는 혁거세를 시조로 모셨고 왕고는 추모와 기자를 시조로 모셨으며 이조는 추모와 기자에 단군을 더했다.
신라의 후속국인 왕고가 추모와 기자를 시조로 모신 건 고려계승이라는 왕조의 명분을 뒷받침하고 중원에 기대어 왕조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조가 단군을 더한 것은 새로이 생겨나 퍼져나간 단군설화를 반영한 것이다.
기자동래설과 단군조선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고려는 한국사가 아니다.
1715#2336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