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2. 우리는 단군의 자손인가?

나라의 시조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신라는 혁거세를 시조로 모셨고 왕씨고려는 추모와 기자를 시조로 모셨으며 이씨조선은 추모와 기자에 단군을 더했다. 왕고가 추모와 기자를 시조로 모신 건 고려계승이라는 왕조의 명분을 뒷받침하고 중원에 기대어 왕조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조가 단군을 더한 것은 새로이 생겨나 퍼져나간 단군설화를 반영한 것이다. 단군설화는 왕고때 여러 가지 역사 기록과 설화가 섞여 만들어진 이야기다.
 
(1) 기자조선 부정
BC 1600 - 1046 상나라   논어(論語)   금본죽서기년(今本竹書紀年)   금본죽서기년(今本竹書紀年)   죽서기년(竹書紀年)   상서대전(尙書大傳)   서경(書經 尙書)   BC 0091 사기   BC 0091 사기   0082 한서   0082 한서   0265 ± 위략   ¦기자조선 부정  
 
(2) 위략 부정
BC 0311 ᑅ 사기(BC 91)   BC 0311 - 0279 사기(BC 91)   BC 0311 - 0279 사기(BC 91)   BC 0311 - 0279 사기(BC 91)   BC 0311 - 0279 위략(265±)   BC 0311 - 0279 위략(265±)   BC 0311 - 0279 염철론(BC 81)   BC 0311 - 0279   BC 0222 사기(BC 91)   BC 0221 - BC 202 위략(265±)   BC 0202 사기(BC 91)   BC 0195 - 0188 사기(BC 91)   BC 0195 - 0188 위략(265±)   BC 0195 - 0188 위략(265±)   BC 0195 - 0188 사기(BC 91)   BC 0195 - 0188 사기(BC 91)   BC 0195 - 0188 ᑀ 잠부론(潛夫論 85-162)   BC 0195 - 0188 ᑀ 위략(265±) 06   BC 0195 - 0188 ᑀ 위략(265±)   BC 0145± ~ BC 0086± 司馬遷   0020-023 위략(265±)   0044 후한서(445)   0044 후한서(445)   0265 ± 위략(魏略)   0429 배송지주(裴松之注)   ¦위략 부정  
 
(3) 한민족의 바탕은 韓
왼쪽 지도는 비파형 동검, 세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그리고 탁자식 고인돌의 분포도고 가운데 지도는 위만조선의 영역을 추정한 지도며 오른쪽 지도는 한국통일 직전의 한반도 지도인데 신라의 북쪽 경계는 한국통일 직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조선의 남쪽에 있었다던 韓은 바둑판식 고인돌의 분포 지역에 대응되고 이것이 신라가 통일한 한국이며 조선-낙랑-고려-발해-요...로 이어지는 요동사와 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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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단군설화 분석
단군 설화의 형성   壇君   桓因   熊虎   王之都王險   箕子   降於太伯山頂   風伯·雨師·雲師   단군 설화의 변종   ¦단군설화 분석  
 
(5) historiography - 시조
나라의 시조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신라는 혁거세를 시조로 모셨고 왕고는 추모와 기자를 시조로 모셨으며 이조는 추모와 기자에 단군을 더했다. 신라의 후속국인 왕고가 추모와 기자를 시조로 모신 건 고려계승이라는 왕조의 명분을 뒷받침하고 중원에 기대어 왕조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조가 단군을 더한 것은 새로이 생겨나 퍼져나간 단군설화를 반영한 것이다. 기자동래설과 단군조선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고려는 한국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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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설 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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