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年代記 > 0291~0368 年代記

서진의 무제가 죽은 이듬해부터 왜가 삼한에 진출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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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0290 年代記
왕망이 신나라를 세운 때부터 서진의 무제가 재임할 때까지로, 역사 기록에 한국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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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1 ~ 0306 八王之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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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1 ~ 0390 三韓의 재편 - 솔까역사
0291 ~ 0390 三韓의 재편 - 솔까역사
중국에서 서진이 망해가면서 요동과 한국은 재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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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1.07 ❰❰ 0231 三國誤記
이찬 于老를 대장군으로 삼아 甘文國을 토벌하여 함락시키고 그 땅을 郡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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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2.06 三國史記(1145)
왜의 군사가 沙道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으므로, 일길찬 대곡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고 지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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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3.02 三國史記(1145)
沙道城을 고쳐 쌓고 沙伐州의 호민 80여 가를 이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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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3.07 ❰❰ 0233 三國誤記
왜인이 침입해 왔으므로 우로가 沙道에서 추격하여 싸웠는데, 바람을 따라 불을 놓아서 적의 전함을 불태우니 적이 모두 다 물에 빠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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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4 三國史記(1145)
여름에 왜의 군사가 長峯城을 공격해 왔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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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5 三國史記(1145)
왕이 "왜인이 자주 우리의 성읍을 침범하여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가 없다. 나는 백제와 꾀하여 일시에 바다를 건너 그 나라에 들어가 공격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라고 묻자 홍권이, "백제는 거짓이 많고 항상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함께 도모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라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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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5(<-0006) 三國史記(1145)
마한에 사신을 보내 도읍을 옮긴다는 것을 알렸다. 마침내 국토의 영역을 확정하였으니 북으로는 浿河에 이르고, 남으로는 熊川이 경계이며, 서로는 큰 바다에 닿고, 동으로는 走壤에 이르렀다. ▐ 패하는 예성강, 주양은 춘천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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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6.08 三國史記(1145)
모용외가 침략해왔다. 고국원에 이르러 서천왕의 무덤을 보고 사람을 시켜 파게 하였다. 파는 사람 중에 갑자기 죽는 자가 있고 또 무덤 안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므로 귀신이 있는가 두려워하여 곧 물러갔다. ▐ 모용외는 5호16국시대 선비족 모용부의 수장으로 훗날 연(前燕)을 세운 모용황의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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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7 三國史記(1145)
(신라) 伊西國이 금성을 공격해 왔으므로 우리 편에서 군사를 크게 일으켜 막았으나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홀연히 이상한 군사가 왔는데, 그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그 사람들은 모두 귀에 대나무 잎을 달고 있었다. 우리 군사와 함께 적을 공격하여 깨뜨린 후 어디로 간지를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대나무 잎 수만 장이 죽장릉에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 청도에 伊西面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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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0.01 三國史記(1145)
(신라) 왜국(倭國)과 사신을 교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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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0.03 三國史記(1145)
낙랑과 대방 두 나라가 와서 항복하였다. ▐ 낙랑은 313년에, 대방은 314년에 각각 고려에 병합되었다. 이때는 단지 망하기 직전에 있던 낙랑과 대방의 난민들이 신라로 들어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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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08 ❰❰ 0061 三國誤記 新羅
마한의 장군 맹소가 覆巖城을 들어 항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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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09 三國史記(1145) 高句麗
미천왕은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현도군을 침략하여 8천 명을 붙잡아 平壤으로 옮겼다. ▐ 여기에 나오는 평양은 환도성 인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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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02 三國史記(1145) 百濟
몰래 군사를 보내 낙랑의 서쪽 縣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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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10 三國史記(1145) 百濟
왕이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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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245-10) 三國史記(1145) 新羅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우로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馬頭柵을 지켰다. 그날 밤이 몹시 추웠는데, 우로가 사졸들을 위로하고 몸소 장작을 피워 그들을 따뜻하게 해주니 모두 마음으로 감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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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 三國史記(1145)
나라 이름을 다시 新羅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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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10 ❰❰ 0008 三國誤記 百濟
왕이 군사를 내어 겉으로는 사냥한다고 하면서 몰래 마한을 습격하여 드디어 그 국읍을 병합하였다. 오직 圓山과 錦峴 두 성만은 굳게 수비하고 항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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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04 ❰❰ 0009 三國誤記 百濟
圓山과 錦峴 두 성이 항복하였다. 그곳의 백성들을 漢山 북쪽으로 이주시켰다. 마한이 마침내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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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04┆5주갑인상
289년에 편찬된 삼국지에는 백제가 마한 50여국의 하나로 나오고 신라가 변진 24국의 하나로 나오지만, 414년에 세워진 광개토왕릉비에는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이 나오지 않고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안라 등이 나온다. 따라서 삼국지와 광개토왕릉비 사이에 한국에서 큰 재편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고, 8~9년에 망했다는 삼국사기의 마한 기록은 5주갑을 인하해야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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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07 ❰❰ 0009 「三國誤記」 百濟
大豆山城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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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三國史記(1145)
(신라) 흘해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나해왕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각간 우로(于老)이고 어머니는 명원부인으로 조분왕의 딸이다. 기림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군신들이 의논해 말하기를, “흘해가 어리지만 노련한 덕이 있다.”고 하며 이내 그를 받들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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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08 三國史記(1145)
(고려)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을 공격하여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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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2.03 三國史記(1145)
(신라) 왜국왕이 사신을 보내 아들을 위해 혼인을 청하여 아찬 급리의 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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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3.04 자치통감(1084)
遼東張統據樂浪 帶方二郡 與高句麗王乙弗利相攻 連年不解 樂浪王遵說統帥其民千餘家歸廆 廆爲之置樂浪郡 以統爲太守 遵參軍事 요동의 장통이 낙랑 대방 2군에 있으면서 고구려왕 을불과 서로 공격하여 여러 해 동안 풀리지 않았다. 낙랑의 왕준이 장통에게 권고하여 그 백성 1,000여 가를 이끌고 외(慕容廆)에게 귀부케 하였다. 외가 이들을 위하여 낙랑군을 두고 장통을 낙랑태수로, 왕준을 낙랑군 참군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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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3.10 三國史記(1145)
(고려) 낙랑군을 침공하여 남녀 2천여 명을 포로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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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4.09 三國史記(1145) 高句麗
남쪽으로 대방군을 침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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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5 三國史記(1145)
(고려) 2월에 현도성을 공격하여 깨뜨렸는데, 죽이고 사로잡은 자가 매우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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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6 晉(西晉) 멸망
311년 흉노족은 진의 수도인 洛陽을 약탈하고 황제를 죽였다. 진은 고대의 수도였던 長安에 새 황제를 세우고 나라를 재건했지만 이는 이민족의 침입을 잠시 늦추는 것에 불과했다. 316년 사마염의 손자인 민제는 흉노족의 부족장에게 항복하고 퇴위했다가 후에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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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6.10 ❰❰ 0016 「三國誤記」 百濟
마한의 옛 장수 주근이 牛谷城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직접 5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하였다. 주근은 목매어 자결하였다. 그 시체의 허리를 자르고 처자들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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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 晉(東晉) 건국
진의 낭야왕(琅邪王)인 사마예는 건업(建業)으로 피하여 낭야의 호족 왕도의 힘을 빌려 이 땅에 동진을 건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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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08 ❰❰ 0018 「三國誤記」 百濟
원산과 금현의 두 성을 수리하고 古沙夫里城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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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 0199 日本書紀(720)
이 나라보다 더욱 寶物이 많은 나라가 있으니 비유하면 처녀의 눈썹과 같고 津의 건너편에 있는 나라이다睩은 우리말로 麻用弛枳(まよびき)라고 한다. 눈부신 금과 은, 비단이 그 나라에 많이 있다. 이 나라를 栲衾新羅國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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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조(後趙) 건국
갈족(羯族)의 석륵(石勒)에 의해 건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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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12 三國史記(1145)
(고려) 진(晉)의 평주자사 최비(崔毖)가 도망쳐 왔다. 모용외가 모용한과 모용인을 보내 우리를 치게 하였는데, 왕이 화해를 청하자 모용한과 모용인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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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0.12 三國史記(1145)
(고려) 군사를 보내 요동을 침략하였는데, 모용인이 막아 싸워서 우리 군사를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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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0.12 진서(648)
明年,高句麗寇遼東,廆遣眾擊敗之。 이듬해 고구려가 요동을 침략하였다. 외(廆)가 무리를 보내어 그들을 공격하여 패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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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0~0385 神功皇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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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三國史記(1145)
(고려) 후조(後趙)의 석륵에게 사신을 보내 싸리나무 화살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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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4~0365 일본서기·삼국사기 기록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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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6 三國史記(1145)
(고려) 진(東晉)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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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7 연(前燕) 건국
요서 일대에 살던 모용선비는 307년 모용외(慕容廆)가 선비대선우를 자칭하며 자립하고 319년에 진(西晉)의 최비(崔毖)를 물리치며 요동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의 아들 모요황(慕容皝)은 337년에 연왕을 칭하고 단부, 조(後趙), 고려, 우문선비 등과 경쟁하며 성장하였다. 모용준(慕容儁)은 352년에 하북을 점령하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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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7.02 三國史記(1145) 新羅
백제에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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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8 자치통감(1084)
송황(宋晃)은 338년에 후조의 석륵이 모용황을 공격하자 전연의 성주내사 최도(崔燾), 거취령 유홍(游泓), 동이교위 봉추(封抽) 등과 함께 이에 내응하였다. 그러나 석륵이 오히려 패하고 모용황이 반했던 성들을 토멸하자, 최도는 석륵에게로, 송황은 봉추·유홍과 함께 고구려로 망명해 왔다. 석륵이 같은 해 고구려에 양곡 30만 곡(斛)을 배 300척에 실어 보낸 것도 이러한 사정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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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9 三國史記(1145)
(고려) 연왕(燕王) 모용황(慕容皝)이 침략해 와서 그 병력이 신성에 도달하였다. 왕이 화해하자고 하니 이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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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0 三國史記(1145)
(고려) 왕이 세자를 보내 연왕(燕王) 모용황(慕容皝)을 만나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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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0.09 ❰❰ 0040 三國誤記 新羅
화려현과 불내현 두 현의 사람들이 함께 모의하여 기병을 이끌고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는데, 貊國의 우두머리가 곡하의 서쪽에서 군사로써 막아 물리쳤다. 왕이 기뻐하여 맥국과 우호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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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2 모용황의 高句麗 침공
모용외의 아들 황(晃)이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였다. 쇠(釗 고국원왕)는 더불어 싸우다 크게 패하여 단신으로 말을 타고 달아났다. 황(晃)은 승리한 기세로 계속 추격하여 환도(丸都)에 이르러 궁실을 불지르고 남자 5만여구를 노략질하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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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2.08 ❰❰ 0042 三國誤記 新羅
貊國의 우두머리가 사냥하여 얻은 새와 짐승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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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3.02 三國史記(1145)
(고려) 왕이 그의 동생을 연(前燕)에 보내 신하를 칭하며 조회하고, 진기한 물건 천여 점을 바쳤다. 연왕 모용황이 이에 그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보내고 그 어머니는 아직 남겨두어 인질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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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3.07 三國史記(1145)
(고려) 평양 동황성(東黃城)으로 옮겨 살았다. 성은 지금의 서경 동쪽 목멱산 중에 있다. 진(東晉)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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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4.02 三國史記(1145)
왜국에서 사신을 보내와 혼인을 요청하였으나, 딸이 이미 시집갔다고 하여 사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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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5.02 三國史記(1145)
왜왕이 글을 보내와 국교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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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5.10 三國史記(1145)
(고려) 연왕 황(皝)이 모용각(慕容恪)을 시켜 공격해 와서 남소를 빼앗아 주둔병을 두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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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6 三國史記(1145)
(신라) 왜의 군사가 갑자기 풍도에 이르러 변방의 민가를 노략질하였다. 또 진군하여 금성을 에워싸고 급하게 공격하였다. 왕이 문을 닫고 나가지 않으니 적은 식량이 떨어져 장차 물러가려 하였다. 강세에게 명하여 날쌘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여 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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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6 三國史記(1145) 百濟
近肖古王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체격과 용모가 기이하고 빼어났으며 원대한 식견이 있었다. 계왕이 죽자 왕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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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7.01 三國史記(1145)
(백제)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내고, 진정(眞淨)을 조정좌평으로 삼았다. 정은 왕후의 친척으로서 성질이 흉악하고 어질지 못하였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까다롭고 잔소리가 많았다. 그는 권세를 믿고 함부로 행동하여, 백성들이 그를 미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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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9 三國史記(1145)
(고려) 왕이 전(前) 동이호군 송황(宋晃)을 연(燕)으로 보내다. 연왕 모용준이 그를 용서하고 이름을 바꾸어 활(活)이라 하고 벼슬을 내려 중위(中尉)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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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9 자치통감(1084)
高句麗王釗送前東夷護軍宋晃于燕,燕王俊赦之,更名曰活,拜爲中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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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3 동리(佟利)
永和九年遼東韓玄菟太守領佟利造 353년에 요동·한·현도군을 관할하는 태수인 동리가 만들었다. --> 안악3호무덤의 동수(佟壽)처럼 고려의 지배체제로 흡수된 낙랑인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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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5 三國史記(1145)
(고려) 겨울 12월에 왕은 사신을 연나라에 보내 인질과 조공을 바치면서 어머니를 돌려보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연나라 왕 준이 이것을 허락하고 전중장군 조감을 보내 왕의 어머니 주씨를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왕을 정동대장군 영주자사로 삼고, 낙랑공으로 봉하고, 왕호는 예전과 같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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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7 동수(佟壽)
무덤의 주인은 동수(冬壽)로 진서(晉書)와 자치통감에 나오는 동수(佟壽)로 추정된다. 명문에 있는 ‘永和十三年’는 동진의 연호로서 서기 357년에 해당된다. 使持節 都督 諸軍事 平東將軍 護撫夷校尉 樂浪相 昌黎玄菟帶方太守 都鄕侯 사지절 도독 제군사 평동장군 호무이교위 낙랑상 창려현토대방태수 도향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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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9 ❰❰ 0059.05 三國誤記 新羅
왜국과 우호관계를 맺고 사신을 교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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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3.10 ❰❰ 0063 「三國誤記」 新羅
백제 왕이 땅을 넓혀 낭자곡성(娘子谷城)에 이르러, 사자를 보내 만나기를 청하였으나 왕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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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4.04 三國史記(1145)
왜의 군사가 대거 이르렀다. 왕이 듣고서 대적할 수 없을까 두려워 풀로 허수아비 수천 개를 만들어 옷을 입히고 무기를 들려서 토함산 아래에 나란히 세워 두었다. 그리고 용맹한 군사 1천 명을 부현의 동쪽 들판에 숨겨놓았다. 왜인이 자기 무리가 많음을 믿고 곧바로 나아가자 숨어 있던 군사가 일어나 불의에 공격하였다. 왜군이 크게 패하여 달아나므로 추격하여 그들을 거의 다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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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4.07 日本書紀(720)
백제왕이 久氐·彌州流·莫古 세 사람을 보내어 일본에 조공하게 했는데 이들이 卓淳國에 와 길을 물었으나, 길을 알 지 못하며 또 큰 배가 있어야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본에서 사신이 오면 자기 나라에 알려 달라는 부탁을 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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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4.08 ❰❰ 0064 「三國誤記」 新羅
백제가 군사를 보내 와산성(蛙山城)을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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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4.10 ❰❰ 0064 「三國誤記」 新羅
다시 구양성(狗壤城)을 공격하자 왕이 기병 2천을 보내 공격해 패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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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6 ❰❰ 0066 「三國誤記」 新羅
백제가 와산성을 공격해 함락하고서 2백 인을 남겨 머물러 지키게 했으나, 얼마 안 가 이를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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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6.03 日本書紀(720)
斯摩宿禰를 탁순에 보냈는데, 斯摩宿禰는 탁순왕 末錦旱岐로부터 백제 이야기를 듣고 爾波移와 過古를 백제에 보냈다. 백제 肖古왕은 매우 기뻐하며 후하게 대접하였다. 爾波移는 돌아와 志摩宿禰에게 보고하였고 志摩宿禰는 탁순으로부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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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6.03 三國史記(1145) 百濟
신라에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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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7.04 日本書紀(720)
백제왕이 久氐·彌州流·莫古를 보내어 조공하게 했는데 신라국의 調使도 함께 왔다. 千熊長彥을 신라에 파견하여 백제의 헌상물을 함부로 바꾼 것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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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8 三國史記(1145) 百濟
신라에 사신을 보내 좋은 말 두 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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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0474 年代記
왜와 백제가 연합하여 신라, 7국, 침미다례 그리고 4읍을 공략하여 나눠가진 때부터 고려가 백제의 한성을 차지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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