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韓國史 이전의 中国 > 壇君┆箕子┆韓準┆衛滿┆金日磾

三皇(伏羲+神農+黃帝)┆五帝(少昊+顓頊+嚳+堯+舜)┆箕子┆韓準┆衛滿┆金日磾┆韓陰┆王唊┆王調┆王閎┆王遵┆冬壽┆鎭
 
Pet Dictionary
What breed is this pet?
 
❶ 黃帝 軒轅
黃帝者 少典之子 姓公孫 名曰軒轅┆教熊羆貔貅貙虎 以與炎帝戰於阪泉之野 三戰然後得其志┆黃帝乃徵師諸侯 與蚩尤戰於涿鹿之野 遂禽殺蚩尤┆軒轅 → 玄囂+昌意
2841#22071 SIBLINGS CHILDREN 22071
 
❷ 顓頊 高陽
① 軒轅 → 昌意 → ② 高陽
2841#22072 SIBLINGS CHILDREN 22072
 
❸ 帝嚳 高辛
① 軒轅 → 玄囂 → 蟜極 → ③ 高辛
2841#14895 SIBLINGS CHILDREN 14895
 
❹ 帝堯 陶唐 放勛
① 軒轅 → 玄囂 → 蟜極 → ③ 高辛 → ④ 陶唐
2841#19918 SIBLINGS CHILDREN 19918
 
❺ 虞舜 重華
① 軒轅 → 昌意 → ② 高陽 → 窮蟬 → 敬康 → 句望 → 橋牛 → 瞽叟 → ⑤ 虞舜
2841#21993 SIBLINGS CHILDREN 21993
 
-2070~-1600 夏
① 軒轅 → 昌意 → ② 高陽 → 鯀 → ⑥ 禹(文命)
2841#21997 SIBLINGS CHILDREN 21997
 
-1600~-1046 商
2841#21998 SIBLINGS CHILDREN 21998
 
-1046~-0771 周
2841#22013 SIBLINGS CHILDREN 22013
 
-0771 ~ -0403 春秋時代
2841#22012 SIBLINGS CHILDREN 22012
 
-0566 韓氏
2841#28895 SIBLINGS CHILDREN 28895
 
-0479 ① 論語 箕子為之奴
微子去之 箕子為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2841#7238 SIBLINGS CHILDREN 7238
 
-0403 ~ -0221 戰國時代
2841#29491 SIBLINGS CHILDREN 29491
 
-0091 史記
❶ 사기(-91)에는 穢, 貉, 朝鮮, 眞番 그리고 臨屯이 나오지만 韓은 나오지 않는다.
2841#30309 SIBLINGS CHILDREN 30309
 
-0195 衛滿
2841#4402 SIBLINGS CHILDREN 4402
 
-0157 ② 尙書大傳 以朝鮮封之
武王勝殷 繼公子祿父 釋箕子囚 箕子不忍周之釋 走之朝鮮 武王聞之 因以朝鮮封之 箕子既受周之封 不得無臣禮 故於十三祀來朝
2841#7239 SIBLINGS CHILDREN 7239
 
-0134~-0086 金日磾
2841#22055 SIBLINGS CHILDREN 22055
 
-0108 韓陰┆王唊
2841#22102 SIBLINGS CHILDREN 22102
 
-0091 ③ 史記 鴻範九等
武王既克殷 訪問箕子┆鴻範九等┆武王乃封箕子於朝鮮而不臣也 其後箕子朝周 過故殷虛
2841#22049 SIBLINGS CHILDREN 22049
 
0030 王調┆王閎┆王遵
2841#22371 SIBLINGS CHILDREN 22371
 
0082 ④ 漢書 犯禁八條
殷道衰 箕子去之朝鮮 敎其民以禮義 田蠶織作 樂浪朝鮮民犯禁八條 相殺以當時償殺 相傷以谷償 相盜者男沒入爲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 人五十萬
2841#18203 SIBLINGS CHILDREN 18203
 
0163 ◐ 韓西(潛夫論)
其後 韓西亦姓韓 爲衛滿所伐 遷居海中
2841#1939 SIBLINGS CHILDREN 1939
 
0265 ⑤ 魏略 箕子之後朝鮮侯
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爲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爲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其大夫禮諫之 乃止
2841#18365 SIBLINGS CHILDREN 18365
 
0289 ◉ 韓準(三國志·魏略)
將其左右宮人走入海 居韓地 自號韓王
2841#18378 SIBLINGS CHILDREN 18378
 
0357 冬壽
2841#11021 SIBLINGS CHILDREN 11021
 
0408 鎭
2841#22002 SIBLINGS CHILDREN 22002
 
0445 ◉ 韓準(後漢書)
初 朝鮮王準爲衛滿所破 乃將其餘衆數千人走入海 攻馬韓破之 自立爲韓王
2841#22009 SIBLINGS CHILDREN 22009
 
0509~0522 樂浪 遂城人 王氏 墓誌銘
樂浪名邦 王氏名宗┆其先出自有殷 周武王剋商 封箕子於朝鮮 子孫因而氏焉┆殷有三人 周訪九疇 只族王家 藉冑鮮侯
2841#22068 SIBLINGS CHILDREN 22068
 
0648 晉書
自云高陽氏之苗裔 故以高為氏焉
2841#22061 SIBLINGS CHILDREN 22061
 
0681 文武王陵碑
(秺)侯祭天之胤傳七葉
2841#22063 SIBLINGS CHILDREN 22063
 
0695 金仁問墓碑
五之君少皥▨墟分星于而超碧海金天命
2841#22067 SIBLINGS CHILDREN 22067
 
0864 大唐故金氏夫人墓銘
少昊氏金天卽吾宗受氏世祖┆遠祖諱日磾
2841#22064 SIBLINGS CHILDREN 22064
 
1281 壇君
2841#29498 SIBLINGS CHILDREN 29498
 
  中国↝半島
中国↝半島
2841#22011 SIBLINGS CHILDREN 22011
 
❶ 黃帝 軒轅
黃帝는 少典의 자손으로 성을 公孫, 이름은 軒轅이라 불렀다. 神農氏가 쇠약해져 제후들이 서로 침략 정벌하고 백성들에게 포악하게 굴었으나 神農氏는 정벌할 수 없었다. 이에 軒轅은 창과 방패의 사용법을 익혀서 조공하지 않는 제후들을 정벌하니 모두 신하로 복종했다. 곰, 호랑이, 범 등 맹수들을 훈련시켜 阪泉 들에서 炎帝와 세 번 싸운 끝에 뜻을 이루었다. 제후들의 군사를 징발해 涿鹿의 들에서 蚩尤와 싸워 마침내 蚩尤를 잡아 죽였다.
2841#11022 SIBLINGS CHILDREN 11022
 
❷ 顓頊 高陽
黃帝는 軒轅 언덕에 살면서 西陵族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니 이가 嫘祖이다. 嫘祖는 黃帝의 정비로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 후손 모두가 천하를 얻었다. 하나가 玄囂, 즉 靑陽이다. 靑陽은 江水에 내려가 살았다. 둘째는 昌意로서 若水에 내려가 살았다. 昌意는 昌僕이라는 蜀山氏의 딸을 아내로 얻어 高陽을 낳았다.┆帝顓頊은 黃帝의 손자이자 昌意의 아들로 차분하고 지략이 있어 사리에 밝았다.
2841#14897 SIBLINGS CHILDREN 14897
 
❸ 帝嚳 高辛
帝嚳 高辛은 黃帝의 증손이다. 高辛의 부친은 蟜極이며, 蟜極의 부친은 玄囂이고, 玄囂의 부친이 黃帝이다.
2841#14896 SIBLINGS CHILDREN 14896
 
-2324~-2255 ❹ 帝堯 陶唐
帝嚳은 陳鋒氏의 딸을 아내로 맞아 放勛을 낳고 娵訾氏의 딸을 취해 摯를 낳았다. 帝嚳이 세상을 떠나자 摯가 뒤를 이었다. 帝摯가 뒤를 이었으나 잘 다스리지 못하자 동생 放勛을 세우니 이가 帝堯이다.┆帝堯는 放勛이다.
2841#22078 SIBLINGS CHILDREN 22078
 
-2294~-2184 ❺ 虞舜
堯立七十年得舜 二十年而老 令舜攝行天子之政 薦之於天┆虞舜者 名曰重華 重華父曰瞽叟 瞽叟父曰橋牛 橋牛父曰句望 句望父曰敬康 敬康父曰窮蟬 窮蟬父曰帝顓頊 顓頊父曰昌意 以至舜七世矣
2841#25010 SIBLINGS CHILDREN COMMENT 25010
 
-2070 ~ -1600 夏
-2070 ~ -1600 夏
2841#29489 SIBLINGS CHILDREN 29489
 
-2070 史記(-91)
帝舜은 하늘에 禹를 천거하여 후계자로 삼았다. 17년 뒤 帝舜이 세상을 떠났다. 3년 상을 마치고 禹는 舜의 아들 商均에게 양보하고 陽城으로 피했다.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商均을 떠나 禹에게 인사를 드렸다. 禹는 그제야 천자 자리에 올라 남면하고 천하에 임했다. 나라 이름을 夏后라 하고 성을 姒씨라 했다.
2841#22081 SIBLINGS CHILDREN 22081
 
-2070 史記(-91)
夏禹는 이름을 文命이라 했다. 禹의 아버지는 鯀이라 했고, 鯀의 아버지가 帝顓頊이다. 顓頊의 아버지는 昌意이고, 昌意의 아버지가 黃帝이다. 禹는 黃帝의 현손이자 顓頊의 손자이다.
2841#3727 SIBLINGS CHILDREN 3727
 
-1600 ~ -1046 商
-1600 ~ -1046 商
2841#29490 SIBLINGS CHILDREN 29490
 
-1046 ~ -0771 周
-1046 ~ -0771 周
2841#25012 SIBLINGS CHILDREN 25012
 
-0771 ~ -0403 春秋時代
-0771 ~ -0403 春秋時代
2841#8347 SIBLINGS CHILDREN 8347
 
-0771 史記(-91)
771년에 周 幽王이 무도하여 犬戎이 幽王을 죽이자 周는 동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秦 襄公이 처음으로 제후의 반열에 올랐다.
2841#21972 SIBLINGS CHILDREN 21972
 
-0566 史記(-91)
韓의 선조는 주와 같은 성인 姬씨이다. 그 후예들은 晉을 섬겨 韓原을 봉지로 얻어 韓武子라 했다. 韓武子 이후 3세손에 韓厥이 있었는데, 봉지의 이름을 성으로 삼아 韓씨라 했다.
2841#27516 SIBLINGS CHILDREN 27516
 
-0479 論語
微子去之 箕子為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미자는 떠나고 기자는 노비가 되었으며 비간은 거스르는 말을 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공자는 은나라에 세 명의 어진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2841#41010 SIBLINGS CHILDREN COMMENT 41010
 
-0403 ~ -0221 戰國時代
-0403 ~ -0221 戰國時代
2841#18674 SIBLINGS CHILDREN 18674
 
-0403 史記(-91)
韓, 魏, 趙를 제후로 인정했다.
2841#41944 SIBLINGS CHILDREN COMMENT 41944
 
-0334 史記(-91)
燕 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嘑沱易水 연은 동쪽으로 조선과 요동이, 북쪽으로는 임호와 누번이, 서쪽으로는 운중과 구원이, 남쪽으로는 호타하와 역수가 있습니다.
2841#16358 SIBLINGS CHILDREN 16358
 
-0334
-0334
2841#22007 SIBLINGS CHILDREN 22007
 
-0311⁻ 史記(-91)
北鄰烏桓夫餘 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연나라는 북으로 오환 및 부여와 이웃하고 동으로 예맥, 조선 그리고 진번과 교류하여 이익을 얻었다.
2841#16359 SIBLINGS CHILDREN 16359
 
-0296 竹書紀年
▐ 竹書紀年은 黃帝의 시대로부터 戰國時代 魏 襄王(-318~-296)에 이르기까지의 일이 저술되어 있다. 279년에 魏 襄王의 무덤에서 대나무에 기록된 형태로 발견되었다. 이것을 학자들이 책으로 편찬하였는데 이 책도 점차 분실되어 남송시대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심약의 주가 붙은 今本竹書紀年이 있는데 이는 명나라 때의 위작으로 간주된다. 1917년에 왕국유가 고서에 인용된 기록을 모아 古本竹書紀年을 편찬하였는데, 여기에는 箕子 이야기가 없다.
2841#29485 SIBLINGS CHILDREN OPEN
 
-0283 史記(-91) 燕┆眞番┆朝鮮
自始全燕時嘗略屬眞番朝鮮爲置吏築鄣塞 연나라가 그 전성기 때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보루과 요새를 쌓았다.
2841#16357 SIBLINGS CHILDREN 16357
 
-0283 魏略(265±)
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爲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爲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其大夫禮諫之 乃止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연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라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도 역시 스스로 왕호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공격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 하였는데, 그의 대부 예(禮)가 말리므로 중지하였다.
2841#18228 SIBLINGS CHILDREN 18228
 
-0230 史記(-91) 韓
秦이 왕 安을 포로로 잡고 그 땅을 전부 편입시켜 潁州郡으로 삼았다. 韓이 마침내 멸망했다. (-226년에 옛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되면서 安도 처형되었다.)
2841#41948 SIBLINGS CHILDREN COMMENT 41948
 
-0222 史記(-91) 燕
秦이 遼東을 빼앗고 燕王 喜를 사로잡아 마침내 燕을 멸망시켰다.
2841#8354 SIBLINGS CHILDREN 8354
 
-0209± 魏略(265±) 燕┆齊┆趙
陳項起 天下亂 燕齊趙民愁苦 稍稍亡往準 準乃置之於西方 진승과 항우가 기병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燕·齊·趙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차츰 차츰 準에게 망명하므로 準은 이들을 서부 지역에 거주하게 하였다.
2841#4403 SIBLINGS CHILDREN 4403
 
-0209± 三國志(289) 秦
辰韓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노인들이 대대로 전하기를 “옛날의 망명인으로 秦의 고역을 피해 한국으로 왔는데 마한이 그들의 동쪽 땅을 떼어 우리에게 주었다”고 하였다. 그들의 말은 마한과 달라 秦 사람들과 흡사하니 단지 燕과 齊의 명칭만은 아니었다. 낙랑 사람을 阿殘이라 하였는데 동방 사람들은 나라는 말을 阿라 하였으니 낙랑인들은 본디 그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秦韓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2841#2124 SIBLINGS CHILDREN 2124
 
-0209± 三國志(289) 燕┆齊┆趙
陳勝等起 天下叛秦 燕齊趙民避地朝鮮數萬口 진승 등이 일어나 온 천하가 秦에 반기를 드니, 燕·齊·趙의 백성 수만인이 조선으로 피난하였다.
2841#6795 SIBLINGS CHILDREN 6795
 
-0209 史記(-91) 衛
二十五年 元君卒 子君角立 君角九年 秦并天下 立為始皇帝 二十一年 二世廃君角為庶人 衛絶祀 25년에 원군이 죽고 아들 각이 즉위했다. 위군 각 9년에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시황제가 즉위했다. 21년에 진나라 2세가 위군 각을 평민으로 내치니 이로써 衛의 제사가 끊어졌다.
2841#8355 SIBLINGS CHILDREN 8355
 
-0209 ~ -0206 韓廣
상곡의 졸 한광은 진나라 말기에 연 땅에서 연왕을 자칭했다. 장도가 연왕으로 오자 요동왕으로 옮겼다가 무종에서 장도에게 죽임을 당했다.
2841#27832 SIBLINGS CHILDREN 27832
 
-0209 三國志(289)
陳勝 등이 일어나 온 천하가 秦에 반기를 드니, 燕·齊·趙의 백성 수만인이 조선으로 피난하였다.
2841#41931 SIBLINGS CHILDREN COMMENT 41931
 
-0195⁺ 史記(-91)
燕丹散亂遼間 蒲收其亡民 厥聚海東 以集真藩 葆塞為外臣 연과 단의 무리가 요를 어지럽힐 때 만은 유민을 거두어 해동에 모아 眞番에 집결시키고 변방의 외신이 되었다.
2841#5812 SIBLINGS CHILDREN 5812
 
-0195± 史記(-91)
燕王盧綰反入匈奴滿亡命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연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 인을 모아 몽치 머리에 오랑캐의 복장으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秦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燕과 齊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
2841#21991 SIBLINGS CHILDREN 21991
 
-0195? 魏略(265?)
及漢以盧綰為燕王 朝鮮與燕界於浿水 及綰反 入匈奴 燕人衞滿亡命 為胡服 東度浿水 詣準降 한나라 때에 이르러 노관으로 연왕을 삼으니, 조선과 연은 패수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간 뒤 연나라 사람 위만도 망명하여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에게 항복하였다.
2841#8350 SIBLINGS CHILDREN 8350
 
-0195+ 史記(-91)
燕丹散亂遼間 蒲收其亡民 厥聚海東 以集真藩 葆塞為外臣 연과 단의 무리가 요를 어지럽힐 때 만은 유민을 거두어 해동에 모아 眞番에 집결시키고 변방의 외신이 되었다.
2841#21992 SIBLINGS CHILDREN 21992
 
-0177 後漢書(445)
왕경은 자가 중통인데 낙랑 남감 사람이다. 8세조 仲은 낭야 불기 사람인데 도술을 좋아하고 천문에 밝았다. 여씨가 횡포를 부리자 유애왕 襄이 군사를 일으키려 여러 차례 仲에게 자문을 구했다. 제북왕 흥거가 반란을 일으켜 병사의 일을 그에게 맡기려하자 화가 미칠까 두려워 바다 건너 낙랑의 산 속으로 도망가 정착해 살았다. ▐ 이때는 낙랑군이 설치되기 전이므로 여기에 나오는 낙랑은 훗날 낙랑이 되는 조선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2841#7321 SIBLINGS CHILDREN COMMENT 7321
 
-0157⁻ 尙書大傳
武王勝殷 繼公子祿父 釋箕子囚 箕子不忍周之釋 走之朝鮮 武王聞之 因以朝鮮封之 箕子既受周之封 不得無臣禮 故於十三祀來朝 무왕은 은을 이기자 공자 녹부에 이어 기자를 감옥에서 풀어주었다. 기자는 주나라에 의해 석방된 것을 언짢게 여겨 조선으로 달아났다. 무왕이 그 소식을 듣고 조선을 그의 영지로 내려 주었다. 기자는 이제 주나라로부터 영지를 받았으니 신하의 예의를 안 지킬 수 없어 무왕 13년에 조배하러 왔다.
2841#41012 SIBLINGS CHILDREN COMMENT 41012
 
-0157⁻ ◾朝鮮
-1046년경에 벌써 朝鮮이라 불리는 지역 또는 종족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史記(91)에도 -334년에 이르러서야 燕에 접한 지역으로 朝鮮이 언급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箕子가 朝鮮으로 가자 武王이 朝鮮에 봉했다는 이야기는 戰國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195년경에 燕의 衛滿이 朝鮮으로 가 왕이 된 사례가 이 이야기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尙書를 복원하던 漢 文帝(-180~-157)시기가 어울린다.
2841#22052 SIBLINGS CHILDREN 22052
 
-0157⁻ ◾書→尙書→書經
書는 虞書 5편, 夏書 4편, 商書 17편 그리고 周書 32편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堯舜시대(-2324~-2184), 夏나라(-2070~-1600), 商나라(-1600~-1046) 그리고 周나라(-1046~-0771)의 정사에 관한 문서를 모아 孔子(-551~-479)가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戰國시대(-403~-221)에는 공문서라는 의미로 書라고 했다가 유학을 숭상하고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漢나라(-202~220) 때에 유학자들이 숭상해야 할 고대의 ...
2841#22045 SIBLINGS CHILDREN COMMENT 22045
 
-0134~-0086 漢書(82) 金日磾
2841#22054 SIBLINGS CHILDREN 22054
 
-0109⁻ 史記(-91)
傳子至孫右渠 所誘漢亡人滋多 又未嘗入見 眞番旁眾國欲上書見天子 又擁閼不通 (위만조선은)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 때에 이르러서는 유인해 낸 한나라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또 천자에게 배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2841#4404 SIBLINGS CHILDREN 4404
 
-0109⁻ 魏略(265±)
初 右渠未破時 朝鮮相歷谿卿以諫右渠不用 東之辰國 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 亦與朝鮮貢蕃不相往來 일찍이 우거가 격파되기 전에, 조선 상 역계경이 우거에게 조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辰國으로 갔다. 그 때 백성으로서 그를 따라가 그 곳에 산 사람이 2천여 호나 되었는데, 그들도 역시 조선에 조공하는 번국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2841#5818 SIBLINGS CHILDREN 5818
 
-0108 漢四郡
-0108 漢四郡
한나라는 위만조선을 침공하여 왕조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4군을 설치하였다. 기자설화는 이 침공과 통치를 정당화하는 기능이 있다.
2841#17061 SIBLINGS CHILDREN 17061
 
-0108 史記(-91)
左將軍이 양군을 합하여 맹렬히 朝鮮을 치니, 朝鮮의 相 路人, 相 韓陰, 尼谿相 參 그리고 將軍 王唊이 서로 모의하기를, “처음 樓船에게 항복하려 했으나 樓船은 지금 잡혀 있고 左將軍 단독으로 장졸을 합하여 전투가 더욱 맹렬하여 맞아서 싸우기 두려운데도 왕은 항복하려 하지 않는다.” 하고 陰·唊·路人이 모두 도망하여 漢에 항복하였다. 路人은 도중에 죽었다.
2841#41939 SIBLINGS CHILDREN COMMENT 41939
 
-0091 史記 宋微子世家
武王은 殷을 이기고 나서 箕子를 방문하였다.┆鴻範九等┆武王이 곧 箕子를 朝鮮에 봉했으나 신하는 아니었다. 그 후 箕子는 周에 배알하고 옛 殷虛를 지나게 되었는데 궁궐이 무너지고 그곳에 벼와 기장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슬퍼하여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그런 일은 부인들이나 하는 거라 시만 한 수 지어 읊었다.
2841#5942 SIBLINGS CHILDREN COMMENT 5942
 
-0091 史記
穢貉┆朝鮮┆真番
2841#21995 SIBLINGS CHILDREN OPEN
 
-0091 史記 宋微子世家
▐ 武王이 죽고 成王이 뒤를 잇자 반란이 일어났는데 武庚이 연루되어 죽임을 당했다. 이에 微子로 하여금 제사를 잇게 하고 宋에 나라를 세우게 했다.
2841#22083 SIBLINGS CHILDREN 22083
 
-0091 史記 宋微子世家
▐ 尙書에는 箕子가 朝鮮으로 달아나자 朝鮮에 봉했다고 되어 있으나 史記에는 箕子를 방문하여 鴻範九等을 듣고 난 후 朝鮮에 봉했다고 되어 있다. -1046년경에는 周의 영향력이 대동강은 물론 요하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尙書의 이야기가 더 자연스럽다. 또 箕子로부터 鴻範九等을 들었다는 이야기는 尙書에 없던 것인데, 箕子가 달아났다는 이야기와 모순되기 때문에 史記에서는 箕子를 방문했다는 이야기로 바뀐 듯하다.
2841#41016 SIBLINGS CHILDREN COMMENT 41016
 
-0091 史記 宋微子世家
▐ 殷 帝乙의 큰아들이자 紂王의 배다른 형인 微子 開는 紂王에게 여러 차례 간하다 듣지 않자 떠났다. 紂王의 친척인 箕子도 紂王에게 여러 차례 간하다 듣지 않자 미친 척하며 노예가 되었다. 역시 紂王의 친척인 比干도 箕子가 노예가 되는 것을 보고 간하다 죽임을 당했다. 周 武王이 殷 紂王을 토벌하자 微子는 투항하였다. 武王은 紂王의 아들 武庚祿父에게 殷 왕조의 제사를 잇게 하고 箕子를 방문하여 鴻範九等을 듣고 朝鮮에 봉했으나 신하로 대하지는 않았다.
2841#18219 SIBLINGS CHILDREN 18219
 
-0091 史記 宋微子世家
▐ 尙書와 똑같은 이 이야기가 사기(-91)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91년 당시에 그런 이야기가 분명히 있긴 있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108년에 있었던 漢의 朝鮮 침공과 낙랑군 설치를 정당화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그 즈음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尙書의 이야기는 사기(91) 이후 추가된 것이다.
2841#22050 SIBLINGS CHILDREN 22050
 
-0057 三國史記(1145)
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是爲辰韓六部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 여기에 나오는 조선의 유민은 위만조선이 망하기 전에 역계경이 2천여 호를 이끌고 진국으로 망명한 사건과 연결시켜 볼 수도 있고, 기록에는 없지만 위만조선이 망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했을 유민으로 볼 수도 있다.
2841#5795 SIBLINGS CHILDREN COMMENT 5795
 
-0045 樂浪木簡
조선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의 학술지 '력사과학'에 게재된 손영종의 논문에는 낙랑 총 인구의 14%인 4만 명이 漢族이며, 나머지 86%는 土着民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2841#11020 SIBLINGS CHILDREN 11020
 
(8) 三皇五帝
0695 新羅3황5제王氏源派記(車柳氏宗譜史由來)뿌리를 찾아서 - 開城王氏
 
0020~0023 魏略(265?)
낙랑의 한족 1500명이 진한에 잡혀 노예로 살다가 3년 후 귀환되면서 진한인 15,000명이 보상으로 낙랑에 보내어 졌다. 낙랑의 한족과 진한인은 언어가 달랐다.
2841#32198 SIBLINGS CHILDREN COMMENT 32198
 
0030 後漢書(445)
建武六年 光武遣太守王遵將兵擊之 至遼東 閎與郡決曹史楊邑等共殺調迎遵 광무제가 태수 왕준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게 하였다. 요동에 이르자 왕굉이 결조사 양읍과 함께 왕조를 죽이고 왕준을 맞이하였다.
2841#22103 SIBLINGS CHILDREN 22103
 
0082 漢書
殷道衰 箕子去之朝鮮 敎其民以禮義 田蠶織作 樂浪朝鮮民犯禁八條 相殺以當時償殺 相傷以谷償 相盜者男沒入爲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 人五十萬 은나라 도가 쇠퇴하자 기자가 조선으로 가서 그 사람들에게 예의, 농사, 양잠 그리고 길쌈을 가르쳤다. 낙랑조선 사람들이 금8조를 범하면,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하고 상처를 입히면 곡식으로써 배상하며 도둑질한 자는 남자는 가노로 삼고 여자는 비로 삼되 속죄받으려면 한 사람당 50만을 내야 했다.
2841#5943 SIBLINGS CHILDREN COMMENT 5943
 
0082 漢書
▐ 箕子가 朝鮮에 봉해졌다는 시기로부터 1,000여년이 지난 후 등장한 이야기다. 따라서 이 금8조는 衛滿朝鮮이 망할 즈음의 朝鮮 법률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2841#16392 SIBLINGS CHILDREN 16392
 
0082 漢書
郡初取吏於遼東 吏見民無閉臧 及賈人往者 夜則爲盜 俗稍益薄 今於犯禁浸多 至六十餘條 처음에는 요동에서 관리를 뽑아왔는데 사람들이 문을 닫아걸지 않는 것을 보고 관리나 상인들이 밤에 도둑질을 하여 풍속이 나빠졌다. 법을 어기는 일이 많아지자 법조문이 60조로 불어났다. ▐ 위만조선때 8조에 불과했던 법률이 한나라의 통치 이후 60조로 늘어났다.
2841#19682 SIBLINGS CHILDREN 19682
 
0082 漢書
穢貉┆朝鮮┆真番
2841#30328 SIBLINGS CHILDREN OPEN
 
0163⁻ 潛夫論
衛鞅(390~338) 康叔之孫也
2841#8352 SIBLINGS CHILDREN 8352
 
0163⁻ 潛夫論 -0828~-0782
昔周宣王亦有韓侯 其國也近燕 故詩雲 普彼韓城 燕師所完 옛날 주나라 선왕 때에도 한후가 있었다. 연나라에 가까이 있어서 시경에서 '커다란 저 한나라 성은 연나라 백성들이 완성시킨 것이다'라고 하였다. ▐ 죽서기년에는 -1030년에 周成王이 燕으로 하여금 韓을 위해 성을 쌓게 하고 韓侯에게 명을 내렸다고 되어 있다. 周宣王 때인 -824년에는 왕이 궐부와 韓에 명하자 韓侯가 입조하였다고만 되어 있다.
2841#41953 SIBLINGS CHILDREN COMMENT 41953
 
0163⁻ 潛夫論 -0802~-0731
凡桓叔之後 有韓氏 言氏 嬰氏 禍餘氏 公族氏 張氏 此皆韓後姬姓也┆桓叔의 후손에는 한씨, 언씨, 영씨, 화여씨, 공족씨, 장씨가 있는데 모두 韓의 후손으로 성은 姬다.
2841#41954 SIBLINGS CHILDREN COMMENT 41954
 
0163⁻ 潛夫論 -0202
信子孫餘留匈奴中者 亦常在權寵 爲貴臣┆韓信의 자손 중 匈奴에 남은 자들은 역시 항상 군주에게 총애를 받고 권력을 가져 지위가 높은 대신이 되었다.
2841#18208 SIBLINGS CHILDREN 18208
 
0163⁻ 潛夫論 -0195
其後韓西亦姓韓 為衛滿所伐 遷居海中 그 후 韓西 역시 韓을 성으로 삼았으나 衛滿에 공격당하여 바다 가운데로 옮겨갔다.
2841#27587 SIBLINGS CHILDREN 27587
 
0200 前漢紀
朝鮮本秦時屬遼東 漢興以爲其遠難守 故遼水為塞 盧綰之反也 燕人衛滿亡命 聚黨千餘人 在遼居秦故地 稍稍侵屬其東小蠻夷 而王之 조선은 원래 진나라 때 요동에 속했는데 한나라 때는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고 요수를 요새로 삼았다. 노관이 반란을 일으키자 연나라 사람 위만이 천여명의 무리를 모아 망명했는데 요에 있으면서 진나라의 옛 땅에 거주했다. 점점 그 동쪽의 작은 오랑캐들을 복속시켜 왕이 되었다. ▐ 滿의 성은 나타나나 準에 대한 언급은 없다.
2841#6383 SIBLINGS CHILDREN OPEN
 
0220⁻ 箕子
2841#19675 SIBLINGS CHILDREN 19675
 
0265± 魏略
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爲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爲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其大夫禮諫之 乃止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가 약해지고 연이 스스로를 높여 왕을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 하자 조선후도 왕을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을 역공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 하였는데 대부 례가 말리므로 중지하였다.
2841#7601 SIBLINGS CHILDREN 7601
 
0265±  ◾箕子
0265± ◾箕子
箕子는 殷 紂王의 폭정에 반대하다 노비가 되었다. 殷은 商이라고도 하는데, 결국 周의 武王에 의해 -1046년경에 멸망당했다. 이때 箕子의 행방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었는데, -195년경에 燕의 滿이 朝鮮으로 가 왕이 되자, 이에 영향을 받아 箕子 또한 朝鮮으로 달아났고 그러자 武王이 朝鮮에 봉했다는 이야기가 漢 文帝(-180~-157) 시기에 만들어져 尙書大傳에 수록되었다. 今本竹書紀年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尙書大傳 이후에 추가된 듯하다.
2841#22582 SIBLINGS CHILDREN 22582
 
0265± ◾箕子
0265± ◾箕子
이후 유학을 숭상하는 漢의 분위기 속에서 箕子가 鴻範九等을 만들어 武王에게 전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져 史記(-91)에 수록되었고, 漢이 滿朝鮮을 병합한 -108년 이후에는 滿朝鮮의 犯禁八條도 箕子가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져 漢書(82)에 수록되었다. 이어서 滿에 의해 멸망당한 朝鮮의 왕조가 箕子의 후손이었다는 이야기까지 만들어져 魏略(265)에 수록되었다.
2841#1748 SIBLINGS CHILDREN 1748
 
0265± ◾韓
한나라는 -108년에 위만조선을 정벌하고 낙랑, 眞番, 임둔 그리고 현도군을 설치했다. -82년에는 임둔과 함께 眞番을 폐지하고 眞番 15현 중 7현만 낙랑에 소속시켰다. 낙랑은 眞番의 나머지 8현을 되찾기 위해 '원래 조선은 기자의 후예인 韓氏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연나라에서 망명해온 위만에게 쫓겨 바다 건너 韓王이 되었고 그래서 그곳을 韓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이어 眞番 남쪽에 있던 辰國도 韓으로 묶어 辰韓이라 했다.
2841#16354 SIBLINGS CHILDREN 16354
 
0289 三國志(魏略)
將其左右宮人走入海 居韓地✘ 自號韓王 준왕은 그의 근신과 궁인들을 거느리고 도망하여 바다를 건너가 스스로 한왕이라 칭하였다. (其子及親留在國者 (因冒→)不改姓韓氏 準王海中 不與朝鮮相往來 준의 아들과 친척 중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한씨 성을 바꾸지 않았다. 준은 해외에서 왕이 되었으나 조선과는 왕래하지 않았다.)
2841#18258 SIBLINGS CHILDREN 18258
 
0348 帶方太守 張撫夷
2841#22001 SIBLINGS CHILDREN 22001
 
0357 冬壽
遼東 平郭 → 樂浪高麗
2841#22000 SIBLINGS CHILDREN 22000
 
0408 鎭
信都縣 → 樂浪高麗
2841#22060 SIBLINGS CHILDREN 22060
 
0445 後漢書
初朝鮮王準爲衛滿所破乃將其餘衆數千人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爲韓王 과거에 조선왕 준이 위만에게 패하자 남은 무리 수천명을 거느리고 바다로 도망가 마한을 공격하여 쳐부수고 스스로 韓王이 되었다. ▐ 遷居海中 → 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 → 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爲韓王 바다 가운데가 韓地로 바뀌더니 다시 馬韓으로 바뀌었다. ┆삼국지(289)의 將其左右宮人도 將其餘衆數千人으로 불어났다.
2841#22008 SIBLINGS CHILDREN 22008
 
0509~0522 樂浪 遂城人 王氏 墓誌銘
樂浪名邦 王氏名宗 낙랑은 이름있는 나라이며 왕씨는 이름 있는 집안이다.┆其先出自有殷 周武王剋商 封箕子於朝鮮 子孫因而氏焉 그 선조는 은으로부터 나왔으니 주무왕이 상을 정복하고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는데, 자손이 이로 인하여 성씨를 삼았다.┆殷有三人 周訪九疇 只族王家 藉冑鮮侯 은나라에 세 어진 신하가 있어 주나라가 9주를 물었다. 그 집안이 성을 왕씨라 하고 자손들이 조선후가 되었다.
2841#22065 SIBLINGS CHILDREN 22065
 
0648 晉書
慕容雲 字子雨 寶之養子也 祖父和 高句驪之支庶 自云高陽氏之苗裔 故以高為氏焉 ┆慕容雲은 자가 子雨인데 寶의 양자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和인데 高句驪에서 갈라져 나왔다. 高陽의 후손이라 高씨라 했다고 한다.
2841#14894 SIBLINGS CHILDREN 14894
 
0681 文武王陵碑
君靈源自敻繼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 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傳七葉以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 제천지윤이 7대를 전하여 …
2841#22058 SIBLINGS CHILDREN 22058
 
0695 金仁問墓碑
×五之君少皥▨墟分星于而超碧海金天命× ×▨太祖漢王啓千齡之⎵⎵聖臨百谷之× ▨오지군이라 소호는 ▨허하여 별빛을 나누고 시퍼런 바다를 뛰어 넘었으며 금천은 … 태조 한왕은 천년의 ▨을 열고, ▨성은 백곡의 ▨▨에 임하셨다.
2841#22066 SIBLINGS CHILDREN 22066
 
0815 新撰姓氏録
筆氏 燕相國衛滿公之後也 善作筆預於士流因玆賜筆姓 필씨는 연나라 재상 위만의 후손이다. 붓을 잘 만들어 필씨 성을 하사받았다.
2841#11302 SIBLINGS CHILDREN 11302
 
0864 大唐故金氏夫人墓銘
太上天子有國泰宗陽號少昊氏金天卽吾宗受氏世祖 태상천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열어 드러내셨으니 이름하여 소호씨금천이라 하니, 이분이 곧 우리 집안이 성씨를 받게 된 세조시다. 遠祖諱日磾自龍庭歸命西漢仕武帝 먼 조상 이름은 일제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에 투항하시어 무제 아래서 벼슬하셨다.
2841#22059 SIBLINGS CHILDREN 22059
 
0933 高麗史(1451)
(왕건이 후당으로부터 받은 조서) 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蕃之跡 宣乃惠和 주몽의 계토지정을 따라 군장이 되었고 기자의 작번지적을 밟아 사랑과 평화를 펼쳤다. ▐ 왕조가 신라에서 왕씨고려로 바뀌며 국조도 고려의 국조였던 朱蒙으로 바뀌었다. 이때 箕子도 국조로 숭배되었는데, 이는 고려의 箕子숭배를 계승한 듯하다.
2841#1715 SIBLINGS CHILDREN 1715
 
1145 三國史記
髙句麗 亦以髙辛氏之後 姓髙氏 (見晉書載記) ┆髙句麗 역시 髙辛씨의 후예이므로 성을 髙씨라 했다(진서 재기에 보인다)."고 한다. ▐ 진서 재기에는 高陽氏로 되어 있다.
2841#14898 SIBLINGS CHILDREN 14898
 
1281 ◾壇君
고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라 모두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다. 건국설화는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고대 왕조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도구다. 위만조선도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위만조선을 내쫓고 세워진 낙랑군의 철저한 탄압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위만조선의 건국설화는 역사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민속으로는 계속 전승되고 있었고 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변질되어 왕씨고려 때에는 우리가 아는 단군설화가 된 것이 아닐까?
2841#11363 SIBLINGS CHILDREN 11363
 
1393 太祖實錄(1413)
(이성계는 조선과 화령이라는 두 가지 명칭을 명나라에 보내어 조선을 국호로 쓰라는 허락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표문을 올렸다.) “간절히 생각하옵건대, 옛날 기자의 시대에 있어서도 이미 조선이란 칭호가 있었으므로, 이에 아뢰어 진술하여 감히 천자께서 들어주시기를 청했는데, 천자의 대답이 곧 내리시니 특별한 은혜가 더욱 치우쳤습니다.” ▐ 箕子를 국조로 인식하는 흐름은 이씨조선 말까지 지속되었다.
2841#13393 SIBLINGS CHILDREN 13393
 
1617+ 準의 후손
箕子의 후손 準이 衛滿에게 축출되어 마한을 건국하면서 자손들이 韓 성을 가지게 되었고 기자의 자손 중 友平의 후손은 鮮于씨, 友諒의 자손은 韓씨, 友誠의 자손은 奇씨가 되었다.
2841#8408 SIBLINGS CHILDREN 8408
 
夏商周断代工程
구체적인 연대가 판명되지 않은 중국 고대의 삼대에 대하여 구체적인 연대를 확정하였다.
2841#805 SIBLINGS CHILDREN COMMENT 805
 
少昊
金天 ┆ 姓己,名摰(亦作質、鷙),為黃帝之子,生於窮桑(今山東省曲阜北),建都於曲阜。傳說他能繼承太昊的德行,故稱少昊或小昊。
2841#802 SIBLINGS CHILDREN COMMENT 802
 
帝嚳 高辛
帝顓頊生子曰窮蟬 顓頊崩 而玄囂之孫高辛立 是為帝嚳 제전욱은 窮蟬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전욱이 세상을 뜨자 현효의 손자인 高辛이 들어섰다. 이가 帝嚳이다.
2841#22077 SIBLINGS CHILDREN 22077
 
王氏源派記(車柳氏宗譜史由來)
2841#22070 SIBLINGS CHILDREN 22070
 
箕子東來說
2841#16353 SIBLINGS CHILDREN 16353
 

2841#8348 SIBLINGS CHILDREN 8348
 
遷居 海中
海中 漢書(82)遷居 後漢書(445)
 
韓 (西周)
この際、取り残された都市国家の住民は「韓」を氏として四散したため、河北省一帯には古来「韓」を氏とする者が多く、秦末の燕王「韓広」、衛氏朝鮮の相「韓陰」などがいる。他、楽浪郡や帯方郡にも韓氏は山東系の王氏に次いで多かった。朝鮮の三韓という名も、楽浪郡や真番郡の韓氏から起こったとの説がある。
2841#41932 SIBLINGS CHILDREN COMMENT 41932
 
韓 (西周)
이때 떠난 도시 국가의 주민은 韓을 씨로 사산했기 때문에 하북성 일대에는 옛날 韓을 씨로 하는 자가 많아 진나라말의 연왕 韓廣, 위만조선의 상 韓陰 등이 있다. 그 외 낙랑군과 대방군에도 韓씨는 산동계의 왕씨에 이어 많았다. 조선의 삼한이라는 이름도 낙랑군이나 진번군의 韓씨에서 일어났다는 설이 있다.
2841#8351 SIBLINGS CHILDREN 8351
 
락랑구역
락랑구역 토성리에는 토성터가 있고 주변에는 漢/晋대 초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분묘군(낙랑한묘)이 있다. 일조시대에 행해진 발굴의 결과, 토성리 토성에서는 건물·도로·창고군이나 낙랑의 문자를 기록한 기와 등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낙랑군의 정부였다고 추정하며 '낙랑토성'으로도 부르고 있다.
2841#41416 SIBLINGS CHILDREN COMMENT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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