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012 ☱ 高句麗 > 0918 왕씨고려

왕씨고려는 신라의 영토와 백성은 그대로고 왕조만 바뀐 것이다. 왕씨왕조가 고려계승을 내세운 것은 신라왕조에 한참 뒤지는 정통성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왕고는 삼국사기를 편찬하여 고려를 한국사에 끼워넣었다. 그런데 왕고가 내세운 고려계승은 봉건적 지배권을 말하는 것이었지 종족적 동일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옛 고려 지역의 주민들은 내쫓기도 하고 학살도 서슴지 않았다.
 
0900 견훤百濟
상주 출신의 견훤은 서남해안을 지키는 新羅 장수였는데 新羅의 중앙이 혼란한 틈을 타 892년에 무진주를 차지하고 독립하였다. 900년에는 완산주를 순행했다가 주민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자 “新羅의 김유신이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을 거쳐 사비에 이르러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百濟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며 百濟를 세웠다. 옛 백제 지역에서 왕조를 세우는 데에 백제 계승만큼 좋은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1719#4725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0901 궁예高麗
新羅 헌안왕 또는 경문왕의 후손으로 알려진 궁예는 북원에서 독립한 양길의 부하로 있다가 901년에 송악에서 高麗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지난날 新羅가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高麗를 깨뜨렸다. 그런 까닭에 평양 옛 도읍은 무성한 잡초로 꽉 차 있다. 내 반드시 그 원수를 갚겠다.”고 하였다. 新羅 및 견훤百濟와 경쟁해야 하는 궁예의 입장에서는 髙麗계승만큼 좋은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1719#1750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0905 三國史記(1145)
평양 성주 장군 검용이 항복하였다.
1719#30649 SIBLINGS CHILDREN 30649
 
0918 왕씨高麗
樂浪 한족의 후예로 보이는 왕건이 궁예의 髙麗계승을 이은 것은 궁예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1719#1954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0918  髙麗계승론의 모순
0918 髙麗계승론의 모순
발해가 髙麗계승국이라면 그런 발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왕씨髙麗가 내세우는 髙麗계승론은 매우 어색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왕씨髙麗가 편찬한 삼국사기(1145)에는 발해가 髙麗계승국이라는 이야기가 없고 靺鞨을 붙여 渤海靺鞨이라 하였다.
1719#30650 SIBLINGS CHILDREN 30650
 
0918 東女眞
黑水는 장백산 동북쪽에 있었다. 이곳에는 靺鞨 이외의 종족은 없었던 듯하며 따라서 黑水人은 黑水靺鞨과 같은 뜻이다. 靺鞨은 女眞이라고도 했는데 장백산 일대의 산악 지형에 의해 동과 서로 갈려 있었다. 따라서 黑水靺鞨은 곧 東女眞이다. 왕고는 이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東蕃이라고도 불렀다. 東女眞이 왕고와 접촉하는 창구는 和州館이었다.
1719#5561 SIBLINGS CHILDREN 5561
 
0926 貊·濊·沃沮·夫餘
0926 貊·濊·沃沮·夫餘
漢五郡 = 樂浪郡+眞番郡+臨屯郡+玄菟郡+遼東郡 ➔ 高麗 = (貊+濊+沃沮+夫餘) + (樂浪+帶方+遼東) ➔ 渤海 = 高麗 - (樂浪+帶方+遼東) + 靺鞨 = (鴨淥府+南海府+柵城府+扶餘府) + 靺鞨 ➔ 女眞
1719#30634 SIBLINGS CHILDREN 30634
 
0933 高麗史(1451)
唐에서 왕경과 양소업을 보내 왕을 책봉하고 조서를 내렸다. "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蕃之跡 宣乃惠和 (왕건은) 주몽의 상서로운 개국을 뒤쫓아 나라의 군주가 되고 기자가 번국을 이룩한 자취를 밟아서 자애와 상서를 펼치고 있다." ▐ 후당의 조서는 고려계승을 내세운 왕씨왕조가 듣고 싶어하는 말로 채워져 있다. 주몽은 맥고려의 시조고, 기자는 낙랑이 숭배하던 조선의 시조인데, 낙랑고려가 이었던 것을 왕씨고려가 또 이은 것이다.
1719#4510 SIBLINGS CHILDREN 4510
 
0934 高麗史(1451)
渤海國의 세자 大光顯이 무리 수만을 거느리고 내투하자, 성명을 하사하여 王繼라 하고 종실의 족보에 넣었다. ▐ 발해에 대해 고려계승국이라는 인식이 나타나지 않는다.
1719#4521 SIBLINGS CHILDREN 4521
 
0942.10 三國誤記 高麗史
거란이 사신을 보내 낙타 50필을 선사했다. 왕은 거란이 과거 발해와 화목하게 지내오다가 갑자기 의심을 일으켜 맹약을 어기고 멸망시켜 버린 것을 볼 때, 이는 매우 무도한 나라로서 화친을 맺어 이웃으로 삼을 만한 나라가 못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그 사신 30명을 섬으로 유배보냈으며 낙타는 만부교 아래에 매어두어 다 굶어죽게 했다.✘) ▐ 발해에 대해 고려계승국이라는 인식이 나타나지 않는다.
1719#30644 SIBLINGS CHILDREN 30644
 
0960 高麗史節要(1452)
"거란의 동경으로부터 우리의 안북부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의 땅은 모두 생여진에 의해서 점유되었는데 광종께서 그 곳을 취하여 가주·송성 등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1719#30635 SIBLINGS CHILDREN 30635
 
0970 定安國
契丹의 침공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정안국왕 오현명의 조부가 백성들을 이끌로 이주하여 세웠다. '고려의 옛 땅에 사는 발해의 유민(臣本以高麗舊壤渤海遺黎)'을 자처하였다. 정안국에 대한 왕씨고려의 지원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왕고에 의해 장백산 너머로 쫓겨난 듯하다. 정안국은 맥고려의 발상지에 고려계승국인 발해의 유민이 세웠기 때문에, 역시 고려계승을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 계승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왕고의 건국 명분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었을 듯하다.
1719#5558 SIBLINGS CHILDREN 5558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0984 西女眞
왕고 초기에 요하와 청천강 사이에는 여진이 살고 있었다. 왕고에서는 이들을 西女眞이라 불렀다.
1719#7402 SIBLINGS CHILDREN 7402
 
0991 宋史(1345)
定安國의 왕자 태원이 女眞의 사신을 통하여 표를 올렸는데, 그 뒤로는 다시 오지 아니하였다.
1719#7403 SIBLINGS CHILDREN 7403
 
0991.10 高麗史(1451)
逐鴨綠江外女眞於白頭山外居之 압록강 바깥에 거주하는 여진족을 백두산 너머로 쫓아내어 그 곳에서 살게 하였다. ▐ 조송에 오던 定安國의 조공이 끊긴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女眞은 定安國이다.
1719#7595 SIBLINGS CHILDREN 7595
 
0993.10 高麗史節要(1452)
○ 汝國興新羅地 高句麗之地 我所有也 너희 나라는 신라의 땅에서 일어났으니 고구려의 땅은 우리의 소유다. ● 我國卽高勾麗之舊也 故號高麗 都平壤 우리나라가 고구려의 옛 땅이니 국호를 고려라고 하고 평양에 도읍을 정한 것입니다.
1719#30636 SIBLINGS CHILDREN 30636
 
0993.10 髙麗계승론의 모순
0993.10 髙麗계승론의 모순
신라에서 나온 왕씨髙麗가 髙麗계승을 내세우려면 신라에 髙麗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왕씨髙麗가 편찬한 삼국사기(1145)에는 백제와 예의 땅이었던 차현과 죽령 이북의 한주, 삭주 그리고 명주를 옛 髙麗 지역이라 기술해 놓았다.
1719#30652 SIBLINGS CHILDREN 30652
 
1010 高麗史(1451) ❶ 옛 옥저 학살
하공진이 일찍이 동여진을 공격하다 패배하자 유종은 그것을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여진족 95인이 내조하여 화주관에 도착하자 유종이 모두 죽였다. 여진족이 거란에 참소하자 거란주가 군신에게 말하기를, “고려의 강조가 임금을 시해한 것은 대역죄이므로 군사를 내어 죄를 묻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1719#23382 SIBLINGS CHILDREN 23382
 
1017 女眞
女眞孤這
1719#30637 SIBLINGS CHILDREN 30637
 
1018 高麗史(1452)
定安國 사람 골수가 도망쳐왔다.
1719#30638 SIBLINGS CHILDREN 30638
 
1023 女眞靺鞨
女眞靺鞨群豆
1719#30639 SIBLINGS CHILDREN 30639
 
1023 靺鞨
靺鞨 首領 阿令朱┆靺鞨之請獻
1719#30640 SIBLINGS CHILDREN 30640
 
1029~1030 興遼國
契丹 東京의 장군 大延琳은 渤海 大祚榮의 7대손인데 반란을 일으켜 興遼國을 세웠다. 王高는 그 틈을 타 압록강 동쪽 기슭을 차지하려 공격하였다가 실패하였다. 興遼國의 大延定이 東北女眞을 이끌고 契丹과 서로 공격하다 사신을 보내 원조를 요청하였으나 王高는 응하지 않고 유소를 鎭으로 보내 興遼國에 대비하였다. 興遼國은 大慶翰, 高吉德 그리고 이광록을 차례로 보내어 원조를 간청하였으나 王高는 응하지 않았고 興遼國이 망하는 바람에 이광록은 돌아가지 못했다.
1719#30641 SIBLINGS CHILDREN 30641
 
1055 高麗史(1451)
"우리나라는 箕子의 나라를 계승하여 鴨綠江을 국경으로 삼아왔습니다. 하물며 전 태후와 황제께서도 책문을 보내 은혜를 베풀면서 영토를 분봉할 때에도 또한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습니다." ▐ 요나라의 동경유수에게 보낸 국서의 일부분이다.
1719#30642 SIBLINGS CHILDREN 30642
 
1083 이제현(1287~1367)의 문종 찬
北貊扣關而受廛 북쪽 맥인은 관문을 두드려서 토지를 얻어 살게 되었다. ▐ 문종의 재위 기간은 1046~1083이다.
1719#30643 SIBLINGS CHILDREN 30643
 
1103 金史(1344)
고려에서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해서 갈라전의 관속인 사륵상은, 야랄보상은 등이 가고 석적환도 배노를 보냈다. 고려는 야랄보 등은 잡아두고 배노는 돌려보냈다. 이때 5水의 백성들이 모두 왕고에 귀부하고 붙잡힌 단련사가 14명이었다. ▐ 갈라전은 옛 옥저 지역이다. 석적환은 금나라를 건국한 아골타의 형이 추장을 할 때 이곳을 장악하기 위해 파견한 인물이다.
1719#30651 SIBLINGS CHILDREN 30651
 
1107 高麗史(1451) ❷ 옛 옥저 학살
윤관과 오연총이 동계에 이르러 장춘역에 병사를 주둔시켰는데 무릇 17만으로 20만이라고 칭했다. 병마판관 최홍정·황군상을 정주와 장주 2주에 나누어 보내고 여진 추장에게 속여서 말하기를, “나라에서 장차 허정과 나불 등을 돌려보내고자 하니 와서 명령을 들으라.”고 한 뒤 매복하여 기다렸다. 추장들이 그것을 믿어 고라 등 400여 인이 이르니 술을 마시고 취하게 하고 매복해 있는 군사를 보내어 그들을 모두 죽였다.
1719#30654 SIBLINGS CHILDREN 30654
 
1107 金史(1344)
고려가 허락하면서 “사신을 파견하여 국경에 이르러 인수하여 가라.”고 하니 강종은 이를 믿고 완안부 아괄·오림답부 승곤 등으로 하여금 국경으로 가 인수하도록 하고 마기령 을집촌에서 사냥하면서 기다렸다. 아괄·승곤 등이 국경에 도착하자 고려는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살해하고 갈라전으로 출병시켜 9성을 쌓았다. ▐ 강종은 금나라를 건국한 아골타의 형이다.
1719#23389 SIBLINGS CHILDREN 23389
 
1108 高麗史(1451) 옛 옥저를 정벌했던 尹瓘의 인식
1108 高麗史(1451) 옛 옥저를 정벌했던 尹瓘의 인식
女眞 本勾高麗之部落 聚居于盖馬山東 여진은 본디 구고려의 부락으로서 개마산 동쪽에 모여 살았다. 其地方三百里 東至于大海 西北介于盖馬山 南接于長·定二州 山川之秀麗 土地之膏腴 可以居吾民 而本勾高麗之所有也 其古碑遺跡 그 땅은 사방 300리로 동쪽은 대해에 이르렀고 서북의 경계는 개마산이며 남쪽으로는 장주·정주의 2주에 닿았는데, 산천은 수려하고 토지는 기름져서 우리 백성들이 살만하였다. 본디 구고려의 소유로 옛 비석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1719#20085 SIBLINGS CHILDREN 20085
 
1109 高麗史(1451) ❸ 옛 옥저 학살
不謂去年 大擧而入 殺我耄倪 置九城 使流亡靡所止歸 생각지도 못하게 지난해에 대규모로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와 우리의 늙은이와 어린아이들을 죽이고 9성을 설치하여 유랑민들이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어졌습니다.
1719#30653 SIBLINGS CHILDREN 30653
 
1145 三國史記
平壤者 夲仙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의 땅이다. 다른 기록에는 왕이 왕험에 가서 도읍하였다고 하였다.
1719#30645 SIBLINGS CHILDREN 30645
 
1145 三國史記
玄莬·樂浪 本朝鮮之地 箕子所封 箕子敎其民 以禮義·田蠶·織作 設禁八條 현도와 낙랑은 본래 조선의 땅으로 기자가 책봉되었던 곳이다. 기자가 그 백성들에게 예의, 밭농사와 누에치기, 길쌈을 가르치고 법금 8조를 만들었다.
1719#30646 SIBLINGS CHILDREN 30646
 
1145 三國史記
海東有國家久矣 自箕子受封於周室 衛滿僭號於漢初 年代綿邈 文字踈略 固莫得而詳馬 해동에 국가가 있은 지는 오래되어, 기자가 주나라 왕실로부터 책봉을 받고 한나라 초에 위만이 스스로 왕을 참칭할 때부터지만, 연대가 아득히 멀고 문자기록이 소략하여 상세하게 고찰할 수 없다.
1719#30647 SIBLINGS CHILDREN 30647
 
1145 三國史記
先是 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是爲辰韓六部 앞서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1719#30648 SIBLINGS CHILDREN 3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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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1951 SIBLINGS CHILDREN 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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