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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01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조선왕 만은 옛 연나라 사람이다.
自始全燕時 嘗略屬真番朝鮮 為置吏築鄣塞
연나라가 그 전성기 때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보루과 요새를 쌓았다.
秦滅燕 屬遼東外徼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킨 후에는 요동외요에 소속시켰다.
漢興為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為界屬燕
한나라가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렵다고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를 경계로 하여 연나라에 소속시켰다.
6757#6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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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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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02
燕王盧綰反入匈奴 滿亡命聚黨千餘人 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鄣 稍役屬真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 都王險
연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 인을 모아 몽치 머리에 오랑캐의 복장으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과 제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
6757#6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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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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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03
이 때는 마침 효혜·고후(-195 ~ -188)의 시대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되니 요동태수는 곧 위만을 외신으로 삼을 것을 약속하여 국경 밖의 오랑캐를 지켜 변경을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모든 오랑캐의 군장이 들어와 천자를 뵙고자 하면 막지 않도록 하였다. 이로써 위만은 군사의 위세와 재물을 얻게 되어 그 주변의 소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6757#1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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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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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04
傳子至孫右渠 所誘漢亡人滋多 又未嘗入見 真番旁衆國欲上書見天子 又擁閼不通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 때에 이르러서는 유인해 낸 한나라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천자에게 입현치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6757#1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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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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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05
원봉 2년에 한나라는 사신 섭하를 보내어 우거를 꾸짖고 회유하였으나 끝내 천자의 명을 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섭하가 돌아가며 국경인 패수에 이르르자 마부를 시켜 전송나온 조선의 비왕 장을 찔러 죽이고 바로 건너 요새 안으로 달려 들어간 뒤 천자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했다. 천자가 꾸짖지 않고 하에게 요동동부도위의 벼슬을 내렸다. 이에 조선은 하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 기습공격해 하를 죽이니, 천자는 죄인을 모집하여 조선을 치게 하였다.
6757#1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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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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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07
좌장군의 졸정인 다가 요동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출진하였으나, 싸움에 패하여 군사는 흩어지고 다도 도망하여 돌아왔으므로 법에 따라 참형을 당하였다. 누선은 제나라 병사 7천인을 거느리고 먼저 왕험에 이르렀는데 우거가 성을 지키고 있으면서 누선의 군사가 적음을 엿보아 알고, 곧 성을 나와 누선을 치니 누선군은 패해 흩어져 도망갔다. 장군 양복은 그의 군사를 잃고 10여일을 산중에 숨어 살다가 점차 흩어진 병졸들을 다시 거두어 모아들였다.
6757#1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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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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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08
천자는 양 장군의 전세가 유리하지 않다고 여기고, 위산으로 하여금 군사의 위엄을 갖추고 가서 우거를 달래게 하였다. 우거는 사자를 보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기를, “항복하기를 원하였으나 양 장군이 신을 속여서 죽일까 두려워했는데, 이제 신절을 보았으니 항복하기를 청합니다.” 하고, 태자를 보내 들어가 사죄하게 하고, 말 5천필을 바침과 아울러 군량미를 내주었다.
6757#17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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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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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09
무리 만여 인이 무기를 지니고 막 패수를 건너려 할 때 사자와 좌장군은 그들이 변을 일으킬까 두려워 태자에게 말하기를, “이미 항복했으니 사람들에게 병기를 버리라고 명하시오.” 라고 하였다. 태자도 역시 사자와 좌장군이 자기를 속이고 죽일까 의심하여 끝내 패수를 건너지 않고 사람들을 이끌고 돌아가버렸다. 산이 돌아와 천자께 보고하니 천자는 산을 죽였다.
6757#1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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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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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11
좌장군은 본시 시중으로 천자의 총애를 받고 있는 데다가 燕과 代지방의 군사를 거느렸으므로 굳세었는데, 싸움에 이긴 기세를 타고 군사들이 더욱 교만해졌다. 누선은 齊나라 병사들을 이끌고 바다로 출병하였으나, 이미 여러번 싸움에 패하고 군사를 잃었으며, 앞서 우거와의 싸움에서 곤욕을 치른 패잔한 군사들이라 군사들은 모두 두려워 하고 장군은 부끄럽게 여겨 우거를 포위하고도 항상 화평을 유지했다.
6757#17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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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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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12
좌장군이 맹렬히 성을 공격하니, 조선 대신들은 몰래 사람을 보내 사사로이 누선에게 항복을 약속했으나, 말만 오고 갈 뿐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좌장군은 여러 차례 누선과 싸울 시기를 정하였으나 누선은 약속을 급히 이루려고 싸움에 나가지 않았다. 좌장군 또한 사람을 보내 조선이 항복해 올 때를 탐문하였으나, 조선은 이를 반기지 않고 누선 쪽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로 인해 양 장군은 서로 반목하게 되였다.
6757#17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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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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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14
천자는,
“장수들이 이룰 수 없으므로 전에 위산으로 하여금 우거를 달래 항복하도록 하여 우거가 태자까지 보냈는데도 산이 이를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좌장군과 서로 계교가 틀려 마침내 약속이 깨어지고 말았다. 지금도 양 장군이 성을 포위하고도 역시 어긋나고 달라서 오래도록 결판이 나지 못하고 있다.”
고 말하고 제남태수 공손수를 보내어 이를 바로잡고 상황에 맞게 처하도록 하였다
6757#1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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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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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15
수가 도착하니 좌장군이 말했다.
“조선이 항복할 형편에 이른 지 오래되었는데도 항복하지 않는 것은 사정이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누선이 여러 차례 싸우러 나오지 않은 것과 평소의 뜻하는 바를 수에게 낱낱이 고하였다.
“지금 이와 같으니 체포하지 않으면 크게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누선 혼자만이 아니고 조선과 함께 우리 군사를 멸할 것입니다.”
라고 하니, 수도 이를 옳게 여기고 누선장군을 체포하고 군사를 합친 뒤 천자에게 보고하자, 천자는 수를 죽였다.
6757#17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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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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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16
좌장군이 이미 양군을 합하여 맹렬히 조선을 치니, 조선의 상 노인과 상 한음과 니계상 삼 ·장군 왕협이 서로 모의하기를,
“처음 누선에게 항복하려 했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 있고 좌장군 단독으로 장졸을 합하여 전투가 더욱 맹렬하여 맞아서 싸우기 두려운데도 왕은 항복하려 하지 않는다.”
하고 음·협·노인이 모두 도망하여 한나라에 항복하였다. 노인은 도중에 죽었다.
6757#16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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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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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17
원봉 3년 여름, 니계상 삼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항복하여 왔으나 왕험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죽은 우거의 대신 성이가 또 반하여 군리들을 공격하였다.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장과 항복한 상 노인의 아들 최로 하여금 그 백성을 달래고 성이를 죽이도록 하였다. 이로써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4군을 설치하였다.
6757#16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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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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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91) 19
左將軍徵至 坐争功相嫉 乖計 弃市 樓船將軍亦坐兵至列口 當待左將軍 擅先縱 失亡多 當誅 贖為庶人
좌장군을 불러 들여 오자 공을 다투고 서로 시기하여 계획을 어긋나게 한 죄로 처형하였다. 누선장군도 병사를 거느리고 열구에 이르렀다면 마땅히 좌장군을 기다려야 할 것인데도 제멋대로 먼저 군사를 풀어 많은 병사들을 잃어버렸으므로 주살함이 마땅하나 속전을 받고 서인으로 삼았다.
6757#17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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