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195~0313 朝鮮·樂浪史

-283년에 朝鮮은 燕에 복속되었다. -221년에 秦이 燕을 포함한 중국을 통일하자 조선은 秦에 소속되었다. -209년에 진승이 난을 일으키자 燕·齊·趙 지역의 난민 수만명이 조선, 진번 그리고 진국으로 들어왔다. -202년에 漢이 다시 중국을 통일했을 때 조선은 漢의 영역에서 빠졌다. 그러자 -195±년에 漢의 제후국이던 燕의 위만이 조선으로 망명했다가 유민과 토착민을 규합하여 왕이 되었다. -108년에 漢이 조선을 멸망시키고 樂浪郡을 설치했다.
 
良夷 → 朝鮮 → 樂浪
周 시기에 대동강 유역에 良夷가 있었는데 戰國시대부터 朝鮮으로 불리다 漢 시기부터 樂浪으로 불리게 되었다.
2688#15119 SIBLINGS CHILDREN 15119
 
-0334 燕의 동쪽에 朝鮮과 遼東이 있다.
2688#23368 SIBLINGS CHILDREN 23368
 
-0300⁺ 燕이 朝鮮을 복속시키다.
2688#23431 SIBLINGS CHILDREN 23431
 
-0222 秦이 朝鮮을 遼東 外徼에 소속시키다.
2688#23432 SIBLINGS CHILDREN 23432
 
-0202 漢이 浿水를 朝鮮과의 경계로 하다.
2688#23434 SIBLINGS CHILDREN 23434
 
-0128 ~ -0125 蒼海郡
2688#23436 SIBLINGS CHILDREN 23436
 
-0109 ~ -0108 漢이 朝鮮을 침공하다.
2688#6388 SIBLINGS CHILDREN 6388
 
-0108 ~ 0313 樂浪郡
2688#30670 SIBLINGS CHILDREN 30670
 
-0108 ~ -0082 眞番郡
2688#23448 SIBLINGS CHILDREN 23448
 
-0108 ~ -0082 臨屯郡
2688#30669 SIBLINGS CHILDREN 30669
 
-0107 玄菟郡
2688#30665 SIBLINGS CHILDREN 30665
 
-0082 臨屯을 玄菟에 합치다.
2688#30666 SIBLINGS CHILDREN 30666
 
-0075 ~ 0030 樂浪郡 東部都尉
2688#30667 SIBLINGS CHILDREN 30667
 
0244 ~ 0246 曺魏의 고려 정벌
2688#30668 SIBLINGS CHILDREN 30668
 
  사기(BC91) 요약
사기(BC91) 요약
❶ 기원전 334년에 燕의 동쪽에는 조선 및 요동이 있었다. 東有朝鮮遼東 ❷ 기원전 300년 이후 燕은 동호를 쳐서 1천여리 물러나게 하고 東胡卻千餘里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을 쌓은 뒤 築長城自造陽至襄平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그리고 요동군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막았다. 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以拒胡 이는 천산 산맥까지 영토를 넓힌 것으로 볼 수 있다.
2688#7597 SIBLINGS CHILDREN COMMENT 7597
 
  사기(BC91) 요약
사기(BC91) 요약
❸ 기원전 279년 이전에 燕은 동호를 공격하여 쫓아내고 천리의 땅을 개척한 뒤 요동을 지나 조선을 공격했다. 襲走東胡辟地千裏度遼東而攻朝鮮 진번과 조선을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보루과 요새를 쌓았다. 略屬眞番朝鮮爲置吏築鄣塞 따라서 조선과 진번은 천산 산맥 동쪽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❹ 기원전 222년에 秦은 燕을 멸망시키고 이곳을 요동 외요에 소속시켰다. 屬遼東外徼
2688#13833 SIBLINGS CHILDREN COMMENT 13833
 
  사기(BC91) 요약
사기(BC91) 요약
❺ 기원전 202년에 중국을 통일한 漢은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렵다며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를 경계로 하여 연나라에 소속시켰다. 爲其遠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爲界屬燕 ❻ 기원전 109년에 漢의 좌장군은 패수 위의 군사를 격파하고 전진하여 왕험성 아래에 이르러 서북쪽을 포위했다. 左將軍破浿水上軍乃前至城下圍其西北 이는 패수와 왕험성 사이에 큰 강이 없었다는 정황이므로 패수와 왕험성을 각각 청천강과 평양성으로 설정하면 자연스러워진다.
2688#13834 SIBLINGS CHILDREN COMMENT 13834
 
-0334 史記(-91) 燕召公世家
二十八年 蘇秦始來見 說文公 28년에 소진이 처음으로 와서 문공을 만나 유세했다.
2688#5824 SIBLINGS CHILDREN 5824
 
-0334 史記(-91) 蘇秦列傳
燕은 동쪽으로 朝鮮과 遼東이, 북쪽으로는 林胡와 樓煩이, 서쪽으로는 雲中과 九原이, 남쪽으로는 嘑沱와 易水가 있습니다. 땅은 사방 2천여 리입니다.
2688#20736 SIBLINGS CHILDREN 20736
 
-0323 史記(-91) 燕召公世家
十年 燕君為王 연군이 왕을 칭했다.
2688#16350 SIBLINGS CHILDREN 16350
 
-0323 三國志·魏略(265)
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為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為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其大夫禮諫之 乃止 使禮西說燕 燕止之 不攻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가 약해지고 연이 스스로를 높여 왕을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 하자 조선후도 왕을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을 역공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 하였는데 대부 례가 말리므로 중지하였다. 그래서 례를 서쪽에 파견하여 연을 설득하니 연도 전쟁을 멈추고 침공하지 않았다.
2688#21050 SIBLINGS CHILDREN 21050
 
-0312 史記(-91) 燕召公世家
燕子之亡二年 而燕人共立太子平 是為燕昭王 연나라의 자지가 죽은 지 2년에 연나라 사람들이 태자 평을 세우니 이가 연나라 소왕이다.
2688#2643 SIBLINGS CHILDREN 2643
 
-0300 史記(-91) 趙世家
二十六年 復攻中山 攘地 北至燕代 西至雲中九原 26년에 다시 중산을 공격하여 북쪽으로 연나라와 대나라까지, 서쪽으로 운중과 구원에까지 이르는 땅을 탈취했다.
2688#6758 SIBLINGS CHILDREN 6758
 
-0300 史記(-91) 匈奴列傳
趙武靈王亦變俗胡服 習騎射 北破林胡·樓煩 筑長城 自代并陰山下 至高闕為塞 而置雲中·鴈門·代郡 북쪽으로 임호와 누번을 무찌르고 그곳에 장성을 쌓고 대에서부터 음산산맥 기슭을 따라 고궐에 이르는 지역을 요새지로 만들었다. 조나라는 그 땅에 운중, 안문, 대 등 군을 설치했다.
2688#17256 SIBLINGS CHILDREN 17256
 
-0300 ⁺ 史記(-91) 匈奴列傳
其後燕有賢將秦開 為質於胡 胡甚信之 歸而襲破走東胡 東胡卻千餘里 與荊軻刺秦王秦舞陽者 開之孫也 燕亦筑長城 自造陽至襄平 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以拒胡 연나라의 명장 진개가 오랑캐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연나라로 돌아온 후, 군대를 이끌고 동호를 습격해 패주시켰다. 이때 동호는 1천여 리나 물러갔다. 연나라 역시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지역에 장성을 쌓고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등에 군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방어했다.
2688#20728 SIBLINGS CHILDREN 20728
 
-0300 ⁺ 史記(-91) 匈奴列傳
▐ 其後는 조나라가 -300년에 변방을 침공해서 장성을 쌓고 군을 설치한 이후를 말한다.
2688#20731 SIBLINGS CHILDREN 20731
 
-0300  ⁺ 朝鮮列傳 ⤵
-0300 ⁺ 朝鮮列傳 ⤵
2688#6973 SIBLINGS CHILDREN 6973
 
-0300 ⁺ 史記(-91) 朝鮮列傳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조선왕은 연나라의 망명인이다. 自始全燕時 嘗略屬真番朝鮮 為置吏築鄣塞 연나라가 그 전성기 때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보루과 요새를 쌓았다.
2688#31193 SIBLINGS CHILDREN 31193
 
-0300 ⁺ 漢書(82)
朝鮮王滿 燕人 自始燕時 嘗略屬真番·朝鮮 為置吏築障
2688#31136 SIBLINGS CHILDREN 31136
 
-0300 ⁺ 鹽鐵論(-81) 論功
朝鮮之王 燕之亡民也 조선의 왕은 연나라의 망명인이다.
2688#41021 SIBLINGS CHILDREN COMMENT 41021
 
-0300 ⁺ 鹽鐵論(-81) 伐功
燕襲走東胡 辟地千里 度遼東而攻朝鮮 연나라가 동호를 공격하여 쫓아내고 천리의 땅을 개척했다. 또 요동을 지나 조선을 공격했다.
2688#31198 SIBLINGS CHILDREN 31198
 
-0300 ⁺ 三國志·魏略(265)✘
後子孫稍驕虐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潘汗為界 朝鮮遂弱 그 뒤 자손이 점점 교만하고 포악해지자 연은 장군 진개를 보내어 서쪽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 마침내 조선은 약해졌다.
2688#31199 SIBLINGS CHILDREN 31199
 
-0300    ⁺ ◾東胡 朝鮮
-0300 ⁺ ◾東胡 朝鮮
사기(-91)에는 진개가 동호를 밀어내고 요동을 차지한 사건과 연나라가 진번과 조선을 복속시킨 사건이 별개로 취급되어 있다. 염철론(-81)에서도 비슷한 내용이지만 동호를 밀어내고 차지한 땅이 천리라는 거리가 더해져 있다. 위략(265)에서는 두 사건이 진개 한 사람이 한 일로 합쳐져 있고 차지한 땅도 2천리의 조선 땅으로 되어 있다. 사기와 위략의 이야기가 충돌하는데, 기록의 연대를 볼 때, 사기를 역사적 사실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2688#31200 SIBLINGS CHILDREN 31200
 
-0300 ⁺ 史記(-91) 貨殖列傳
夫燕亦勃·碣之閒一都會也 南通齊·趙 東北邊胡 上谷至遼東 地踔遠 상곡에서 요동까지 땅이 멀다. 人民希 數被寇 大與趙·代俗相類 而民雕捍少慮 有魚鹽棗栗之饒 北鄰烏桓·夫餘 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북으로 오환 및 부여와 이웃하고 동으로 예맥, 조선 그리고 진번과 교류하여 이익을 얻었다. ▐ 요동을 차지한 이후의 상태다.
2688#31192 SIBLINGS CHILDREN 31192
 
-0260 戰國七雄
-0260 戰國七雄
2688#5819 SIBLINGS CHILDREN COMMENT 5819
 
-0222⁻ 鹽鐵論(-81) 備胡
朝鮮踰徼 劫燕之東地 東越越東海 略浙江之南 南越內侵 滑服令 氐·僰·冉·駹·巂唐·昆明之屬 擾隴西·巴·蜀 今三垂已平 唯北邊未定 조선은 요새를 넘어 연의 동쪽을 겁박했다.
2688#21329 SIBLINGS CHILDREN 21329
 
-0222 史記(-91) 燕召公世家
秦抜遼東 虜燕王喜 卒滅燕 진나라가 요동을 빼앗고 연왕 희를 사로잡아 마침내 연나라를 멸망시켰다.
2688#15855 SIBLINGS CHILDREN 15855
 
-0222 史記(-91) 朝鮮列傳
秦滅燕 屬遼東外徼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킨 후에는 요동외요에 소속시켰다.
2688#31135 SIBLINGS CHILDREN 31135
 
-0222 漢書(82)
秦滅燕 屬遼東外徼
2688#31137 SIBLINGS CHILDREN 31137
 
-0222 鹽鐵論(-81)
秦既并天下 東絕沛水 並滅朝鮮 진나라가 천하를 아우른 뒤 동쪽으로 패수를 넘어 조선도 병합했다.
2688#18511 SIBLINGS CHILDREN 18511
 
-0221
-0221
2688#20992 SIBLINGS CHILDREN 20992
 
-0215 史記(-91) 秦始皇本紀 三十二年
연나라 사람 노생이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귀신에 관한 일로 보고했는데 ‘진을 망하게 할 자는 호다’라고 쓰여 있는 참위서를 올렸다. 시황은 장군 몽염에게 군사 30만 명을 내서 북방의 호를 공격하게 하여 하남 땅을 취했다.
2688#5826 SIBLINGS CHILDREN 5826
 
-0215 三國志·魏略(265)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몽염을 시켜서 장성을 쌓게 하여 요동에까지 이르렀다. 이때에 조선왕 부가 왕이 되었는데 진나라의 습격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략상 진나라에 복속은 하였으나 조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부가 죽고 그 아들 준이 즉위하였다.
2688#31145 SIBLINGS CHILDREN 31145
 
-0210 史記(-91) 秦始皇本紀
始皇崩於沙丘平臺 시황이 사구 평대에서 세상을 떠났다.
2688#5832 SIBLINGS CHILDREN 5832
 
-0209 史記(-91) 高祖本紀
秦二世元年秋 陳勝等起蘄 至陳而王 號為張楚 진 2세 원년 가을, 진승 등이 기현에서 봉기하여 진현에서 왕이 되어 장초라 했다.
2688#5834 SIBLINGS CHILDREN 5834
 
-0209 三國志(289) 濊傳
陳勝等起 天下叛秦 燕·齊·趙民避地朝鮮數萬口 진승 등이 일어나 온 천하가 진에 반기를 드니, 연·제·조의 백성 수만인이 조선으로 피난하였다.
2688#5823 SIBLINGS CHILDREN COMMENT 5823
 
-0209 三國志·魏略(265)
二十餘年而陳 項起 天下亂 燕齊趙民愁苦 稍稍亡往準 準乃置之於西方 그 뒤 20여년이 지나 진승과 항우가 기병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제·조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차츰 차츰 준에게 망명하므로 준은 이들을 서부 지역에 거주하게 하였다.
2688#388 SIBLINGS CHILDREN 388
 
-0202 史記(-91) 高祖本紀
項羽卒聞漢軍之楚歌 以為漢盡得楚地 項羽乃敗而走 是以兵大敗 使騎將灌嬰追殺項羽東城 斬首八萬 遂略定楚地 항우는 한군이 부르는 초의 노래를 듣고는 한이 초의 땅을 다 차지한 것으로 알았다. 항우가 패하여 달아나니 군대가 크게 패했다. 기장 관영에게 항우를 추격하게 하여 동성에서 죽이고 8만의 목을 베니 마침내 초의 땅을 평정할 수 있었다.
2688#13860 SIBLINGS CHILDREN 13860
 
-0202 史記(-91) 朝鮮列傳
漢興為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為界屬燕 한나라가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렵다고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를 경계로 하여 연나라에 소속시켰다.
2688#29498 SIBLINGS CHILDREN 29498
 
-0202 漢書(82)
漢興 為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為界 屬燕
2688#31138 SIBLINGS CHILDREN 31138
 
-0202 10 魏略(265?)
漢 때에 이르러 노관으로 연왕을 삼으니, 조선과 燕은 浿水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
2688#5831 SIBLINGS CHILDREN COMMENT 5831
 
-0195 한나라 10국 15군
-0195 한나라 10국 15군
한나라와 조선의 경계였던 패수를 청천강으로 설정했다.
2688#14811 SIBLINGS CHILDREN 14811
 
-0195 史記(-91) 朝鮮列傳
燕王盧綰反入匈奴 滿亡命聚黨千餘人 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鄣 稍役屬真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 都王險 연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 인을 모아 몽치 머리에 오랑캐의 복장으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과 제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
2688#6759 SIBLINGS CHILDREN 6759
 
-0195 漢書(82)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椎結蠻夷服而東走出塞 度浿水 居秦故空地上下障 稍锁屬真番·朝鮮蠻夷及故燕 齊亡在者王之 都王險
2688#31139 SIBLINGS CHILDREN 31139
 
-0195 三國志·魏略(265)
한나라 때에 이르러 노관으로 연왕을 삼으니, 조선과 연은 패수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간 뒤 연나라 사람 위만도 망명하여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에게 항복하였다. 서쪽 변방에 거주하도록 해 주면 중국의 망명자를 거두어 조선의 번병이 되겠다고 준을 설득하였다. 준은 그를 믿고 사랑하여 박사에 임명하고 규를 하사하며 백리의 땅을 봉해 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
2688#14240 SIBLINGS CHILDREN 14240
 
-0195 魏略(265?)
만이 망명자들을 유인하여 그 무리가 점점 많아지자, 사람을 준에게 파견하여 속여서 말하기를, “漢의 군대가 열 군데로 쳐들어오니, 들어가 숙위하기를 청합니다.” 하고는 드디어 되돌아서서 준을 공격하였다. 준은 만과 싸웠으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2688#5828 SIBLINGS CHILDREN COMMENT 5828
 
-0195 三國志(289)
侯準旣僭號稱王 為燕亡人衞滿所攻奪 후 준이 참람되이 왕이라 일컫다가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겼다.
2688#31142 SIBLINGS CHILDREN 31142
 
-0195 魏略(265?)
준의 아들과 친척으로서 나라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그대로 韓씨라는 성을 사칭하였다. 준은 해외에서 왕이 되었으나 조선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그 뒤 준의 후손은 절멸되었으나, 지금 韓人 중에는 아직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다.
2688#5829 SIBLINGS CHILDREN COMMENT 5829
 
-0195 三國志·魏略(265)
한나라 때에 이르러 노관으로 연왕을 삼으니, 조선과 연은 패수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간 뒤 연나라 사람 위만도 망명하여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에게 항복하였다. 서쪽 변방에 거주하도록 해 주면 중국의 망명자를 거두어 조선의 번병이 되겠다고 준을 설득하였다. 준은 그를 믿고 사랑하여 박사에 임명하고 규를 하사하며 백리의 땅을 봉해 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
2688#31146 SIBLINGS CHILDREN 31146
 
-0195 三國志·魏略(265)
위만이 망명자들을 유인하여 그 무리가 점점 많아지자 사람을 준에게 파견하여 속여서 말하기를, “한나라의 군대가 열 군데로 쳐들어오니 들어가 숙위하기를 청합니다.” 하고는 드디어 되돌아서서 준을 공격하였다. 준은 만과 싸웠으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2688#31147 SIBLINGS CHILDREN 31147
 
-0195 ~ -0188 史記(-91) 朝鮮列傳
會孝惠·高后時天下初定 遼東太守即約滿為外臣 保塞外蠻夷 無使盜邊 諸蠻夷君長欲入見天子 勿得禁止 以聞 上許之 以故滿得兵威財物 侵降其旁小邑 真番臨屯皆來服屬 方數千里
2688#6760 SIBLINGS CHILDREN 6760
 
-0195 ~ -0188 史記(-91) 朝鮮列傳
이 때는 마침 효혜·고후(-195~-188)의 시대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되니 요동태수는 곧 위만을 외신으로 삼을 것을 약속하여 국경 밖의 오랑캐를 지켜 변경을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모든 오랑캐의 군장이 들어와 천자를 뵙고자 하면 막지 않도록 하였다. 이로써 위만은 군사의 위세와 재물을 얻게 되어 그 주변의 소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2688#11605 SIBLINGS CHILDREN 11605
 
-0195 ~ -0188 漢書(82)
會孝惠 高后天下初定 遼東太守即約滿為外臣 保塞外蠻夷 毋使盜邊 蠻夷君長欲入見天子 勿得禁止 以聞 上許之 以故滿得以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 真番·臨屯皆來服屬 方數千里
2688#31140 SIBLINGS CHILDREN 31140
 
-0188- 史記(-91)
燕과 丹의 무리가 遼를 어지럽힐 때 만은 유민을 거두어 해동에 모아 진번에 집결시키고 변방의 외신이 되었다.
2688#5822 SIBLINGS CHILDREN COMMENT 5822
 
-0188- 史記(-91)
漢初 燕亡人衛滿王朝鮮 時沃沮皆屬焉 망명객 위만이 조선의 왕이 되면서 옥저는 모두 복속케 되었다.
2688#5836 SIBLINGS CHILDREN COMMENT 5836
 
-0128 ~ -0125 蒼海郡
濊는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거쳐 중국과 교류하였는데 위만 조선에 의해 이 길이 막히자 濊君 남려 등은 28만 구를 들어 황초령을 넘고 압록강을 지나 요동에 귀속하였다. 한무제는 濊에 蒼海郡을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지하였다. 蒼海는 푸른 바다라는 뜻으로 누런 바다라는 뜻의 黃海와 대조된다. 濊의 위치로 보나 蒼海라는 명칭으로 보나 蒼海郡은 동해에 접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 蒼海郡의 설치 경험은 훗날 臨屯郡을 설치하는 바탕이 되었을 듯하다.
2688#8331 SIBLINGS CHILDREN 8331
 
-0128 ~ -0125 蒼海郡
예군 남려 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28만 구를 이끌고 요동에 귀속하였으므로 무제는 그 지역으로 창해군을 만들었으나 수년 후에 곧 폐지하였다.
2688#15436 SIBLINGS CHILDREN 15436
 
-0111 史記(-91)
누선장군은 정예부대를 이끌고 먼저 심협을 함락시키고 석문을 깨뜨려 월나라의 배와 양식을 노획했다. 이틈에 밀고 나가 월나라의 선봉을 꺽고 수만 명을 거느리고는 복파장군을 기다렸다. 그러나 복파장군은 죄수들을 인솔한 데다 길까지 멀어 약속한 날짜에 늦었고 누선장군과 만났을 때는 1000여 명뿐이었다. 두 군대는 함께 나아갔는데 누선장군이 앞장서서 먼저 번옹에 도착했다.
2688#5842 SIBLINGS CHILDREN COMMENT 5842
 
-0111 ◾
위만조선을 침공하기 전에 있었던 월남 침공의 기록이다. 죄수를 동원했다는 점과 육로와 해로로 나누어 공격했다는 점에서 조선 침공과 방식이 같다. 월남 침공에서는 육로로 간 부대가 실패했지만 조선 침공에서는 해로로 간 부대가 패배했다. 한나라가 육로와 해로로 나누어 조선을 공격한 방식은 700여년 후 수나라가 고려를 공격한 방식과도 같다.
2688#5841 SIBLINGS CHILDREN COMMENT 5841
 
-0109⁻ 史記(-91) 朝鮮列傳
傳子至孫右渠 所誘漢亡人滋多 又未嘗入見 真番旁衆國欲上書見天子 又擁閼不通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 때에 이르러서는 유인해 낸 한나라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천자에게 입현치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2688#13856 SIBLINGS CHILDREN 13856
 
-0109⁻ 漢書(82)
傳子至孫右渠 所誘漢亡人滋多 又未嘗入見 真番·辰國欲上書見天子 又雍閼弗通
2688#31141 SIBLINGS CHILDREN 31141
 
-0109⁻ 三國志·魏略(265)
일찍이 우거가 격파되기 전에, 조선상 역계경이 우거에게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진국으로 갔다. 그 때 백성으로서 그를 따라가 그 곳에 산 사람이 2천여 호나 되었는데, 그들도 역시 조선에 조공하는 번국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2688#31143 SIBLINGS CHILDREN 31143
 
-0109 史記(-91) 朝鮮列傳
元封二年 漢使❶涉何誘諭右渠 終不肯奉詔 何去至界上 臨浿水 使御刺殺送何者 朝鮮裨王長 即渡 馳入塞 遂歸報天子曰 殺朝鮮將 上為其名美 即不詰 拜何為遼東東部都尉 東部都尉所理也 朝鮮怨何 發兵襲攻殺何 ▐ 사기의 앞 부분 이야기에 의하면 即渡馳入塞의 塞는 遼東故塞다.
2688#13857 SIBLINGS CHILDREN 13857
 
-0109 史記(-91) 朝鮮列傳
원봉 2년에 한나라는 사신 섭하를 보내어 우거를 꾸짖고 회유하였으나 끝내 천자의 명을 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섭하가 돌아가며 국경인 패수에 이르르자 마부를 시켜 전송나온 조선의 비왕 장을 찔러 죽이고 바로 건너 요새 안으로 달려 들어간 뒤 천자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했다. 천자가 꾸짖지 않고 하에게 요동동부도위의 벼슬을 내렸다. 이에 조선은 하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 기습공격해 하를 죽이니, 천자는 죄인을 모집하여 조선을 치게 하였다.
2688#14241 SIBLINGS CHILDREN 14241
 
-0109 ◾番汗
遼東故塞는 청천강 이북에 있었을 것이다.
2688#15624 SIBLINGS CHILDREN 15624
 
-0109 ⁻ 魏略(265?)
일찍이 우거가 격파되기 전에, 조선상 역계경이 우거에게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진국으로 갔다. 그 때 백성으로서 그를 따라가 그 곳에 산 사람이 2천여 호나 되었는데, 그들도 역시 조선에 조공하는 번국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2688#5830 SIBLINGS CHILDREN COMMENT 5830
 
-0109 漢書(82)
元封二年 漢使涉何譙諭右渠 終不肯奉詔 何去至界 臨浿水 使馭刺殺送何者朝鮮裨王長 即渡水 馳入塞 遂歸報天子曰 殺朝鮮將 上為其名美 弗詰 拜何為遼東東部都尉 朝鮮怨何 發兵攻襲 殺何
2688#31148 SIBLINGS CHILDREN 31148
 
-0109 史記(-91) 朝鮮列傳
天子募罪人擊朝鮮 其秋 遣樓船將軍楊仆從齊浮渤海 兵五萬人 左將軍荀彘出遼東 討右渠 右渠發兵距險 가을에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하여 제(齊)를 따라 발해에 배를 띄우고, 5만의 군사를 이끈 좌장군 순체는 요동에서 출발하여 우거를 토벌하게 하였다. 우거는 군사를 일으켜 험준한 곳에서 준비하였다.
2688#14782 SIBLINGS CHILDREN 14782
 
-0109     ◾
-0109 ◾
齊의 중심지는 발해만 안쪽에 있었다. 齊 병력을 모아 출발시켰다면 당연히 이곳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발해 해안선은 내륙으로 더 깊이 들어가 있었다. 이곳에서 배를 띄우면 발해에 배를 띄우는 것이 된다. 당시의 항해는 가능한 한 해안선을 따라갔다. 조선을 향해 요동 반도로 건너가든 한반도로 바로 건너가든, 발해만 안쪽에서 띄운 배는 일단 齊의 해안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2688#5848 SIBLINGS CHILDREN COMMENT 5848
 
-0109 漢書(82)
天子募罪人擊朝鮮 其秋 遣樓船將軍楊僕從齊浮勃海 兵五萬 左將軍荀彘出遼東 誅右渠 右渠發兵距險
2688#31149 SIBLINGS CHILDREN 31149
 
-0109 史記(-91) 朝鮮列傳
左將軍卒正多率遼東兵先縱 敗散 多還走 坐法斬 樓船將軍將齊兵七千人先至王險 右渠城守 窺知樓船軍少 即出城擊樓船 樓船軍敗散走 將軍楊仆失其眾 遁山中十餘日 稍求收散卒 復聚 左將軍擊朝鮮浿水西軍 未能破自前
2688#14783 SIBLINGS CHILDREN 14783
 
-0109 史記(-91) 朝鮮列傳
좌장군의 졸정인 다가 요동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출진하였으나 패하여 군사는 흩어지고 다도 도망하여 돌아오므로 법에 따라 참형을 당하였다. 누선은 제나라 병사 7천인을 거느리고 먼저 왕험에 이르렀는데 우거가 성을 지키며 누선의 군사가 적음을 알고 성을 나와 누선을 치니 누선군은 패해 흩어졌다. 양복은 군사를 잃고 10여일을 산중에 숨어 살다가 점차 흩어진 병졸들을 다시 거두어 모았다. 左將軍도 朝鮮의 浿水 西軍을 쳤으나 깨뜨리고 전진할 수가 없었다.
2688#14812 SIBLINGS CHILDREN 14812
 
-0109 ◾
한나라 양복의 진군 수나라 내호아의 행보와 비슷하다. "좌익위대장군 내호아가 배의 뒷부분과 앞부분이 수백 리에 이르게 바다에 떠올라 먼저 패수로 들어와서 평양에서 60리 떨어진 곳에서 아군과 서로 만났는데 이를 대파하였다. 숨은 병력이 나가니 내호아가 크게 패하여 겨우 붙잡히는 것을 면하였고 사졸로서 돌아간 자는 수천인에 불과하였다."
2688#14223 SIBLINGS CHILDREN OPEN
 
-0109 漢書(82)
左將軍卒多率遼東士兵先縱 敗散 多還走 坐法斬 樓船將齊兵七千人先至王險 右渠城守 窺知樓船軍少 即出擊樓船 樓船軍敗走 將軍僕失其眾 遁山中十餘日 稍求收散卒 復聚 左將軍擊朝鮮浿水西軍 未能破
2688#31150 SIBLINGS CHILDREN 31150
 
-0109 史記(-91) 朝鮮列傳
天子為兩將未有利 乃使❷衞山因兵威徃諭右渠 右渠見使者頓首謝 願降 恐兩將詐殺臣 今見信節 請服降 遣太子入謝 獻馬五千匹 及饋軍糧
2688#14909 SIBLINGS CHILDREN 14909
 
-0109 史記(-91) 朝鮮列傳
천자는 양 장군의 전세가 유리하지 않다고 여기고, 위산으로 하여금 군사의 위엄을 갖추고 가서 우거를 달래게 하였다. 우거는 사자를 보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기를, “항복하기를 원하였으나 양 장군이 신을 속여서 죽일까 두려워했는데, 이제 신절을 보았으니 항복하기를 청합니다.” 하고, 태자를 보내 들어가 사죄하게 하고, 말 5천필을 바침과 아울러 군량미를 내주었다.
2688#17081 SIBLINGS CHILDREN 17081
 
-0109 漢書(82)
天子為兩將未有利 乃使衛山因兵威往諭右渠 右渠見使者 頓首謝 願降 恐將詐殺臣 今見信節 請服降 遣太子入謝 獻馬五千匹 及餽軍糧
2688#31152 SIBLINGS CHILDREN 31152
 
-0109 史記(-91) 朝鮮列傳
人衆萬餘 持兵 方渡浿水 使者及左將軍疑其為變 謂太子已服降 宜命人毋持兵 太子亦疑使者左將軍詐殺之 遂不渡浿水 復引歸 山還報天子 天子誅山
2688#17087 SIBLINGS CHILDREN 17087
 
-0109 史記(-91) 朝鮮列傳
무리 만여인이 무기를 지니고 막 패수를 건너려 할 때 사자와 좌장군은 그들이 변을 일으킬까 두려워 태자에게 말하기를, “이미 항복했으니 사람들에게 병기를 버리라고 명하시오.” 라고 하였다. 태자도 역시 사자와 좌장군이 자기를 속이고 죽일까 의심하여 끝내 패수를 건너지 않고 사람들을 이끌고 돌아가버렸다. 산이 돌아와 천자께 보고하니 천자는 산을 주살하였다.
2688#14910 SIBLINGS CHILDREN 14910
 
-0109 漢書(82)
人眾萬餘持兵 方度浿水 使者及左將軍疑其為變 謂太子已服降 宜令人毋持兵 太子亦疑使者左將軍詐之 遂不度浿水 復引歸 山報 天子誅山
2688#31153 SIBLINGS CHILDREN 31153
 
-0109 史記(-91) 朝鮮列傳
左將軍破浿水上軍 乃前至城下 圍其西北 樓船亦往會 居城南 右渠遂堅守城 數月未能下 좌장군이 패수 위의 군사를 격파하고 전진하여 성 아래에 이르러 서북쪽을 포위했다. 누선도 또한 가서 합세하여 성의 남쪽에 주둔하였다. 우거가 끝내 성을 굳게 지키므로 몇 달이 되어도 함락시킬 수 없었다.
2688#15071 SIBLINGS CHILDREN 15071
 
-0109 ◾
좌장군의 전황을 보면 패수와 왕험성 사이에 또 다른 강이 있을 거 같지 않은 정황이다. 왕험성이 대동강 북안에 있었다면 패수는 청천강이 된다. 그리고 누선은 대동강 하구에 도착하여 왕험성을 공격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2688#14222 SIBLINGS CHILDREN 14222
 
-0109 ◾
한나라 좌장군의 행보는 수나라 우문술의 행보와 비슷하다. "既恃驟勝 又逼群議 遂進東 濟薩水 去平壤城三十里 因山爲營 우문술은 이미 잦은 승리를 거둔데다 여러 의견도 있어 마침내 동쪽으로 진격하여 살수를 건너 평양성으로부터 30리 떨어진 곳에다가 산에 의지하여 군영을 세웠다."
2688#14243 SIBLINGS CHILDREN OPEN
 
-0109 漢書(82)
左將軍破浿水上軍 乃前至城下 圍其西北 樓船亦往會 居城南 右渠遂堅城守 數月未能下
2688#31155 SIBLINGS CHILDREN 31155
 
-0109 史記(-91) 朝鮮列傳
左將軍素侍中 幸 將燕代卒 悍 乘勝 軍多驕 樓船將齊卒 入海 固已多敗亡 其先與右渠戰 因辱亡卒 卒皆恐 將心慙 其圍右渠 常持和節
2688#15103 SIBLINGS CHILDREN 15103
 
-0109 史記(-91) 朝鮮列傳
좌장군은 본시 시중으로 천자의 총애를 받고 있는 데다가 燕과 代지방의 군사를 거느렸으므로 굳세었는데, 싸움에 이긴 기세를 타고 군사들이 더욱 교만해졌다. 누선은 齊나라 병사들을 이끌고 바다로 출병하였으나, 이미 여러번 싸움에 패하고 군사를 잃었으며, 앞서 우거와의 싸움에서 곤욕을 치른 패잔한 군사들이라 군사들은 모두 두려워 하고 장군은 부끄럽게 여겨 우거를 포위하고도 항상 화평을 유지했다.
2688#17088 SIBLINGS CHILDREN 17088
 
-0109 漢書(82)
左將軍素侍中 幸 將燕代卒 悍 乘勝 軍多驕 樓船將齊卒 入海已多敗亡 其先與右渠戰 困辱亡卒 卒皆恐 將心慚 其圍右渠 常持和節
2688#31165 SIBLINGS CHILDREN 31165
 
-0109 史記(-91) 朝鮮列傳
左將軍急擊之 朝鮮大臣乃陰間使人私約降樓船 徃來言 尚未肯決 左將軍數與樓船期戰 樓船欲急就其約 不會 左將軍亦使人求間郤降下朝鮮 朝鮮不肯 心附樓船 以故兩將不相能
2688#15072 SIBLINGS CHILDREN 15072
 
-0109 史記(-91) 朝鮮列傳
좌장군이 맹렬히 성을 공격하니, 조선 대신들은 몰래 사람을 보내 사사로이 누선에게 항복을 약속했으나, 말만 오고 갈 뿐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좌장군은 여러 차례 누선과 싸울 시기를 정하였으나 누선은 약속을 급히 이루려고 싸움에 나가지 않았다. 좌장군 또한 사람을 보내 조선이 항복해 올 때를 탐문하였으나, 조선은 이를 반기지 않고 누선 쪽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로 인해 양 장군은 서로 반목하게 되였다.
2688#17089 SIBLINGS CHILDREN 17089
 
-0109 漢書(82)
左將軍急擊之 朝鮮大臣乃陰間使人私約降樓船 往來言 尚未肯決 左將軍數與樓船期戰 樓船欲就其約 不會左將軍亦使人求間隙降下朝鮮 不肯 心附樓船 以故兩將不相得
2688#31157 SIBLINGS CHILDREN 31157
 
-0109 史記(-91) 朝鮮列傳
左將軍心意樓船前有失軍罪 今與朝鮮私善而又不降 疑其有反計 未敢發 좌장군은 마음속으로 ‘누선은 전에 군사를 잃은 죄가 있는 데다가 지금은 조선과 사사로이 잘 지내고 있으며, 조선 또한 항복하지 않으니 반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 하였으나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였다.
2688#15110 SIBLINGS CHILDREN 15110
 
-0109 漢書(82)
左將軍心意樓船前有失軍罪 今與朝鮮和善而又不降 疑其有反計 未敢發
2688#31158 SIBLINGS CHILDREN 31158
 
-0109 史記(-91) 朝鮮列傳
天子曰將率不能 前乃使衞山諭降右渠 右渠遣太子 山使不能剸決 與左將軍計相誤 卒沮約 今兩將圍城 又乖異 以故久不決 使濟南太守❸公孫遂徃征之 有便宜得以從事
2688#17090 SIBLINGS CHILDREN 17090
 
-0109 史記(-91) 朝鮮列傳
천자는, “장수들이 이룰 수 없으므로 전에 위산으로 하여금 우거를 달래 항복하도록 하여 우거가 태자까지 보냈는데도 산이 이를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좌장군과 서로 계교가 틀려 마침내 약속이 깨어지고 말았다. 지금도 양 장군이 성을 포위하고도 역시 어긋나고 달라서 오래도록 결판이 나지 못하고 있다.” 고 말하고 제남태수 공손수를 보내어 이를 바로잡고 상황에 맞게 처하도록 하였다
2688#15137 SIBLINGS CHILDREN 15137
 
-0109 漢書(82)
天子曰 將率不能前 乃使衛山諭降右渠 不能顓決 與左將軍相誤 卒沮約 今兩將圍城又乖異 以故久不決 使故濟南太守公孫遂往正之 有便宜得以從事
2688#31159 SIBLINGS CHILDREN 31159
 
-0109 史記(-91) 朝鮮列傳
遂至 左將軍曰 朝鮮當下久矣 不下者有狀 言樓船數期不會 具以素所意告遂曰 今如此不取 恐為大害 非獨樓船 又且與朝鮮共滅吾軍 遂亦以為然 而以節召樓船將軍入左將軍營計事 即命左將軍麾下執捕樓船將軍 并其軍 以報天子 天子誅遂
2688#16961 SIBLINGS CHILDREN 16961
 
-0109 史記(-91) 朝鮮列傳
수가 도착하니 좌장군이 말했다. “조선이 항복할 형편에 이른 지 오래되었는데도 항복하지 않는 것은 사정이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누선이 여러 차례 싸우러 나오지 않은 것과 평소의 뜻하는 바를 수에게 낱낱이 고하였다. “지금 이와 같으니 체포하지 않으면 크게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누선 혼자만이 아니고 조선과 함께 우리 군사를 멸할 것입니다.” 라고 하니, 수도 이를 옳게 여기고 누선장군을 체포하고 군사를 합친 뒤 천자에게 보고하자, 천자는 수를 죽였다.
2688#17091 SIBLINGS CHILDREN 17091
 
-0109 「三國誤記」 漢書
遂至 左將軍曰 朝鮮當下久矣 不下者 樓船數期不會 具以素所意告遂曰 今如此不取 恐為大害 非獨樓船 又且與朝鮮共滅吾軍 遂亦以為然 而以節召樓船將軍入左將軍軍計事 即今左將軍戲下執縛樓船將軍 并其軍 以報 天子(許→)誅遂 ▐ 사기에는 天子誅遂라 되어 있으나 한서에는 天子許遂라 되어 있다. 좌장군 순체를 주살한 이유가 坐争功相嫉乖計인데 공손수도 거기에 가담하였으므로 天子誅遂가 맞다. 사기 조선열전의 끝에도 荀彘爭勞 與遂皆誅라고 되어 있다.
2688#31156 SIBLINGS CHILDREN 31156
 
-0109 史記(-91) 朝鮮列傳
左將軍已并兩軍 即急擊朝鮮 朝鮮相路人 相韓陰 尼谿相參 將軍王唊 相與謀曰 始欲降樓船 樓船今執 獨左將軍并將 戰益急 恐不能與戰 王又不肯降 陰唊路人皆亡降漢 路人道死
2688#17168 SIBLINGS CHILDREN 17168
 
-0109 史記(-91) 朝鮮列傳
좌장군이 이미 양군을 합하여 맹렬히 조선을 치니, 조선의 상 노인과 상 한음과 니계상 삼 ·장군 왕협이 서로 모의하기를, “처음 누선에게 항복하려 했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 있고 좌장군 단독으로 장졸을 합하여 전투가 더욱 맹렬하여 맞아서 싸우기 두려운데도 왕은 항복하려 하지 않는다.” 하고 음·협·노인이 모두 도망하여 한나라에 항복하였다. 노인은 도중에 죽었다.
2688#16988 SIBLINGS CHILDREN 16988
 
-0109 漢書(82)
左將軍已并兩軍 即急擊朝鮮 朝鮮相路人·相韓陶·尼谿相參·將軍王唊相與謀曰 始欲降樓船 樓船今執 獨左將軍并將 戰益急 恐不能與 王又不肯降 陶·唊路人皆亡降漢 路人道死
2688#31161 SIBLINGS CHILDREN 31161
 
-0108 史記(-91) 朝鮮列傳
元封三年夏 尼谿相參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王險城未下 故右渠之大臣成巳又反 復攻吏 左將軍使右渠子長 降相路人之子最 告諭其民誅成巳 以故遂定朝鮮 為四郡
2688#15838 SIBLINGS CHILDREN 15838
 
-0108 史記(-91) 朝鮮列傳
원봉 3년 여름, 니계상 삼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항복하여 왔으나 왕험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죽은 우거의 대신 성이가 또 반하여 군리들을 공격하였다.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장과 항복한 상 노인의 아들 최로 하여금 그 백성을 달래고 성이를 죽이도록 하였다. 이로써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4군을 설치하였다.
2688#16989 SIBLINGS CHILDREN 16989
 
-0108 ~ -0082 眞番郡
진번은 사기(-91)에서 주로 조선과 묶여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에 접한 나라로 보인다. 조선은 사기에서 연나라의 동쪽에 접해 있다고 되어 있고 삼국지(289)에는 고구려의 남쪽이자 예의 서쪽에 있다고 되어 있으므로, 조선에 접한 진번이 있을 곳은 조선의 남쪽 밖에 없다.
2688#8329 SIBLINGS CHILDREN 8329
 
-0108 ~ -0082 臨屯郡
임둔군은 과거 蒼海郡이 설치되었던 지역인 듯하다.
2688#15081 SIBLINGS CHILDREN 15081
 
-0108 漢書(82)
元封三年夏 尼谿相參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王險城未下 故右渠之大臣成已又反 復攻吏 左將軍使右渠子長·降相路人子最 告諭其民 誅成已 故遂定朝鮮為真番·臨屯·樂浪·玄菟四郡
2688#31162 SIBLINGS CHILDREN 31162
 
-0108 ~ -0082 茂陵書
臣瓚曰 茂陵書 臨屯郡 治東暆縣 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 十五縣 真番郡 治霅縣 去長安七千六百四十里 十五縣 신찬이 말하기를 '무릉서에 임둔군은 치소가 동이현으로 장안에서 6138리고 현이 15개다. 진번군은 치소가 삽현으로 장안에서 7640리고 현이 15개다'라고 하였다.
2688#5869 SIBLINGS CHILDREN 5869
 
-0108  ~  -0082  茂陵書
-0108 ~ -0082 茂陵書
창해군은 황초령을 넘어 한나라와 연결되며 설치되었으므로 치소는 황초령 아래에 있었을 듯하다. 임둔군은 창해군을 재건하는 의미를 지녔으므로 임둔군의 치소 또한 창해군의 치소를 재건했을 듯하다. 동이가 황초령 아래에 있었고 진번군이 낙랑군 남쪽에 있었으며 진번군의 치소 삽현이 동이보다 1500리 더 먼 곳에 있었다면, 삽현의 위치로는 한성이 유력하다.
2688#21137 SIBLINGS CHILDREN 21137
 
-0108 鹽鐵論(-81) 地廣
左將伐朝鮮 開臨屯 燕齊困於穢貉 張騫通殊遠 納無用 府庫之藏 流於外國 좌장군이 조선을 정벌하고 임둔군을 설치했다.
2688#41018 SIBLINGS CHILDREN COMMENT 41018
 
-0108 史記(-91) 朝鮮列傳
封參為澅清侯 陰為荻苴侯 長為幾侯 最以父死頗有功 為溫陽侯 삼을 봉하여 홰청후로, 음은 적저후, 협은 평주후, 장은 기후로 삼았으며, 최는 아버지가 죽은데다 자못 공이 있었으므로 온양후로 삼았다.
2688#17067 SIBLINGS CHILDREN 17067
 
-0108 漢書(82)
封參為澅清侯 陶為秋苴侯 唊為平州侯 長為幾侯 最以父死頗有功 為沮陽侯
2688#31163 SIBLINGS CHILDREN 31163
 
-0108 史記(-91) 朝鮮列傳
左將軍徵至 坐争功相嫉 乖計 弃市 樓船將軍亦坐兵至列口 當待左將軍 擅先縱 失亡多 當誅 贖為庶人 좌장군을 불러 들여 오자 공을 다투고 서로 시기하여 계획을 어긋나게 한 죄로 처형하였다. 누선장군도 병사를 거느리고 열구에 이르렀다면 마땅히 좌장군을 기다려야 할 것인데도 제멋대로 먼저 군사를 풀어 많은 병사들을 잃어버렸으므로 주살함이 마땅하나 속전을 받고 서인으로 삼았다.
2688#17068 SIBLINGS CHILDREN 17068
 
-0108 ◾
왕험성이 평양에 있었다면 양복이 왕험성을 치기 위해 도착한 열구는 대동강 하구가 되고 열수는 대동강이 된다. 이 침공 경로는 훗날 수나라가 고려의 평양성을 치기 위해 들어온 경로와 같다.
2688#5913 SIBLINGS CHILDREN COMMENT 5913
 
-0108 漢書(82)
左將軍徵至 坐爭功相嫉乖計 棄市 樓船將軍亦坐兵至列口當待左將軍 擅先縱 失亡多 當誅 贖為庶人
2688#31164 SIBLINGS CHILDREN 31164
 
-0108 史記(-91) 朝鮮列傳
太史公曰 右渠負固 國以絕祀 涉何誣功 為兵發首 樓船將狹 及難離咎 悔失番禺 乃反見疑 荀彘爭勞 與遂皆誅 兩軍俱辱 將率莫侯矣
2688#31166 SIBLINGS CHILDREN 31166
 
-0108 漢書(82)
贊曰 楚·粵之先 歷世有土 及周之衰 楚地方五千里 而句踐亦以粵伯 秦滅諸侯 唯楚尚有滇王 漢誅西南夷 獨滇復寵 及東粵滅國遷眾 繇王居股等猶為萬戶侯 三方之開 皆自好事之臣 故西南夷發於唐蒙·司馬相如 兩粵起嚴助·朱買臣 朝鮮由涉何 遭世富盛 能成功 然已勤矣 追觀太宗填撫尉佗 豈古所謂 招攜以禮 懷遠以德 者哉
2688#31160 SIBLINGS CHILDREN 31160
 
-0108                 朝鮮列傳 ⤴
-0108 朝鮮列傳 ⤴
2688#10826 SIBLINGS CHILDREN 10826
 
-0107 玄菟郡
한무제 원봉 2년에 조선을 정벌하여 만의 손자 우거를 죽이고, 그 지역을 분할하여 4군을 설치하였는데, 옥저성으로 현토군을 삼았다.
2688#21184 SIBLINGS CHILDREN 21184
 
-0082 後漢書(445)
罷臨屯眞番 以幷樂浪玄菟 임둔과 진번을 폐지하여 낙랑과 현도에 합병하였다.
2688#7237 SIBLINGS CHILDREN COMMENT 7237
 
-0075 현도군 이전, 동부도위 설치
夷貊의 침략을 받자 현도군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고 옥저는 현으로 만들어 낙랑에 소속시켰다. 또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어 단단대령 동쪽의 7현을 갈라 동부도위를 설치하고 불내성에 치소를 두었다.
2688#20937 SIBLINGS CHILDREN 20937
 
-0045 정백동 낙랑호구부
朝鮮 䛁邯 增地 黏蟬 駟望 屯有 帶方 列口 長岑 海冥 昭明 提奚 含資 遂成 鏤方 渾彌 浿水 吞列┆東暆 蠶台 不而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2688#65 SIBLINGS CHILDREN 65
 
-0045 정백동 낙랑호구부
▐ 뒤에 있는 7현을 동부도위 소속으로 추정한다. 沃沮가 낙랑에 소속되었다고 하나 낙랑군 현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夫租를 沃沮로 추정한다. 朝鮮에 樂浪을 설치한 것처럼 沃沮에 夫租를 설치했을 수 있다. 夫租는 이른 시기의 정백동 낙랑호구부(-45)에서부터 보이나 沃沮는 나중에 나온 삼국지(289)에서 처음 나타나기 때문에 夫租가 훗날 沃沮로 개칭되었을 수도 있다.
2688#21002 SIBLINGS CHILDREN 21002
 
0003 三國史記(1145) 高句麗
王遷都於國内 築尉那巖城 왕이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2688#14964 SIBLINGS CHILDREN 14964
 
0008 漢書(82) 遼東郡
戶五萬五千九百七十二 口二十七萬二千五百三十九 縣十八 襄平 新昌 無慮 望平 房 候城 遼隊 遼陽 險瀆 居就 高顯 安市 武次 平郭 西安平 文 番汗 沓氏
2688#21157 SIBLINGS CHILDREN 21157
 
0008 漢書(82) 樂浪郡
戶六萬二千八百一十二 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 縣二十五 朝鮮 䛁邯 浿水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東暆 不而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 뒤에 나오는 7현은 정백동 낙랑호구부(-45)와 거의 같다. 東暆 蠶台 不而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2688#15134 SIBLINGS CHILDREN 15134
 
0008 漢書(82) 玄菟郡
戶四萬五千六 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 縣三 高句驪 上殷台 西蓋馬
2688#7339 SIBLINGS CHILDREN 7339
 
0008 漢書(82)
西蓋馬(馬訾水 西北入鹽難水 西南至西安平入海 過郡二 行一千一百里) 서개마(마자수가 서북쪽으로 흘러 염난수로 들어간다. 서남쪽으로 흘러 서안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2군을 지나 1100리를 흐른다.) ▐ 서안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는 강은 염난수고 지금의 압록강이다. 마자수는 염난수의 지류인데 서북쪽으로 흐른다고 하니 강계를 지나는 독로강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2군을 지나 1100리를 흐른다는 설명은 염난수다.
2688#19986 SIBLINGS CHILDREN 19986
 
0008¦江界郡
독로강(禿魯江, 현 將子江)이 서북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2688#21158 SIBLINGS CHILDREN 21158
 
0009~0023 新
▐ 전한의 왕망은 고모인 효원 황후의 비호 아래 성장하다 8년에는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전국에서 반란이 잇따랐고 23년에는 왕망도 살해되었다. 이때는 유현이 반란 세력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어 있던 상태였는데, 그가 곧 경시제다.
2688#15772 SIBLINGS CHILDREN 15772
 
0012 漢書(82)
왕망 초에 고구려 병력를 뽑아 오랑캐를 정벌하려 하였으나 모두 도망하여 변경을 나가 법을 어기고 도적이 되었다. 요서대윤 전담이 그들을 추격하다 죽자 왕망이 장수 엄우를 시켜 치게 하였다. 엄우가 고구려후 추(騶)를 유인하여 목을 베고 그 머리를 장안에 보냈다. 왕망이 고구려를 하구려로 이름을 바꾸고 천하에 알리게 하였다. 이에 맥인이 변경을 더욱 침범하게 되었다.
2688#6946 SIBLINGS CHILDREN 6946
 
0020~0023 魏略(265±)
20~23년에 廉斯鑡이 辰韓의 右渠帥가 되어 樂浪의 토지가 비옥하다는 말을 듣고 도망가려고 살던 부락을 나오다 漢人 호래를 만났다. 그는 3년 전에 천 5백 명과 함께 나무를 베다 韓의 습격을 받아 노예가 되었다고 하였다. 鑡이 호래를 데리고 含資縣으로 가 郡에 연락하자 郡은 鑡을 통역으로 삼아 수초 사이로 큰 배를 타고 辰韓에 들어가 잡혀간 천여명을 데려갔다. 5백명은 이미 죽은 뒤여서 辰韓이 보상으로 진한인 만 5천명과 弁韓布 만 5천필을 내놓았다.
2688#7281 SIBLINGS CHILDREN COMMENT 7281
 
0023~0025 更始帝
▐ 23년에 왕망에 반대하는 세력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으나 25년에 쫓겨나고 살해당했다. 이때는 유수가 반란 세력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어 있던 상태였는데, 그가 곧 광무제다.
2688#51 SIBLINGS CHILDREN COMMENT 51
 
0025 後漢書(445)
更始敗 土人王調殺郡守劉憲 自稱大將軍 樂浪太守 경시제가 패하자 토착인 왕조가 군수 유헌을 죽이고 대장군 낙랑태수를 칭했다.
2688#5879 SIBLINGS CHILDREN OPEN
 
0025 後漢書(445) 夫餘
建武中 東夷諸國皆來獻見 二十五年 夫餘王遣使奉貢 光武厚荅報之 於是使命歲通 25~55년에 동이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와서 조헌하고 입견하였다. 25년에 부여왕이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바치므로 광무제가 후하게 보답하니 이에 사절이 해마다 왕래하였다.
2688#20879 SIBLINGS CHILDREN 20879
 
0025~0057 광무제
▐ 25년에 경시제에 반대하는 반란 세력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다. 다른 반란 세력을 모두 제압하고 중국을 통일하였다.
2688#15771 SIBLINGS CHILDREN 15771
 
0026 三國史記(1145) 高句麗
왕이 친히 개마국을 정벌하여 그 왕을 죽이고 백성들을 위로하여 편안케 하였다.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고 단지 그 땅을 군현으로 삼았다. ▐ 압록강 유역은 -75년부터 이미 한나라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244년에 조위의 침공을 받았을 때 동천왕이 도주했다는 鴨渌原이 이곳으로 추정된다.
2688#422 SIBLINGS CHILDREN OPEN
 
0030 後漢書(445)
建武六年 光武遣太守王遵將兵擊之 至遼東 閎與郡決曹史楊邑等共殺調迎遵 광무제가 태수 왕준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게 하였다. 요동에 이르자 왕굉이 결조사 양읍과 함께 왕조를 죽이고 왕준을 맞이하였다.
2688#9933 SIBLINGS CHILDREN OPEN
 
0030 三國志(289)
변경의 郡을 줄이면서 도위도 폐지하였다. 그 후부터 縣에 있던 우두머리로 모두 縣侯를 삼으니 不耐·華麗·沃沮 등의 제 縣은 전부 侯國이 되었다. ▐ 한나라의 군현에서 빠지는 것은 곧 한나라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된다. 한나라의 군현에서 빠진 지역은 이때부터 고구려에 흡수되기 시작한다.
2688#385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0032 三國志(289)
漢光武帝八年 高句麗王遣使朝貢 始見稱王 32년에 고구려왕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면서 비로소 왕의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 한나라와의 관계가 개선된 것도 고구려 팽창의 촉매 역할을 했을 듯하다.
2688#5890 SIBLINGS CHILDREN OPEN
 
0037 三國史記(1145) 新羅
髙句麗王無恤 襲樂浪滅之 其國人五千來投 分居六部 고구려 왕 무휼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나라 사람 5천 명이 와서 투항하였으므로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2688#34924 SIBLINGS CHILDREN COMMENT 34924
 
0037 三國史記(1145) 新羅
▐ 37년에 고려의 침공을 받아 망하자 그 유민이 신라로 흘러간 낙랑은 36년, 14년 그리고 4년에 신라를 침공한 낙랑이다. 이 낙랑은 -2년에 백제를 침공하고 -8년에 말갈로 하여금 백제를 침공하게 한 낙랑이기도 하다. -6년에 백제는 이 낙랑을 東有樂浪이라 했다. ▐ 26년에 개마국을 정벌하고 28년에 개마대산을 넘어 북옥저를 점령한 것과 비교하면 32년에 황초령을 넘어 최리낙랑을 정벌하고 37년에 동유낙랑을 정벌한 것이 어색하지 않다.
2688#20905 SIBLINGS CHILDREN 20905
 
0044 後漢書(445)
建武二十年 韓人廉斯人蘇馬諟等 詣樂浪貢獻 光武封蘇馬諟 爲漢廉斯邑君使 屬樂浪郡 四時朝謁 한의 염사 사람인 소마시 등이 낙랑에 와서 공물을 바쳤다. 광무제는 소마시를 대하여 한의 염사읍군으로 삼아 낙랑군에 소속시키고 철마다 조알하도록 하였다. ▐ 삼국지에 실린 위략의 염사착 이야기와 동일한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 왕망의 사후 낙랑과 그 주변 나라들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韓의 廉斯는 낙랑에 기대는 방향으로 생존을 모색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2688#7327 SIBLINGS CHILDREN OPEN
 
0047 後漢書(445) 高句驪
句驪蠶支落大加戴升等萬餘口詣樂浪內屬 구려 잠지락의 대가 재승 등 만여명이 낙랑에 투항하였다.
2688#20887 SIBLINGS CHILDREN 20887
 
0056 三國史記(1145) 高句麗
伐東沃沮 取其土地爲城邑 拓境東至滄海 南至薩水 동옥저를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성읍으로 삼았다. 국경을 넓혀 동쪽으로는 창해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살수까지 이르렀다.
2688#14781 SIBLINGS CHILDREN 14781
 
0082 漢書 (국사편찬위원회)
2688#31151 SIBLINGS CHILDREN 31151
 
0105 後漢書(445) 高句驪
和帝元興元年春 復入遼東 寇略六縣 太守耿夔擊破之 斬其渠帥 105년 봄에 다시 요동을 침입하여 여섯 현을 노략질하므로 태수 겸기가 격파하고 그 우두머리를 참살하였다.
2688#20888 SIBLINGS CHILDREN 20888
 
0106 東觀漢紀
安帝即位之年 分高顯·候城·遼陽 屬玄菟 106년에 고현, 후성 그리고 요양을 갈라 현도에 소속시켰다.
2688#21134 SIBLINGS CHILDREN 21134
 
0106 국사편찬위원회
한나라는 -75±년에 蘇子河 유역에 제2현도군을 두었다가 100±년에 다시 渾河 유역으로 옮겨 제3현도군을 설치하였다. 여러 사료를 종합하면 고구려가 제2현도군을 점령한 것은 1세기 말일 가능성이 높고, 선비의 동향을 고려하면 97년 전후로 추정된다. 106년에는 제2현도군의 속현이었던 고구려⋅서개마⋅상은대 3현을 渾河 방면으로 옮기고 요동군의 속현인 고현⋅후성⋅요양 3현의 소속을 현도군으로 변경하여 제3현도군을 설치한 것이다.
2688#21128 SIBLINGS CHILDREN 21128
 
0106 현도군 치소
又西迁即为现沈阳市上伯官古城遗址。
2688#14567 SIBLINGS CHILDREN 14567
 
0111 後漢書(445) 夫餘
至安帝永初五年 夫餘王始將步騎七八千人寇鈔樂浪 殺傷吏民 後復歸附 부여왕이 처음으로 보병과 기병 7~8천 명을 거느리고 낙랑을 노략질하여 관리와 백성을 죽였으나 그 뒤에 다시 귀부하였다. 夫餘夷犯塞 殺傷吏人 부여 오랑캐가 변방을 침략하여 관리를 죽였다. ▐ 이 기록의 낙랑은 현도의 오기로 보아야 한다.
2688#14992 SIBLINGS CHILDREN OPEN
 
0111 三國志(289)
至殤安之間 句麗王宮數寇遼東 更屬玄菟 상제(106)와 안제(106~125) 연간에 구려왕 궁이 자주 요동을 침입하였으므로 다시 현도에 속하게 하였다.
2688#5880 SIBLINGS CHILDREN COMMENT 5880
 
0111 後漢書(445) 高句驪
安帝永初五年 宮遣使貢獻 求屬玄菟 111년에 궁이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바치고 현도에 예속되기를 구하였다.
2688#20889 SIBLINGS CHILDREN 20889
 
0118 後漢書(445) 高句驪
元初五年 復與濊貊寇玄菟 攻華麗城(華麗縣 屬樂浪郡) 118년에는 예맥과 함께 현도를 침략하고 화려성을 공격하였다.
2688#5882 SIBLINGS CHILDREN 5882
 
0120 後漢書(445) 夫餘
永寧元年 乃遣嗣子尉仇台詣闕貢獻 天子賜尉仇台印綬金綵 120년에 세자 위구태를 보내어 궁궐에 나아와서 조공을 바치므로 천자가 위구태에게 인수와 금채를 하사하였다.
2688#20880 SIBLINGS CHILDREN 20880
 
0121 요동과 고려의 공방
봄에 유주자사 풍환, 현도태수 요광, 요동태수 채풍이 고려를 침공했다. 태조왕이 세자 수성에게 2천명을 거느리고 막게 했다. 수성은 험요지에서 대군을 막고 몰래 3천명을 보내 현도와 요동을 침략하고 2천명을 죽였다.┆여름에 고려가 요동 선비 8천명과 함께 요대를 침략하자 채풍이 신창에서 추격하다 죽었다.┆가을에 태조왕이 마한과 예맥 수천명을 거느리고 현도를 포위하자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와 2만명을 보냈다. 한나라 주와 군이 함께 깨뜨리고 5백명을 베었다
2688#20895 SIBLINGS CHILDREN OPEN
 
0122 後漢書(445) 高句驪
明年 遂成還漢生口 詣玄菟降 다음 해에 수성이 한나라의 포로를 송환하고 현도에 이르러 항복하였다.
2688#5884 SIBLINGS CHILDREN 5884
 
0132 後漢書(445) 高句驪
順帝陽嘉元年 置玄菟郡屯田六部 132년에 현도군에 둔전 6부를 설치하였다.
2688#5886 SIBLINGS CHILDREN 5886
 
0136 後漢書(445) 夫餘
順帝永和元年 其王來朝京師 帝作黃門鼓吹角抵戲以遣之 136년에 그 왕이 경사에 와서 조회하므로 황제는 황문고취와 각저희를 하게 하여 보내었다.
2688#20881 SIBLINGS CHILDREN 20881
 
0146 高句麗, 서안평 공격
삼국지(289) 攻西安平 於道上殺帶方令 略得樂浪太守妻子┆후한서(445) 質桓之閒 復犯遼東西安平 殺帶方令 掠得樂浪太守妻子
2688#6446 SIBLINGS CHILDREN OPEN
 
0161 後漢書(445) 夫餘
桓帝延熹四年 遣使朝賀貢獻 161년에 사신을 보내어 조하하고 공물을 바쳤다.
2688#20882 SIBLINGS CHILDREN 20882
 
0167 後漢書(445) 夫餘
永康元年 王夫台將二萬餘人寇玄菟 玄菟太守公孫域擊破之 斬首千餘級 167년에 왕 부대가 2만여명을 거느리고 현도를 노략질하므로 현도태수 공손역이 쳐서 깨뜨리고 천여명의 머리를 베었다.
2688#20883 SIBLINGS CHILDREN 20883
 
0169 三國志(289) 高句麗
靈帝建寧二年 玄菟太守耿臨討之 斬首虜數百級 伯固降 屬遼東 169년에 현도태수 경림이 그들을 토벌하여 수 백 명을 죽이고 사로잡으니 백고가 항복하여 요동에 속하였다.
2688#5888 SIBLINGS CHILDREN COMMENT 5888
 
0169 後漢書(445) 高句驪
建寧二年 玄菟太守耿臨討之 斬首數百級 伯固降服 乞屬玄菟云 169년에 현도태수 경임이 토벌하여 수백명을 죽이니 백고가 항복하여 현도에 속하기를 청하였다고 한다.
2688#5878 SIBLINGS CHILDREN 5878
 
0172~0178 三國志(289) 高句麗
熹平中 伯固乞屬玄菟 公孫度之雄海東也 伯固遣大加優居 主簿然人等助度擊富山賊 破之 172~178년에 백고는 현도군에 속하기를 청하였다. 공손탁의 세력이 요동에 웅거하자, 백고는 대가 우거와 주박 연인 등을 파견하여 탁을 도와 부산의 도적을 격파하였다.
2688#5889 SIBLINGS CHILDREN COMMENT 5889
 
0174 後漢書(445) 夫餘
至靈帝熹平三年 復奉章貢獻 174년에 이르러 다시 표장을 올리고 공물을 바쳤다.
2688#20884 SIBLINGS CHILDREN 20884
 
0189- 三國志(289)
桓靈之末 韓濊彊盛 郡縣不能制 民多流入韓國 환제(146~167)·영제(168~189) 말기에는 한과 예가 강성하여 군·현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니 많은 백성들이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2688#7280 SIBLINGS CHILDREN COMMENT 7280
 
0189- 後漢書(445)
韓과 濊가 모두 강성해져 군현이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자, 난리에 고통스러운 백성들이 韓으로 도망하여 유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2688#7325 SIBLINGS CHILDREN COMMENT 7325
 
0189~0220 後漢書(445) 夫餘
夫餘本屬玄菟 獻帝時 其王求屬遼東云 부여는 본래 현도에 속하였으나 헌제 때에 그 나라의 왕이 요동에 속하기를 요청하였다고 한다.
2688#20885 SIBLINGS CHILDREN 20885
 
0190~0204 三國志(289) 夫餘
부여는 본래 현도에 속하였다. 한나라 말년에 공손탁이 해동에서 세력을 확장하여 외이들을 위력으로 복속시키자 부여왕 위구태는 바꾸어 요동군에 복속하였다. 이 때에 구려와 선비가 강성해지자, 탁(度)은 부여가 두 오랑캐의 틈에 끼여 있는 것을 기화로 일족의 딸을 시집보내었다.
2688#5892 SIBLINGS CHILDREN COMMENT 5892
 
0204~0220 三國志(289) 高句麗
건안 연간에 공손강이 군대를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읍락을 불태웠다. 발기는 형이면서도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하여 연노부의 가(加)와 함께 각기 하호 3만명을 이끌고 강(康)에게 투항하였다가 돌아와서 비류수 유역에 옮겨 살았다. 항복했던 호(胡)도 이이모를 배반하므로 이이모는 새로 나라를 세웠는데 오늘날 (구려가) 있는 곳이 이곳이다. 발기는 드디어 요동으로 건너가고 그 아들은 구려에 계속 머물렀는데 지금 고추가 교위거가 바로 그 사람이다
2688#5893 SIBLINGS CHILDREN COMMENT 5893
 
0204~0220 공손강, 대방군 분할
建安中 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為帶方郡 遣公孫模 張敞等收集遺民 興兵伐韓濊 舊民稍出 是後倭韓遂屬帶方
2688#5915 SIBLINGS CHILDREN OPEN
 
0220- 三國志(289)
漢末更屬句麗 예는 한나라 말기에 다시 구려에 복속되었다.
2688#3553 SIBLINGS CHILDREN COMMENT 3553
 
0220- 後漢書(445) 군국지
2688#10969 SIBLINGS CHILDREN 10969
 
0220~0265 曹魏
魏의 曹丕는 漢의 마지막 황제로부터 자리를 넘겨받았는데, 이후 蜀 및 吳와 다툼을 벌였다. 이 시기를 삼국시대라고 한다. 蜀과 吳는 각각 264년과 280년에 魏와 晉에게 망했다.
2688#5917 SIBLINGS CHILDREN 5917
 
0238  ~  0246 曹魏의 요동 평정
0238 ~ 0246 曹魏의 요동 평정
漢 왕조를 이은 曹魏는 238년에 요동을 차지하고 있는 공손연을 토벌하고 낙랑군과 대방군에 대한 통치도 회복하였다. 이어 曹魏는 244년과 245년에 걸쳐 고려를 침공하였고 낙랑군과 대방군도 고려에 복속했던 濊를 침공하여 다시 복종을 받아냈다. 낙랑군과 대방군은 韓의 공격을 받자 이도 쳐서 복속시켰다.
2688#5909 SIBLINGS CHILDREN COMMENT 5909
 
0238 曹魏, 공손연 토벌
景初二年 太尉司馬宣王 率衆討公孫淵 宮遣主簿大加將數千人助軍 238년에 태위 사마선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공손연을 토벌하니 궁이 주부와 대가를 파견하여 군사 수천명을 거느리고 군대를 도왔다.
2688#20897 SIBLINGS CHILDREN OPEN
 
0238~0246 東北亞 古代史 槪念圖
0238~0246 東北亞 古代史 槪念圖
2688#5875 SIBLINGS CHILDREN 5875
 
0238~0246 東夷
弱水┆鮮卑┆扶餘┆挹婁┆高句麗┆沃沮┆朝鮮┆濊┆馬韓┆辰韓┆弁韓┆倭
2688#15443 SIBLINGS CHILDREN 15443
 
0239.06(<238) 三國志(289)
倭女王遣大夫難升米等詣郡求詣天子朝獻太守劉夏遣吏將送詣京都 왜 여왕이 대부 난승미 등을 보내 (대방)군에 이르러 천자에 조헌할 것을 청하니, 태수 유하가 관원과 장수를 보내 경도까지 호송하게 했다.
2688#4262 SIBLINGS CHILDREN 4262
 
0239_ 진서(648)
宣帝之平公孫氏也其女王遣使至帶方朝見其後貢聘不絕 선제(사마의)가 공손씨를 평정하자 (倭의) 여왕이 사신을 대방에 파견하여 조알하였다. 그 뒤에도 조빙이 끊이지 않았다.
2688#5898 SIBLINGS CHILDREN COMMENT 5898
 
0240 三國志(289)
대방 태수 궁준이 건충교위 제준 등을 보내 조서와 인수를 받들어 왜국에 이르게 했다. 왜왕으로 임명하고 아울러 가져온 금, 비단, 융단, 칼, 거울, 채물을 하사했다. 이에 왜왕은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려 은조에 사례했다.
2688#5899 SIBLINGS CHILDREN COMMENT 5899
 
0244~0246 曹魏, 고려 정벌
244년에 조위의 유주자사 관구검은 현도에서 나와 비류에서 고구려를 격파하였다. 동천왕은 달아났고 관구검은 환도성을 파괴하였다. 245년에 재차 공격하자 동천왕은 옥저로 달아났고 현도태수 왕기가 그를 쫓아 숙신까지 갔다가 돌아갔다. 247년에 동천왕은 도읍을 옮겼다.
2688#444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0245 三國志(289)
조서를 내려 왜의 난승미에게 황당을 하사했는데 군(郡)으로 보내 수여토록 했다.
2688#5901 SIBLINGS CHILDREN COMMENT 5901
 
0245 三國志(289)
正始六年 樂浪太守劉茂 帶方太守弓遵 以領東濊屬句麗 興師伐之 不耐侯等舉邑降 245년에 낙랑태수 유무와 대방태수 궁준은 령 동쪽의 예가 구려에 복속하자 군대를 일으켜 정벌하였는데 불내후 등이 고을을 들어 항복하였다.
2688#21259 SIBLINGS CHILDREN 21259
 
0245 曹魏, 한국 정벌
部從事吳林 以樂浪本統韓國 分割馬韓八國以與樂浪 吏譯轉有異同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 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 遵戰死二郡遂滅韓
2688#571 SIBLINGS CHILDREN OPEN
 
0245┆東夷
弱水┆鮮卑┆扶餘┆挹婁┆高句麗┆沃沮┆朝鮮┆濊┆馬韓┆辰韓┆弁韓┆倭
2688#7300 SIBLINGS CHILDREN 7300
 
0247 三國志(289)
예가 조정에 와 조공하므로 불내예왕으로 봉하였다. 백성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계절마다 군에 와서 조알하였다. 2군에 전역이 있어 조세를 거둘 일이 있으면 공급케 하고 사역을 시켜 마치 백성처럼 취급하였다.
2688#5903 SIBLINGS CHILDREN COMMENT 5903
 
0247 三國志(289)
태수 왕기가 관부에 도착하였다. 倭 여왕 비미호와 구노국 남왕 비미궁호는 평소 불화했는데 재사, 오월 등을 (대방)군으로 보내 서로 공격하는 상황을 설명한 적이 있다. 새조연사 장정 등을 파견해 가져간 조서와 황당을 난승미에게 하사하고 격문으로 이를 널리 알렸다.
2688#5904 SIBLINGS CHILDREN COMMENT 5904
 
0265~0317 西晋
晉은 司馬炎이 魏의 마지막 황제로부터 자리를 넘겨받아 세운 왕조다.
2688#11676 SIBLINGS CHILDREN 11676
 
0265~0317 新彌
동이 마한의 신미 여러 나라는 산에 기대고 바다를 띠둘렀는데 유주에서 4천여 리 떨어져 있었다. 지난 세월에 귀부하지 않은 나라가 20여 개 있었는데 나란히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2688#16534 SIBLINGS CHILDREN OPEN
 
0276 진서(648) 平州
統縣二十六戶一萬八千一百 昌黎郡(昌黎 賓徒) 遼東國(襄平 汶 居就 樂就 安市 西安平 新昌 力城) 樂浪郡(朝鮮 屯有 渾彌 遂城 鏤方 駟望) 玄菟郡(高句麗 望平 高顯) 帶方郡(帶方 列口 南新 長岑 提奚 含資 海冥)
2688#10022 SIBLINGS CHILDREN 10022
 
0276 진서(648) 平州
▐ 후한의 유주는 연나라가 있던 지역인데, 진나라는 유주에서 산해관 동쪽을 갈라 평주를 만들었다. ▐ 낙랑군은 후한서의 유주 낙랑군 18성에서 䛁邯 淇水 占蟬 増地 昭明 樂都가 빠지고 南新이 들어가 13현이 되었는데, 여기서 7현을 대방군으로 분리하여 낙랑군은 6현이 되었다. 요동군은 후한서의 유주 요동군 11성에서 无虑 望平 候城 平郭 番汗 沓氏가 빠지고 居就 樂就 力城이 들어가 8현이 되었다.
2688#11615 SIBLINGS CHILDREN 11615
 
0280~0290 진서(648)
▐ 마한과 진한의 조공 기록이 나온다.
2688#16538 SIBLINGS CHILDREN 16538
 
0289 三國志
樂浪 사람을 阿殘이라 하였는데, 東方 사람들은 나(我)라는 말을 阿라 하였으니, 樂浪人들은 본디 그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2688#34947 SIBLINGS CHILDREN COMMENT 34947
 
0307 ~ 0436 鮮卑燕
진서와 위서 사이에 일어난 일들.
2688#9841 SIBLINGS CHILDREN OPEN
 
0313↝ 낙랑, 대방 그리고 조선
기원전 108년에 대동강 유역에 설치된 낙랑군은 서진 때까지 존속하다 313년에 고려에 병합되었다. 그러자 모용 선비가 그 유민을 받아 자신의 영토 내에 낙랑군을 설치하였다. 모용 선비의 연나라를 흡수한 북위 때에는 낙랑군이 요서의 영주에 있었는데 다시 하북의 남영주로 옮겨졌다. 대방은 낙랑과 이동 경로가 같고 조선은 북위 때 산해관 서쪽에 있었다. 313년 이후 옮겨간 낙랑, 대방 그리고 조선의 위치를 가지고 처음 설치된 위치라 주장하는 오류가 있다.
2688#10161 SIBLINGS CHILDREN 10161
 
0332 ❰❰ 0032 三國誤記 高句麗
왕자 好童이 沃沮에 갔다가 樂浪王 崔理를 만났는데 崔理가 北國 神王의 아들이라며 好童을 데려가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에 好童이 돌아가 최씨 딸에게 사람을 보내 무기고에 들어가 북을 찢고 나팔을 뽀개게 한 뒤 왕에게 낙랑을 치게 하였다. 고구려의 군사가 성 밑에 이른 뒤에야 북과 피리가 망가진 것을 알게 된 崔理는 딸을 죽이고 항복하였다. 혹은 '낙랑을 멸망시키려고 혼인을 청하여 그 딸을 며느리로 맞은 뒤 돌려보내 무기를 파괴하게 했다'고도 한다.
2688#7301 SIBLINGS CHILDREN OPEN
 
0386~0534 拓跋魏(北魏)
0386~0534 拓跋魏(北魏)
선비족 탁발부가 건국한 나라다.
2688#20627 SIBLINGS CHILDREN 20627
 
0444 위서(554) 營州
營州領郡六縣十四昌黎郡領縣三龍城廣興定荒建德郡領縣三石城廣都陽武遼東郡領縣二襄平新昌樂良郡領縣二永洛帶方冀陽郡領縣二平剛柳城營丘郡領縣二富平永安
2688#3599 SIBLINGS CHILDREN 3599
 
0490- 위서(554)
文成文明皇后馮氏 長樂信都人也 父朗 秦雍二州刺史西城郡公 母樂浪王氏
2688#20625 SIBLINGS CHILDREN 20625
 
0494 三國史記(1145) 고려
齊帝䇿王爲使持節散騎常侍都督營平二州征東大將軍樂浪公 제(南齊)나라 황제가 왕을 사지절 산기상시 도독영평이주 정동대장군 낙랑공으로 책봉하였다.
2688#34946 SIBLINGS CHILDREN COMMENT 34946
 
0500± 주서(636)
德皇帝娶樂浪王氏 是為德皇后 ▐ 북위 시기의 사람인데 북주에 와서 황후로 추존되었다.
2688#20638 SIBLINGS CHILDREN 20638
 
0508 三國史記(1145) 고려
梁髙祖下詔曰 髙句麗王樂浪郡公某 乃誠款著 貢驛相尋 冝豊秩命 式弘朝典 可撫軍 一作東大將軍開府儀同三司 양(梁)나라 고조가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고구려왕 낙랑군공 모는 정성이 두드러지고 조공하는 길이 서로 이어졌으므로, 마땅히 관작을 후하게 주고 조정의 의전을 넓혀 무군대장군 개부의동삼사로 삼는다.』
2688#34949 SIBLINGS CHILDREN COMMENT 34949
 
0509~0522 王氏 묘지명
○ 樂浪名邦 王氏名宗 낙랑은 이름있는 나라이며 왕씨는 이름 있는 집안이다. ○ 其先出自有殷 周武王剋商 封箕子於朝鮮 子孫因而氏焉 그 선조는 은으로부터 나왔으니 주무왕이 상을 정복하고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는데, 자손이 이로 인하여 성씨를 삼았다. ○ 殷有三人 周訪九疇 只族王家 藉冑鮮侯 은나라에 세 어진 신하가 있어 주나라가 9주를 물었다. 그 집안이 성을 왕씨라 하고 자손들이 조선후가 되었다.
2688#20623 SIBLINGS CHILDREN 20623
 
Pet Dictionary
What breed is this pet?
 
0526~0539  梁職貢圖(唐閻立本王會圖)
0526~0539 梁職貢圖(唐閻立本王會圖)
왼쪽으로부터 신라, 고려 그리고 백제의 사신이고 그 다음이 양나라 황제다. 옷은 신라, 고려 그리고 백제가 거의 동일하고 양나라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비슷한 편이다. 특히 목 아래가 쐐기 모양으로 파여 있는 모양은 그 부분을 둥글게 감싸는 중앙아 사신들의 옷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네 나라의 옷이 비슷해진 이유는 한반도에 400여년이나 존재했던 낙랑군을 통해 중국 문화가 고려와 한국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2688#11523 SIBLINGS CHILDREN 11523
 
0533 위서(554)
南營州(孝昌中營州陷永熙二年置寄治英雄城 효창 연간에 영주가 무너지자 영희 2년에 영웅성에 임시 치소를 두었다.) 領郡五縣十一昌黎郡領縣龍城廣興定荒遼東郡領縣二太平新昌建德郡領縣石城廣都營丘郡領縣三富平永安帶方樂良郡領縣一永樂 남영주(5군,11현) - 창려군(509호,용성,광흥,정황), 요동군(565호,태평,新昌), 건덕군(178호,석성,광도), 영구군(512호,부평,영안,대방), 낙랑군(49호,영락).
2688#10211 SIBLINGS CHILDREN 10211
 
0534 北魏의 분열(東魏와 西魏)
위(北魏)의 효무제는 대승상 고환을 제거하는 음모를 꾸미다가 실패하자 낙양에서 도망쳐 관중의 장안으로 도망쳐 우문태에게 보호를 받았다. 그러자 고환은 업(鄴)에서 효정제을 옹립하였다. 한편 우문태와 효무제는 서로 사이가 나빠져, 우문태는 효무제를 독살하고 문제를 옹립하였다.
2688#20626 SIBLINGS CHILDREN 20626
 
0539 樂浪郡朝鮮縣人韓顯度
元象二年四月十七日樂良郡朝鮮縣人韓顯性銘記
2688#20624 SIBLINGS CHILDREN 20624
 
0550 ~ 0577  제(高齊)
0550 ~ 0577 제(高齊)
2688#6427 SIBLINGS CHILDREN COMMENT 6427
 
0565 三國史記(1145)
봄 2월에 북제의 무성황제가 조서를 내려, 왕을 사지절 동이교위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삼았다.
2688#34926 SIBLINGS CHILDREN COMMENT 34926
 
0581 수서(636)
遼西郡(舊置營州 開皇初置總管府 大業初府廢) 統縣一 戶七百五十一 柳城(後魏置營州於和龍城 領建德冀陽昌黎遼東樂浪營丘等郡 龍城大興永樂帶方定荒石城廣都陽武襄平新昌平剛柳城富平等縣 後齊唯留建德冀陽二郡 永樂帶方龍城大興等縣 其餘並廢 開皇元年唯留建德一郡龍城一縣 其餘並廢 尋又廢郡 改縣為龍山 十八年改為柳城 大業初 置遼西郡 有帶方山 禿黎山 雞鳴山 松山 有渝水 白狼水)
2688#20799 SIBLINGS CHILDREN 20799
 
0581 ~ 0618  수(隋)
0581 ~ 0618 수(隋)
2688#6434 SIBLINGS CHILDREN COMMENT 6434
 
0581 수서(636)
上谷郡(開皇元年置易州) 易 淶水 逎 遂城(舊曰武遂 後魏置南營州 准營州置五郡十一縣 龍城廣興定荒屬昌黎郡 石城廣都屬建德郡 襄平新昌屬遼東郡 永樂屬樂浪郡 富平帶方 永安屬營丘郡 後齊唯留昌黎一郡 領永樂 新昌二縣 餘並省 開皇元年州移 三年郡廢 十八年改為遂城) 永樂 飛狐
2688#6447 SIBLINGS CHILDREN 6447
 
0581 수서(636)
상곡군(581년에 역주를 설치했다.) 역 내수 주 수성(예전에는 무수라 했다. 북위가 남영주를 설치하고 영주에 준하여 5군 11현을 두었다. 창려군「용성 광흥 정황」, 건덕군「석성 광도」, 요동군「양평 신창」, 낙랑군「영락」, 영구군「부평 대방 영안」. 북제가 창려군만 남겨두어 영락과 신창 2현으로 통합하였다. 581년에 주를 옮기고 583년에 군을 폐지했다. 598년에 수성으로 개명하였다.)
2688#10237 SIBLINGS CHILDREN 10237
 
0586~0605 수서(636)
北平郡(舊置平州) 統縣一 盧龍(舊置北平郡 領新昌朝鮮二縣 後齊省朝鮮入新昌 又省遼西郡並所領海陽縣入肥如 開皇六年又省肥如入新昌 十八年改名盧龍 大業初置北平郡 有長城 有關官 有臨渝宮 有覆舟山 有碣石 有玄水 盧水 溫水 閏水 龍鮮水 巨梁水 有海)
2688#20798 SIBLINGS CHILDREN 20798
 
0586~0605 수서(636)
북평군(예전 평주가 있던 곳이다). 현이 하나 있다. 노룡(예전 북평군이 있던 곳이다. 조선과 신창 2현을 거느렸다. 북제가 조선인을 신창에 들였다. 또 요서군을 합치고 해양을 비여에 넣었다. 586년에 비여를 신창에 합쳤다. 598년에 노룡으로 개칭했다. 605~618년초에 북평군을 설치했다. 장성, 관관, 임유궁, 부주산, 갈석, 현수, 노수, 온수, 윤수, 용선수, 거량수 그리고 바다가 있다.)
2688#20800 SIBLINGS CHILDREN 20800
 
0594 三國史記(1145)
수나라 황제가 조서를 내려, 왕을 상개부(上開府) 낙랑군공(樂浪郡公) 신라왕(新羅王)으로 삼았다.
2688#34927 SIBLINGS CHILDREN COMMENT 34927
 
0598┆遼西┆右北平┆北平
▐ 漢 遼西┆且慮 海陽 新安平 柳城 令支 肥如 賓從 交黎 陽樂 狐蘇 徒河 文成 臨渝 絫 ➔ 後漢 遼西┆陽樂 海陽 令支 肥如 臨渝 ➔ 晉 遼西┆陽樂 肥如 海陽 ➔ 魏 遼西┆肥如 陽樂 海陽 ▐ 漢 右北平┆平剛 無終 石成 廷陵 俊靡 薋 徐無 字 土垠 白狼 夕陽 昌城 驪成 廣成 聚陽 平明 ➔ 後漢 右北平┆土垠 徐無 俊靡 無終 ➔ 晉 北平┆徐無 土垠 俊靡 無終 ➔ 魏 北平┆朝鮮 新昌 ▐ 齊 北平┆新昌 肥如 ➔ 隋 北平┆新昌 ➔ 隋 北平┆盧龍
2688#6426 SIBLINGS CHILDREN 6426
 
0618 ~ 0907 唐
0618 ~ 0907 唐
2688#6474 SIBLINGS CHILDREN COMMENT 6474
 
0618~0907 구당서(945) 易州
역주(상곡군)에는 易 淶水 永樂 遂城 乃 5현이 있었다.
2688#6477 SIBLINGS CHILDREN COMMENT 6477
 
0618~0907 신당서(1060) 平州 北平郡
平州北平郡下初治臨渝武德元年徙治盧龍土貢熊郭蔓荊實人戶三千一百一十三口二萬五千八十六縣三有府一曰盧龍有盧龍軍天寶二載置又有柳城軍永泰元年置有溫溝白望西狹石東狹石綠疇米磚長楊黃花紫蒙白狼昌黎遼西等十二戍愛川周夔二鎮城東北有明垤關鶻湖城牛毛城盧龍中本肥如武德二年更名又置撫寧縣七年省石城中本臨渝武德七年省貞觀十五年復置萬歲通天二年更名有臨渝關一名臨閭關有大海關有碣石山有溫昌鎮馬城中古海陽城也開元二十八年置以通水運東北有千金冶城東有茂鄉鎮城
2688#6483 SIBLINGS CHILDREN COMMENT 6483
 
0618~0907 신당서(1060) 平州 北平郡
평주 북평군은 처음에 임유에 설치했다가 618년에 노룡으로 옮겼다. 특산물에는 곰, 곽, 만형자 그리고 사람이 있다. 3,113호 25,086구 3현이다. 부가 하나 있는데 노룡이라고 한다. 노룡군이 있는데 743년에 설치했다. 또 유성군이 있는데 765년에 설치했다. 온강, 백망, 서협석, 동협석, 녹수, 미박, 장양, 황화, 자몽, 백랑, 창려, 요서 등 12 수자리가 있다. 애천과 주기 두 진성이 있다. 동북쪽에 명질관, 골호성, 우모성이 있다.
2688#6485 SIBLINGS CHILDREN COMMENT 6485
 
0618~0907 신당서(1060) 易州 上穀郡
易州上穀郡上土貢綿墨戶四萬四千二百三十口二十五萬八千七百七十九縣六有府九曰遂城安義脩武德行新安古亭武遂長樂龍水有高陽軍易上容城上本遒武德五年以容城及幽州之固安歸義置北義州貞觀元年州廢縣還故屬聖曆二年以拒契丹更名全忠神龍三年復故名天寶元年又更名遂城上淶水上滿城中本永樂天寶元年更名有郎山有永清軍貞元十五年置五回中下開元二十三年析易置並置樓亭板城二縣天寶後省
2688#4356 SIBLINGS CHILDREN COMMENT 4356
 
0619 平州
619 平州 ┆ 臨渝 肥如 ┆ 臨渝 盧龍 ┆ 臨渝 盧龍 撫寧 ┆ 624 盧龍 撫寧 ┆ 641 盧龍 撫寧 臨渝 ┆ 697 盧龍 撫寧 石城 ┆ 740 盧龍 撫寧 石城 馬城 ┆ 742 北平郡 ┆ 758 平州
2688#6428 SIBLINGS CHILDREN 6428
 
0621~0758 구당서(945) 易州
易州 中 隋上穀郡 武德四年 討平竇建德 改為易州 領易淶水永樂遂城乃五縣 五年 割乃縣置北義州 州廢 以乃來屬 開元二十三年 分置五回樓亭板城三縣 天寶元年 改為上穀郡 復隋舊名 乾元元年 復為易州 舊領縣五 天寶領縣八 今領縣六 易 容城 遂城(漢北新城縣 屬中山國 後魏改為新昌 隋末為遂城) 淶水 滿城
2688#6475 SIBLINGS CHILDREN 6475
 
0621~0758 구당서(945) 易州
역주. 수나라 상곡군이다. 621년 두건덕의 난을 평정한 뒤 역주로 바꾸고 역, 내수, 영락, 수성 등 5현을 두었다. 예전에 5현이었는데 742~756년에 8현이었다가 지금은 6현이다. 역, 용성, 수성(한나라의 북신성현인데 중산국에 속했다. 북위가 신창으로 바꾸고 수나라말에 수성이 되었다), 내수, 만성.
2688#20797 SIBLINGS CHILDREN 20797
 
0742 신당서(1060) 永樂
易州 上穀郡 滿城中本永樂天寶元年更名有郎山有永清軍貞元十五年置 역주 상곡군 만성은 본래 永樂이다. 742년에 이름을 고쳤다. 낭산이 있고 영청군이 있는데 799년에 설치했다.
2688#6513 SIBLINGS CHILDREN COMMENT 6513
 
0742 신당서(1060) 永樂
▐ 진서에는 평주 대방군에 7현이 있었다. 위서의 영주에 와서는 대방이 낙랑군으로 옮겨지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졌다. 낙랑군에서도 기존의 현들이 다 빠지고 永洛이 새로 들어가 대방과 함께 2현이 되었다. 이 永洛은 남영주에 와서 永樂으로 한자가 바뀌었다. 남영주가 폐지될 때 영락은 신창과 함께 남아 창려군에 소속되었다. 이 기록을 볼 때, 창려군이 폐지된 후 영락은 역주 상곡군 소속으로 남아있었던 듯하다.
2688#6514 SIBLINGS CHILDREN COMMENT 6514
 
樂浪史
서기전 108년 위만조선을 병합한 漢은 이 지역에 낙랑군, 진번군 그리고 임둔군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옥저에 현도군을 설치하고 고구려를 縣으로 만들어 소속시켰다. 서기전 82년 漢은 진번군과 임둔군을 폐지하고 각각 낙랑군과 현도군에 소속시켰다. 이후 현도군이 지속적인 침공을 받자 고려의 서북쪽으로 옮기고 옥저와 濊는 동부도위로 묶어 낙랑에 예속시켰다. 30년에는 동부도위도 폐지하고 토착세력의 자치를 허용하였다. 복잡한 변천과정을 거쳐갔던 이들 ...
2688#8536 SIBLINGS CHILDREN COMMENT 8536
 
참고
2688#2854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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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8#5827 SIBLINGS CHILDREN 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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