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1.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 > (08) 성씨 > 0681 金日磾

흉노 왕자 김일제는 한나라의 포로가 되었다가 무제의 신임을 얻어 투후에 봉해지고 이후 그의 후손들은 대를 이어 한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다. ᐥ김일제의 후손들은 왕망의 시기 즈음에 곤란한 처지가 되자 요동을 거쳐 서라벌로 도피했다. 서라벌에서의 그들의 등장은 훗날 알지 설화로 신성화되었다. 이후 여러 대에 걸쳐 신라 왕조에 복무하다 미추에 이르러 마침내 신라의 왕이 되었고 나중에는 신라의 왕위를 세습하였다.ᐥ
 
-0134 ~ -0086 金日磾
15568
 
-0045 ~ 0023 王莽
15575
 
0082 한서 金日磾傳
當母南即莽母功顯君同產弟也 김당의 어머니 남은 곧 왕망의 어머니 공현군과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동생이다. ▶김당은 김일제의 증손이다.
15574
 
0681 문무왕릉비(文武王陵碑)
君靈源自敻繼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 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傳七葉以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 제천지윤이 7대를 전하여 … ▶김일제의 3세손인 김당이 왕망과 이종사촌 관계이므로 7대는 왕망 이후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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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1 문무왕릉비(文武王陵碑)
焉⎵⎵十五代祖星漢王降質圓穹誕靈仙岳肇臨 … 以對玉欄始蔭祥林如觀石紐坐金輿而 15대조 성한왕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 그 영혼이 선악에서 나와, ▨▨을 개창하여 옥란을 대하였다. 비로소 조상의 복이 상서로운 수풀처럼 많아 석뉴를 보고 금수레에 앉아 … 하는 것 같았다. ▶성한왕은 신라김씨의 첫 왕인 미추왕과 연결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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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9 흑치상지묘지명(黑齒常之墓誌銘)
恭聞日磾爲漢之鞞 삼가 듣건대 김일제는 한나라의 칼집이 되었고 ▶당나라에 투항한 백제 장수라는 처지가 한나라에 포로가 된 흉노 왕자 김일제의 처지와 비슷하였기 때문에 김일제가 언급되고 있다. 김일제는 흑치상지와 같이 중국에 봉사하는 외국 출신들에게 모범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15581
 
0706 흑치준묘지명(黑齒俊墓誌銘)
方冀七葉貽慶 以享西漢之榮 바야흐로 7대에 걸쳐 경사스러움을 전하여 서한의 김일제와 같은 영광을 향유하고자 하였으나 秺侯入仕 西戎孤□ 東夷之子 求如不及 김일제가 벼슬을 얻었으니 서융의 외로운... 동이의 자손으로서 구하기를 마치 미치지 못하는 듯이 끝없이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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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흑치준묘지명(黑齒俊墓誌銘)
▶흑치준은 흑치상지의 아들이다. 여기서는 七葉을 西漢 시기로 한정하여 김일제의 7대가 왕망 이후까지 포함할 가능성을 닫았다. 그러나 김일제의 3세손인 김당이 왕망과 이종사촌 관계이므로 서한의 시기에 김일제의 7대가 담길 수는 없다. 그렇다면 김일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七葉 운운은 백만대군이나 삼천궁녀처럼 상투적인 표현일 수 있다.
15579
 
0864 大唐故金氏夫人墓銘
遠祖諱日磾自龍庭歸命西漢仕武帝愼名節陟拜侍中常侍封秺亭侯自秺亭已降七葉軒紱燉煌繇是望係京兆郡史籍敍載莫之與京必世後仁徵驗斯在
15583
 
0864 대당고김씨부인묘명
먼 조상 이름은 일제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에 투항하시어 무제 아래서 벼슬하셨다.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기니 그를 발탁해 시중과 상시에 임명하고 투정후에 봉하시니, 이후 7대에 걸쳐 벼슬함에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경조군에 정착하게 되니 이런 일은 사책에 기록되었다. ▶문무왕릉비(681)와 내용이 일치하므로 신라 김씨 왕조가 김일제의 후손을 자처한 것은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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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64 대당고김씨부인묘명
及漢不見德 亂離瘼矣 握粟去國 避時屆遠 故吾宗違異於遼東 한나라가 덕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난리가 나서 괴로움을 겪게 되자 곡식을 싸들고 나라를 떠나 난을 피해 멀리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우리 집안은 멀리 떨어진 요동에 숨어 살게 되었다. ▶이 부분은 다른 기록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로 김일제와 신라김씨를 연결시켜 주는 핵심 이야기다. 시대적 배경은 왕망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요동은 요하 동쪽이라는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신라까지 포함할 수 있다.
15591
 
0864※ 동북아 난민의 큰 흐름
고대 동북아 난민의 가장 큰 흐름은 중국, 특히 연나라에서 조선으로 난민이 흘러가고 또 조선에서 진한으로 난민이 흘러가는 경향이다. 조선이 낙랑이 된 이후에도, 그리고 진한이 신라가 된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 이어졌다.
15635
 
1145 閼智
신라 김씨 왕조는 김일제의 후손을 자처하였고 조상이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는 알지 설화와는 모순된다. 알지 설화의 기록 시기가 늦기 때문에 신라 김씨 왕조가 망한 이후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김일제의 후손이 서라벌에 등장한 사건을 알지 설화로 신성화했을 수 있다. 그러면 두 갈래의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진다.
4406
 
1145 味鄒尼師今
미추이사금(미조라고도 하였다)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선조 알지가 계림에서 태어나 탈해왕이 거두어 궁중에서 길러 나중에 대보로 삼았다. 알지는 세한을 낳았고, 세한은 아도를 낳았고, 아도는 수류를 낳았고, 수류는 욱보를 낳았고, 욱보는 구도를 낳았는데, 구도가 곧 미추의 아버지이다. 첨해가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미추를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갖게 된 시초이다. ▶알지부터 미추까지 7대인데, 7대는 한 집안의 유래가 오래된 것을 표현한다.
15613
 
1634~1711 池北偶談
叢姓來源: 源於金姓。據《池北偶談》所載,傳說西漢時車騎將軍金日磾的後代遷居叢家峴(今屬山東省文登市),遂以居地叢為氏。 김일제의 후손이 총가현에 정착하여 총을 씨로 삼았다. 총가현은 지금의 문등시다.
15577
 
1634~1711 文登市
산동 반도는 요동과 함께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는 주요 경로다.
15578
 
伯乐集镇
秺县,亦作㢉县,西汉置秺县金日磾封侯国。其址在今山东菏泽市成武县伯乐集镇。
15612
 
신라김씨흉노유래설
신라김씨란 신라의 왕을 배출했던 김(金)씨 가문을 말하는데, 경주김씨와 경주김씨로부터 갈라져 나온 많은 김씨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는 김일성의 본관인 전주김씨와 김구의 본관인 안동김씨도 포함된다. 또 김씨는 아니지만 김알지의 후손인 감천문씨, 광산이씨 그리고 수성최씨도 신라김씨에 포함된다. 신라김씨의 유래에 대해서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번째는 금궤에서 시조가 나왔기 때문에 김씨로 성을 삼았다는 이야기고, 두번째는 소호금천의 후예를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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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주장
1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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