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貉, 穢, 鮮 그리고 韓의 뿌리를 찾아서

① 發(麃) → 貉(鮮) ② 長夷 → 穢 ③ 鳥夷(皮服) → 良夷(在子) → 朝鮮(文皮) → 樂浪
 
                                             鳥夷(皮服) → 良夷(在子) → 朝鮮(文皮) → 樂浪
鳥夷(皮服) → 良夷(在子) → 朝鮮(文皮) → 樂浪
鮮은 어류인데, 글자도 그 모양을 본따 만들었다. 후한 때 貉國에서 많이 났는데, 그 전의 서주 때는 인접한 朝鮮에서 많이 났고 그래서 '鮮을 朝貢하는 종족'이라는 뜻으로 朝鮮이라 불렀다. 鮮의 가죽은 文皮 또는 豹之皮라 했다. 한편, 朝鮮은 그 전에 良夷라 불렀는데, 그때는 在子를 주나라에 바쳤다. 화폐를 닮았다는 在子는 오늘날 황해안과 요동만을 오가며 사는 점박이 물범 또는 海豹다. 良夷는 그 전에 鳥夷라 불렀는데, 그때도 하나라에 皮服을 바쳤었다.
2841#15135 SIBLINGS CHILDREN 15135
 
                                            箕子
箕子
箕子는 殷 紂王의 폭정에 반대하다 노비가 되었다. 殷은 商이라고도 하는데, 周의 武王에 의해 -1046년에 멸망당했다. 이때 箕子의 행방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었는데, -195년에 燕의 滿이 朝鮮으로 가 왕이 되자 이에 영향을 받아 '箕子 또한 朝鮮으로 달아났고 그러자 武王이 朝鮮에 봉했다'는 이야기가 漢 文帝(-180~-157) 시기에 만들어져 尙書大傳에 수록되었다. 今本竹書紀年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尙書大傳 이후에 추가된 것이다.
2841#22582 SIBLINGS CHILDREN 22582
 
                                           箕子
箕子
이후 유학을 숭상하는 漢의 분위기 속에서 箕子가 鴻範九等을 만들어 武王에게 전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져 史記(-91)에 수록되었고, 漢이 滿朝鮮을 병합한 -108년 이후에는 滿朝鮮의 犯禁八條도 箕子가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져 漢書(82)에 수록되었다. 이어서 滿에 의해 멸망당한 朝鮮의 왕조가 箕子의 후손이었다는 이야기까지 만들어져 魏略(265)에 수록되었다.
2841#1748 SIBLINGS CHILDREN 1748
 
                                          眞番
眞番
전국시대에 燕의 동쪽에 朝鮮이 있었고 朝鮮의 남쪽에 眞番이 있었다. -108년에 漢이 滿朝鮮을 멸망시키면서 眞番에도 군을 설치하였는데, 15현이 있었다. 그 중 含資, 帶方, 海冥, 列口, 長岑, 昭明 그리고 提奚 7현은 -82년에 眞番郡이 폐지될 때 樂浪郡에 합쳐졌다가 196~220년에 帶方郡으로 분리되었다. 자비령에서 임진강 사이다. 나머지 8현은 245년에 이르러 辰韓 8국이 되어 있었는데, 임진강과 차령 사이다.
2841#5855 SIBLINGS CHILDREN 5855
 
                                          韓國¹·三韓¹ = 馬韓+辰韓+弁韓
韓國¹·三韓¹ = 馬韓+辰韓+弁韓
秦漢교체기에 燕 등지의 유민이 계속 朝鮮으로 흘러왔다. 일부는 眞番으로 갔고 그 일부는 다시 辰國으로 갔다. 朝鮮에 온 유민은 滿왕조를 세웠으나 漢이 멸망시키고 樂浪·臨屯·玄菟·眞番의 군을 설치하였다. 이후 '원래 朝鮮의 왕은 기자의 후예 韓씨였는데 滿에게 쫓겨나자 바다로 도망가 韓王을 칭했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前·後漢의 교체기에는 옛 眞番 지역에서 韓이 나타난다. 韓의 중심은 차령과 노령 사이였고 眞番의 남부와 辰國 등을 아우르며 三韓을 형성하였다.
2841#22007 SIBLINGS CHILDREN COMMENT 22007
 
                                  五帝 ⤵
五帝 ⤵
2841#31058 SIBLINGS CHILDREN 31058
 
① ∎ 黃帝 軒轅 → 玄囂+昌意
2841#22071 SIBLINGS CHILDREN 22071
 
① 軒轅 → 昌意 → ② ∎ 顓頊 高陽
2841#22072 SIBLINGS CHILDREN 22072
 
① 軒轅 → 玄囂 → 蟜極 → ③ ∎ 帝嚳 高辛
2841#14895 SIBLINGS CHILDREN 14895
 
① 軒轅 → 玄囂 → 蟜極 → ③ 高辛 → ④ ∎ 帝堯 陶唐 (放勛)
2841#19918 SIBLINGS CHILDREN 19918
 
① 軒轅 → 昌意 → ② 高陽 → 窮蟬 → 敬康 → 句望 → 橋牛 → 瞽叟 → ⑤ ∎ 虞舜 (重華)
2841#21993 SIBLINGS CHILDREN 21993
 
-2294~-2184 舜
北(山戎┆❶發┆息慎) 東(❷長夷┆❸鳥夷)
2841#31241 SIBLINGS CHILDREN 31241
 
                           五帝 ⤴
五帝 ⤴
2841#31048 SIBLINGS CHILDREN 31048
 
-2070~-1600 夏
① 軒轅 → 昌意 → ② 高陽 → 鯀 → ⑥ 禹(文命)
2841#21997 SIBLINGS CHILDREN 21997
 
-2070 禹
❸鳥夷皮服 夾右碣石 入于海
2841#31296 SIBLINGS CHILDREN 31296
 
-1600~-1046 商
2841#21998 SIBLINGS CHILDREN 21998
 
-1046~-0771 周
2841#22013 SIBLINGS CHILDREN 22013
 
-1021 逸周書
山戎┆發人┆稷慎┆穢人┆良夷
2841#31056 SIBLINGS CHILDREN 31056
 
-1021 逸周書
❶發人麃 麃者 若鹿 迅走
2841#31295 SIBLINGS CHILDREN 31295
 
-1021 逸周書
❷穢人前兒 前兒若獮猴 立行 聲似小兒
2841#31014 SIBLINGS CHILDREN 31014
 
-1021 逸周書
❸良夷在子 在子幣身人首 脂其腹炙之藿 則鳴曰在子
2841#30981 SIBLINGS CHILDREN 30981
 
-0771 ❸鮮 金文 西周晚期
2841#31204 SIBLINGS CHILDREN 31204
 
-0771 ~ -0403 春秋時代
2841#22012 SIBLINGS CHILDREN 22012
 
-0645 管子
陰山 礝碈┆燕 紫山 白金┆發❸朝鮮 文皮┆ 汝·漢水 右衢 黃金┆江陽 珠┆秦 明山 曾青┆禺氏 邊山 玉
2841#31128 SIBLINGS CHILDREN 31128
 
-0645 管子
吳越 珠象┆發❸朝鮮 文皮毤┆禺氏 白璧┆崑崙 璆琳琅玕
2841#31244 SIBLINGS CHILDREN 31244
 
-0645 管子
北(孤竹┆山戎┆❷穢❶貉┆拘秦夏)
2841#31057 SIBLINGS CHILDREN 31057
 
-0566 史記 從封姓為韓氏
2841#28895 SIBLINGS CHILDREN 28895
 
-0479 論語 箕子為之奴
微子去之 ◆¹箕子為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2841#7238 SIBLINGS CHILDREN 7238
 
-0403 ~ -0221 戰國時代
2841#29491 SIBLINGS CHILDREN 29491
 
-0403 山海經
❸朝鮮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人
2841#31126 SIBLINGS CHILDREN 31126
 
-0334 燕東有❸朝鮮遼東
2841#30169 SIBLINGS CHILDREN 30169
 
-0300⁺ 東綰❷穢❶貉❸朝鮮✿真番之利
2841#805 SIBLINGS CHILDREN 805
 
-0283 自始全燕時嘗略屬✿眞番❸朝鮮爲置吏築鄣塞
2841#5852 SIBLINGS CHILDREN 5852
 
-0195
稍役屬✿眞番❸朝鮮蠻夷 及故燕齊亡命者 王之都王險
2841#5854 SIBLINGS CHILDREN 5854
 
-0188⁻
滿得兵威財物 侵降其旁小邑 ✿真番臨屯皆來服屬 方數千里
2841#3732 SIBLINGS CHILDREN 3732
 
-0188⁻
燕丹散亂遼間 蒲收其亡民 厥聚海東 以集✿真藩 葆塞為外臣
2841#4402 SIBLINGS CHILDREN 4402
 
-0157 尙書大傳 以朝鮮封之
武王勝殷 繼公子祿父 釋◆²箕子囚 箕子不忍周之釋 走之朝鮮 武王聞之 因以朝鮮封之 箕子既受周之封 不得無臣禮 故於十三祀來朝
2841#7239 SIBLINGS CHILDREN 7239
 
-0134~-0086 金日磾
2841#22055 SIBLINGS CHILDREN 22055
 
-0109⁻ ✿眞番旁眾國┆真番辰國
2841#30528 SIBLINGS CHILDREN 30528
 
-0108 ✚韓陰┆王唊
2841#22102 SIBLINGS CHILDREN 22102
 
-0108 漢書
朝鮮斬其王右渠降 以其地為❸樂浪❷臨屯❶玄菟✿真番郡
2841#31062 SIBLINGS CHILDREN 31062
 
-0091 史記 ❷穢❶貉
2841#30709 SIBLINGS CHILDREN 30709
 
-0091 史記 鴻範九等
武王既克殷 訪問◆³箕子┆鴻範九等┆武王乃封箕子於朝鮮而不臣也 其後箕子朝周 過故殷虛
2841#22049 SIBLINGS CHILDREN 22049
 
-0082 罷臨屯✿眞番 以幷樂浪玄菟
2841#30467 SIBLINGS CHILDREN 30467
 
0008 樂浪郡 莽曰❸樂鮮 浿水 莽曰樂鮮亭
2841#31015 SIBLINGS CHILDREN 31015
 
0012 ❶貉人犯法 不從騶起┆其更名高句驪為下句驪
2841#31223 SIBLINGS CHILDREN 31223
 
0018 方言
燕之外郊朝鮮洌水之間凡㬥肉 ❶發人之私 披牛羊之五藏 謂之膊
2841#31305 SIBLINGS CHILDREN 31305
 
0020~0023 廉斯鑡為✚辰韓右渠帥
2841#18485 SIBLINGS CHILDREN 18485
 
0030 王調┆王閎┆王遵
2841#22371 SIBLINGS CHILDREN 22371
 
0030± ❶貉 北方豸穜
2841#31012 SIBLINGS CHILDREN 31012
 
0030± ❷薉 蕪也
2841#20858 SIBLINGS CHILDREN 20858
 
0030± ❸鮮 魚名 出貉國
2841#20682 SIBLINGS CHILDREN 20682
 
0044 ✚韓人廉斯人蘇馬諟等 詣樂浪貢獻
2841#823 SIBLINGS CHILDREN 823
 
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0082 漢書 犯禁八條
殷道衰 ◆⁴箕子去之朝鮮 敎其民以禮義 田蠶織作 樂浪朝鮮民犯禁八條
2841#18203 SIBLINGS CHILDREN 18203
 
0082 漢書 - ❶❷濊貉┆穢貉┆穢貊┆薉貉
2841#30995 SIBLINGS CHILDREN 30995
 
0082 東夷❷薉君南閭等口二十八萬人降 為蒼海郡
2841#31017 SIBLINGS CHILDREN 31017
 
0082 樂浪海中有倭人 分為百餘國 以歲時來獻見云
2841#30524 SIBLINGS CHILDREN 30524
 
0163 潛夫論 -0195
其後 ✚韓西亦姓韓 爲衛滿所伐 遷居海中
2841#1939 SIBLINGS CHILDREN 1939
 
0265~0289 魏略·三國志 -0209
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2841#16354 SIBLINGS CHILDREN 16354
 
0265~0289 魏略·三國志 -0195⁻
◆⁵箕子之後朝鮮侯
2841#18365 SIBLINGS CHILDREN 18365
 
0265~0289 魏略·三國志 -0195
將其左右宮人走入海 居✚韓地 自號韓王 (其子及親留在國者 因冒姓韓氏 準王海中 不與朝鮮相往來)
2841#18378 SIBLINGS CHILDREN 18378
 
0265~0289 魏略·三國志 -0195
其後絕滅 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
2841#30527 SIBLINGS CHILDREN 30527
 
0265~0289 魏略·三國志 -0109⁻
朝鮮相歷谿卿 東之✚辰國
2841#21971 SIBLINGS CHILDREN 21971
 
0265~0289 魏略·三國志 0146~0189
✚韓❷濊彊盛 郡縣不能制 民多流入韓國
2841#21987 SIBLINGS CHILDREN 21987
 
0265~0289 魏略·三國志 0196~0220
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為帶方郡 遣公孫模·張敞等收集遺民 興兵伐✚韓❷濊 舊民稍出 是後倭韓遂屬帶方
2841#31049 SIBLINGS CHILDREN 31049
 
0265~0289 魏略·三國志 0237~0239
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 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 諸✚韓國臣智加賜邑君印綬 其次與邑長
2841#31060 SIBLINGS CHILDREN 31060
 
0265~0289 魏略·三國志 0245
以樂浪本統韓國 分割✚辰韓八國以與樂浪
2841#31116 SIBLINGS CHILDREN 31116
 
0265~0316 ❸良夷樂浪之夷也
2841#31134 SIBLINGS CHILDREN 31134
 
0289⁺ 韓의 변천
2841#8336 SIBLINGS CHILDREN 8336
 
0308 백제의 馬韓 병합
2841#30521 SIBLINGS CHILDREN 30521
 
0357 冬壽
都鄕侯幽州遼東平郭 都鄕敬上里 冬壽
2841#11021 SIBLINGS CHILDREN 11021
 
0408 鎭
▨▨郡 信都縣 都鄕中甘里 釋加文佛弟子▨▨氏鎭
2841#22002 SIBLINGS CHILDREN 22002
 
0445 句驪一名❶貊耳 有別種 依小水為居 因名曰小水貊
2841#31225 SIBLINGS CHILDREN 31225
 
0509~0522 樂浪 遂城人 王氏 墓誌銘
樂浪名邦 王氏名宗┆其先出自有殷 周武王剋商 封箕子於朝鮮 子孫因而氏焉┆殷有三人 周訪九疇 只族王家 藉冑鮮侯
2841#22068 SIBLINGS CHILDREN 22068
 
0539 樂浪郡 朝鮮縣人 ✚韓顯度
2841#30463 SIBLINGS CHILDREN 30463
 
0648 晉書
自云高陽氏之苗裔 故以高為氏焉
2841#22061 SIBLINGS CHILDREN 22061
 
0681 文武王陵碑
(秺)侯祭天之胤傳七葉
2841#22063 SIBLINGS CHILDREN 22063
 
0695 金仁問墓碑
五之君少皥▨墟分星于而超碧海金天命
2841#22067 SIBLINGS CHILDREN 22067
 
0864 大唐故金氏夫人墓銘
少昊氏金天卽吾宗受氏世祖┆遠祖諱日磾
2841#22064 SIBLINGS CHILDREN 22064
 
1281 壇君❸朝鮮
衛滿朝鮮의 건국설화가 壇君설화가 되었다.
2841#31133 SIBLINGS CHILDREN 31133
 
先秦兩漢
2841#31079 SIBLINGS CHILDREN OPEN
 
 貉, 穢, 鮮 그리고 韓의 뿌리를 찾아서 ⤵
貉, 穢, 鮮 그리고 韓의 뿌리를 찾아서 ⤵
2841#31089 SIBLINGS CHILDREN 31089
 
-2294~-2184 帝舜
北山戎·發·息慎 東長·鳥夷 북쪽으로는 산융, 발 그리고 식신을, 동쪽으로는 장과 조이를 다독거리니 사해 안이 모두 순의 공적을 받들었다.
2841#31263 SIBLINGS CHILDREN OPEN
 
-2294~-2184  帝舜
-2294~-2184 帝舜
▐ 북쪽으로 山戎, 發 그리고 息慎이 언급될 정도면 동쪽으로 언급된 長夷와 鳥夷는 발해를 넘어설 듯하다. 그러면 山戎, 發 그리고 息慎에서는 육로로 사신이 오고 長夷 및 鳥夷에서는 해로로 사신이 왔을 것이다.
2841#31293 SIBLINGS CHILDREN 31293
 
-2070 ~ -1600 夏
-2070 ~ -1600 夏
2841#29489 SIBLINGS CHILDREN 29489
 
-2070 史記(-91)
帝舜은 하늘에 禹를 천거하여 후계자로 삼았다. 17년 뒤 帝舜이 세상을 떠났다. 3년 상을 마치고 禹는 舜의 아들 商均에게 양보하고 陽城으로 피했다.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商均을 떠나 禹에게 인사를 드렸다. 禹는 그제야 천자 자리에 올라 남면하고 천하에 임했다. 나라 이름을 夏后라 하고 성을 姒씨라 했다.
2841#22081 SIBLINGS CHILDREN 22081
 
-2070 史記(-91)
夏禹는 이름을 文命이라 했다. 禹의 아버지는 鯀이라 했고, 鯀의 아버지가 帝顓頊이다. 顓頊의 아버지는 昌意이고, 昌意의 아버지가 黃帝다. 禹는 黃帝의 현손이자 顓頊의 손자이다.
2841#3727 SIBLINGS CHILDREN 3727
 
-2070 三國誤記 史記 夏本紀 冀州
禹行自冀州始 冀州 既載壺口 治梁及岐 既修太原 至于嶽陽 覃懷致功 至於衡漳 其土白壤 賦上上錯 田中中 常·衛既從 大陸既為 鳥夷皮服 夾右碣石 入于(海→)河
2841#31262 SIBLINGS CHILDREN 31262
 
-2070 三國誤記 史記 夏本紀 冀州
우는 기주에서 일을 시작했다. 호구산을 다스리고 양산과 기산을 다스렸다. 태원을 다스리고 태악산(항산) 남쪽에까지 이르렀다. 담회에서 공을 이룬 다음 장하에 이르렀다. 상수와 위수가 물길대로 흐르고 대륙택도 조성되었다. 조이의 공물은 가죽옷인데 오른쪽으로 갈석산을 끼고 황하로 들어왔다.
2841#31272 SIBLINGS CHILDREN 31272
 
-2070 ◾鳥夷
鳥夷皮服을 島夷皮服으로 표기한 기록도 있으나 그것은 揚州의 島夷卉服과 혼동한 때문인 듯하다. 鳥夷는 순임금때의 北山戎發息慎東長鳥夷에 나오는 鳥夷로 발해 동쪽에서 바닷길로 온 듯하다. 발해 바깥에는 큰 섬이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해로로 사신을 보내는 종족의 이름으로는 島夷가 어울리지 않는다.
2841#31318 SIBLINGS CHILDREN OPEN
 
-2070 ◾入于河
尚書와 漢書에는 九州의 공물 운송 경로가 모두 강으로 끝나 있다. 그러나 史記의 冀州만 바다로 끝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오기일 가능성이 있다. 黃河는 冀州를 둘러싸고 흐르는데 공물 운송이 黃河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長夷와 鳥夷가 발해 바깥에서 해로로 사신을 보냈다면 황하로 들어와 하나라까지 거슬러 올라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入于海보다 入于河가 어울린다. 碣石은 당시 황하 하구에 있었을 것인데, 황하의 물길이 계속 변했기 때문에 지금은 알기 힘들다.
2841#31354 SIBLINGS CHILDREN 31354
 
-2070 史記 夏本紀 揚州
淮海維揚州 彭蠡既都 陽鳥所居 三江既入 震澤致定 竹箭既布 其草惟夭 其木惟喬 其土涂泥 회수와 대해 사이에는 양주가 있다. 팽려가 호수가 되자 기러기가 살게 되었다. 세 개의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진택은 잘 정리되었다. 대나무가 곳곳에서 자라고, 들풀은 무성하며, 나무는 크게 자란다. 토질은 습기가 많은 진흙땅이다.
2841#31264 SIBLINGS CHILDREN 31264
 
-2070 史記 夏本紀 揚州
貢金三品 瑤·琨·竹箭 齒·革·羽·旄 島夷卉服 其篚織貝 其包橘·柚錫貢 均江海 通淮·泗 공물은 세 종류의 금속, 옥돌, 대나무, 상아, 가죽, 깃털, 검정소의 꼬리, 도이족이 입는 풀로 짠 옷, 대광주리에 담은 오색 비단이다. 때로는 포장한 귤과 유자도 공물로 바쳤다. 이 공물들은 장강과 대해를 따라서 회수와 사수로 들어온다.
2841#31270 SIBLINGS CHILDREN 31270
 
-1600 ~ -1046 商
-1600 ~ -1046 商
2841#29490 SIBLINGS CHILDREN 29490
 
-1046 ~ -0771 周
-1046 ~ -0771 周
2841#25012 SIBLINGS CHILDREN 25012
 
-1021 逸周書 ⤵
-1021 逸周書 ⤵
2841#31297 SIBLINGS CHILDREN 31297
 
-1021 逸周書
山戎┆發人┆稷慎┆良夷┆穢人
2841#31261 SIBLINGS CHILDREN OPEN
 
-1021 逸周書
-1021 逸周書
▐ 山戎은 콩, 發人과 稷慎은 사슴류 그리고 穢人과 良夷는 어류를 보냈다. 순임금 때 山戎, 發 그리고 息慎은 육로로 사신을 보내고 長夷와 鳥夷는 해로로 사신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어류를 보낸 穢人과 良夷는 해로를 통해 사신을 보낸 長夷 및 鳥夷에 각각 대응시킬 수 있다.
2841#31294 SIBLINGS CHILDREN 31294
 
-1021 逸周書 王會解 揚州
揚州禺 禺 魚名 양주는 우를 바친다. 우는 물고기 이름이다.
2841#15910 SIBLINGS CHILDREN 15910
 
-1021 ◾王會解
기본적으로 周成王(-1055~-1021) 시기의 기록이다.
2841#15913 SIBLINGS CHILDREN 15913
 
-1021 逸周書 王會解 發人(1)
發人麃 麃者 若鹿 迅走 발인은 포를 바친다. 포는 사슴과 비슷한데 빨리 달린다.
2841#31243 SIBLINGS CHILDREN 31243
 
-1021 逸周書 職方解 九貉(1)
職方氏掌天下之圖 辨其邦國·都鄙·四夷·八蠻·七閩·九貉·五戎·六狄之人民
2841#31122 SIBLINGS CHILDREN 31122
 
-1021 逸周書 王會解 穢人(1)
穢人前兒 前兒若獮猴 立行 聲似小兒 예인은 전아를 바친다. 전아는 원숭이처럼 서서 다니는데 어린이의 소리를 낸다.
2841#31121 SIBLINGS CHILDREN 31121
 
-1021 ◾長夷→穢人
순임금 시기에 중국의 동쪽에 長夷와 鳥夷가 있었는데 서주 시기에 와서는 각각 前兒를 바치는 穢人과 在子를 바치는 良夷로 불리고 있었다. 良夷는 훗날 다시 朝鮮으로 불리게 되는데, 삼국지(289)에 의하면, 朝鮮의 동쪽이 다 濊고 濊의 북쪽에는 高句麗와 沃沮가 있었으며 濊의 남쪽에는 辰韓이 있었다. 穢人은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 유역에 이른 뒤 거기서부터는 다시 鳥夷 때부터 이어져오던 良夷의 교역 경로를 따라 중국에 이른 듯하다.
2841#31099 SIBLINGS CHILDREN 31099
 
-1021 ◾薉 說文解字(30±)
이 당시의 薉자는 확인되지 않는다.
2841#31100 SIBLINGS CHILDREN 31100
 
-1021 ◾前兒
前兒의 조건에 맞는 동물은 강치다. 지금은 멸종되었지만 19세기까지도 강치는 동해안에 4만여 마리가 살고 있었다.
2841#863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1021 逸周書 王會解 良夷(1)
良夷在子 在子幣身人首 脂其腹炙之藿 則鳴曰在子 양이는 재자를 바친다. 몸은 화폐 모양이고 머리는 사람 모양이다. 배에 기름이 있어 불에 구워 짜낸다. 재자라 이른다.
2841#19673 SIBLINGS CHILDREN 19673
 
-1021      ◾幣身人首
-1021 ◾幣身人首
'몸은 화폐 모양이고 머리는 사람을 닮았다.' 동물의 모양에 비유될 수 있는 화폐는 전국시대 布幣가 있다. 마침 물범이 布幣를 닮았는데 물범의 머리는 사람의 머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幣身의 幣가 전국시대 화폐라면 在子幣身은 전국시대에 붙여진 설명이 된다.
2841#31052 SIBLINGS CHILDREN 31052
 
-1021       ◾在子
-1021 ◾在子
在子에 대한 설명은 점박이 물범에 가장 어울린다. 점박이 물범은 요동만과 백령도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데, 피부에 지방이 많아 옛날에는 가열해서 나오는 기름을 생활에 이용했다.
2841#6792 SIBLINGS CHILDREN 6792
 
-0771 魚 金文 西周晚期
2841#15915 SIBLINGS CHILDREN 15915
 
-0771 ◾鮮은 물범의 모양을 땄을 수 있다.
-0771 ◾鮮은 물범의 모양을 땄을 수 있다.
왼쪽은 西周晚期 金文 魚고 가운데는 물범이며 오른쪽은 西周晚期 金文 鮮과 秦系簡牘 鮮이다. 魚는 물고기 모양을 딴 것이라 몸통과 머리가 구분되지 않은데 반해, 鮮은 몸통과 머리가 뚜렷이 구분되어 있다. 鮮이 물범의 모양을 딴 글자라면 위에 뿔처럼 튀어나온 것은 수염을 표현한 것이다. 훗날 鮮은 魚와 羊이 합쳐진 형태로 변했다.
2841#31129 SIBLINGS CHILDREN 31129
 
-0771 鮮 金文 西周晚期
2841#31011 SIBLINGS CHILDREN 31011
 
-0771  ~ -0403 春秋時代
-0771 ~ -0403 春秋時代
2841#8347 SIBLINGS CHILDREN 8347
 
-0645 管子 ⤵
-0645 管子 ⤵
管子는 春秋시대 齊의 재상이던 管仲(~ -645)의 저작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로는 戰國시대에 齊에 모인 사상가들의 언행을 戰國시대부터 前漢 때까지 현재의 형태로 편찬한 것으로 추정한다.
2841#31302 SIBLINGS CHILDREN 31302
 
-0645 管子
2841#16359 SIBLINGS CHILDREN 16359
 
-0645 ◾鮮 金文 西周晚期

2841#15136 SIBLINGS CHILDREN 15136
 
-0645 ◾朝 金文 西周早期
封建时代臣见君
2841#5949 SIBLINGS CHILDREN 5949
 
-0645 管子 揆度
桓公問管子曰 吾聞海內玉幣有七筴 可得而聞乎 管子對曰 陰山之礝碈 一筴也 燕之紫山白金 一筴也 發朝鮮之文皮 一筴也 汝·漢水之右衢黃金 一筴也 江陽之珠 一筴也 秦明山之曾青 一筴也 禺氏邊山之玉 一筴也
2841#31201 SIBLINGS CHILDREN 31201
 
-0645 管子 揆度
환공이 관자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로 해내에 7가지 옥폐가 있다고 하는데, 들어 볼 수 있겠는가?” 관자가 대답하였다. “음산의 연민이 하나요, 연나라 자산의 백금이 하나요, 발조선의 문피가 하나요, 여수와 한수 우구에서 나는 황금이 하나요, 강양의 진주가 하나요, 진나라 명산의 증청이 하나요, 우씨 변산의 옥이 하나입니다.”
2841#31246 SIBLINGS CHILDREN 31246
 
-0645 管子 輕重甲
桓公曰 四夷不服 恐其逆政 游於天下 而傷寡人 寡人之行 為此有道乎 管子對曰 환공이 말하였다. “사이가 복종치 아니하여 그 거스리는 행위가 천하에 널리퍼져 나를 상하게 할 것이 두려우니 내가 어떻게 행하여야겠는가?” 관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2841#31202 SIBLINGS CHILDREN 31202
 
-0645 管子 輕重甲
吳越不朝 珠象而以為幣乎 發朝鮮不朝 請文皮毤 服而以為幣乎 禺氏不朝 請以白璧為幣乎 崑崙之虛不朝 請以璆琳琅玕為幣乎 故夫握而不見於手 含而不見於口 而辟千金者 珠也 然後八千里之吳越可得而朝也
2841#31251 SIBLINGS CHILDREN 31251
 
-0645 管子 輕重甲
오과 월이 입조하지 않으면 珠象을 화폐로 사용하고, 발과 조선이 입조하지 않으면 文皮毤로 옷을 해입기를 청하여 그것을 화폐로 사용하고, 옹씨가 입조하지 않으면 白璧을 화폐로 사용하고, 곤륜이 입조하지 않으면 璆琳琅玕을 화폐로 사용하면 됩니다. 손에 쥐고 있으면 보이지 않고 입에 머금고 있어도 보이지 않지만 천금의 값어치가 나가는 것이 珠입니다. 그렇게 하면 8천리 떨어진 오와 월이 입조할 것입니다.
2841#31252 SIBLINGS CHILDREN 31252
 
-0645 管子 輕重甲
一豹之皮容金而金也 然後八千里之發朝鮮可得而朝也 懷而不見於抱 挾而不見於腋 而辟千金者 白璧也 然後八千里之禺氏可得而朝也 簪珥而辟千金者 璆琳琅玕也 然後八千里之崑崙虛可得而朝也 故物無主 事無接 遠近無以相因 則四夷不得而朝矣┆표범의 가죽을 금으로 바꿔야 금이 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8천리 밖의 발·조선이 입조할 것입니다.
2841#31253 SIBLINGS CHILDREN 31253
 
-0645 管子 輕重甲
품에 안고 있으면 보이지 않고 옆구리에 끼고 있어도 보이지 않지만, 천금을 물리치는 것이 白璧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8천리 밖의 옹씨가 입조할 것입니다. 비녀나 귀고리로 쓰지만 천금을 물리치는 것이 璆琳琅玕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8천리 밖의 곤륜이 입조할 것입니다. 따라서 물건에 가격이 없고 교환 가치가 없으면 원근의 사람들이 서로 거래하지 않을 것이니, 사이가 입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2841#31254 SIBLINGS CHILDREN 31254
 
-0645 ◾發朝鮮
일주서에 나오던 發人과 良夷가 나오지 않고 發朝鮮이 등장했다. 發朝鮮의 發은 發人일 것이니 朝鮮은 良夷일 가능성이 있다. 穢와 貉을 묶어 穢貉이라 한 것처럼 發과 朝鮮을 묶어 發朝鮮이나 했다는 것이다.
2841#31245 SIBLINGS CHILDREN 31245
 
-0645  ◾文皮
-0645 ◾文皮
朝鮮이 良夷라면 發朝鮮에서 난다는 文皮 또는 豹之皮는 良夷에서 난다던 在子와 연결된다. 앞서 在子는 점박이 물범이라 판단했으므로 文皮는 그 가죽이 되고 豹之皮의 豹는 海豹가 된다. 점박이 물범은 표범처럼 무늬가 있어 바다표범 또는 海豹라 불리고 있다. 앞서 일주서의 良夷를 순임금 시기의 鳥夷에 대응시킨 바 있는데, 그렇다면 發朝鮮의 文皮는 良夷의 在子를 거쳐 鳥夷의 皮服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841#867 SIBLINGS CHILDREN 867
 
-0645   ◾朝鮮
-0645 ◾朝鮮
文皮는 朝鮮의 朝(조공)와 관련해서 언급되고 있다. 앞서 鮮이 물범의 모양을 딴 글자일 가능성을 살펴 보았는데, 그렇다면 鮮은 在子의 다른 이름이고 朝鮮이란 鮮을 바치는 나라라는 뜻이 된다.
2841#15505 SIBLINGS CHILDREN 15505
 
-0645 管子 穢(1)
北至於孤竹·山戎·穢貉
2841#31120 SIBLINGS CHILDREN 31120
 
-0645 管子 貉
中救晉公 禽狄王 敗胡貉 破屠何而騎寇始服 ▐ 여기서의 胡貉은 요서 지역의 오랑캐를 말한다.
2841#31228 SIBLINGS CHILDREN 31228
 
-0645 管子 貉
縣車束馬 踰太行與卑耳之貉·拘秦夏 西服流沙·西虞而秦戎始從 수레를 달고 말을 묶어 태행과 비이의 오랑캐와 구진하를 넘어 서쪽으로 유사와 서우를 복종시켰다. ▐ 여기서의 貉은 태행과 비여에 사는 오랑캐를 말한다.
2841#31229 SIBLINGS CHILDREN 31229
 
-0645 管子 貉
澤之身則榮 去之身則辱 審行之身而毋怠 雖夷貉之民 可化而使之愛 ▐ 여기서의 夷貉은 오랑캐 일반을 말한다.
2841#31231 SIBLINGS CHILDREN 31231
 
-0645 管子 貉
北至於孤竹·山戎·穢貉·拘秦夏 북쪽으로 고죽, 산융, 예맥 그리고 구진하에 이르렀다. ▐ 貉은 주로 산악 지역의 오랑캐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쓰였지만, 穢와 결합하여 穢貉이 되면 穢와 그에 인접한 貉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 된다. 이 貉은 압록강 유역에 있었다.
2841#31230 SIBLINGS CHILDREN 31230
 
-0645    ◾發과 貉
-0645 ◾發과 貉
앞서 순임금 때의 長夷 및 鳥夷를 각각 일주서의 穢人 및 良夷에 대응시킨 바 있다. 관자에서는 朝鮮이 새로 나타나는데, 朝鮮은 훗날 樂浪으로 바뀌고 서진 시기의 주석에서 良夷는 樂浪 오랑캐라고 했으므로, 朝鮮은 良夷다. 순임금 때와 일주서에 나오던 發은 관자에서 朝鮮과 결합하여 發朝鮮으로 나타나는데, 관자에서 새로 보이는 貉일 가능성이 있다.
2841#31292 SIBLINGS CHILDREN 31292
 
-0645 ◾貉 金文 西周早期
2841#31203 SIBLINGS CHILDREN 31203
 
-0645 ◾貉은 너구리
2841#15131 SIBLINGS CHILDREN 15131
 
-0645           管子 ⤴
-0645 管子 ⤴
2841#31298 SIBLINGS CHILDREN 31298
 
-0566 史記(-91)
韓의 선조는 주와 같은 성인 姬씨이다. 그 후예들은 晉을 섬겨 韓原을 봉지로 얻어 韓武子라 했다. 韓武子 이후 3세손 韓厥이 있었는데, 봉지의 이름을 성으로 삼아 韓씨라 했다.
2841#27516 SIBLINGS CHILDREN 27516
 
-0479 論語
微子去之 箕子為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미자는 떠나고 기자는 노비가 되었으며 비간은 거스르는 말을 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공자는 은나라에 세 명의 어진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2841#41010 SIBLINGS CHILDREN COMMENT 41010
 
-0403 ~ -0221 戰國時代
-0403 ~ -0221 戰國時代
2841#18674 SIBLINGS CHILDREN 18674
 
-0403 山海經
山海經은 지리서인데, 春秋시대부터 漢代 초기까지 호기심 많은 학자들이 내용을 조금씩 추가하여 총 18권으로 이루어진 책이 되었다. 晋의 郭璞(276~324)이 기존의 자료를 모아 편찬하며 주를 달았다.
2841#31124 SIBLINGS CHILDREN 31124
 
-0403 山海經 朝鮮(2)
朝鮮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 조선은 열양의 동쪽에 있는데 바다의 북쪽 산 남쪽에 있다. 열양은 연에 속한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人 동해안 북해의 귀퉁이에 조선과 천독이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물가에 살며 사람들을 좋아한다. ▐ 天毒는 중국 동남부에 있었다. 산해경에는 중국에 없는 西海가 나오는 등 기술이 정확하지 않다.
2841#31125 SIBLINGS CHILDREN 31125
 
-0403 山海經 貊國(2)
東胡在大澤東┆夷人在東胡東┆貊國在漢水東北 地近于燕 滅之┆孟鳥在貊國東北 其鳥文赤·黃·青 東鄉
2841#31127 SIBLINGS CHILDREN 31127
 
-0403 ◾布幣
逸周書(-1021)에 나오는 在子幣身人首에서 幣는 布幣를 말하는 듯하다. 布幣는 춘추시대에 생겨났지만 물범처럼 다리가 있는 布幣는 전국시대에 나왔다. 그렇다면 逸周書(-1021)의 在子幣身人首는 전국시대의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2841#15844 SIBLINGS CHILDREN OPEN
 
-0334 ~ -0109 燕·秦·漢과 朝鮮
2841#4404 SIBLINGS CHILDREN 4404
 
-0334 史記(-91) 蘇秦列傳
燕 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嘑沱易水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과 요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임호와 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운중과 구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호타하와 역수가 있습니다.
2841#16358 SIBLINGS CHILDREN 16358
 
-0300⁺ 史記(-91) 貨殖列傳
北鄰烏桓·夫餘 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연나라는) 북으로 오환 및 부여와 이웃하고 동으로 예맥, 조선 그리고 진번과 교류하여 이익을 얻었다.
2841#15129 SIBLINGS CHILDREN 15129
 
-0300⁺ 漢書(82)
北隙烏丸夫餘 東賈真番之利 연나라는 북쪽으로 오환 및 부여와 틈이 있고 동쪽으로는 真番과 장사를 해서 이익을 얻었다. ▐ 사기(-91)의 기록을 잘못 옮긴 듯하다.
2841#5944 SIBLINGS CHILDREN COMMENT 5944
 
-0296 竹書紀年
▐ 竹書紀年은 黃帝의 시대로부터 戰國時代 魏 襄王(-318~-296)에 이르기까지의 일이 저술되어 있다. 279년에 魏 襄王의 무덤에서 대나무에 기록된 형태로 발견되었다. 이것을 학자들이 책으로 편찬하였는데 이 책도 점차 분실되어 남송시대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심약의 주가 붙은 今本竹書紀年이 있는데 이는 명나라 때의 위작으로 간주된다. 1917년에 왕국유가 고서에 인용된 기록을 모아 古本竹書紀年을 편찬하였는데, 여기에는 箕子 이야기가 없다.
2841#29485 SIBLINGS CHILDREN OPEN
 
-0283 史記(-91) 燕┆眞番┆朝鮮
自始全燕時嘗略屬眞番朝鮮爲置吏築鄣塞 연나라가 그 전성기 때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보루과 요새를 쌓았다.
2841#16357 SIBLINGS CHILDREN 16357
 
-0283 魏略(265±)
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爲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爲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其大夫禮諫之 乃止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연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라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도 역시 스스로 왕호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공격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 하였는데, 그의 대부 예(禮)가 말리므로 중지하였다.
2841#18228 SIBLINGS CHILDREN 18228
 
-0235± 荀子
微子開封於宋┆武王始入殷 表商容之閭 釋箕子之囚 哭比干之墓 天下鄉善矣
2841#31599 SIBLINGS CHILDREN 31599
 
-0230 史記(-91) 韓
秦이 왕 安을 포로로 잡고 그 땅을 전부 편입시켜 潁州郡으로 삼았다. 韓이 마침내 멸망했다. (-226년에 옛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되면서 安도 처형되었다.)
2841#41948 SIBLINGS CHILDREN COMMENT 41948
 
-0222 史記(-91) 燕
秦이 遼東을 빼앗고 燕王 喜를 사로잡아 마침내 燕을 멸망시켰다.
2841#8354 SIBLINGS CHILDREN 8354
 
-0221 鮮 秦系簡牘
▐ 원래 따왔던 물고기와는 글자 모양이 완전히 달라졌다.
2841#16837 SIBLINGS CHILDREN 16837
 
-0209± 魏略(265±) 燕┆齊┆趙
陳項起 天下亂 燕齊趙民愁苦 稍稍亡往準 準乃置之於西方 진승과 항우가 기병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燕·齊·趙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차츰 차츰 準에게 망명하므로 準은 이들을 서부 지역에 거주하게 하였다.
2841#4403 SIBLINGS CHILDREN 4403
 
-0209± 三國志(289) 秦
辰韓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노인들이 대대로 전하기를 “옛날의 망명인으로 秦의 고역을 피해 한국으로 왔는데 마한이 그들의 동쪽 땅을 떼어 우리에게 주었다”고 하였다. 그들의 말은 마한과 달라 秦 사람들과 흡사하니 단지 燕과 齊의 명칭만은 아니었다. 낙랑 사람을 阿殘이라 하였는데 동방 사람들은 나라는 말을 阿라 하였으니 낙랑인들은 본디 그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秦韓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2841#2124 SIBLINGS CHILDREN 2124
 
-0209± 三國志(289) 燕┆齊┆趙
陳勝等起 天下叛秦 燕齊趙民避地朝鮮數萬口 진승 등이 일어나 온 천하가 秦에 반기를 드니, 燕·齊·趙의 백성 수만인이 조선으로 피난하였다.
2841#6795 SIBLINGS CHILDREN 6795
 
-0209 史記(-91) 衛
二十五年 元君卒 子君角立 君角九年 秦并天下 立為始皇帝 二十一年 二世廃君角為庶人 衛絶祀 25년에 원군이 죽고 아들 각이 즉위했다. 위군 각 9년에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시황제가 즉위했다. 21년에 진나라 2세가 위군 각을 평민으로 내치니 이로써 衛의 제사가 끊어졌다.
2841#8355 SIBLINGS CHILDREN 8355
 
-0209 ~ -0206 韓廣
상곡의 졸 한광은 진나라 말기에 연 땅에서 연왕을 자칭했다. 장도가 연왕으로 오자 요동왕으로 옮겼다가 무종에서 장도에게 죽임을 당했다.
2841#27832 SIBLINGS CHILDREN 27832
 
-0195± 史記(-91)
燕王盧綰反入匈奴滿亡命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연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 인을 모아 몽치 머리에 오랑캐의 복장으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秦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燕과 齊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
2841#21991 SIBLINGS CHILDREN 21991
 
-0195? 魏略(265?)
及漢以盧綰為燕王 朝鮮與燕界於浿水 及綰反 入匈奴 燕人衞滿亡命 為胡服 東度浿水 詣準降 한나라 때에 이르러 노관으로 연왕을 삼으니, 조선과 연은 패수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간 뒤 연나라 사람 위만도 망명하여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에게 항복하였다.
2841#8350 SIBLINGS CHILDREN 8350
 
-0195+ 史記(-91)
燕丹散亂遼間 蒲收其亡民 厥聚海東 以集真藩 葆塞為外臣 연과 단의 무리가 요를 어지럽힐 때 만은 유민을 거두어 해동에 모아 眞番에 집결시키고 변방의 외신이 되었다.
2841#21992 SIBLINGS CHILDREN 21992
 
-0188⁻ 史記
會孝惠 高后時天下初定 遼東太守即約滿為外臣 保塞外蠻夷 無使盜邊 諸蠻夷君長欲入見天子 勿得禁止 以聞 上許之 以故滿得兵威財物 侵降其旁小邑 真番臨屯皆來服屬 方數千里
2841#18282 SIBLINGS CHILDREN 18282
 
-0188⁻ 史記
이 때는 마침 효혜·고후(-195~-188)의 시대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되니 요동태수는 곧 위만을 외신으로 삼을 것을 약속하여 국경 밖의 오랑캐를 지켜 변경을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모든 오랑캐의 군장이 들어와 천자를 뵙고자 하면 막지 않도록 하였다. 이로써 위만은 군사의 위세와 재물을 얻게 되어 그 주변의 소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真番과 臨屯 모두 와서 복속하였다.
2841#5853 SIBLINGS CHILDREN 5853
 
-0188- 史記(-91)
燕丹散亂遼間 蒲收其亡民 厥聚海東 以集真藩 葆塞為外臣 연과 단의 무리가 요를 어지럽힐 때 만은 유민을 거두어 해동에 모아 眞番에 집결시키고 변방의 외신이 되었다.
2841#5856 SIBLINGS CHILDREN COMMENT 5856
 
-0177 後漢書(445)
왕경은 자가 중통인데 낙랑 남감 사람이다. 8세조 仲은 낭야 불기 사람인데 도술을 좋아하고 천문에 밝았다. 여씨가 횡포를 부리자 유애왕 襄이 군사를 일으키려 여러 차례 仲에게 자문을 구했다. 제북왕 흥거가 반란을 일으켜 병사의 일을 그에게 맡기려하자 화가 미칠까 두려워 바다 건너 낙랑의 산 속으로 도망가 정착해 살았다. ▐ 이때는 낙랑군이 설치되기 전이므로 여기에 나오는 낙랑은 훗날 낙랑이 되는 조선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2841#7321 SIBLINGS CHILDREN COMMENT 7321
 
-0157⁻ 尙書大傳
武王勝殷 繼公子祿父 釋箕子囚 箕子不忍周之釋 走之朝鮮 武王聞之 因以朝鮮封之 箕子既受周之封 不得無臣禮 故於十三祀來朝 무왕은 은을 이기자 공자 녹부에 이어 기자를 감옥에서 풀어주었다. 기자는 주나라에 의해 석방된 것을 언짢게 여겨 조선으로 달아났다. 무왕이 그 소식을 듣고 조선을 그의 영지로 내려 주었다. 기자는 이제 주나라로부터 영지를 받았으니 신하의 예의를 안 지킬 수 없어 무왕 13년에 조배하러 왔다.
2841#41012 SIBLINGS CHILDREN COMMENT 41012
 
-0157⁻ ◾朝鮮
-195년경에 燕의 衛滿이 朝鮮으로 가 왕이 된 사례에 영향을 받아 箕子가 朝鮮으로 가자 武王이 朝鮮에 봉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진 듯하다. 그 시기는 尙書를 복원하던 漢 文帝(-180~-157) 때가 어울린다.
2841#22052 SIBLINGS CHILDREN 22052
 
-0157⁻ ◾書→尙書→書經
書는 虞書 5편, 夏書 4편, 商書 17편 그리고 周書 32편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堯舜시대(-2324~-2184), 夏나라(-2070~-1600), 商나라(-1600~-1046) 그리고 周나라(-1046~-0771)의 정사에 관한 문서를 모아 孔子(-551~-479)가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戰國시대(-403~-221)에는 공문서라는 의미로 書라고 했다가 유학을 숭상하고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漢나라(-202~220) 때에 유학자들이 숭상해야 할 고대의 ...
2841#22045 SIBLINGS CHILDREN COMMENT 22045
 
-0134~-0086 漢書(82) 金日磾
2841#22054 SIBLINGS CHILDREN 22054
 
-0128~-0125 蒼海郡
濊는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거쳐 중국과 교류하였는데 위만 조선에 의해 이 길이 막히자 濊君 남려 등은 28만 구를 들어 황초령을 넘고 압록강을 지나 요동에 귀부하였다. 한무제는 濊에 蒼海郡을 설치하였다가 수년 후에 폐지하였다. 蒼海는 푸른 바다라는 뜻으로 누런 바다라는 뜻의 黃海와 대조된다. 濊의 위치로 보나 蒼海의 뜻으로 보나 蒼海郡은 동해에 접한 지역으로 볼 수 밖에 없다. 蒼海郡의 설치 경험은 훗날 臨屯郡을 설치하는 바탕이 되었을 듯하다.
2841#6772 SIBLINGS CHILDREN 6772
 
-0109⁻ 史記(-91)
傳子至孫右渠 所誘漢亡人滋多 又未嘗入見 眞番旁眾國欲上書見天子 又擁閼不通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 때에 이르러서는 유인해 낸 한나라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또 천자에게 배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2841#6791 SIBLINGS CHILDREN COMMENT 6791
 
-0109⁻ ◾眞番旁衆國
校勘本에는 眞番旁衆國이라고 되어 있으나 宋板本에는 眞番旁辰國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앞서 위만 시기에 侵降其旁小邑 真番臨屯皆來服屬이라고 하였으므로 眞番旁衆國이 어울린다. 한서(82)에는 真番辰國으로 되어 있다.
2841#5857 SIBLINGS CHILDREN COMMENT 5857
 
-0109⁻ ◾眾
眾 무리 중 衆의 本字.
2841#6793 SIBLINGS CHILDREN COMMENT 6793
 
-0109⁻ 「三國誤記」 漢書
傳子至孫右渠所誘漢亡人滋多又未嘗入見(真番辰國→)眞番旁衆國欲上書見天子又雍閼弗通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 때에 이르러서는 유인해 낸 한나라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또 천자에게 배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 사기(-91)에 眞番旁衆國이라 할 것을 眞番旁辰國으로 잘못 기재한 판본이 있었는데, 이것을 한서(82)에서 다시 真番辰國으로 더 잘못 기록한 듯하
2841#18263 SIBLINGS CHILDREN 18263
 
-0109⁻ 魏略(265±)
初 右渠未破時 朝鮮相歷谿卿以諫右渠不用 東之辰國 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 亦與朝鮮貢蕃不相往來 일찍이 우거가 격파되기 전에, 조선 상 역계경이 우거에게 조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진국으로 갔다. 그 때 백성으로서 그를 따라가 그 곳에 산 사람이 2천여 호나 되었는데, 그들도 역시 조선에 조공하는 번국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2841#5818 SIBLINGS CHILDREN 5818
 
-0108 漢四郡
-0108 漢四郡
한나라는 위만조선을 침공하여 왕조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4군을 설치하였다. 기자설화는 이 침공과 통치를 정당화하는 기능이 있다.
2841#17061 SIBLINGS CHILDREN 17061
 
-0108 史記(-91)
左將軍이 양군을 합하여 맹렬히 朝鮮을 치니, 朝鮮의 相 路人, 相 韓陰, 尼谿相 參 그리고 將軍 王唊이 서로 모의하기를, “처음 樓船에게 항복하려 했으나 樓船은 지금 잡혀 있고 左將軍 단독으로 장졸을 합하여 전투가 더욱 맹렬하여 맞아서 싸우기 두려운데도 왕은 항복하려 하지 않는다.” 하고 陰·唊·路人이 모두 도망하여 漢에 항복하였다. 路人은 도중에 죽었다.
2841#28831 SIBLINGS CHILDREN 28831
 
-0108 史記(-91)
▐ 위만조선이 망할 때 한나라에 투항한 韓씨가 위만조선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한나라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작업에 가담했을 듯하다. '위만이 쫓아낸 조선왕은 기자의 후예인 韓씨인데 바다로 도망가 韓國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그 작업의 결과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낙랑에서 韓씨가 지배계층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중국이 韓國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명분도 만들어 주었다.
2841#41939 SIBLINGS CHILDREN COMMENT 41939
 
-0108 漢書
夏 朝鮮斬其王右渠降 以其地為樂浪·臨屯·玄菟·真番郡
2841#20391 SIBLINGS CHILDREN 20391
 
-0107 漢書(82)
玄菟郡(武帝元封四年開) 縣三 高句驪 上殷台 西蓋馬 현도군(무제 원봉 4년에 설치했다) 현이 세 개다. 고구려 상은태 서개마 ▐ 한서는 고구려가 최초로 나타나는 기록이다. 다른 군과 통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현의 수는 대체로 군을 설치한 뒤 줄어든다. 그렇다면 고구려현은 -107년에 현도군을 설치할 때 설치된 것이다.
2841#31220 SIBLINGS CHILDREN 31220
 
-0107 ◾高句麗
산 위에 쌓은 城은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高城이라 할 만하다. 고구려에서는 城을 구루라 했으므로 高城은 高구루가 된다. 구루를 삼국지(289) 시기에는 溝婁라 표기했지만 -107년에는 句驪라 표기했을 수 있다. 이것이 高句麗의 어원인 듯하다. 오녀산성이 이 조건에 부합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로 城 아래 물가에 살았기 때문에 忽本이란 沸流谷의 지명을 사용하였고 高句麗는 한나라에 의해 주로 사용되었을 듯하다.
2841#31221 SIBLINGS CHILDREN 31221
 
-0091⁺
-0091⁺
2841#31018 SIBLINGS CHILDREN 31018
 
-0091 史記 宋微子世家
武王은 殷을 이기고 나서 箕子를 방문하였다.┆鴻範九等┆武王이 곧 箕子를 朝鮮에 봉했으나 신하는 아니었다. 그 후 箕子는 周에 배알하고 옛 殷虛를 지나게 되었는데 궁궐이 무너지고 그곳에 벼와 기장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슬퍼하여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그런 일은 부인들이나 하는 거라 시만 한 수 지어 읊었다.
2841#5942 SIBLINGS CHILDREN COMMENT 5942
 
-0091 史記 宋微子世家
▐ 殷 帝乙의 큰아들이자 紂王의 배다른 형인 微子 開는 紂王에게 여러 차례 간하다 듣지 않자 떠났다. 紂王의 친척인 箕子도 紂王에게 여러 차례 간하다 듣지 않자 미친 척하며 노예가 되었다. 역시 紂王의 친척인 比干도 箕子가 노예가 되는 것을 보고 간하다 죽임을 당했다. 周 武王이 殷 紂王을 토벌하자 微子는 투항하였다. 武王은 紂王의 아들 武庚祿父에게 殷 왕조의 제사를 잇게 하고 箕子를 방문하여 鴻範九等을 듣고 朝鮮에 봉했으나 신하로 대하지는 않았다.
2841#18219 SIBLINGS CHILDREN 18219
 
-0091 史記 宋微子世家
▐ 尙書에는 箕子가 朝鮮으로 달아나자 朝鮮에 봉했다고 되어 있으나 史記에는 箕子를 방문하여 鴻範九等을 듣고 난 후 朝鮮에 봉했다고 되어 있다. -1046년경에는 周의 영향력이 대동강은 물론 요하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尙書의 이야기가 더 자연스럽다. 또 箕子로부터 鴻範九等을 들었다는 이야기는 尙書에 없던 것인데, 箕子가 달아났다는 이야기와 모순되기 때문에 史記에서는 箕子를 방문했다는 이야기로 바뀐 듯하다.
2841#41016 SIBLINGS CHILDREN COMMENT 41016
 
-0091 史記 宋微子世家
▐ 武王이 죽고 成王이 뒤를 잇자 반란이 일어났는데 武庚이 연루되어 죽임을 당했다. 이에 微子로 하여금 제사를 잇게 하고 宋에 나라를 세우게 했다.
2841#22083 SIBLINGS CHILDREN 22083
 
-0091 史記 貉(11)
胡貉(5)┆穢貉(3)┆蠻貉(1)┆諸貉(1)┆狐貉(1) ▐ 胡, 蠻 그리고 貉은 오랑캐라는 뜻의 보통 명사고 穢(거친), 諸(여러) 그리고 狐(여우)는 꾸며주는 말이다. 그러나 穢와 貉이 결합한 穢貉은 고유 명사로 쓰였다.
2841#30714 SIBLINGS CHILDREN 30714
 
-0091 史記 諸貉
左衽界乗 奄有河宗 至于休溷諸貉 南伐晉別 北滅黒姑 황하 양 옆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休溷과 諸貉에까지 이를 것이고, 남으로는 晉의 다른 지역을 토벌하고 북으로는 黑姑를 멸할 것이다.
2841#30731 SIBLINGS CHILDREN 30731
 
-0091 史記 蠻貉
燕迫蛮貉 内措斉晉崎嶇彊国之閒 最為弱小 幾滅者數矣┆燕은 밖으로는 蠻貊과 가깝고 안으로는 斉와 晉과 같은 강한 나라에 끼인 가장 약소한 나라로서 거의 몇 번이나 망할 뻔했다.
2841#30728 SIBLINGS CHILDREN 30728
 
-0091 史記 胡貉
地非不広 又北逐胡貉 南定百越 以見秦之彊┆북쪽으로 胡와 貉을 쫓아냈고 남쪽으로 百越을 평정해 秦의 강성함을 보여주었습니다.
2841#30765 SIBLINGS CHILDREN 30765
 
-0091 史記 胡貉
後百有餘年 趙襄子踰句而破並代以臨胡貉┆그로부터 1백여 년 뒤에 趙襄子가 句注山을 넘어 代를 공격하여 그 땅을 병합하고 胡, 貉에까지 이르렀다.
2841#30766 SIBLINGS CHILDREN 30766
 
-0091 史記 穢
諸左方王將居東方 直上谷以往者 東接穢貉朝鮮┆漢東拔穢貉朝鮮以為郡┆北鄰烏桓夫餘 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2841#29809 SIBLINGS CHILDREN 29809
 
-0091 史記 穢
除去收帑汙穢之罪┆萬民咸蕩滌邪穢┆蟬蛻於濁穢┆墳墓蕪穢而不修兮 ▐ 汙(더럽다), 邪(사악하다), 濁(흐리다) 그리고 蕪(거칠다)와 함께 쓰인 것으로 보아 穢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2841#30726 SIBLINGS CHILDREN 30726
 
-0091 史記 穢貉 -0311
北鄰烏桓夫餘 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북으로 烏桓 및 夫餘와 이웃하고 동으로 穢貉, 朝鮮 그리고 真番과 교류하여 이익을 얻었다.
2841#30769 SIBLINGS CHILDREN 30769
 
-0091 史記 穢貉 -0202
諸左方王將居東方 直上谷以往者 東接穢貉朝鮮┆모든 左方의 왕들과 장수들은 동쪽에 거주하고 上谷에서부터 동쪽으로 穢貉과 朝鮮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 당시 匈奴는 代를 차지하고 燕을 공략하고 있었다.┆上谷
2841#30771 SIBLINGS CHILDREN 30771
 
-0091 史記 穢貉 -0108
漢東拔穢貉朝鮮以為郡┆漢은 동쪽으로 穢貉과 朝鮮을 함락시키고 그 땅에 몇 개의 군을 설치했다.
2841#30768 SIBLINGS CHILDREN 30768
 
-0091 史記 朝鮮(44)
2841#29968 SIBLINGS CHILDREN 29968
 
-0091 史記 真番(5) 真藩(1)
略屬真番朝鮮┆稍役屬真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滿得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真番臨屯皆來服屬┆真番旁眾國欲上書見天子┆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收其亡民厥聚海東以集真藩
2841#30252 SIBLINGS CHILDREN 30252
 
-0091 史記 臨屯(1)
2841#21995 SIBLINGS CHILDREN 21995
 
-0087 漢書(82) 臣瓚曰 茂陵書
臨屯郡 治東暆縣 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 十五縣┆真番郡 治霅縣 去長安七千六百四十里 十五縣
2841#30519 SIBLINGS CHILDREN 30519
 
-0082 後漢書(445)
罷臨屯眞番 以幷樂浪玄菟 임둔과 진번을 폐지하여 낙랑과 현도에 합병하였다.
2841#30466 SIBLINGS CHILDREN 30466
 
-0082 ◾眞番
┆漢書 25┆ 朝鮮 䛁邯 浿水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 (東暆 不而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 ┆後漢書 18┆ 朝鮮 (䛁邯) (淇水) 貪資 (占蟬) 遂城 (増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樂都) ➔ ┆晉書 6+7┆ 朝鮮 屯有 渾彌 遂城 鏤方 駟望 + 帶方 列口 南新 長岑 提奚 含資 海冥
2841#30530 SIBLINGS CHILDREN 30530
 
-0045 樂浪木簡
조선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의 학술지 '력사과학'에 게재된 손영종의 논문에는 낙랑 총 인구의 14%인 4만 명이 漢族이며, 나머지 86%는 土着民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2841#11020 SIBLINGS CHILDREN 11020
 
(8) 三皇五帝
0695 新羅3황5제王氏源派記(車柳氏宗譜史由來)뿌리를 찾아서 - 開城王氏
 
0003 三國史記(1145) 高句麗
王聞之震怒 罷陜父職 俾司官園 陜父憤 去之南韓 왕이 이를 듣고 매우 화가 나 협보의 관직을 파하고 관원을 맡아보게 하였다. 협보가 분하여 남한으로 가버렸다.
2841#30799 SIBLINGS CHILDREN 30799
 
0008 漢書 地理志
樂浪郡(莽曰樂鮮)┆浿水(莽曰樂鮮亭) ▐ 樂浪郡은 朝鮮에 설치했다. 따라서 樂鮮의 鮮은 朝鮮에서 나온 말이고 어근이다. 그렇다면 樂浪 또한 樂과 浪으로 분리하여 浪을 어근으로 볼 수 있다.┆浿水는 朝鮮의 관문이었기 때문에 朝鮮을 樂鮮으로 바꾼 맥락에서 樂鮮亭으로 바꾼 듯하다.
2841#31008 SIBLINGS CHILDREN 31008
 
0012 漢書(82)
왕망(9~23) 초에 高句驪 병력를 뽑아 오랑캐를 정벌하려 하였으나 모두 도망하여 변경을 나가 법을 어기고 도적이 되었다. 요서대윤 전담이 그들을 추격하다 죽자 왕망이 장수 엄우를 시켜 치게 하였다. 엄우가 高句驪侯 騶를 유인하여 목을 베고 그 머리를 장안에 보냈다. 왕망이 高句驪를 下句驪로 이름을 바꾸고 천하에 알리게 하였다. 이에 貉人이 변경을 더욱 침범하게 되었다.
2841#31222 SIBLINGS CHILDREN 31222
 
0018 方言
燕之外郊朝鮮洌水之間凡㬥肉 發人之私 披牛羊之五藏 謂之膊 ▐ 揚雄(-53~18)이 편찬하였다.
2841#31301 SIBLINGS CHILDREN 31301
 
0018 ◾發人
0018 ◾發人
朝鮮 洌水는 대동강이다. 燕은 전국 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동쪽으로 영토를 넓혔는데, 첫 번째는 東胡를 내쫓고 산해관에서 천산 산맥까지 넓힌 것이고 두 번째는 真番과 朝鮮을 복속시키고 천산 산맥에서 대동강까지 넓힌 것이다. 순임금 시기에 북으로 山戎, 發 그리고 息慎이 있었다고 하므로 發의 영역으로는 燕이 두 번째로 넓힌 지역이 어울린다. 이 지역이 바로 燕之外郊朝鮮洌水之間인 듯하다. 이는 앞서 發을 貉으로 추정한 것에 부합한다.
2841#31306 SIBLINGS CHILDREN 31306
 
0020~0023 魏略(265)
至王莽地皇時 廉斯鑡為(辰韓→)馬韓右渠帥 聞樂浪土地美 人民饒樂 亡欲來降 염사착이 마한의 우거수가 되어 낙랑의 토지가 비옥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하고 안락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가서 항복하기로 하였다.
2841#15924 SIBLINGS CHILDREN 15924
 
0030 後漢書(445)
建武六年 光武遣太守王遵將兵擊之 至遼東 閎與郡決曹史楊邑等共殺調迎遵 광무제가 태수 왕준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게 하였다. 요동에 이르자 왕굉이 결조사 양읍과 함께 왕조를 죽이고 왕준을 맞이하였다.
2841#22103 SIBLINGS CHILDREN 22103
 
0030±         說文解字 ⤵
0030± 說文解字 ⤵
▐ 說文解字는 중국의 가장 오랜 자전으로 중국 후한의 經學者로 알려진 許愼(58~148)이 필생의 노력을 기울여 저술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설문해자는 30년에 낙랑군에서 빠진 東暆와 邪頭昧가 각각 樂浪과 薉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30년을 전후한 시기의 자료를 바탕으로 쓴 듯하다.
2841#31307 SIBLINGS CHILDREN 31307
 
0030± 說文解字
2841#31095 SIBLINGS CHILDREN OPEN
 
0030± 說文解字 禺
禺 母猴屬 頭似鬼 从甶从禸 ▐ 逸周書에는 揚州禺禺魚名이라고 되어 있어 禺가 어류의 일종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2841#31314 SIBLINGS CHILDREN 31314
 
0030± 說文解字 鰅
鰅 魚名 皮有文 出樂浪東暆 神爵四年 初捕收輸考工 周成王時 揚州獻鰅 从魚禺聲 옹은 물고기 이름이다. 껍질에 무늬가 있다. 낙랑군 동이현에서 나는데, -58년에 처음 잡아서 공부로 보내왔다. -1055~-1021년에는 양주가 우를 보냈다. ▐ 逸周書에는 ᐥ揚州禺 禺 魚名ᐥ이라고 되어 있다.
2841#15916 SIBLINGS CHILDREN 15916
 
0030± ◾周成王時 揚州獻鰅
逸周書는 周文王(-1152~-1056)부터 周景王(-0544~-0520)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한 문헌이다. 그러나 王會解에 나오는 「揚州禺 禺 魚名」은 설문해자에 나오는 「周成王時(-1055~-1021) 揚州獻鰅」에 대응되므로 逸周書의 王會解는 기본적으로 周成王時(-1055~-1021)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거기에 들어있는 穢人과 良夷에 대한 이야기에도 적용된다.
2841#31130 SIBLINGS CHILDREN 31130
 
0030± 說文解字 貉
貉 北方豸穜 ▐ 貉은 북방에 사는 짐승의 이름인데 그 짐승의 이름으로 압록강 유역에 사는 종족을 가리킨 듯하다.
2841#31190 SIBLINGS CHILDREN 31190
 
0030± 說文解字 薉
薉 蕪也┆穢·濊·薉·獩·蘂 ▐ 薉는 거칠다는 뜻으로 반도의 동해안에 사는 종족을, 상대적으로 문화의 발달이 늦은 것을 부각시키며, 종족의 이름으로 쓴 듯하다.
2841#31185 SIBLINGS CHILDREN 31185
 
0030± 說文解字 鮮
鮮 魚名 出貉國 ▐ 朝鮮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설문해자로부터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에는 貉國과 인접한 朝鮮에서 鮮이 많이 났을 수 있다.
2841#31144 SIBLINGS CHILDREN 31144
 
0030± ◾貉國
이 당시 貉人이 세운 高句驪가 있었지만 황해에는 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小水貊처럼 貉人의 분포는 高句驪 바깥에도 있었기 때문에 황해에 접한 貉人도 있었을 듯하다. 여기서 말하는 貉國은 그들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管子에서 朝鮮과 함께 發朝鮮으로 언급되며 文皮를 조공했다는 發이나 方言에서 燕之外郊와 朝鮮 洌水 사이에 살았다는 發人이 모두 이들인 듯하다.
2841#31226 SIBLINGS CHILDREN 31226
 
0030± ◾貉國
일주서에는 發人이 사슴류인 麃를 보낸다고 되어 있어 發이 貉이라면 貉國에서 어류인 鮮이 난다는 설문해자와 모순되어 보인다. 이 문제는 發 또는 貉이 내륙과 해양 모두에 걸쳐 분포했다는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다. 息慎이 중국에 이르는 경로에 있는 산악 지역의 發은 麃를 보냈고 朝鮮이 중국에 이르는 경로에 있는 해안의 貉에서는 鮮이 많이 났다는 이야기다.
2841#31309 SIBLINGS CHILDREN 31309
 
0030± 說文解字 䱡
䱡 魚名 出樂浪潘國 从魚匊聲 一曰䱡魚出江東 有兩乳 ▐ 䱡는 돌고래다. 포유동물이지만 돌고래를 魚로 인식한 것으로 보아 물범이나 물개 같은 포유동물도 魚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2841#31218 SIBLINGS CHILDREN 31218
 
0030± 說文解字 ⤴
0030± 說文解字 ⤴
2841#31308 SIBLINGS CHILDREN 31308
 
0044 後漢書(445) 光武帝紀
秋東夷韓國人率衆詣樂浪內附 가을에 동이 한국인이 무리를 거느리고 낙랑에 와서 내부하였다.
2841#1864 SIBLINGS CHILDREN 1864
 
0044 後漢書(445) 東夷列傳
韓人廉斯人蘇馬諟等 詣樂浪貢獻 光武封蘇馬諟 爲漢廉斯邑君使 屬樂浪郡 四時朝謁 한의 염사 사람인 소마시 등이 낙랑에 와서 공물을 바쳤다. 광무제는 소마시를 대하여 한의 염사읍군으로 삼아 낙랑군에 소속시키고 철마다 조알하도록 하였다.
2841#5483 SIBLINGS CHILDREN 5483
 
0044 ◾韓·廉斯
후한서에서 44년의 일로 나오는 韓 廉斯人 이야기는 위략(265)에서 20~23년의 일로 나오는 韓 廉斯鑡 이야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이즈음 韓國이 존재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廉斯는 -82년에 眞番이 폐지될 때 낙랑에 합쳐지지 않고 빠진 8현의 하나로 어울린다. 그 眞番 8현은 이때에 韓이라 불리고 있었다.
2841#30465 SIBLINGS CHILDREN 30465
 
0082       漢書 ⤵
0082 漢書 ⤵
2841#31019 SIBLINGS CHILDREN 31019
 
0082 漢書
▐ 箕子가 朝鮮에 봉해졌다는 시기로부터 1,000여년이 지난 후 등장한 이야기다. 따라서 이 금8조는 衛滿朝鮮이 망할 즈음의 朝鮮 법률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2841#16392 SIBLINGS CHILDREN 16392
 
0082 漢書
傳子至孫右渠所誘漢亡人滋多又未嘗入見真番辰國欲上書見天子又雍閼弗通 (위만조선은)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 때에 이르러서는 유인해 낸 한나라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또 천자에게 배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과 진국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 사기에 眞番旁衆國 또는 眞番旁辰國으로 되어 있는 것이 여기에는 真番辰國으로 고쳐져 있다. 辰國은 사료상으로 韓보다 먼저 나타난다.
2841#6794 SIBLINGS CHILDREN COMMENT 6794
 
0082 漢書
여름, 니계상 삼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험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죽은 우거의 대신 성이가 또 반하여 다시 군리를 공격하였다. 좌장군이 우거의 아들 長과 항복한 상 로인의 아들 最로 하여금 그 백성을 달래고 성이를 주살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진번·임둔·낙랑·현도의 4군을 설치하였다. 定朝鮮爲眞番臨屯樂浪玄菟四郡
2841#18293 SIBLINGS CHILDREN 18293
 
0082 漢書 地理志 下
上谷至遼東 地廣民希 數被胡寇 俗與趙·代相類 有魚鹽棗栗之饒 北隙烏丸·夫餘 東賈真番之利 ▐ 이 당시에는 真番이 사라진 뒤이기 때문에 사기(-91)의 「北鄰烏桓·夫餘 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를 수정하여 옮겨놓은 듯하다.
2841#30525 SIBLINGS CHILDREN 30525
 
0082 漢書 地理志 下
玄菟·樂浪 武帝時置 皆朝鮮·濊貉·句驪蠻夷 현도와 낙랑은 무제 때 설치했다. 모두 조선, 예맥 그리고 구려 오랑캐다. ▐ 句驪가 따로 언급된 것으로 보아 濊貉은 濊를 말하는 듯하다. 삼국지(289)에도 高句麗에 대해 南與朝鮮·濊貊이라 하여 濊貊과 분리하였다.
2841#8251 SIBLINGS CHILDREN 8251
 
0082 漢書 地理志 下
殷道衰 箕子去之朝鮮 敎其民以禮義 田蠶織作 樂浪朝鮮民犯禁八條 相殺以當時償殺 相傷以谷償 相盜者男沒入爲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 人五十萬 은나라 도가 쇠퇴하자 기자가 조선으로 가서 그 사람들에게 예의, 농사, 양잠 그리고 길쌈을 가르쳤다. 낙랑조선 사람들이 금8조를 범하면,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하고 상처를 입히면 곡식으로써 배상하며 도둑질한 자는 남자는 가노로 삼고 여자는 비로 삼되 속죄받으려면 한 사람당 50만을 내야 했다.
2841#5943 SIBLINGS CHILDREN COMMENT 5943
 
0082 漢書 地理志 下
郡初取吏於遼東 吏見民無閉臧 及賈人往者 夜則爲盜 俗稍益薄 今於犯禁浸多 至六十餘條 처음에는 요동에서 관리를 뽑아왔는데 사람들이 문을 닫아걸지 않는 것을 보고 관리나 상인들이 밤에 도둑질을 하여 풍속이 나빠졌다. 법을 어기는 일이 많아지자 법조문이 60조로 불어났다. ▐ 위만조선때 8조에 불과했던 법률이 한나라의 통치 이후 60조로 늘어났다.
2841#19682 SIBLINGS CHILDREN 19682
 
0082 漢書 地理志 下
樂浪海中有倭人 分為百餘國 以歲時來獻見云 낙랑의 바다 가운데에 왜인이 산다. 백여국으로 갈라져 있다. 해마다 조공을 한다. ▐ 樂浪과 倭 사이에 있었을 韓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2841#30523 SIBLINGS CHILDREN 30523
 
0082 濊
1145 北溟人耕田 得濊王印
2841#20055 SIBLINGS CHILDREN OPEN
 
0082 漢書
穢貉┆朝鮮┆真番
2841#30328 SIBLINGS CHILDREN OPEN
 
0082 漢書 ⤴
0082 漢書 ⤴
2841#30522 SIBLINGS CHILDREN 30522
 
0082 漢書 濊
2841#20049 SIBLINGS CHILDREN 20049
 
0082 漢書 濊貉
玄菟樂浪 武帝時置 皆朝鮮濊貉句驪蠻夷
2841#30992 SIBLINGS CHILDREN 30992
 
0082 漢書 濊貉
漢東拔濊貉朝鮮以為郡┆漢은 동쪽으로 穢貉과 朝鮮을 함락시키고 그 땅에 몇 개의 군을 설치했다. ▐ 사기(-91)의 穢가 濊로 바뀌어 있다.
2841#30996 SIBLINGS CHILDREN 30996
 
0082 漢書 穢
2841#30693 SIBLINGS CHILDREN 30693
 
0082 漢書 穢貉
莽不尉安 穢貉遂反 詔尤擊之
2841#30692 SIBLINGS CHILDREN 30692
 
0082 漢書 穢貉
直上谷以東接穢貉朝鮮
2841#30986 SIBLINGS CHILDREN 30986
 
0082 漢書 穢貉
匈奴未克 夫餘穢貉復起 此大憂也
2841#30987 SIBLINGS CHILDREN 30987
 
0082 漢書 穢貊 -0128
彭吳穿穢貊朝鮮 置滄海郡 則燕齊之閒 靡然發動 팽오가 예맥조선을 뚫고 창해군을 설치하자 연과 제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2841#30983 SIBLINGS CHILDREN 30983
 
0082 漢書 薉
荒芜┆同穢┆古代少数民族名
2841#30998 SIBLINGS CHILDREN 30998
 
0082 漢書 薉
東夷薉君南閭等口二十八萬人降 為蒼海郡 동이 예군 남려가 28만 명과 함께 항복해오니 창해군이 되었다. ▐ 주서에 나오는 穢人과 함께 이 薉君이란 표현은 濊가 貉과 다른 별개의 종족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濊貉이라 통칭한 것이다.
2841#30999 SIBLINGS CHILDREN 30999
 
0082 漢書 薉貉
東定薉貉朝鮮 ▐ 薉貉을 濊貉, 穢貉 그리고 穢貊으로도 표기한 것으로 보아 薉, 濊 그리고 穢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고 貉과 貊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2841#30997 SIBLINGS CHILDREN 30997
 
0082 漢書 貉
2841#30694 SIBLINGS CHILDREN 30694
 
0082 漢書 貊
2841#30982 SIBLINGS CHILDREN 30982
 
0163⁻ 潛夫論
衛鞅(390~338) 康叔之孫也
2841#8352 SIBLINGS CHILDREN 8352
 
0163⁻ 潛夫論 -0828~-0782
昔周宣王亦有韓侯 其國也近燕 故詩雲 普彼韓城 燕師所完 옛날 주나라 선왕 때에도 한후가 있었다. 연나라에 가까이 있어서 시경에서 '커다란 저 한나라 성은 연나라 백성들이 완성시킨 것이다'라고 하였다. ▐ 죽서기년에는 -1030년에 周成王이 燕으로 하여금 韓을 위해 성을 쌓게 하고 韓侯에게 명을 내렸다고 되어 있다. 周宣王 때인 -824년에는 왕이 궐부와 韓에 명하자 韓侯가 입조하였다고만 되어 있다.
2841#41953 SIBLINGS CHILDREN COMMENT 41953
 
0163⁻ 潛夫論 -0802~-0731
凡桓叔之後 有韓氏 言氏 嬰氏 禍餘氏 公族氏 張氏 此皆韓後姬姓也┆桓叔의 후손에는 한씨, 언씨, 영씨, 화여씨, 공족씨, 장씨가 있는데 모두 韓의 후손으로 성은 姬다.
2841#41954 SIBLINGS CHILDREN COMMENT 41954
 
0163⁻ 潛夫論 -0202
信子孫餘留匈奴中者 亦常在權寵 爲貴臣┆韓信의 자손 중 匈奴에 남은 자들은 역시 항상 군주에게 총애를 받고 권력을 가져 지위가 높은 대신이 되었다.
2841#18208 SIBLINGS CHILDREN 18208
 
0163⁻ 潛夫論 -0195
其後韓西亦姓韓爲衛滿所伐遷居海中 그후 한서도 역시 한씨 성을 사용하였는데, 위만의 침공을 받아 바다 가운데로 옮겨갔다. ▐ 위만의 성 衛와 그에게 쫓겨난 조선왕의 성 韓이 모두 처음 나타나는 기록이다. 위만에게 쫓겨난 조선의 왕에 대해 韓씨고 바다로 도망갔다는 이야기는 -195년의 이야기인데 사기(-91)와 한서(82)에는 나오지 않고 350여년이나 지난 잠부론(163⁻)에 처음 나타난다.
2841#8356 SIBLINGS CHILDREN 8356
 
0163⁻  潛夫論 -0195
0163⁻ 潛夫論 -0195
2841#31525 SIBLINGS CHILDREN 31525
 
0163⁻ ◾遷居海中
한서(82)에는 朝鮮在海中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서 海中이 바닷길로 가서 닿는 곳이란 의미로도 쓰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한서가 옮겨간 곳도 朝鮮에서 바닷길로 가서 닿은 곳일 것이다.
2841#2848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0200 前漢紀
朝鮮本秦時屬遼東 漢興以爲其遠難守 故遼水為塞 盧綰之反也 燕人衛滿亡命 聚黨千餘人 在遼居秦故地 稍稍侵屬其東小蠻夷 而王之 조선은 원래 진나라 때 요동에 속했는데 한나라 때는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고 요수를 요새로 삼았다. 노관이 반란을 일으키자 연나라 사람 위만이 천여명의 무리를 모아 망명했는데 요에 있으면서 진나라의 옛 땅에 거주했다. 점점 그 동쪽의 작은 오랑캐들을 복속시켜 왕이 되었다. ▐ 滿의 성은 나타나나 準에 대한 언급은 없다.
2841#6383 SIBLINGS CHILDREN OPEN
 
0220 史記集解(0420~0479)
張晏曰 朝鮮有濕水洌水汕水 三水合為洌水 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
2841#9792 SIBLINGS CHILDREN 9792
 
0220~0265 魏率善韓佰長
2841#19762 SIBLINGS CHILDREN 19762
 
0220⁻ 箕子
2841#19675 SIBLINGS CHILDREN 19675
 
0245 三國志(289) 東夷
弱水↑⸢扶餘⸥↓高句麗 □ 鮮卑 ← 扶餘 → 挹婁 □ 扶餘↑⸢高句麗⸥↓朝鮮·濊 □ 高句麗 → 沃沮 □ 扶餘·挹婁↑⸢沃沮⸥↓濊 □ 高句麗 ← 沃沮 □ 夫餘↗挹婁 □ 未知↑⸢挹婁⸥↓沃沮 □ 高句麗·沃沮↑⸢濊⸥↓辰韓 □ 濊 → 大海 □ 朝鮮 → 濊
2841#6836 SIBLINGS CHILDREN 6836
 
0245 三國志(289) 濊
樂浪檀弓出其地 其海出班魚皮 土地饒文豹 又出果下馬 漢桓時獻之 낙랑의 단궁이 그 지역에서 산출된다. 바다에서는 반어의 껍질이 산출되며 땅은 기름지고 무늬있는 표범이 많다. 또 과하마가 나는데 한의 환제(132~168) 때 헌상하였다.
2841#31310 SIBLINGS CHILDREN 31310
 
0245      三國志(289) 濊
0245 三國志(289) 濊
▐ 삼국지의 濊에 대한 설명 ᐥ其海出班魚皮ᐥ에 나오는 班魚는 설문해자에 ᐥ鰅 魚名 皮有文 出樂浪東暆ᐥ라고 나오는 鰅다. 일주서에는 ᐥ揚州禺 禺 魚名ᐥ으로 나오는 禺였다. 일주서에는 또 ᐥ良夷在子 在子幣身人首 脂其腹炙之藿ᐥ이라고 하여 점박이 물범 在子를 소개하고 있어 禺가 이 점박이 물범일 가능성을 배제한다. 그렇다면 삼국지의 班魚는 斑纹鱼라고도 불리는 斑鱼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연해주의 원주민들은 물고기 가죽을 만드는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2841#31315 SIBLINGS CHILDREN 31315
 
0245 三國志(289) 韓
삼국지(289)는 弁辰韓 24개 나라를 소개하며 이 중 12개 나라가 월지국을 통치하는 辰王에게 소속되었다고 했다. 24개 나라 가운데 弁辰이 붙은 나라가 12개고 그렇지 않은 나라가 12개다. 弁辰이 붙지 않은 12개 나라를 辰韓으로 보면 辰王에게 소속된 나라는 이 辰韓 12개 나라가 되어 자연스럽다. 그런데 辰王은 辰韓에 있지 않고 마한인 월지국에 있었다. 이는 월지국의 통치자를 辰王으로 삼아 통합된 辰國을 辰韓으로 관할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2841#31023 SIBLINGS CHILDREN 31023
 
0245 ◾眞番
0245 ◾眞番
眞番은 사기(-91)에서 朝鮮과 묶여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朝鮮에 접한 나라다. 朝鮮은 사기에 燕의 동쪽에 접했다고 하고 삼국지(289)에는 高句麗의 남쪽이자 濊의 서쪽에 있다고 하므로, 朝鮮에 접한 眞番이 있을 곳은 그 남쪽 밖에 없다. 漢은 滿朝鮮을 멸망시키고 眞番에 군을 설치하였다.
2841#29254 SIBLINGS CHILDREN 29254
 
0265~0289 魏略·三國志 -0209
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노인들은 대대로 전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망명인으로 진나라의 고역를 피하여 한국으로 왔는데, 마한이 그들의 동쪽 땅을 분할하여 우리에게 주었다.” 고 하였다.
2841#15618 SIBLINGS CHILDREN 15618
 
0265~0289 魏略·三國志 -0209
▐ 삼국지(289)에는 秦의 난리때 燕·齊·趙의 유민이 馬韓으로 오자 辰韓에 가서 살게 했다고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馬韓과 辰韓은 각각 사기(-91)와 위략(265)에 나오는 眞番 및 辰國과 어울린다. 사기에는 위만이 燕과 丹의 유민들을 真藩에 모았다고 되어 있고 위략에는 위만의 손자 우거와 사이가 벌어진 역계경이 동쪽의 辰國으로 갔다고 되어 있다. 韓이 한서(82)와 삼국지 사이의 시기에 생겨났다면 眞番이 馬韓이 되고 辰國이 辰韓이 되었을 듯하다.
2841#22005 SIBLINGS CHILDREN 22005
 
0265~0289 魏略·三國志 -0195⁻
昔箕子之後朝鮮侯 옛 기자의 후예 조선후 ▐ -195년에 燕의 滿이 朝鮮으로 가 왕이 되자, 이에 영향을 받아 '箕子 또한 朝鮮으로 달아났고 그러자 武王이 朝鮮에 봉했다'는 이야기가 漢 文帝(-180~-157) 시기에 만들어져 尙書大傳에 수록되었다.┆조선왕 韓氏가 주나라로부터 조선에 봉해진 箕子의 후예였다는 이야기는 그로부터 나라를 빼앗은 위만 왕조를 한나라가 정벌하고 낙랑군을 설치하는 것을 정당화시킨다.
2841#7601 SIBLINGS CHILDREN 7601
 
0265~0289 魏略·三國志 -0195
將其左右宮人走入海 自號韓王 준왕은 그의 근신과 궁인들을 거느리고 도망하여 바다를 건너가 스스로 한왕이라 칭하였다. (其子及親留在國者 不改姓韓氏 準王海中 不與朝鮮相往來 준의 아들과 친척 중에 남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한씨 성을 바꾸지 않았다. 준은 해외에서 왕이 되었으나 조선과는 왕래하지 않았다.)
2841#1114 SIBLINGS CHILDREN 1114
 
0265~0289 魏略·三國志 -0195
其後絕滅 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 漢時屬樂浪郡 四時朝謁 그 뒤 준의 후손은 절멸되었으나, 지금 한인 중에는 아직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다. 한나라 때에는 낙랑군에 소속되어 철마다 조알하였다.
2841#30526 SIBLINGS CHILDREN 30526
 
0265~0289 魏略·三國志 -0195
▐ 滿朝鮮 말기에 相 韓陰이 있었다. 韓準이 滿에게 쫓겨나 韓王을 칭했는데도 滿朝鮮에서 韓씨가 벼슬을 했다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韓準의 후손이 절멸되었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韓準이 滿에게 쫓겨나 韓王을 칭했다'는 이야기는 한나라에 투항한 韓씨가 滿朝鮮이 망한 뒤 지어낸 이야기로 보인다.
2841#30529 SIBLINGS CHILDREN 30529
 
0265~0289 魏略·三國志 -0195
▐ 낙랑 주변의 추장들은 낙랑에 와서 인사를 하고 벼슬을 받고 돌아가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는 데 그것을 이용하였다. 벼슬을 줄 때 낙랑의 韓氏들은 韓王 이야기를 주입하고 나라 이름을 韓으로 바꾸도록 유도했을 수 있다. 그것은 추장들에게 韓이 들어간 벼슬을 내려주기만 하면 가능하다. 대조영이 처음에 나라를 세워 振國이라 했다가 당나라로부터 渤海郡王으로 책봉되자 국호를 渤海로 바꾼 사례가 있다.
2841#31022 SIBLINGS CHILDREN 31022
 
0265~0289 魏略·三國志 -0109⁻
朝鮮相歷谿卿 東之辰國 조선상 역계경이 동쪽의 진국으로 갔다. ▐ 이 당시 위만에게 쫓겨나 세운 韓國이 있었다면 역계경은 韓國으로 갔을 듯하다.
2841#14803 SIBLINGS CHILDREN 14803
 
0265~0289 魏略·三國志 0146~0189
桓靈之末 韓濊彊盛 郡縣不能制 民多流入韓國 환제(146~167)·영제(168~189) 말기에는 한과 예가 강성하여 군·현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니 많은 백성들이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2841#18258 SIBLINGS CHILDREN 18258
 
0265~0289 魏略·三國志 0196~0220
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為帶方郡 遣公孫模·張敞等收集遺民 興兵伐韓濊 舊民稍出 是後倭韓遂屬帶方 공손강이 둔유현 이남의 황무지를 분할하여 대방군으로 만들고 공손모·장창 등을 파견하여 한나라의 유민을 모아 군대를 일으켜서 한과 예를 정벌하자 옛 백성들이 차츰 돌아오고, 이 뒤에 왜와 한은 드디어 대방에 복속되었다.
2841#21967 SIBLINGS CHILDREN 21967
 
0265~0289 魏略·三國志 0237~0239
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 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 諸韓國臣智加賜邑君印綬 其次與邑長 명제가 몰래 대방군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두 군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여러 한국의 신지에게는 읍군의 인수를 더해 주고 그 다음 사람에게는 읍장을 주었다.
2841#28255 SIBLINGS CHILDREN 28255
 
0265~0289 魏略·三國志 0245 三國誤記
以樂浪本統韓國 分割馬韓八國以與樂浪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마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하였다.
2841#28256 SIBLINGS CHILDREN 28256
 
0265~0289 魏略·三國志 0245 三國誤記
0265~0289 魏略·三國志 0245 三國誤記
▐ 한나라는 -108년에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 眞番, 임둔 그리고 현도군을 설치했다가 -82년에 임둔과 함께 眞番을 폐지하고 15현 중 7현만 낙랑에 소속시킨 바 있다. 그 후 204~220년에 공손씨가 낙랑의 둔유현 이남 7개 현을 떼어 대방군을 설치하였다. 이 대방 7현은 낙랑에 편입된 眞番 7현으로 보인다. 眞番의 나머지 8현은 245년의 분쟁에 나오는 馬韓 8국과 연결지을 수 있다. 임진강에서 차현까지의 지역으로 추정된다.
2841#31428 SIBLINGS CHILDREN 31428
 
0265~0316 汲冢周書 注
良夷樂浪之夷也 貢奇獸 양이는 낙랑 오랑캐다. 기이한 짐승을 바친다.
2841#31009 SIBLINGS CHILDREN 31009
 
0265~0316 ◾良夷 → 朝鮮 → 樂浪
왕망이 樂浪을 樂鮮으로 바꾼 사례를 통해 樂浪은 어근 浪에 꾸밈말 樂이 붙어 만들어진 말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周 시기의 良夷가 樂浪 오랑캐였다는 이 주석을 통해서는 漢 시기에 나타난 樂浪의 浪이 良夷의 良을 달리 표기한 말일 가능성이 생긴다. 樂浪은 朝鮮에 설치되었다. 따라서 周 시기에 대동강 유역에 良夷가 있었는데 朝鮮으로도 불리다 漢 시기에는 樂浪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2841#6965 SIBLINGS CHILDREN 6965
 
0265~0316 晉率善穢伯長
2841#19802 SIBLINGS CHILDREN 19802
 
0275~0280 通典(801)
晉武帝咸寜中 馬韓王來朝 自是無聞 三韓蓋為百濟新羅所吞并 275~280년에 마한왕이 조공을 왔다. 이후는 소식이 없다. 삼한은 모두 백제와 신라에 병합되었다.
2841#30707 SIBLINGS CHILDREN 30707
 
0280┆0281┆0286 晉書(648) 辰韓
武帝太康元年 其王遣使獻方物 二年復來朝貢 七年又來
2841#29625 SIBLINGS CHILDREN 29625
 
0280┆0281┆0286┆0287┆0289┆0290 晉書(648) 馬韓
武帝太康元年 二年 其主頻遣使入貢方物 七年 八年 十年 又頻至 太熙元年 詣東夷校尉何龕上獻
2841#14913 SIBLINGS CHILDREN 14913
 
0289 三國志
韓은 帶方의 남쪽에 있는데 동서로 바다가 경계이고 남으로 倭와 접한다.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이 있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伯濟國을 비롯한 54개 나라로 이루어져 있다. 큰 나라는 만여 집이고 작은 나라는 수 천 집인데 합하면 10여만 집이다.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는데 斯盧國을 비롯한 12개 나라로 이루어져 있다. 변한도 12개 나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진한과 변한의 큰 나라는 4-5천 집이고 작은 나라는 6-7백 집이어서 합하면 4-5만 집이다.
2841#21986 SIBLINGS CHILDREN 21986
 
0289⁺ 韓의 변천
韓은 삼국지(289)에 처음 나타날 때 반도 중남부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한에는 馬韓, 辰韓 그리고 弁韓이 있었고 이 셋을 통틀어 三韓이라 불렀다. 이 삼한은 韓國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이 해체되자 한국은 거기에서 나온 백제, 신라 그리고 임나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 되었다. 한편, 삼한은 삼한의 한 축이던 임나가 신라에 병합되자 점차 백제, 신라 그리고 고려를 아울러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2841#378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0291
0291
2841#31527 SIBLINGS CHILDREN 31527
 
0308 백제의 馬韓 병합
0308 백제의 馬韓 병합
馬韓은 말기에 그 영향력이 차령과 노령 사이로 줄어들었었다.
2841#30520 SIBLINGS CHILDREN 30520
 
0348 帶方太守 張撫夷
2841#22001 SIBLINGS CHILDREN 22001
 
0357 遼東 平郭 출신 冬壽
2841#22000 SIBLINGS CHILDREN 22000
 
0408 信都縣 출신 鎭
2841#22060 SIBLINGS CHILDREN 22060
 
0414 廣開土王陵碑
若吾萬年之後 安守墓者 但取吾躬巡所略來韓穢 令備洒掃 만일 내가 죽은 뒤 나의 무덤을 편안히 수묘하는 일에는, 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해 온 한인과 예인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 ▐ 광개토왕은 한성백제를 정벌하고 많은 사람들을 끌고갔다. 당시 신라와는 동맹관계였으니 여기에 나오는 한인은 사실 백제인이다.
2841#8335 SIBLINGS CHILDREN 8335
 
0445 後漢書
西安平(魏氏春秋曰縣北有小水南流入海句驪別種因名之小水貊) 위씨춘추는 서안평현의 북쪽에 소수가 있어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그곳의 구려 별종을 소수맥이라 부른다고 했다.
2841#31227 SIBLINGS CHILDREN 31227
 
0445 後漢書 東夷列傳
句驪一名貊耳 有別種 依小水為居 因名曰小水貊 구려는 일명 맥이라 부른다. 별종이 있는데, 소수에 의지하여 사는 까닭에 이를 소수맥이라 부른다.
2841#31224 SIBLINGS CHILDREN 31224
 
0445 後漢書 東夷列傳
2841#31303 SIBLINGS CHILDREN OPEN
 
0509~0522 樂浪 遂城人 王氏 墓誌銘
樂浪名邦 王氏名宗 낙랑은 이름있는 나라이며 왕씨는 이름 있는 집안이다.┆其先出自有殷 周武王剋商 封箕子於朝鮮 子孫因而氏焉 그 선조는 은으로부터 나왔으니 주무왕이 상을 정복하고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는데, 자손이 이로 인하여 성씨를 삼았다.┆殷有三人 周訪九疇 只族王家 藉冑鮮侯 은나라에 세 어진 신하가 있어 주나라가 9주를 물었다. 그 집안이 성을 왕씨라 하고 자손들이 조선후가 되었다.
2841#30464 SIBLINGS CHILDREN 30464
 
0509~0522 樂浪 遂城人 王氏 墓誌銘
▐ 잠부론(163)에는 위만에게 쫓겨나 바다로 도망간 사람이 韓씨로 되어 있고 위략(265)에도 기자의 후예라는 설명이 더해져 위만에게 쫓겨나 바다로 도망간 조선후가 韓씨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기자의 후예 조선후가 王씨로 되어 있다. 모두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을 높여주는 정황이다.
2841#22065 SIBLINGS CHILDREN 22065
 
0539 樂浪郡 朝鮮縣人 韓顯度
元象二年四月十七日樂良郡朝鮮縣人韓顯性銘記 ▐ 準의 가문이 썼다는 韓氏와 위만조선의 韓陰 그리고 낙랑의 韓氏는 어떤 관계일까?
2841#6796 SIBLINGS CHILDREN 6796
 
0648 晉書
慕容雲 字子雨 寶之養子也 祖父和 高句驪之支庶 自云高陽氏之苗裔 故以高為氏焉 ┆慕容雲은 자가 子雨인데 寶의 양자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和인데 高句驪에서 갈라져 나왔다. 高陽의 후손이라 高씨라 했다고 한다.
2841#14894 SIBLINGS CHILDREN 14894
 
0679~0732 史記索隱 (司馬貞)
潮仙二音地因水為名也
2841#31131 SIBLINGS CHILDREN 31131
 
0681 文武王陵碑
君靈源自敻繼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 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傳七葉以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 제천지윤이 7대를 전하여 …
2841#22058 SIBLINGS CHILDREN 22058
 
0694 高牟 墓誌銘
族茂辰韓雄門譽偃傳芳穢陌聲高馬邑 가문은 진한에서 융성해 다른 명문의 명예를 모두 압도했고, 아름다운 명예가 예맥에 널리 전해져 명성은 도성인 마읍에서 드높았다. ▐ 다른 기록에 나오는 진한과 맞지 않는다.
2841#6346 SIBLINGS CHILDREN 6346
 
0695 金仁問墓碑
×五之君少皥▨墟分星于而超碧海金天命× ×▨太祖漢王啓千齡之⎵⎵聖臨百谷之× ▨오지군이라 소호는 ▨허하여 별빛을 나누고 시퍼런 바다를 뛰어 넘었으며 금천은 … 태조 한왕은 천년의 ▨을 열고, ▨성은 백곡의 ▨▨에 임하셨다.
2841#22066 SIBLINGS CHILDREN 22066
 
0815 新撰姓氏録
筆氏 燕相國衛滿公之後也 善作筆預於士流因玆賜筆姓 필씨는 연나라 재상 위만의 후손이다. 붓을 잘 만들어 필씨 성을 하사받았다.
2841#11302 SIBLINGS CHILDREN 11302
 
0864 大唐故金氏夫人墓銘
太上天子有國泰宗陽號少昊氏金天卽吾宗受氏世祖 태상천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열어 드러내셨으니 이름하여 소호씨금천이라 하니, 이분이 곧 우리 집안이 성씨를 받게 된 세조시다. 遠祖諱日磾自龍庭歸命西漢仕武帝 먼 조상 이름은 일제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에 투항하시어 무제 아래서 벼슬하셨다.
2841#22059 SIBLINGS CHILDREN 22059
 
0933 高麗史(1451)
(왕건이 후당으로부터 받은 조서) 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蕃之跡 宣乃惠和 주몽의 계토지정을 따라 군장이 되었고 기자의 작번지적을 밟아 사랑과 평화를 펼쳤다. ▐ 왕조가 신라에서 왕씨고려로 바뀌며 국조도 고려의 국조였던 朱蒙으로 바뀌었다. 이때 箕子도 국조로 숭배되었는데, 이는 고려의 箕子숭배를 계승한 듯하다.
2841#1715 SIBLINGS CHILDREN 1715
 
1145 三國史記
髙句麗 亦以髙辛氏之後 姓髙氏 (見晉書載記) ┆髙句麗 역시 髙辛씨의 후예이므로 성을 髙씨라 했다(진서 재기에 보인다)."고 한다. ▐ 진서 재기에는 高陽氏로 되어 있다.
2841#14898 SIBLINGS CHILDREN 14898
 
1281 ◾壇君朝鮮
고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라 모두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다. 건국설화는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고대 왕조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도구다. 위만조선도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위만조선을 내쫓고 세워진 낙랑군의 철저한 탄압을 받았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위만조선의 건국설화는 역사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민속으로는 계속 전승되고 있었고 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변질되어 왕씨고려 때에는 우리가 아는 단군설화가 된 것이 아닐까?
2841#11363 SIBLINGS CHILDREN 11363
 
1393 太祖實錄(1413)
(이성계는 조선과 화령이라는 두 가지 명칭을 명나라에 보내어 조선을 국호로 쓰라는 허락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표문을 올렸다.) “간절히 생각하옵건대, 옛날 箕子의 시대에 있어서도 이미 조선이란 칭호가 있었으므로, 이에 아뢰어 진술하여 감히 천자께서 들어주시기를 청했는데, 천자의 대답이 곧 내리시니 특별한 은혜가 더욱 치우쳤습니다.”
2841#13393 SIBLINGS CHILDREN 13393
 
2024.09.26 朝鮮의 어원
朝鮮(조선)은 鮮(물범)을 朝貢(조공)한다는 뜻이다.
2841#31744 SIBLINGS CHILDREN 31744
 
少昊
金天 ┆ 姓己,名摰(亦作質、鷙),為黃帝之子,生於窮桑(今山東省曲阜北),建都於曲阜。傳說他能繼承太昊的德行,故稱少昊或小昊。
2841#802 SIBLINGS CHILDREN COMMENT 802
 
王氏源派記(車柳氏宗譜史由來)
2841#22070 SIBLINGS CHILDREN 22070
 
穢·貉·倭·韓
穢, 貉 그리고 倭는 모두 중국인들이 붙여준 명칭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貊人은 나라 이름을 高句麗라 하였고 倭人도 나라 이름을 日本으로 바꾸었다. 韓은 낙랑 한씨의 성씨를 따라 붙여진 명칭이므로 부정적인 의미가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나라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2841#8001 SIBLINGS CHILDREN 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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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중북부에 朝鮮, 眞番 그리고 濊가 있었는데 漢이 병합하고 樂浪郡을 설치하였다. 남부에는 辰國이 있었는데 樂浪郡에서 빠진 眞番 남부와 함께 韓이라 불리게 되었다. 韓에는 馬韓, 辰韓 그리고 弁韓이 있었다.
2841#5802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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