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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史, 濊史 그리고 韓國史
朝鮮史는 대동강 유역에서 朝鮮·樂浪·高麗로 이어졌던 역사고, 濊史는 동해안 일대의 濊·沃沮와 임진·한강 상류의 靺鞨²로 구성되며, 韓國史는 임진강 이남에서 三韓으로 시작된 역사다.
朝鮮史는 高麗가 망하면서 끝이 났고 濊史는 朝鮮史에 속했다가 韓國史와 滿洲史로 흡수되었다.
임진강 이남은 百濟·新羅·任那로 재편되었다가 新羅로 통일되었는데, 王高와 李朝로 이어지며 역사 무대를 朝鮮史와 濊史의 무대였던 대동강 유역과 개마대산 동쪽까지 넓혔다.
4564#2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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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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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6 ⏍ 新羅民族論
漢나라는 위만朝鮮 병합과 漢사군 설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箕子동래설을 부풀렸다. 이어서 반도의 중남부 지역마저 차지하려고 韓王 이야기를 날조해 내서 옛 眞番 지역을 韓國이라 부르고 辰國도 이 韓國에 넣어 辰韓이라 불렀다. 辰韓에서 나온 新羅는 옛 眞番 지역과 濊를 통합하였는데, 이때 우리 민족이 형성되었다. 新羅 왕조를 교체한 王氏는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高麗를 韓國史에 끼워넣고 三國史記를 편찬하였다.
4564#2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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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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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 王氏高麗의 역사왜곡
① 고려와 한국은 서로를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② 고려의 대부분을 구성했던 맥, 예, 옥저 그리고 부여는 발해의 압록부, 남해부, 책성부 그리고 부여부가 되었다. 왕씨고려가 고려계승을 내세울 때 이미 고려계승을 내세운 그 발해가 수백년째 건재하고 있었다.
③ 고려의 일부였던 대방만 신라의 땅이 되었고 삼국사기가 고려의 땅으로 분류한 한강 하류는 원래 백제가 있던 곳이다.
왕씨고려는 그런 신라의 후속국에 불과하다.
4564#3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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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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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5~0313 朝鮮·樂浪史
-283년에 朝鮮은 燕에 복속되었다. -221년에 秦이 燕을 포함한 중국을 통일하자 조선은 秦에 소속되었다. -209년에 진승이 난을 일으키자 燕·齊·趙 지역의 난민 수만명이 조선, 진번 그리고 진국으로 들어왔다. -202년에 漢이 다시 중국을 통일했을 때 조선은 漢의 영역에서 빠졌다. 그러자 -195±년에 漢의 제후국이던 燕의 위만이 조선으로 망명했다가 유민과 토착민을 규합하여 왕이 되었다. -108년에 漢이 조선을 멸망시키고 樂浪郡을 설치했다.
4564#2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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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樂浪郡
┆漢書 25┆ 朝鮮 䛁邯 浿水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 (東暆 不而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 ┆後漢書 18┆ 朝鮮 (䛁邯) (淇水) 貪資 (占蟬) 遂城 (増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樂都) ➔ ┆晉書 6+7┆ 朝鮮 屯有 渾彌 遂城 鏤方 駟望 + 帶方 列口 南新 長岑 提奚 含資 海冥
4564#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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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 箕子
箕子는 상나라가 주나라에 망하던 시기(-1046)의 인물이다.
논어(-479)에는 단순히 상나라 주왕이 箕子를 가두었다고만 되어 있는데 상서대전(-157-)에는 주나라 무왕이 그를 풀어주자 조선으로 달아나므로 조선을 봉지로 인정해 주니 조공을 왔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한서(82)에는 箕子가 조선에서 예의를 가르쳐 8조범금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고 위략(265±)에는 조선왕이 箕子의 후손인데 위만에게 쫓겨나 韓王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4564#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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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7 三國史記 五周甲引上
삼국사기(1145)의 초기 기록은 삼국지(289)나 진서(648) 등에 나오는 정황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 나온다.
그런데 이 기록들을 300년 뒤로 물리면 중국 사서에 나오는 정황과 잘 어울린다.
옛날에는 연도를 간지로 표기하였기 때문에 사서를 편찬할 때 60년의 배수만큼 착오가 있을 수 있었다.
서진의 패망을 전후해서 반도의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이 백제와 신라 중심으로 재편되던 시기의 기록들이 300년 앞당겨진 듯하다.
4564#29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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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 ⏍ 高句麗
夫餘에서 밀려나 貊人 지역의 忽本으로 온 鄒牟가 桂婁部의 부족장에게 장가들어 그 부족의 우두머리 자리를 물려받고는 貊人 지역의 5부족을 통합한 뒤 왕망에게 살해되었다. 한편, 忽本에 있는 紇升骨城을 한나라는 高句麗라 칭하며 그곳에 縣을 설치하였는데 훗날 그곳에서 鄒牟 왕조가 성장하자 高句麗는 그 왕조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한편, 桂婁部 부족장의 외손들은 鄒牟의 장자에게 밀려나 漢城에서 百濟를 세웠다.
4564#15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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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 韓
한나라는 -108년에 위만조선을 정벌하고 낙랑, 眞番, 임둔 그리고 현도군을 설치했다. -82년에는 임둔과 함께 眞番을 폐지하고 眞番 15현 중 7현만 낙랑에 소속시켰다.
훗날 낙랑은 眞番의 나머지 8현을 되찾기 위해 '원래 조선은 기자의 후예인 韓氏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연나라에서 온 위만에게 쫓겨 바다를 거쳐 韓王이 되었고 그래서 그곳을 韓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이어 眞番 남쪽에 있던 辰國도 韓으로 묶어 辰韓이라 했다.
4564#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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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馬韓
爰襄國┆牟水國┆桑外國┆小石索國┆大石索國┆優休牟涿國┆臣濆沽國┆伯濟國┆速盧不斯國┆日華國┆古誕者國┆古離國┆怒藍國┆月支國┆咨離牟盧國┆素謂乾國┆古爰國┆莫盧國┆卑離國┆占離卑國┆臣釁國┆支侵國┆狗盧國┆卑彌國┆監奚卑離國┆古蒲國┆致利鞠國┆冉路國┆兒林國┆駟盧國┆內卑離國┆感奚國┆萬盧國┆辟卑離國┆臼斯烏旦國┆一離國┆不彌國┆支半國┆狗素國┆捷盧國┆牟盧卑離國┆臣蘇塗國┆占臘國┆臨素半國┆臣雲新國┆如來卑離國┆楚山塗卑離國┆一難國┆狗奚國┆不雲國┆不斯濆邪國┆爰池國┆乾馬國┆楚離國
4564#24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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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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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 任那史
369년에 왜는 백제와 함께 신라를 치고 比自㶱, 南加羅, 㖨國, 安羅, 多羅, 卓淳 그리고 加羅를 복속시킨 뒤 서쪽으로 돌아 忱彌多禮를 치자 比利, 辟中, 布彌支 그리고 半古가 항복해 왔다. 왜는 점령 지역을 백제와 나눠 가졌다가 392년에는 백제왕을 교체하면서 대부분 빼앗았다.
이후 백제에게 영토를 조금씩 돌려주고 신라에게는 조금씩 잠식당하다가 562년에 加羅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모두 잃었다.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은 任那의 유산이다.
4564#5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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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古奚津┆忱彌多禮
❶ 道武→陽武→道康┆古奚津→冬音→躭津┆道康+躭津→康津
❷ 忱彌多禮·枕彌多禮➔□牟羅·躭牟羅➔枕羅·躭羅·耽羅
양직공도(526~539)에는 枕羅가 등장하는데 일본서기(720)의 369년과 397년의 기록에 나오는 忱彌多禮 및 枕彌多禮와 연결될 수 있다.
수서(636)는 제주도를 □牟羅라 했는데, 북사(659)는 耽牟羅로 표기하였고, 삼국사기(1145)는 476년과 498년의 기록에 각각 躭羅와 耽羅로 표기하였다. 508년에 와서는 일본서기도 耽羅라 했다.
4564#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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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0436 前燕→後燕➔北燕
후연에서 풍발이 반란을 일으켜 황제 모용희를 죽이고 이전 황제의 양자였던 고운을 왕위에 앉혔다. 그러나 2년 뒤 고운이 살해되자 풍발이 난을 수습하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풍발이 죽자 풍발의 동생 풍홍이 풍발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북위의 침공을 받아 북연은 망하고 풍홍은 고려로 망명했다가 살해되었다.
4564#6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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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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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8 遼西┆右北平┆北平
▐ 漢 遼西┆且慮 海陽 新安平 柳城 令支 肥如 賓從 交黎 陽樂 狐蘇 徒河 文成 臨渝 絫 ➔ 後漢 遼西┆陽樂 海陽 令支 肥如 臨渝 ➔ 晉 遼西┆陽樂 肥如 海陽 ➔ 魏 遼西┆肥如 陽樂 海陽
▐ 漢 右北平┆平剛 無終 石成 廷陵 俊靡 薋 徐無 字 土垠 白狼 夕陽 昌城 驪成 廣成 聚陽 平明 ➔ 後漢 右北平┆土垠 徐無 俊靡 無終 ➔ 晉 北平┆徐無 土垠 俊靡 無終 ➔ 魏 北平┆朝鮮 新昌³
▐ 齊 北平┆新昌³ 肥如 ➔ 隋 北平┆新昌³ ➔ 隋 北平┆盧龍
4564#15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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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6 ⏍ 新羅
新羅는 562년에 가라를 병합하고 백여년 후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려를 각각 660년과 668년에 멸망시킨 뒤, 676년에는 당나라마저 몰아내고 임진강 이남을 하나로 통일하였다.
이로써 갈래가 다른 여러 종족들이 하나의 통치체제에 담기게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내부적으로는 동질성이 커지고 대외적으로는 이질성이 커져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하였다.
漢나라때 漢族이 형성되었듯 新羅라는 그릇에 담겨 생겨난 민족이니 新羅民族이라 부를 만하다.
4564#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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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 王氏高麗의 역사왜곡
왕씨고려는 영토와 백성은 신라 그대로고 왕조만 바뀐 것이다. 왕씨왕조가 고려계승을 내세운 것은 신라왕조에 한참 뒤지는 정통성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왕고는 삼국사기를 편찬하여 고려를 한국사에 끼워넣었다. 그런데 왕고가 내세운 고려계승은 봉건적 지배권을 말하는 것이었지 종족적 동일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옛 고려 지역의 주민들은 내쫓기도 하고 학살도 서슴지 않았다.
4564#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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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 壇君
燕나라의 衛滿은 -195+년에 조선으로 건너와 평양에서 왕조를 세웠다. 다른 고대 왕조처럼 衛滿 왕조 또한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08년에 한나라가 衛滿 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군을 설치하면서 통치에 권위를 부여하는 설화는 箕子 설화로 대체되었다.
이후 衛滿 설화는 지하로 들어가 무속신앙, 도교, 불교, 箕子 설화, 퉁구스 설화, 일본 설화 등과 결합하여 풍부한 이야기로 발전하였고 천여년이 지난 후에는 壇君 설화가 되어 있었다.
4564#2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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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 元明 교체
대체적으로 한국에서의 왕조교체는 중국에서의 왕조교체와 맞물려 일어났다. 중국에서 元이 明으로 교체될 때도 한국에서 왕씨고려가 이씨조선으로 교체되었다. 명나라를 치라고 보낸 왕고의 장수 이성계는 군대를 되돌려 왕씨왕조를 전복하고 이씨왕조를 세웠다. 그리고 명나라에 조선과 화령 두 국호 안을 올려 조선으로 하라는 결정을 받고 국호를 조선으로 정했다.
4564#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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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1912 淸
요동에서 여진이 성장하자 명나라는 이씨조선에 파병을 요구하여 함께 여진을 침공하였으나 패배하였다. 이조에서 광해군이 쫓겨나고 인조가 왕위에 올라 반여진 정책을 강화하자 여진은 1627년에 이조를 침공하여 왕자를 인질로 잡아갔다. 그러나 인질이 가짜 왕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명나라와의 친밀한 관계가 지속되자 1636년에 다시 이조를 침공하여 항복을 받아내고 진짜 왕자를 인질로 잡아갔다.
4564#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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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島의 古代 地名
漢書(82)에 한나라가 -108년에 설치한 낙랑군의 25현이 나오고, 三國志(289)에 그 낙랑군의 남쪽에 있던 삼한 78국이 나오며, 廣開土王陵碑(414)에 백제로부터 396년에 빼앗은 58성이 나오고, 日本書紀(720)에 왜가 369년에 점령한 임나의 7국과 4읍 등이 나오며, 三國史記(1145)에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의 군현이 모두 나온다.
車峴과 竹嶺 그리고 炭峴에 의해 세 지역으로 나뉘어진다.
4564#8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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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名의 변천
❶ 고구려와 사로는 각각 고려와 신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처음 이름을 버리고 나중 이름으로 통일한다.
❷ 고려와 백제는 훗날 동일한 이름의 나라가 다시 세워졌는데, 원래의 나라는 그대로 두고 나중의 나라만 접두어를 붙여 구별한다. 궁예고려, 왕씨고려, 견훤백제, ...
❸ 훗날의 나라 이름에 붙이는 접두어는 왕조를 표시하는 말로 한다. 위만조선, 이씨조선, ...
4564#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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