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嶺衞(철령위)는 和寧(화령)에 처음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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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이에 우왕은 철령 이북이 문주·고주·화주·정주·함주 등 동해안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에 이르기까지 원래 왕고의 땅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실 철령에서 함주 이남까지는 왕고의 땅이 맞지만 함주에서 공험진까지는 여진의 땅이었죠. 수백년 전에 윤관이 잠깐 빼앗았다가 돌려준 적이 있을 뿐입니다.
31675#28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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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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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우왕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명나라는 철령위 설치를 강행하여 1388년 3월에 두 명의 지휘와 천여 명의 군사들이 압록강을 건너와 강계를 지나갑니다.
당시 요동에서 영흥만으로 가는 길은 심양을 돌아 집안에 이른 뒤 그곳에서 압록강을 건너 강계와 황초령을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이어서 명나라는 같은 달에 철령위를 설치했다는 통보를 왕고에 보내오죠.
31675#3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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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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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
우왕이 보낸 군대는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되돌아 오지만 철령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5년 뒤 지금의 철령시에서 500리 동남쪽에 있던 것을 지금의 철령시로 옮겼다는 기록만 있을 뿐입니다.
추측컨대, 명나라는 왕고의 출병에 놀라 화령에 설치했던 철령위를 압록강 북안의 집안으로 대피시킨 듯합니다. 그리고 5년 뒤 마침내 철령 이북을 포기하고 심양 북쪽으로 옮긴 것이죠.
31675#3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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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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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이것은 일종의 패배이기 때문에 중국은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은 듯합니다.
철령위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출병 덕분에 철령 이북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출병을 반대하여 일으킨 이성계의 반란이 명분을 잃기 때문에 집권한 이씨 왕조가 숨긴 듯합니다.
31675#1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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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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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高麗史」
1388 寡人欲攻遼陽 卿等宜盡力 左右軍發平壤 衆號十萬
「太祖實錄」
1392 遣藝文館學士韓尙質如京師 以朝鮮和寧 請更國號
「明史」
1388 鐵嶺衛 以古鐵嶺城置
1392 成桂 請更國號 帝命仍古號曰朝鮮
1393 鐵嶺衛 遷於古嚚州之地 即今治也
31675#28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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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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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이성계는 새 왕조를 열며 명나라에 조선과 화령 두 가지 국호안을 올려 선택을 요청합니다.
그러자 명나라는 조선을 국호로 쓰라고 정해준 뒤, 화령에서 물러나 집안에 머무르고 있던 철령위를 심양 북쪽으로 옮기죠.
이성계가 생뚱맞게 화령을 국호안으로 넣은 것은 철령 이북에 대한 영유권을 간접적으로 호소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는 화령에 설치하려고 했던 철령위를 심양 북쪽으로 옮김으로써 그것에 화답한 것이죠.
31675#28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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