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地理志 > -0108 漢郡 > 眞番

진번은 사기(-91)에서 주로 조선과 묶여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에 접한 나라로 보인다. 조선은 사기에서 연나라의 동쪽에 접해 있다고 되어 있고 삼국지(289)에는 고구려의 남쪽이자 예의 서쪽에 있다고 되어 있으므로, 조선에 접한 진번이 있을 곳은 조선의 남쪽 밖에 없다.
 
-0283 史記(-91)
朝鮮王滿者故燕人也自始全燕時嘗略屬●眞番朝鮮爲置吏築鄣塞 연나라가 그 전성기 때 眞番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보루과 요새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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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2- 史記(-91)
北鄰烏桓夫餘 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연나라는 북으로 오환 및 부여와 이웃하고 동으로 예, 맥, 조선 그리고 真番과 교류하여 이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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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2- 漢書(82)
北隙烏丸夫餘 東賈●真番之利 연나라는 북쪽으로 오환 및 부여와 틈이 있고 동쪽으로는 真番과 장사를 해서 이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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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5? 史記(-91) 02
燕王盧綰反入匈奴滿亡命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연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 인을 모아 몽치 머리에 오랑캐의 복장으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다. 점차 眞番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과 제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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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8- 史記(-91) 03
會孝惠 高后時天下初定 遼東太守即約滿為外臣 保塞外蠻夷 無使盜邊 諸蠻夷君長欲入見天子 勿得禁止 以聞 上許之 以故滿得兵威財物 侵降其旁小邑 ●真番臨屯皆來服屬 方數千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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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8- 史記(-91) 03
이 때는 마침 효혜·고후(-195 ~ -188)의 시대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되니 요동태수는 곧 위만을 외신으로 삼을 것을 약속하여 국경 밖의 오랑캐를 지켜 변경을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모든 오랑캐의 군장이 들어와 천자를 뵙고자 하면 막지 않도록 하였다. 이로써 위만은 군사의 위세와 재물을 얻게 되어 그 주변의 소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眞番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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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8- 史記(-91)
燕丹散亂遼間 蒲收其亡民 厥聚海東 以集●真藩 葆塞為外臣 연과 단의 무리가 요를 어지럽힐 때 만은 유민을 거두어 해동에 모아 眞番에 집결시키고 변방의 외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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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史記(-91) 04
傳子至孫右渠 所誘漢亡人滋多 又未嘗入見 ●真番旁衆國欲上書見天子 又擁閼不通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 때에 이르러서는 유인해 낸 한나라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천자에게 입현치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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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漢書(82)
元封三年夏 尼谿相參迺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王險城未下 故右渠之大臣成已又反 復攻吏 左將軍使右渠子長 降相路人子最 告諭其民 誅成已 故遂定朝鮮為●真番臨屯樂浪玄菟四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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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漢書(82)
여름, 니계상 삼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험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죽은 우거의 대신 성이가 또 반하여 다시 군리를 공격하였다. 좌장군이 우거의 아들 장과 항복한 상 로인의 아들 최로 하여금 그 백성을 달래고 성이를 주살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眞番·임둔·낙랑·현도의 4군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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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2 漢書(82)
罷儋耳●真番郡 담이와 진번군을 폐지하였다. ▐ 이 사건 이후 真番은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다.
18416
 
-0082 後漢書(445)
罷臨屯眞番 以幷樂浪玄菟 임둔과 眞番을 폐지하여 낙랑과 현도에 합병하였다.
18209
 
0207± 응소(應劭)
玄菟本真番國 ▐ 진번군이 있는데도 현도군을 설치했으니 현도가 본래 진번국일 수는 없다.
6761
 
0289 三國志 요약 1
0289 三國志 요약 1
扶餘의 북쪽에는 弱水가 있고 서쪽에는 鮮卑가 있으며 동쪽에는 挹婁가 있고 남쪽에는 高句麗가 있다. 高句麗의 북쪽에는 扶餘가 있고 동쪽에는 沃沮가 있으며 남쪽에는 朝鮮과 濊가 있다. 朝鮮의 동쪽이 다 濊다. 沃沮의 북쪽에는 扶餘와 挹婁가 있고 서쪽에는 高句麗가 있으며 남쪽에는 濊가 있다. 濊의 북쪽에는 高句麗와 沃沮가 있고 남쪽에는 辰韓이 있다.
19155
 
0289 三國志 요약 2
朝鮮을 멸하고 樂浪郡, 真藩郡 그리고 臨屯郡을 설치하였다. 이듬해에는 沃沮에 玄菟郡을 설치하였다. 얼마 후 真藩과 臨屯을 폐하여 樂浪과 玄菟에 합쳤다. 玄菟는 高句麗의 서북쪽으로 옮기고 沃沮는 樂浪에 소속시켰다. 다시 樂浪의 단단대령 동쪽을 갈라 동부도위를 설치하였다가 濊人의 자치를 허용하였다. 樂浪郡의 남쪽은 분할하여 帶方郡을 설치하였다. 韓은 帶方의 남쪽에 있는데 馬韓, 辰韓 그리고 弁韓으로 이루어져 있다. 馬韓은 서쪽이고 辰韓은 馬韓의 동쪽이다.
19282
 
眞番
眞番
진번은 사기(-91)에서 주로 조선과 묶여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에 접한 나라로 보인다. 조선은 사기에서 연나라의 동쪽에 접해 있다고 되어 있고 삼국지(289)에는 고구려의 남쪽이자 예의 서쪽에 있다고 되어 있으므로, 조선에 접한 진번이 있을 곳은 조선의 남쪽 밖에 없다. 사기에는 진번이 맥과 동시에 거론되고 있어 맥인의 나라 고구려가 진번의 후신일 가능성도 배제된다. 한나라는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이곳에 진번군을 설치하였다.
19065
 
眞番 → 帶方郡
진번군은 이내 폐지되고 낙랑군에 합쳐졌는데, 이후 진번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한편, 전한의 낙랑 25현은 영동 7현이 갈라져 나가 후한의 낙랑 18성이 되었고 이 중에서 7성이 갈라져 나와 서진의 대방 7현이 되었다. 이 대방 7현이 진번이 폐지될 때 낙랑으로 합쳐진 진번의 7현으로 추정된다. 대방 7현은 자비령에서 임진강 사이로 추정되므로 낙랑에 합쳐지지 않은 진번 8현도 임진강 남쪽에 그만한 크기의 지역이 되어야 한다. 차현까지가 유력하다.
5907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說文解字
潘國
26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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