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sources
4564#6036
 
-0057~0290 ① 三韓의 形成 → 馬韓·辰韓·弁韓
19711
 
0291~0368 ② 三韓의 再編 → 百濟·新羅·任那
23975
 
0369~0474 ③ 倭의 任那 經略
23976
 
0475~0561 ④ 百濟의 南下
23977
 
0562~0659 ⑤ 新羅의 加羅 倂合 → 百濟·新羅
23978
 
0660~0676 ⑥ 新羅의 半島 統ー
23979
 
  大陸과 半島
大陸과 半島
2621
 
 半島와 列島
半島와 列島
23971
 
-1600 ~ -1046 商
4844
 
-1046 ~ -0770 周
6665
 
-1046 ~ -0108 朝鮮
-283년에 燕의 침공을 받아 복속되었다가 -206년에 중국을 통일한 漢의 영토에서는 빠졌다. -195±년에 燕의 衛滿이 와서 왕조를 세웠으나 漢의 침공을 받아 -108년에 망했다.
5817
 
-0770 ~ -0403 春秋時代
14779
 
-0334 戰國
薊┆代┆朝鮮┆遼東┆雲中┆九原┆嘑沱┆易┆碣石┆鴈門┆上谷┆常山┆造陽┆襄平┆漁陽┆右北平
29252
 
-0260 戰國七雄
23939
 
-0221 秦
秦의 嬴政은 서기전 222년에 燕을 병합하고 이어 서기전 221년에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였다.
40896 COMMENT
 
-0202 漢
漢의 劉邦은 秦이 망한 뒤 楚의 항우와 경쟁해서 이기고 서기전 206년에 다시 중국을 통일하였다. 중국인을 가리키는 漢族이라는 말은 이 漢에서 비롯되었다.
40897 COMMENT
 
-0195 漢
-0195 漢
29253
 
-0108~0313 樂浪
23951
 
-0108 ☰ 箕子
箕子는 상나라가 주나라에 망하던 시기(-1046)의 인물이다. 논어(-479)에는 단순히 상나라 주왕이 箕子를 가두었다고만 되어 있는데 상서대전(-157-)에는 주나라 무왕이 그를 풀어주자 조선으로 달아나므로 조선을 봉지로 인정해 주니 조공을 왔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한서(82)에는 箕子가 조선에서 예의를 가르쳐 8조범금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고 위략(265±)에는 조선왕이 箕子의 후손인데 위만에게 쫓겨나 韓王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6650
 
-0108  漢郡
-0108 漢郡
29254
 
-0108 漢郡
遼東┆蒼海┆樂浪┆眞番┆臨屯┆玄菟┆霅┆東暆
6125
 
-0108 樂浪郡
┆漢書 25┆ 朝鮮 䛁邯 浿水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 (東暆 不而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 ┆後漢書 18┆ 朝鮮 (䛁邯) (淇水) 貪資 (占蟬) 遂城 (増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樂都) ➔ ┆晉書 6+7┆ 朝鮮 屯有 渾彌 遂城 鏤方 駟望 + 帶方 列口 南新 長岑 提奚 含資 海冥
29255
 
-0091 史記(司馬遷)
23948
 
-0057~0290 ❶ 三韓의 形成
三韓¹=馬韓+辰韓+弁韓=韓國¹
23952
 
-0057 六村
閼川 楊山村 ┆ 突山 高墟村 ┆ 觜山 珍支村(干珍村) ┆ 茂山 大樹村 ┆ 金山 加利村 ┆ 明活山 高耶村
29256
 
-0037~0668 高麗都
-037 紇升骨城 ➔ 003 國內 ➔ 209 丸都 ➔ 247 平壤城 ➔ 342 丸都城 ➔ 343 平壤東黄城 ➔ 371 國內 ➔ 427 平壤 ➔ 586 長安城
29257
 
-0018 漢水·漢城·漢山
29258
 
-0006 樂浪·靺鞨
樂浪¹郡┆東有樂浪²(貊國)┆崔理樂浪³(東暆)┆靺鞨¹(勿吉)┆北有靺鞨²
29259
 
0008~0023 新
전한의 왕망은 고모인 효원 황후의 비호 아래 성장하다 서기 8년에는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전국에서 반란이 잇따랐고 서기 23년에는 왕망도 살해되었다. 이때는 유현이 반란 세력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어 있던 상태였다.
30923 COMMENT
 
0012 ☱ 高句麗
압록강 유역에는 貊이 있었다. 위만 조선에 복속되어 있다가 한나라가 -108년에 위만 조선을 무너뜨리고 4군을 설치할 때 현도군 高句麗현으로 편제되었다. 그러나 점차 한나라의 통제를 벗어나 高句麗현은 이름만 남게 되었다. 5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처음에는 소노부에서 왕을 배출하다 鄒牟부터는 계루부에서 왕위를 독점하였다. 나라 이름은 高句麗현의 이름을 따 高句麗라 불리게 되었다.
8757
 
0025~0220 後漢
전한이 왕망에 의하여 멸망한 이후, 한 왕조의 일족인 광무제 유수가 왕조를 부흥시켰다. 수도를 낙양에 두었는데 그 위치가 전한의 수도 장안보다 동쪽에 있기에 東漢이라고도 한다.
7858 COMMENT
 
0082 漢書(班固)
23970
 
0082 馬訾水┆鹽難水
29260
 
0220~0265 曹魏
魏의 曹丕는 漢의 마지막 황제로부터 자리를 넘겨받았는데, 이후 蜀 및 吳와 다툼을 벌였다. 이 시기를 삼국시대라고 한다. 蜀과 吳는 각각 264년과 280년에 魏와 晉에게 망했다.
40978 COMMENT
 
0245 ☲ 韓
한나라는 -108년에 위만조선을 정벌하고 낙랑, 眞番, 임둔 그리고 현도군을 설치했다. -82년에는 임둔과 함께 眞番을 폐지하고 眞番 15현 중 7현만 낙랑에 소속시켰다. 훗날 낙랑은 眞番의 나머지 8현을 되찾기 위해 '원래 조선은 기자의 후예인 韓氏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연나라에서 온 위만에게 쫓겨 바다 건너 韓王이 되었고 그래서 그곳을 韓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이어 眞番 남쪽에 있던 辰國도 韓으로 묶어 辰韓이라 했다.
19589
 
0245 東夷
弱水↑⸢扶餘⸥↓高句麗 □ 鮮卑 ← 扶餘 → 挹婁 □ 扶餘↑⸢高句麗⸥↓朝鮮·濊 □ 高句麗 → 沃沮 □ 扶餘·挹婁↑⸢沃沮⸥↓濊 □ 高句麗 ← 沃沮 □ 夫餘↗挹婁 □ 未知↑⸢挹婁⸥↓沃沮 □ 高句麗·沃沮↑⸢濊⸥↓辰韓 □ 濊 → 大海 □ 朝鮮 → 濊
29261
 
0245 蓋單山嶺
長白山²┆火串嶺┆竹嶺┆弓漢嶺┆蓋馬大山┆蒙羅骨嶺┆黃草嶺┆單單大領┆鐵嶺
29262
 
0245 馬韓
爰襄國┆牟水國┆桑外國┆小石索國┆大石索國┆優休牟涿國┆臣濆沽國┆伯濟國┆速盧不斯國┆日華國┆古誕者國┆古離國┆怒藍國┆月支國┆咨離牟盧國┆素謂乾國┆古爰國┆莫盧國┆卑離國┆占離卑國┆臣釁國┆支侵國┆狗盧國┆卑彌國┆監奚卑離國┆古蒲國┆致利鞠國┆冉路國┆兒林國┆駟盧國┆內卑離國┆感奚國┆萬盧國┆辟卑離國┆臼斯烏旦國┆一離國┆不彌國┆支半國┆狗素國┆捷盧國┆牟盧卑離國┆臣蘇塗國┆占臘國┆臨素半國┆臣雲新國┆如來卑離國┆楚山塗卑離國┆一難國┆狗奚國┆不雲國┆不斯濆邪國┆爰池國┆乾馬國┆楚離國
24986
 
0245 弁辰
已柢國┆不斯國┆弁辰彌離彌凍國┆弁辰接塗國┆勤耆國┆難彌離彌凍國┆弁辰古資彌凍國┆弁辰古淳是國┆冉奚國┆弁辰半路國┆弁樂奴國┆軍彌國(弁軍彌國)┆弁辰彌烏邪馬國┆如湛國┆弁辰甘路國┆戶路國┆州鮮國┆馬延國┆弁辰狗邪國┆弁辰走漕馬國┆弁辰安邪國┆弁辰瀆盧國┆斯盧國┆優中國
24987
 
0246×
0246×
23930
 
0247 平壤¹┆平壤²┆平壤³
29263
 
0265? 魏略(魚豢)
41073 COMMENT
 
0265~0317 西晋
晉은 司馬炎이 魏의 마지막 황제로부터 자리를 넘겨받아 세운 왕조다.
14814
 
0289 三國志(陳壽)
23969
 
0291~0368 ❷ 三韓의 再編
三韓²=百濟+新羅+任那=韓國²
23953
 
0317~0420 ➔東晉→劉宋→蕭齊→蕭梁→陳
司馬睿에 의해 강남에 세워진 晉의 망명 왕조이다. 이후 북중국에서는 북방계의 다섯 민족이 세운 16개의 나라가 흥망을 거듭했고 남중국에서는 東晉이 劉宋, 蕭齊, 蕭梁, 陳으로 차례로 교체되었는데 이 시기를 남북조 시대라고 한다.
41784 COMMENT
 
0337~0370 ➔前燕→後燕→北燕
요서 일대에 살던 慕容선비는 307년 慕容廆가 선비대선우를 자칭하며 자립하였다. 그의 아들 慕容皝은 337년에 연왕을 칭하고 단부, 後趙, 고려, 우문선비 등과 경쟁하며 성장하였다. 341년에는 용성에 도읍하였으나 353년에는 鄴으로 옮겼다. 370년 前秦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14780
 
0351~0394 前秦
감숙성 일대에 거주하던 저족은 오호십육국시대 초기에는 포홍을 지도자로 하여 前趙 및 後趙의 용병으로 각지를 전전하였다. 특히 후조에 의해 하북성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포홍의 아들 부건이 장안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351년에 전진을 건국하였다.
23934
 
0366 卓淳
29265
 
0369
0369
29266
 
0369 ☳ 任那
369년에 왜는 백제와 함께 신라를 치고 比自㶱, 南加羅, 㖨國, 安羅, 多羅, 卓淳 그리고 加羅를 복속시킨 뒤 서쪽으로 돌아 忱彌多禮를 치자 比利, 辟中, 布彌支 그리고 半古가 항복해 왔다. 왜는 점령 지역을 백제와 나눠 가졌다가 392년에는 백제왕을 교체하면서 대부분을 빼앗았다. 이후 백제에게 영토를 조금씩 돌려주고 신라에게는 조금씩 잠식당하다가 562년에 加羅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모두 잃었다.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은 任那의 유산이다.
24006
 
0369 㖨┆加羅┆多羅┆比自㶱┆安羅┆卓淳┆南加羅 
29267
 
0369 古奚津┆忱彌多禮
❶ 道武→陽武→道康┆古奚津→冬音→躭津┆道康+躭津→康津 ❷ 忱彌多禮·枕彌多禮➔□牟羅·躭牟羅➔枕羅·躭羅·耽羅 양직공도(526~539)에는 枕羅가 등장하는데 일본서기(720)의 369년과 397년의 기록에 나오는 忱彌多禮 및 枕彌多禮와 연결될 수 있다. 수서(636)는 제주도를 □牟羅라 했는데, 북사(659)는 耽牟羅로 표기하였고, 삼국사기(1145)는 476년과 498년의 기록에 각각 躭羅와 耽羅로 표기하였다. 508년에 와서는 일본서기도 耽羅라 했다.
29268
 
0369 比利┆辟中┆布彌支┆半古
29269
 
0369~0474 ❸ 倭의 任那 經略
23956
 
0369×
0369×
19755
 
0384~0407 前燕➔後燕→北燕
선비족 慕容垂가 건국한 나라이다.
23940
 
0386~0534 拓跋魏(北魏)
선비족 탁발부가 건국한 나라다.
11596
 
0397 峴南┆東韓┆支侵┆谷那
29270
 
0407~0436 前燕→後燕➔北燕
후연에서 풍발이 반란을 일으켜 황제 모용희를 죽이고 이전 황제의 양자였던 고운을 왕위에 앉혔다. 그러나 2년 뒤 고운이 살해되자 풍발이 난을 수습하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풍발이 죽자 풍발의 동생 풍홍이 풍발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북위의 침공을 받아 북연은 망하고 풍홍은 고려로 망명했다가 살해되었다.
6425
 
0414 廣開土王陵碑
23968
 
0414 古牟婁┆牟婁┆比利┆彌鄒
29271
 
0420~0479 東晉➔劉宋→蕭齊→蕭梁→陳
북조와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명성을 얻은 劉裕는 황제를 죽이고 꼭두각시 황제를 세웠다가 그 역시 죽이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宋을 세웠다.
32921 COMMENT
 
0445 後漢書(范曄)
23967
 
0475~0561 ❹ 百濟의 南下
23957
 
0475×
0475×
23972
 
0479~0502 東晉→劉宋➔蕭齊→蕭梁→陳
난릉 출신의 하급병사 蕭道成이 유휴범의 반란을 진압하여 권력자가 된 뒤 宋順帝로부터 선양을 받아 건국했다.
41032 COMMENT
 
0488 宋書(沈約 等)
27307 COMMENT
 
0490~0495 面中┆八中┆辟中┆弗中·弗斯┆解禮┆阿錯┆邁盧·邁羅
29272
 
0500×
0500×
20084
 
0502~0557 東晉→劉宋→蕭齊➔蕭梁→陳
옹주자사로써 양양에 주둔하고 있던 蕭衍이 폭군을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켜 동혼후를 죽이고 화제을 옹립하였다가 화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건국하였다.
41009 COMMENT
 
0512 上哆唎┆下哆唎┆娑陀┆牟婁
29273
 
0513 伴跛·叛波
29274
 
0513 己汶·己文·基汶·竒物
29275
 
0515± 水經注
15132
 
0521 上己文┆下枕羅┆前羅┆卓┆叛波┆多羅┆斯羅┆止迷┆麻連  
29276
 
0529 金官·背伐·安多·委陀┆多多羅·須那羅·和多·費智┆多多羅·須奈羅·和陀·發鬼
29277
 
0534 北魏➔東魏+西魏
北魏의 효무제는 高歡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자 낙양에서 장안으로 도피하여 宇文泰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자 고환은 鄴에서 효정제를 옹립하였다. 한편 우문태는 효무제를 독살하고 문제를 옹립하였다.
40307 COMMENT
 
0537 南齊書(萧梁 蕭子顯 等)
23949
 
0541 下韓(南韓)
29278
 
0550~0577 東魏➔北齊
547년에 東魏의 실권자 高歡이 죽자 그의 맏아들 高澄이 권력을 계승하였는데 549년에 살해되었다. 그러자 고환의 차남 高洋이 난을 수습하고 황제가 되어 北齊를 세웠다. 577년에 北周에게 망했다.
23974
 
0551 高句麗
漢山州┆牛首州┆何瑟羅州
29279
 
0554 魏書(北齊 魏收)
23966
 
0557~0581 西魏➔北周
宇文泰의 아들 宇文覺이 西魏 황제로부터 양위를 받아 세웠다. 577년에 北齊를 멸망시키으나 靜帝에 이르러 楊堅에게 선양함으로써 끝이 났다.
40982 COMMENT
 
0557~0589 東晉→劉宋→蕭齊→蕭梁➔陳
陳霸先은 梁敬帝의 선양을 받아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41762 COMMENT
 
0562 下加羅都┆上加羅都┆寶伎┆達已┆思勿┆勿慧┆下奇物┆師子伎┆居烈┆沙八兮┆爾赦┆上奇物
29281
 
0562 乞飡┆加羅┆卒麻┆古嵯┆多羅┆子他┆安羅┆散半下┆斯二岐┆稔禮
 
29280
 
0562~0659 ❺ 新羅의 加羅 倂合
三韓³=百濟+新羅+髙麗
23965
 
0581~0618 隋
589년에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으나 618년에 唐으로 왕조가 교체되었다.
27267 COMMENT
 
0598 遼西┆右北平┆北平
▐ 漢 遼西┆且慮 海陽 新安平 柳城 令支 肥如 賓從 交黎 陽樂 狐蘇 徒河 文成 臨渝 絫 ➔ 後漢 遼西┆陽樂 海陽 令支 肥如 臨渝 ➔ 晉 遼西┆陽樂 肥如 海陽 ➔ 魏 遼西┆肥如 陽樂 海陽 ▐ 漢 右北平┆平剛 無終 石成 廷陵 俊靡 薋 徐無 字 土垠 白狼 夕陽 昌城 驪成 廣成 聚陽 平明 ➔ 後漢 右北平┆土垠 徐無 俊靡 無終 ➔ 晉 北平┆徐無 土垠 俊靡 無終 ➔ 魏 北平┆朝鮮 新昌³ ▐ 齊 北平┆新昌³ 肥如 ➔ 隋 北平┆新昌³ ➔ 隋 北平┆盧龍
29282
 
0612 碣石┆遂城┆新昌
29283
 
0618~0907 唐
唐은 660년에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는 역시 신라의 도움을 받아 고려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신라마저 병합하려던 시도는 실패하여 한국에서 물러났다.
6500
 
0619 平州
619 平州 ┆ 臨渝 肥如 ┆ 臨渝 盧龍 ┆ 臨渝 盧龍 撫寧 ┆ 624 盧龍 撫寧 ┆ 641 盧龍 臨渝 ┆ 697 盧龍 石城 ┆ 740 盧龍 石城 馬城 ┆ 742 北平郡 ┆ 758 平州
29284
 
0636 北齊書(李百藥)┆周書(令狐德棻 等)┆梁書(姚思廉)┆陳書(姚思廉)┆隋書(魏徵 等)
10348
 
0636 固麻城┆古沙城┆得安城┆久知下城┆刀先城┆熊津城
29285
 
0642 括地志
6496
 
0648 晉書(房玄齡 等)
23964
 
0659 北史┆南史 (李延壽 )
13723
 
0660 百濟
熊川州┆完山州┆武珍州  
29286
 
0660~0676 ❻ 新羅의 半島 統ー
백제가 망할 때부터 당나라가 평양에 설치했던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길 때까지.
23958
 
0660↷ 五都督府┆熊津┆馬韓┆東明┆金漣┆德安
29287
 
0664 熊津都督府┆東明州┆支潯州¹┆支潯州²┆魯山州┆古四州┆沙泮州┆帶方州┆分嵯州 
29288
 
0668 半島의 古代 地名
0668 半島의 古代 地名
29293
 
0676 ☴ 新羅
新羅는 562년에 가라를 병합하고 백여년 후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려를 각각 660년과 668년에 멸망시킨 뒤, 676년에는 당나라마저 몰아내고 임진강 이남을 하나로 통일하였다. 이로써 갈래가 다른 여러 종족들이 하나의 통치체제에 담기게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내부적으로는 동질성이 커지고 대외적으로는 이질성이 커져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하였다. 漢나라때 漢族이 형성되었듯 新羅라는 그릇에 담겨 생겨난 민족이니 新羅民族이라 부를 만하다.
24052
 
0676- 海東安弘記(東都成立記)
日夲(日本)┆中華┆吳越┆乇羅(托羅)┆鷹逰┆ 靺鞨┆丹國┆女真(女犾)┆穢貊(獩㹮)
29289
 
0676×
0676×
20085
 
0698~0926 渤海
고려 유민 대조영이 세웠고 遼에 망했다.
30919 COMMENT
 
0720 日本書紀┆0797 續日本紀┆0815 新撰姓氏録
24005
 
0757  九州五小京
0757 九州五小京
29290
 
0757 全州┆武州┆溟洲┆熊州
29291
 
0801 通典(杜佑)
23962
 
0916~1125 遼
중국대륙이 唐의 멸망 이후 5대10국의 혼란기에 빠져있을 때 거란족의 야율아보기가 부족을 통합하고 세웠다. 金에 망했다.
30921 COMMENT
 
0935- 新羅 祭祀
29393
 
0945 舊唐書(後晉 劉昫 等)
23961
 
0960~1279 趙宋
趙宋은 960년에 세워져 중국을 통일하였다. 이후 1127년에 金의 침략을 받아 수도가 함락되고 황제가 金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황제의 동생이 남중국으로 도망가 왕조를 계속 이었다. 1279년에 元에게 병합되었다.
30920 COMMENT
 
0974~1084
0974 舊五代史(薛居正 等)┆1013 冊府元龜(王欽若 楊億 等)┆1053 新五代史(歐陽修)┆1060 新唐書(歐陽修 宋祁)┆1084 資治通鑑(司馬光)
23982
 
1108 東北九城
孔州 ┆ 雄州→海洋┆火串山┆火串嶺 ┆ 弓漢村→吉州¹┆弓漢嶺 ┆ 公嶮鎭→吉州² ┆ 曷懶→吉州¹ ┆ 吳林金村→福州→禿魯兀 ┆ 磨雲嶺 ┆ 乙離骨 ┆ 英州→三撒(參散)┆蒙羅骨嶺 ┆ 合懶→咸州→合蘭 ┆ 宣德鎭 ┆ 巴只→定州 ┆ 長州 ┆ 和州→雙城 ┆ 高州 ┆ 文州 ┆ 宜州 ┆ 平戎 ┆ 登州 ┆ 通泰 ┆ 鐵嶺 ┆ 영흥만
29292
 
1115~1234 金
아골타가 말갈 부족들을 통합한 후 세웠다. 1125년에 遼를 멸망시키고 1127년에는 趙宋마저 남쪽으로 밀어내고 북중국을 차지하였다. 1234년 몽골의 침략을 받아 망했다.
40850 COMMENT
 
1145 三國史記(王高 金富軾)
23959
 
1271~1368 元
元은 몽골제국의 쿠빌라이가 분열된 제국 내에서 자신의 통치력이 미치는 영역을 묶어 1271년에 세운 나라로 1279년까지는 趙宋을 완전히 병합하였다.
30924 COMMENT
 
1281 ☵ 壇君
燕나라의 衛滿은 -195+년에 조선으로 건너와 평양에서 왕조를 세웠다. 다른 고대 왕조처럼 衛滿 왕조 또한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08년에 한나라가 衛滿 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군을 설치하면서 통치에 권위를 부여하는 설화는 箕子 설화로 대체되었다. 이후 衛滿 설화는 지하로 들어가 무속신앙, 도교, 불교, 箕子 설화, 퉁구스 설화, 일본 설화 등과 결합하여 풍부한 이야기로 발전하였고 천여년이 지난 후에는 壇君 설화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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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三國遺事(王高 一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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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3~1345 (元 脫脫 等)
1343 遼史┆1344 金史┆1345 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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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8~1644 明
明은 남중국에서 세워진 왕조로 元을 몽골로 몰아내고 북중국까지 차지하였다. 1616년에 요동에서 後金이 세워지자 明은 1619년에 이조의 지원군과 함께 後金을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였다. 淸은 明의 마지막 황제가 1644년에 자살하자 북경을 점령하고 이어 중국을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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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0 元史(明 宋濂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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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 高麗史(李朝 鄭麟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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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2 高麗史節要(李朝 金宗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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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 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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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 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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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1912 淸
누르하치가 여진을 통합하고 1616년에 後金을 세웠다. 이후 後金은 국호를 淸으로 바꾸고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후 중국대륙마저 정복하였다.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으로 이듬해에 왕조가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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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 明史(清 張廷玉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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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 八道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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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 東史綱目(李朝 安鼎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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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 靑邱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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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 靑邱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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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1861 東輿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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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 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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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1945 滿洲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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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米軍
新羅民族의 형성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민족이 분단된 적이 없었고 이렇게 오랫동안 외국군이 주둔한 적도 없었다. 동북공정처럼, 미군주둔과 이로 인한 외교적 경제적 예속을 정당화하는 주장은 지금 없는가? 米軍을 철수시키지 않고는 민족 통일은 커녕 민족 공존도 불가능하다.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의 시대적 과제는 자주화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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