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s home > 보통 사람이 쓴 신라민족론 | 18 | T
in Silla's webmarks all the webmarks


(0) 보통 사람이 쓴 신라민족론 | R
우리가 예로부터 전해들은 역사 이야기 중에는 왜곡되거나 잘못된 것이 많다. 이 글에서는 민족정체성과 관련된 여섯 가지의 주제에 대해 고정관념을 벗어나 원점에서 다시 고찰해 본다.
http://qindex.info/d.php?c=1727#24714
(1)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 (I) | R
한민족은 신라, 백제 그리고 임나로 나뉘어 살던 사람들이 한국통일로 단일정치단위에 담기게 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한국통일 이전에는 주변의 말갈이나 왜(倭)와 차별되는 동질성이나 동질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국통일 이후 내부적으로는 동질화가 진행되고 대외적으로는 이질화가 진행되어 현재와 같이 주변의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뚜렷이 구별되는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게 되었다.
http://qindex.info/d.php?c=1727#24715
(1)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 (II) | R
24사와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라, 백제 그리고 고려의 언어와 풍습 그리고 신라의 기원에 관한 기록을 모아 비교분석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727#32428
(1)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 (III) | R
한민족은 한국통일 이후 왕씨고려와 이씨조선에 걸쳐 평안도와 함경도의 확장된 영토로 이주하였고 이조말기와 일조시대에 걸쳐서는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한민족의 성씨를 분석해 보면 신라/임나계 성씨가 압도적으로 많아 그 정체성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근대적 의미의 한민족은 이조말기와 일조시대에 걸쳐 신분제가 폐지되고 사회적 차별이 해소되면서 완성되었다.
http://qindex.info/d.php?c=1727#26240
(2) 우리는 단군의 자손인가? (I) | R
단군조선은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에 불과할 뿐 역사가 될 수 없으며 기자조선 또한 근거가 부족하여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기 어렵다. 위만조선이 대동강 유역에서 번성할 때 한반도의 중남부에는 한(韓)이라는 별도의 사회가 있었다. 이 사회의 영역을 신라의 영역과 비교해 보면 한민족은 조선이 아닌 한(韓)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은 낙랑과 고려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중국으로 녹아들어갔다.
http://qindex.info/d.php?c=1727#24716
(2) 우리는 단군의 자손인가? (II) | R
조선이 갑자기 한민족의 뿌리로 둔갑하게 된 것은 바로 기자 때문이다. 중국 문화를 숭배하던 유학자들이 기자를 지렛대로 삼아 한반도를 소중화로 격상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 때문에 조선이 한민족의 뿌리로 채택되었지만 기자는 훗날 등장한 단군에게 그 조선의 국조 자리를 넘겨주어야 했다.
http://qindex.info/d.php?c=1727#33565
(3) 왜(倭)는 처음부터 남이었나? (I) | R
왜인들은 선사시대에 한반도 남단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의 후손이다.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한반도 남단은 일본열도와 밀접한 관계를 이어갔는데, 특히 391년 왜(倭)는 임나지역을 점령하고 이후 170여 년 간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562년 임나가 신라에 병합되고 660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백제마저 신라에 통합되면서 왜(倭)와 한반도는 거의 단절된 역사의 길을 가게 된다.
http://qindex.info/d.php?c=1727#32756
(3) 왜(倭)는 처음부터 남이었나? (II) | R
백제는 신라에 비해 늦게 왜와 교류를 하기 시작했지만 4세기 말에 왜가 한반도로 진출하면서부터 급속히 왜의 영향권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백제와 왜의 친밀한 관계는 백제가 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http://qindex.info/d.php?c=1727#25815
(3) 왜(倭)는 처음부터 남이었나? (III) | R
중국 사서에서 왜(倭)에 대한 기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다. 그러나 이 시기 백제와 신라는 나타나지 않는다. 280년부터 287년까지 마한과 진한의 조공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남조의 사서에는 왜(倭)가 송(劉宋)때부터 삼한 국가들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주장한 것으로 나온다.
http://qindex.info/d.php?c=1727#41786
(3) 왜(倭)는 처음부터 남이었나? (IV) | R
임나사(任那史) - 왜는 391년 임나지방을 점령한 뒤 562년까지 170여년 간 이곳의 작은 나라들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http://qindex.info/d.php?c=1727#15901
(4)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 R
고려는 해체될 때 왕조와 함께 그 영역과 백성의 대부분이 당나라에 흡수되었다. 따라서 일단 고려의 무게중심은 당나라로 이동했다고 할 수 있다. 또 뒤이은 발해가 고려의 영토와 백성의 상당부분을 흡수했지만 발해 또한 요나라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지금의 중국 속으로 녹아들었다. 따라서 고려가 중국사에 속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http://qindex.info/d.php?c=1727#24717
(5)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였나? | R
한반도에서는 660년부터 676년까지의 사이에 지배구조의 큰 변화가 일어났다.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하여 백제왕조를 660년에 무너뜨리고 고려왕조를 668년에 무너뜨렸으며 이후 당나라와 신라 사이에도 전쟁이 벌어져 서로 싸우다 676년에야 마무리가 되었다. 이렇게 660년에 시작되어 676년에 마무리된 지배구조의 변화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여기서 살펴보기로 한다.
http://qindex.info/d.php?c=1727#24718
(6) 왕씨고려는 고려를 계승하였나? (I) | R
왕씨고려의 영토와 백성은 신라의 영토 및 백성을 그대로 이었고 왕고의 지배세력 또한 모두 신라인들이었다. 따라서 왕고의 실체는 신라의 후속국이며 고려계승이라는 명분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내세운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왕고가 사용한 이 고려라는 국호 때문에 한민족의 정체성에 혼동이 왔다.
http://qindex.info/d.php?c=1727#24719
(6) 왕씨고려는 고려를 계승하였나? (II) | R
요동사(遼東史)는 조선, 동방변군, 고려, 발해, 요(遼), 금(金), 청(淸), 만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계통으로 한국사도 중국사도 아닌 제3의 역사공동체다.
http://qindex.info/d.php?c=1727#38417
(7)-1 백제의 요서점유설 | R
요서점유설은 임나경영설과 대칭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또 서로 연관되는 부분도 있다. 시기적으로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왜(倭)의 식민지인 백제가 중국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괴상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요서점유설은 임나경영설과 비교하며 고찰해 보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http://qindex.info/d.php?c=1727#33691
(7)-2 신라김씨 흉노유래설 | R
신라김씨란 신라의 왕을 배출했던 김(金)씨 가문을 말하는데 경주김씨와 경주김씨로부터 갈라져 나온 많은 김씨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여기에는 김일성의 전주김씨와 김구의 안동김씨도 포함되어 있다. 신라김씨 흉노유래설은 이러한 신라김씨들의 공통 조상인 김알지가 흉노 왕자의 후손이라는 주장이다.
http://qindex.info/d.php?c=1727#25632
(7)-3 일본천황가 한반도유래설 | R
일본천황가의 기원이 한반도라는 주장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신라유래설, 부여유래설, 임나유래설, 백제유래설 등이 있다.
http://qindex.info/d.php?c=1727#24953
(7)-4 금시조 한국인 후손설 | R
금(金)을 세운 아골타가 신라와 왕고의 왕조교체기에 한국에서 건너간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주장이다.
http://qindex.info/d.php?c=1727#40254
execute:0.065 sec, load: sec http://qindex.info/d.php?c=1727 [ refresh ] [ Email to Silla ]
Qindex.info 2004,   Introduction | 소개 | 介绍 | 導入 | qindex.info@gmail.com